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9 23:08
1.여러분도 알겠지만 나는 겸손한 사람이예요. 듀게에 글을 쓰면서 '저건 내가 만들어도 저것보다는 낫겠다'같은 말을 한 적이 없죠. 딱 하나...스타워즈 8편만 빼고요.
그야 나한테 스타워즈 7-8-9 트릴로지의 서사를 다 짜고 트릴로지 안에서 완벽하게 하나의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10-11-12로 이어질 다음 트릴로지로 가는 이야기의 방향을 멋지게 제시해주는 패스를 하라고 하면 별로 자신은 없어요.
2.하지만 나한테 스타워즈 7편을 보여주고, 9편의 마무리는 책임질 필요 없으니 사람들이 스타워즈 9를 보러 오도록 8편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면 중간계투 역할을 라스트 제다이보다는 훨씬 잘 수행할 수 있어요. '수행할 자신이 있다.'도 아니예요. '수행할 수 있다.'죠. 뭘 만들어도 라스트 제다이보다 재밌게 만들 자신은 있거든요.
라스트 제다이의 문제는 주인공들에게 적절한 미션이 주어지지 않았고 적절한 갈등 관계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야기의 목적도 불분명하고 흥미가 돋게 만드는 방향성도 설정되지 않았고, 그 와중에 밀도조차 부족해요. 하다못해 8편을 못 만드는 대신 9편으로 가는 징검다리, 예고편 역할만 잘 수행했어도 9편의 흥행이 성공했겠죠.
3.라스트 제다이를 잘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싸우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돈만 보자고요. 1-2-3편의 트릴로지에서 흥행을 결정하는 건 해당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가 아니라 그 전작이예요. 스타워즈 9편의 흥행이 7편에 비해 반토막난 건 8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타워즈라는 프랜차이즈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죠.
영화라는 건 돈, 돈이란 말이예요. 예술이라는 것도 돈이고요. 새로운 화가를 발굴하고 그림을 사러 다니는 사람들은 학예회 수준의 그림을 보면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지만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이거 얼마예요?'라는 말부터 하니까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재미있게 만들고 흥미롭게만 만들면 관객들은 지갑을 열어서 흥행으로 보답하니까요.
4.휴.
5.내가 영화에 돈을 쓰는 기준은 그리 높지 않아요. 자의식 강한 평론가들이 마구 씹으며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데 써먹는 헐리우드 영화도 나는 감히 '내가 하면 저것보다 잘 만든다.'라는 말은 안 하거든요. 그 영화에 들어가는 각본, 촬영 실력, 캐스팅, 편집, CG후처리 기술...이 모든 최고수준의 기술들을 단돈 만원에 구경할 수 있는 게 헐리우드 영화란 말이예요. 팝콘 값에다 같이 보는 사람 티켓값까지 해봐야 3만원이고요. 3만원을 내면 무려 두 시간 남짓 그럭저럭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게 영화예요.
한데 이런 나조차 다른 스타워즈 팬처럼 8편을 보고 흥미를 잃었어요. 8편을 싹 무시하고 9편을 만들지 않는 이상 9편은 망한 트릴로지를 짬처리 하는 것뿐이니까요. 패전투수의 투구 치고는 괜찮은 영화인 거지, 어쨌든 패전투수가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등판일 뿐인 거예요.
스타워즈 본편 프랜차이즈의 실패는 당연히 파생 작품(한 솔로 스토리)의 실패로 이어졌고요. 만달로리안 드라마로 제법 회복한 게 간신히 요즘이죠.
6.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스타워즈는 다루기 쉬운 프랜차이즈란 거예요. 완성도가 아주 높지 않아도 '스타워즈 같기만 하면' 사람들이 화낼지언정 관대하게 지갑을 열어 주는 영화죠.
김치찌개를 예로 들면, 간판에 김치찌개라고 써있는 가게에 들어와서 '맛은 별로지만 어쨌든 김치찌개이긴 하군.'정도의 만족감으로도 계속 소비되는 프랜차이즈라는 거죠.
