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갈등, 상처를 접하며

2021.03.06 11:46

어디로갈까 조회 수:1105

# 팀의 막내 동료가 문자로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로코 출장 가셨을 때 모로코 사막에 뜨는 달을 보셨나요?" (언제 적 얘기를.... - -)
- 아니, 사막에는 못 갔지.  마라케시 시장에서 사막의 지평선 위에서 솟구쳐 있을 법한 달의 영적인 에너지 흐름을 느끼고 감응해보긴 했어.
"모로코의 하늘은 궁창이라 지상의 것이 더 특별하게 얼비칠 것 같아요. 언제 꼭 선배와 같이 모로코 가보고 싶어요."
문자를 읽고나니, 구입한 지 일주일 째인데 서문만 읽고 책상 위에 둔 루돌프 슈타이더의 ' 고차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 조카가 <햄릿>의 문장들에 관해 질문해대서 진땀 흘리고 있는 중입니다.
십여년 전 T.V에서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영화 <햄릿>을 본 적이 있어요.  햄릿이 자기 의식의 서성거림과 반박자를 놓치고 마는 행동에 대한 사유가  독백으로 흘러나오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무엇보다 햄릿이라는 인물 유형과 유약해 보이는 로렌스 올리비에 표정이 자못  잘 어울렸다는 느낌이 있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집에 있는 여런 판본의 희곡 <햄릿>을 가져와서 이리저리 펼쳐봤을 정도였죠.

와중에 영화에서 제가 놀란 장면은  살해당하도록 사주된 햄릿이 살아돌아와서 무덤 파는 인부들과 대화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인부들이 놀랍도록 명징하게 죽음의 의미를 묘파해주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는 it만이 가능한 물성의 어떤 형태가 확고하고 놓여 있었습니다. 햄릿 역시 죽음을 관념화하고 있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고요.

사실 그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은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죠. '존재'의 동사 be는 비존재의 존재인 유령의 출현 때문에 햄릿에게 기묘한 사유의 길로, 동시에 복수의 길로 접어들게 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시간의 오솔길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햄릿은 시령자[視靈者]이기 때문입니다. 시령자란 유령을 보는 사람이죠.  유령을 접한 자는 유령이 거처하는 세계의 시간에 물들게 되기 마련입니다.  햄릿이 선왕의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서면서 던지는 유명한 대사 "Time is out of joint / 시간이 대문이라면, 그 질러진 빗장이 벗겨졌다"가 증명하고 있 듯이요.  

자, 그런데 이런 제 느낌을 일곱살 아이에게  어떻게 풀어서 전달해줘야 혼란을 덜 주면서 재미를 안겨줄 수 있을까요.  - -

# 며칠만에 들어와보니, 그간 듀게에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나보군요. 떠난 분, 서로에게 저항하고 있는 분들의 글을 읽노라니 나에겐 커뮤니티 활동에서 저런 주의력, 집중력, 몰입도가 없는 거구나 싶습니다. -_-
게시물들을 읽노라니 횔덜린의 <가니메드>라는 시의 '모두들 각자 자기 방식으로 피어난다' 라는 시구가 떠올랐어요. 하지만 '봄'하면 역시 오규원의 이 시죠.  같이 읽어보아요~

- 봄 /오규원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 집 개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든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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