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9 18:16
금요일 오후부터 듀게 글리젠이 느려지는 틈을 타 분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분(쌀국수)짜(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패티)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 북부지역의 음식인데, 남부에도 분팃느엉이란 비스무레한 게 있지만 전자가 물냉면이라면 후자는 비빔냉면 느낌이죠.
여튼 오리지날 분짜를 드시려면 하노이로 가셔야 합니다. 여행객들에게는 호안끼엠 호수 근처, 구시가지 항만거리의 분짜가게가 유명한데, 돌아다니다 보면 구석구석 현지인 상대로 파는 더 맛난 집들이 많습니다. 제 분짜 맛의 기준은 항보거리 31번지 가게죠. 가게는 꼬질꼬질하고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먹어야 하지만 뭐 그런 거야 그러려니 넘어갑니다.
이걸 한국의 가정에서 해 드시자면 숯불을 피워야하는 난관이 있습니다만 뭐 드시고 싶은 분들은 캠핑을 가시건, 동네 숯불구이점 주인장과 친구를 트건, 이사를 하시건-_-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하시리라 믿고...
분짜는 크게 1)고기 2)채소 3)면 4)국물 이렇게 네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양념갈비살을 구워서 냉면육수에 담갔다가 면과 함께 상추쌈을 싸먹는 거랑 기본적으로는 비슷다고 할 수 있지요.
1) 고기
구이용 삼겹살을 준비해서 반은 패티용으로 다지고, 반은 한입크기로 썰어둡니다.
양념장을 만들어요.
느억맘(생선액젓) 1
(까나리나 멸치액젓으로 대신해도 되긴 한데, 아무래도 베트남산이나 태국산 피쉬소스를 쓰는 게 현지풍미가 더 나겠죠)
다크소이소스 1
(데리야끼 소스처럼 걸죽한 새카맣고 달콤하고 약간 쓴 맛도 비치는 간장이에요. 인도네시아의 Kecap Manis나 Sweet Soy Sauce라 이름붙은 걸 사셔도 됩니다. 태국산 Healthy Boy Brand나 중국산 이금기표를 한국서도 구할 수 있지 싶은데 모르겠네요. 아니면 일반 진간장에 몰라레스(당밀)를 조금 넣거나 흑설탕을 넣고 졸여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것도 귀찮으면 걍 진간장으로...-_-)
꿀 1
설탕 0.5
후추 적당량
마늘, 양파, 쪽파 다진 것 적당량
다진고기에 양념장을 위 비율대로 넣고 잘 섞고, 삼겹살에도 양념장을 재 둡니다. 상온에서 2시간 이상, 냉장고에서 하룻밤 정도 숙성시키면 좋아요.
재 둔 다진고기는 5cm 크기 1cm 두께의 작은 햄버거 패티처럼 빚어서 숯불에 삼겹살이랑 같이 굽습니다. 오븐이나 그릴에 구워도 되지만 역시 숯불에 구운 것만큼은 향이 안 살죠.
2) 채소
파파야(깡깡한 무나 순무, 오이 등으로 대체 가능) / 당근 / 마늘을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썰어서 물 2+설탕 1+식초 1을 잠길 정도로만 붓고 최소 2시간 이상 둬서 피클을 만들어요.
상추, 민트, 바질(방아로 대체 가능), 고수 정도를 씻어서 준비하시고,
라임이나 레몬 등 아주 새콤한 과일(원래는 스타프루트를 써요)이 있으면 것도 얇게 썰어 두고
매운 고추와 마늘을 빻아 둡니다. 도깨비 방망이나 푸드프로세서가 편하겠죠(고기양념장 만들 때도요).
3) 국수
동남아에서는 어디서나 삶아놓은 쌀국수 사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데 한국에선 마른 쌀국수를 삶아서 준비해야겠죠. 찬물에 건져 사리를 지어 물을 뺀 후에 가위로 몇 번 잘라 두면 먹을 때 편하죠.
4) 국물
물 10+설탕 1+식초 1.2+느억맘 1의 비율로 섞어서 설탕 녹을 정도로 데우기만 하면 됩니다. 일인당 150~200ml 정도 생각하심 돼요. 여기에 미원이나 다시다를 조금 넣으면 본격 길거리맛이 나죠. 아님 돼지육수를 뽑아서 하셔도 되고요. 상에 낼 때는 상온이거나 약간 따뜻하거나 상관없습니다.
(한상 그득하게 차리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만 손이 떨려버렸군요...ㅠ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쌀국수, 파파야+당근 피클, 구운 짜+삼겹살, 상추, 시식예-_-, 바질+민트+스타프루트+고수, 빻은 마늘+고추)
먹을 때는 국물에 2)의 빻은 고추/마늘을 조금 넣고 국수랑 구운 고기를 담갔다가 상추쌈을 싸서 각종 채소와 피클을 얹어 먹어도 되고, 채소를 다 찢어서 고기랑 국수와 함께 소바 먹듯이 계속 국물에 담가 먹는 식으로 하셔도 됩니다. 물론 얼음을 잔뜩 넣은 맥주는 꼭 곁들이셔야죠. 어째 주말에 이런 거 함 해먹어 보리라는 뽐뿌가 오는 분이 계실까나요?