7.이렇게 관대한 소비자층을 만들어낸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공로를 인정해 줘야 하죠. 이런 사업을 꾸리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요. 스타워즈는 어쨌든 너그러운 팬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세계관이예요. 한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너그러운 팬덤을 '나이먹은 철부지' '새로운 것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같이 폄하했어요. 인터넷에서 흔히 있는 조롱, 갈라치기죠.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편을 보면 알듯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최대 장점은 영화 자체를 조금 모자라게 만들어도 영화가 지닌 테이스트와 노스탤직을 잘 유지해 주면 그것을 소비하러 와주는 너그러운 사람들이죠.
김치찌개 전문점 프랜차이즈를 인수했으면 좋은 김치찌개를 만들어서 팔면 돼요. 그럴 자신이 없으면 그래도 프랜차이즈를 믿고 먹으러 와주는 사람들을 위해 좀 맛없는 김치찌개라도 만들던가요. 어쨌든 김치찌개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김치찌개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한데 라스트 제다이는, 능력이 한참 안 되는 사람들이 김치찌개도 아닌 맛이 없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는 김치찌개를 먹으러 온 사람들에게 너희가 틀렸다, 너희가 늙어서 그렇다고 삿대질을 하고 있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8.정말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랜차이즈 간판을 사서 굳이 바꿔 달 필요가 없어요. 그런 실력을 지닌 사람이 뭐하러 프랜차이즈 인수비를 내가면서 굳이 간판을 바꿔 달겠어요? 그냥 자기가 새 프랜차이즈를 내서 새로운 SF영화를 만들면 되죠.
한데 디즈니는 스타워즈의 팬덤과 명성을 안고 가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내가며 프랜차이즈를 사놓고는 실무 담당자들을 잘못 앉혀서 이 사단을 내버렸어요. 디즈니는 큰 회사니까 디즈니의 모든 사람이 잘못이 있는 건 아니겠죠. 애초에 디즈니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사들인 목적은 이미 거대 팬덤을 형성한 프랜차이즈를 사서 최대한 많은 돈을 뽑아먹는 거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남의 돈을 가지고 자기 예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사고를 친 거죠. 사실 그것도 재능있는 사람이 하면 괜찮아요. 재능있는 사람에게 기존 프랜차이즈와 자본이 주어지면 폭발적인 시너지가 일어나니까요. 한데 재능이 아니라 자의식만 가진 사람들이 남의 돈을 가지고 자기 예술을 하려고 들 때...그건 큰 문제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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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하면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말하지 않는데 라스트 제다이는 벌써 세번째 글인 것 같네요. 라스트 제다이는 영화 하나를 망친 게 아니라 사업을 망쳤다는 점에서 좋게 봐주기 힘들어요.
2021.03.09 23:19
2021.03.10 09:29
디즈니는 프랜차이즈를 가지고 예술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타워즈는 죽을 쒔지만 다른 쪽에서는 승승장구를 했죠
존카터를 기점으로 디즈니는 사업적으로 정신을 차린겁니다
합병과 실사화 그리고 가족주의에서 PC함으로 노선 변경이 잘되었죠
다만 미녀삼총사처럼 이 기조가 스타워즈 프렌차이즈와 맞지 않았을 뿐이죠
2021.03.10 10:06
2021.03.10 10:28
팬보이에 대착되는 진영으로 상정되는 피씨충이란 집단은 뭐했나요? 팬보이 만행때문에 망한 걸 막으려고 영혼보내기라도 해 주며 라스트 제다이로 돈 벌게 해 주고 한 솔로도 여러 번 봐 줘서 적자 안 나게 해 주고 팬보이한테 디즈니가 끌려가지 않게 로비를 압력을 행사하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듀게에서 자꾸 팬보이 만행에 굴복한 디즈니 수뇌부라는 가정이 자꾸 보이는데 추측에 불과한 거고 결국 돈이 말해 주는 사업에서 한 솔로 적자까지 났으면 디즈니로서는 손 털겠죠 .팬보이 탓,피씨 충 갈라치기하며 탓하는 건 진짜 무의미.
