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8 01:50
예고편에서 보여준 잠깐의 영상과 음악 만으로도 '이 영화는 내 취향이다'라는 판단이 섰기에
개봉 첫 날 영화관으로 달려갔어요.
영화를 보기 전 여러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씨네 21에서 올린 스티븐 연과 유아인의 화상인터뷰
(유아인 왈 : 이 영화를 본 누구라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가 기억에 남고
윤여정의 인터뷰도 생각이 나네요.
실제로 이민2세대인 그녀의 큰 아들은 예고편을 보고 나서 '나는 이 영화를 절대 못 볼 것 같다'며 울었다고 해요.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한 이민자의 가족의 이야기라고는 하나, 이 영화는 보편적인 가족 탄생의 설화를 담고 있는 듯 보였어요.
에덴을 떠나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모든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라고 할까.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과 꿈을 버리지 않은 남편,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희생되는 오늘이 서운한 아내,
그리고 이 둘의 대립이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걸 잘 아는 명랑한 할머니.
그들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고, 어느 정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어요.
특히 예고편에 나온게 전부라고 할만큼 인물 사이의 큰 갈등이나 껄끄러운 장면이 거의 없는데,
덕분에 마치 삶을 바라보듯, 관조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장점.
영상과 음악도 한 몫했고, 이것이 이 영화를 한국 가정을 다뤘음에도 미국 영화처럼 보이게 한 마법이 아닐까 싶네요.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 도입부와 후반부에 대칭을 이루는 우물씬이었는데,
결코 해피엔딩이라고만 하기 힘든 이 영화에 희망이 엿보인 순간이었어요.
앞으로 이 가족은 미나리처럼 잘 자라나리라는.
또한 사람들의 멸시에도 마치 시지프스 마냥 십자가를 짊어지고 걷는 남자의 장면 또한 울컥하게 만드는 요소였고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떠오른 건 밀레의 '이삭줍기' 였어요.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지만 가족을 위해 굽은 허리를 펼 수 없는 여인, 그리고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는 가난한 농부를 주인공으로 그린 화가.
어쩌면 '미나리' 또한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일궈야 했던 한 세대의 진실하고도 아름다운 기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네요.
2021.03.08 08:24
2021.03.08 18:28
윤여정씨가 여러 인터뷰에서 지금같은 커리어를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오로지 두 아들을 먹여 살리고자 버텼다고 여러 번 말했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아들 역시 힘든 시기를 보냈을거고 그 심정이 이해가 갔어요. 영화에서 큰딸이 '할머니 때문에 엄마 아빠가 맨날 싸워서 할머니가 싫다'는 뉘앙스로 얘길하는데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가 되었겠구나 싶더라고요. 마지막에 불화하던 부부가 화해하고, 아이들도 할머니를 받아들이며 마무리되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2021.03.08 10:42
이 영화를 너무 아름다웠다고 평가해 주시는 글을 보니 반갑네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뭐라 말하기는 참 표현이 안 되는데, 영화 관람도 오랜만 극장출입도 오랜만(윤희에게 이후로 처음),
그리고 특정한 겉멋과 영리하고 계산적인 연출 없이도 감동적인 영화의 울림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리가 다 된 것은 아니지만 겸사겸사 후기 써볼게요.
2021.03.08 18:35
앗, 쿠델카님도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니 저도 너무 반가워요. 저도 청교도적이랄만큼 꾸밈없는 순수함으로 영화를 밀어붙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뭐랄까 그 깨끗한 느낌 덕분에 감동이 배가 된 것 같고요. 크게 튀거나 눈을 사로잡지 않음에도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풍경화 같은?(저 역시 참 표현이 쉽진 않네요ㅜ) 한편으로는 저렇게 영화를 만들어도 흔들지 않고 그냥 두는구나(스티븐 연이 제작자라서 가능했던 부분일지도) 싶어 그런 문화가 부럽기도 했고요. 분명 흥미롭고 명확할 쿠델카님의 후기가 기대됩니다, 얼른 보여주세요!
실제로 이민2세대인 그녀의 큰 아들은 예고편을 보고 나서 '나는 이 영화를 절대 못 볼 것 같다'며 울었다고 해요=> 정말 윤여정님 아들분이 그랬나요. 마음이 아프네요. 왜 울었는지 알 것 같아서요.
이민자 부부는 사이가 좋으면 훨씬 더 좋고 나쁘면 극단적으로 나빠집니다.
둘밖에 없기 때문에 둘의 대화가 깊어지고 넓어지면 사이가 좋아지는 거고
둘밖에 없기 때문에 불화가 시작되면 폭력이나 파국으로 가는 길이 훨씬 짧아요.
주위 눈치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기 때문이죠.
불화하는 부부라면 아이들에게 참으로 힘들었을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