2014.09.19 18:19
2014.09.19 18:20
씰데없이 설명이 길어서 그렇지 고기재서 굽는 게 거의 전부예요. 나머진 걍 채소 다듬고 씻고 소스 섞고...
2014.09.19 18:23
2014.09.19 18:30
저녁메뉴 고르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ㅎㅎ
2014.09.19 19:31
오 안 그래도 지난 번에 쓰신 글 보고 궁금했는데 이런 상세한 설명까지 올리시다니 해먹어봐야겠어요!! 근데 고기 굽는 게 관건이군요. 식탁에서 숯불 피웠다가 유리 깨먹은 뒤로는 실내에서 굽는 건 피하고 있었는데 ㅠㅠ 더 추워지기 전에 마당에 쭈구리고 앉아서 구워내야겠네요. 근데 패티를 꼭 삼겹살 다진 걸로 해야 하나요? 그냥 앞다리 정도로는 기름기가 부족해서 별로일까요? 바질 쓸 데 없다고 화분 방치해서 말라죽은 게 엊그제인데 그게 아쉽네요. 따로 사려면 비싼 수입 마트 가야하는데 --; 아 혹시 쌀국수 면은 어느 굵기로 하는 게 좋을까요? 지금 집에 있는 건 볶음용으로 주로 쓰는 두꺼운 것과 아주 가는 것 뿐이라 보통 굵기의 쌀국수는 사와야하거든요.
2014.09.19 19:44
앞다리도 괜찮아요. 저도 사실은 삼겹살 모자라서 목살이랑 섞어서 했다는... 채소는 많이 드시는 걸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하심 돼요. 깻잎대나 치커리, 겨자잎 이런 것들도 어울릴 거 같은데요? 쌀국수는 보통은 소면 굵기로 하는데 두꺼워도 상관없을 듯 싶습니다. 어차피 면의 식감보단 쌈에 어우러지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재료준비서부터 진빼면 안되니까, 가벼운 맘으로 시도해보시길~ :)
2014.09.19 19:50
감사합니다! 여름 내 키운 민트 역시 쓸데 없다고 거의 방치 상태였는데 알뜰하게 전부 뜯어다 먹어야겠네요. 주말에 할 재미난 일이 생겨서 신이 납니다.
2014.09.20 00:00
우왓 진짜로 하시는 거군요!! (영업성공!) 태국식응원 보내드려요~ 쑤쑤~~
2014.09.19 21:39
2014.09.19 23:56
사장님 어떻게 견적 함 뽑아볼까요? 장소는... 상수동이나 합정동의 좀 후미진 골목이 좋을 거 같은디...ㅎㅎ
2014.09.19 22:06
제 취향의 음식입니다. 이것저것 건져먹고, 담가먹고, 찍어먹고 하는 것이.
아마 제가 먹어본 곳이 아마 늘보만보님이 말씀하신 구 시가지 거리의 그곳인 것 같아요. 제 기억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같은 것에 앉아서 먹었어요. 그때도 먹으면서 이거 한국에서도 좋아하겠는데 했지요.
아~~분짜먹으러 가고 싶네요. 만들 재간은 없고 여행뽐뿌가 왔어요.
2014.09.19 23:59
사실은 저도 이거 만들어먹으면서 다시 오리지널 맛을 확인하고 싶어졌다죠. 그래서 시방 막 뛰어나가 훠궈를 먹고 왔다는...(읭??)
2014.09.19 22:29
우와 라임바질민트고수조합 딱 제 취향입니다.
2014.09.20 00:02
왠지 이렇게 먹으면 고기를 아무리 먹어도 칼로리가 마이너스로 내려갈 거 같은 기분 들지 않으세요? ㅎㅎ
2014.09.20 17:43
와 이렇게 상세한 레시피라니ㅠㅠ 꼭 한번 만들어봐야겠어요. 항박/항보거리 근처에서도 먹어봤지만 떠이호 주변 거리에서 가장 자주 사먹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본 곳들 중에선 삼겹살보단 목살이나 전지로 숯불구이해주는 집이 많았는데 그 맛을 재현하려면 역시 숯불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거리 지나다보면 고기 굽는 냄새/연기 때문에 어디서 분짜를 파는지 코만 믿고 따라가면 됐었던 기억이 나요ㅎㅎ 하노이 토박이 친구 말로는 고기 연기/냄새 때문에 점심에만 하는 집이 많다고 하더군요.
2014.09.21 14:16
허름한 가게들은 아무래도 싼 전지를 많이 쓰는 거 같더라고요. 떠이호 호수변에 자욱한 고기굽는 연기 상상되네요. 가게들이 보통 (아주 이르지는 않은)아침부터 오후 두세 시 정도까지 열더군요. 실란트로 많이 그리우셨나봐요? ㅎㅎ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 보여서 뽐뿌가 안오고 있어요 하하
너무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