2021.03.10 11:36
긍정적인 관점으로 댓글을 달았으니 균형을 맞춰보기 위해 달아보자면...
제게 [라스트 제다이]가 좋은 영화였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할 겁니다. 좋은 부분들이 있었던 영화죠. PC했기 때문에 나빴다? 제가 느끼기엔 PC와 관계 없이 못 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카미카제 - 카미카제 - 카미카제 실패로 이어지는 반복과 해답은 희생역을 맡은 인물에게 큰 부담을 주고, 해답도 어정쩡해서 납득이 되지도 않았죠.
(로즈가 각본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인물에게 해답을 제시하도록 했으면 마땅히 그 해답에 걸맞는 방식의 해결책도 함께 줬어야죠.)
러닝 타임의 긴 부분을 차지하는 문제 해결 시도는 뭔가 뒤숭숭하고 어처구니 없이 실패하죠. 인물들에게 역할을 주고 시간을 줬는데 이도 또 납득이 잘 안 됩니다. 얻은 것도 없어 보이고요.
(건성건성으로 생각해보자면, 로즈와 핀의 역할을 바꿔서 소금사막 씬을 생각해보거나, 홀도와 아크바를 바꿔 짠다고 해도...)
몇 가지 의문들을 남겨봅니다. PC함과 못만듬이 서로 공존 관계인가? 그나마 좋은 부분이 있었던 이유는 PC함 때문이 아니었나?
9편이 흥행에 실패한건 8편 때문이었나? 아니면 팬보이/피시충 때문이었나? 분쟁 자체가 흥행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나?
[한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가 흥행에 실패한 건 8편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9편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그 자체가 매력이 없었는가?
전후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따지는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근거가 없으면 입맛대로 써버릴 수도 있죠. (그리고 교호작용을 꼭 생각해야죠.)
(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 예를 들어 이런건 어떻습니까? 8편에서 고객들의 범위를 확장했지만, 9편을 만들어가는 분쟁으로 떨어져 나가고, 한 솔로는 그 자체로 매력이 떨어져 흥행에 참패한 후, 그 범위 확장된 고객들이 로그원과 만달로리안에서 효과를 드러냈다, 란 식으로요. 단순히 개인인 저를 보자면 8편을 재미있게 봤고, 9편도 쏘쏘, 한 솔로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로그 원은 남겨놓았고, 만달로니안은 들어오면 볼 겁니다. (다만 사람 이름도 잘 못 외우고,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에 크게 관심이 없는 논외자죠.)
스타워즈 시퀄 논쟁이 흥미로운게 어떻게 읽어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전 그냥 잘 모르겠어요. 건조한 사실들만 알겠고. ( [라스트 제다이]가 시원하게 흥행 참패를 했으면 깔끔하게 해결 되었을텐데 말이죠. 아니면 9편이 아주 명백하게 어떤 진영(?)이 승리한 결과로 만들어졌던가. )
2021.03.10 12:21
Pc,pc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로라 던이 아닌 안젤라 비셋이나 바이올라 데이비스같은 카리스마있는 흑인 여성은 그 정도 지위에 있는 여성 역 못 맡는 겁니까 아니면 양자경같은 아시아 배우는요?
저는 제일 신기했던 부분이 백인여자 레이는 밀어도 흑인남성 핀은 떠벌이 조연 정도로만 남겨두는 거였습니다. 백인여성은 제도 안에서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데 흑인 남성 영웅이야말로 진짜 두려워 하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blm운동 있고 난 다음에 이 부분이 더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핀이 죽이는 파즈마가 백인여성이라는 것도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다지 피씨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핀을 연기한 존 보예가가 나이지리아 계 영국 흑인 배우에 파즈마를 연기한 그웬돌돌린 크리스티가 금발 백인 영국 여성이라 그게 더 걸렸는지도요.
2021.03.10 13:17
daviddain님 의견들이 영화를 더 낫게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보다 덜 PC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좋은 점마저 없어진다는 이야기였죠.
