'더 굿 플레이스', '미나리'

2021.03.08 15:43

겨자 조회 수:804

[더 굿 플레이스]


가난한 백인 미인, 런던 상류층 셀러브리티, 세네갈 출신 윤리학 교수, 플로리다의 건달 사이에 접점은 무엇일까요? '더 굿 플레이스'는 "모두 죽는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사후세계에서 이들을 만나게 해버립니다. 현실이 아닌 저세상부터 인연이 생기고 다시 현실 세상으로 그 인연이 이어지죠. 어떤 인간이 천국에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던 '더 굿 플레이스'가 시즌 4로 막을 내렸습니다. 새로 바뀐 시스템에서 인간은 하나둘 천국에 갈 수 있게 되고, 천국이 권태로워져서 적멸 (寂滅 Total annihilation, Nirvana) 에 들게 되죠. 적멸에 드는 이유는 권태가 아닌데 서양인들이 이걸 이런 식으로 표현한 점이 아쉽네요. 어쨌든 4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은 얼키고 설킨 인연을 하나둘씩 잘라냅니다. 엘레노어를 남겨놓고 치디가 떠나고, 제닛을 남겨놓고 제이슨이 떠납니다. 제닛은 인간이 아니고 일종의 오퍼레이팅 시스템 내지는 지성인데 제이슨을 사랑하게 됩니다. 제이슨은 제닛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서 적멸의 문 앞에서 기다립니다. 제이슨은 시즌 1에서 가짜 승려 행세를 하던 젊은이예요. 하지만 사실은 일이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화염병 (몰로토프 칵테일)을 던지던 사람이었죠. 시즌 4에서 제이슨은 마음을 비우고 기다립니다. 


Jason: I decided to wait for you to come back. Every so often different Janet came but, I knew it wasn't you. 

Janet: Jason, it has been like thousand Beremys. 

Jason: I know, but I wanted to see you again. It was actually pretty easy to wait. I sort of just sat quietly, and my mind drifted away, I thought about you. And infinity of the universe. 

Janet: Kind of like a monk. 

제이슨: (적멸에 들기 전에)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결심했지요. 그동안 수많은 지성이 왔다 갔어요. 그들은 모두 당신과 꼭같이 생겼지만 나는 그들이 당신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제닛: 하지만 그건 영겁의 시간이었을텐데요. 

제이슨: 알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다시 보고 싶었거든요. 기다림은 아주 쉬웠죠. 조용히 앉아서 당신과 우주의 영원에 대해 생각하니 내 마음은 저절로 흘러갔습니다. 

제닛: 수행승 같군요. 


제닛을 마지막으로 만난 뒤 그는 적멸을 향해 달려갑니다. 


[미나리]


-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한 번 이야기를 했지만, JJ 에이브럼스가 정이삭 감독 인터뷰한 비디오 클립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25일 만에 찍었고, 아동 배우들이 있어서 이들을 데리고는 하루에 여섯시간 밖에 찍을 수 없었는데, 거의 모든 씬에 아들 혹은 딸이 나와서 상당히 빠듯하게 찍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JJ 에이브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감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봉준호 감독도 정이삭 감독과 대화하면서 개울가 장면은 며칠 동안 찍었느냐고 묻는데, 정 감독이 하루에 찍었다고 하니까 놀랍니다. 현장 콘트롤이 좋다는 뜻인데 이렇게 가지런하게 현장을 끌고 나갈 수 있다면, 분명 다음 작품도 잘 수행해나가겠지요. JJ 에이브럼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이삭 감독은 - 작품을 준비하다 배운 게 있는데, 보통 농사를 지으면 첫 해의 농작물은 흉작이다. 둘째 해부터 비로소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라는 말을 합니다. JJ는 순간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표정을 바꿉니다. 1세대 이민자들의 실패는 어쩌면 예정된 것이고, 그들의 희생은 차세대를 위한 것임을 메타포로 던진 것이죠.  


- 힐즈데일이라는 대학을 알고 계신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학교입니다. 버클리는 반대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하죠. 이 두 학교 교지에 나란히 '미나리'에 대한 평가가 실렸습니다. 둘다 '미나리'를 좋게 봅니다. 관점은 물론 달라요. 힐즈데일에 실린 건 '아메리칸 드림'이 살아있다는 취지이고, 버클리 비컨에 실린 건 이 영화가 이민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미국인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5 에이커, 50 에이커... 그것도 아주 익숙한 숫자입니다. 주변에 농장을 사서 은퇴한 사람들이 있어요. 보통 5에이커 (6120평)는 취미 수준으로 보더군요. 왜 농장에서 은퇴를 하려고 하느냐, 병원은 멀지, 인터넷은 안되지, 진드기가 물어제껴서 언제 라임병에 걸릴 지 모르지, 기계 잘못 건드렸다간 사고 나기 십상이지... 그런데도 농장을 사서 은퇴를 합니다. 왜냐고 물으니까 그게 어려서부터의 꿈이었대요. 자기만의 농장을 갖는 게. 


이 작품과 관련해서 'Matters of heart: What Minari means to me'라는 글을 아이작 펠드버그가 썼습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아이가 나의 동생이라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이 글의 저자는 심장병으로 죽은 여동생을 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누나 앤은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 아이죠. 옷도 스스로 챙겨입고 식사도 스스로 준비합니다. "우리 딸 다 컸네. 엄마를 다 걱정하고." "늘 동생 돌봐주고, 미안하다" My daughter’s so grown-up, worrying about her mom,” says Monica. “Always looking after her brother, too. I’m sorry.” 라고 모니카는 말합니다. 이 부분 대사를 듣고 아이작 펠드버그는 충격받고 또 위로받은 것 같더군요. "지금은 괜찮겠지. 하지만 이게 얼마나 견딜 것 같애? 잘 될 거 같지 않아. 그리고 난 견딜 수 없어."라고 모니카는 제이콥에게 말합니다. 정확한 상황 판단이죠. “Things might be fine now,” she says, “but I don’t think they will stay that way. I know this won’t end well, and I can’t bear it.”


실제 인생에서 가족 중의 한 명이 아프면 나머지 가족들은 상당히 고통을 겪죠. 아이작 펠드버그는 열세살에 죽은 자신의 여동생을 떠올리면서, 이 영화는 관객들의 심장을 부숴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화속에서 데이빗의 심장은 좋아지고 있었죠. 그렇지만 현실세계에서 아픈 형제자매를 둔 어린이들, 뇌졸중을 맞은 가족을 둔 사람들은 "지금은 괜찮겠지. 하지만 이게 얼마나 견딜 것 같애? 잘 될 거 같지 않아. 그리고 난 견딜 수 없어." 라고 중얼거리게 되죠. 그런데 아프지 않은,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나요? 아이작 펠드버그는 여동생의 죽음을 영혼의 멍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에는 모두 멍이 들어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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