저도 핀을 로즈와 묶어주는게 자연스러운 다양성의 추구보다는 되다만 PC, 편견의 결과물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 핀의 조연화는 말할 것도 없구요. )
하지만 렌과 키스하는 레이가 나오는 다음 편보다는 좀 더 나은 구석이 있었어요.
2021.03.10 13:39
블랙 팬서가 나와서 성공하기 전 라스트 제다이가 개봉한 걸로 기억하는데 흑인 남성이야말로 위협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백인 남성 감독의 한계와 보수성이 느껴졌는데 pc라며 떠받들여지는 것에 놀랐죠. 이것도 팬보이의 우기기겠군요?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했던 백인 남성 조스 위든의 <파이어플라이> 마지막 회 보면 여자인물 붙들고 강간하겠다고 위협하는 침입자가 흑인남성이었죠. 흑인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고 핀과 레이를 연결시키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두려움의 연장선에 있다고 봤어요.
9는 못 만든 거고 시퀄 3부작은 혈통믿고 까불다가 미친 년 된 대너리스가 폭주해 죽고 자기 능력으로 살아남은 아웃사이더들이 주인공이 되는 왕겜보다도 보수적이예요.
2021.03.10 13:53
앗, 왕좌의 게임 다 보진 않았는데...
2021.03.10 13:58
으아 쓰다가 스포해 버렸군요
나보코브가 미국에서 금지된 이야기가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흑인과 백인이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60년 도 더 된 말이 지금도 유효한 듯 하네요.
라이오넬 리치 노래 잘 부르게 생긴 랜도라는 흑인 조연이 나온 지 몇 십 년이 흐른 후에도 그닥 발전은 없고 답습한 듯.
2021.03.10 14:11
다른 하나는 뭐죠, 궁금하군요. 확실히 흑백 커플은 커녕 탈인종적 커플은 드라마에서도 흔히 못 본 것 같네요.
2021.03.10 14:18
제가 기억을 못 해요 ㅋ
덴젤 워싱턴이 경건한 흑인 영웅상을 보이면서도 줄리아 로버츠같은 백인여성과 키스신 하나 없던 게 이해가 가죠
여리여리한 백인 여자애는 제도권에 위협이 안 되고 우락부락한 성인 흑인 남자는 위협스러운 거죠. Blm은 그 공포가 맞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겠네요.
조스 워든도 삐쩍 마르고 작은 금발 백인 여자가 악당들 패고 다니는 버피 만든 게 그냥 관음주의적 쾌락에서가 아닌가 싶네요.
레이는 Rey란 이름부터가 왕의 혈통이란 게 암시되어 있고 제도권의 인싸로 분류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반면에 도입부에 이름도 없다가 포 다에론이 이름 지어주는 핀은 앗싸로 예정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흑인 대통령 나온 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 스타워즈 안에서 흑인 영웅 못 내세우는 게 좀 이상하긴 하더군요.
2021.03.10 14:03
저는 깨어난 포스를 볼 때 핀이 레이와 이어질 줄 알았어요. 라제에서 뭔가 커플링이 이상해져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9편은 그냥 백인 남녀의 통속극이 되어버렸고...
2021.03.10 21:26
저는 명작이라고까지는 아니고 그 정도 돈을 들였으니 나와 줬어야 하는 질적 수준이라고 봤어요. 밀도가 낮아서인지 그닥 재미있게 본 편도 아니고요. 니콜라스 레이 정도의 영화를 보면서 숨죽이고 감탄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었는데 명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같이 싸울 생각없어요.
하도 팬보이 비난을 듀게에서 접하다 보니 그 실재이자 가상일지도 모르는 집단에게 동정심까지 일더이다. 심오한 예술을 모르는 무지몽매하고 계도가 안 된 가망없는 집단으로 상정된 듯 해서요
돈만 보고 얘기하자면 7과 로그원을 각각 9번씩 극장에서만 본 제가 2번 보고 만 게 8입니다. 9는 1회로 끝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