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6 00:18
- 2009년작이니 벌써 12년이나 묵은 영화네요. 그냥 넷플릭스가 자꾸 들이미는데 왠지 재밌을 것 같아서 봤는데 재밌어요. 스포일러 안 적을 게요.
(포스터가 다 구려서 그냥 그 중 가장 심심하게 생긴 걸로 골라봤습니다)
- 자폐증이 있는 어린 아들래미를 혼자 키우며 사는 싱글맘이 주인공입니다. 오늘 따라 아들이 유난히 속을 썩여서 열불이 터지고, 그 와중에 누가 집 벨을 누르고 튀는 장난까지 쳐대서 더더욱 빡치지만 암튼 오늘은 아들을 학교에 맡긴 후 친구가 모는 요트를 타고 하루 달콤한 휴식을 즐길 계획이지요.
친구와 친구가 키우는(?) 젊은이, 그리고 친구의 친구와 그 아내와 친구(...)와 함께 요트에 몸을 싣고 바다로 떠나 친구와 근황 대화도 나누고 샴페인도 한 잔 하며 기분을 푸는 것도 잠시, 갑자기 "모두 다 죽었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라는 정체불명의 무전이 날아들고, 연달아 닥쳐온 너무나도 부자연스런 폭풍에 배는 전복되고, 친구의 친구의 아내의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살아남아서 뒤집어진 배 위에 올라타고 정체 없이 표류하던 중에 불행 중 다행으로 타이타닉 사이즈의 거대한 배가 정확한 속도와 각도로 다가와요. 무사히 그 배에 올라타서 목숨을 건졌나... 하는데 그 배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유령선이었던 겁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무사히 귀환하기 위해 일행은 그 배를 수색하기 시작하는데, 뭔가 수상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설명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겠죠. 그리고 주인공은 문득 이 상황에서 아주 이상한 점을 눈치챕니다...
(투명인간 동생과의 짧고 즐거운 뱃놀이)
- 과연 어디까지가 스포일러일까? 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네요. 시작하고 30~40분쯤 지나면 이 영화가 호러 영화 중에서도 특정 서브 장르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걸 알고 봐도 감상에 해가 되는 건 전혀 없지만 그래도 모르고 보는 게 더 재밌을 거고, 영화의 포스터나 예고편에도 거기에 대한 정보는 없거든요.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이미 이 영화에 대한 듀나님의 리뷰가 있고, 듀나님은 그 리뷰에서 전혀 거리낌 없이 그걸 언급하고 계시네요. 그리고 앞문장을 적다가 찾아낸 한국 버전 포스터에도 그게 언급되어 있어요. 그러니 엄밀히 말해 스포일러는 아니라고 봐야. ㅋㅋㅋ
그래서 그냥 그 부분을 포함해서 적겠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에 관심이 가는 분이라면 이쯤에서 글은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보시는 게 나을 거에요.
저는 꽤 재밌게 봤고 듀나님도 별 셋을 준 영화이니 평타 이상은 해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스포일러 방지 겸 해서 짤 하나 넣고 이야기할 게요.
(동생 햄스워스가 나옵니다!)
- 그러니까 결국 이 영화는 루프물입니다. 네, 이유를 알 수 없게 특정 상황이 무한 반복되면서 그 안에서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이야기죠.
제가 맨 처음 도입부 스토리 요약에서 생략한 게 그겁니다. 주인공은 '난 이 배에 왔던 적이 있어!' 라는 걸 깨달아요. 그리고 이어지는 반복 체험 속에서 살 길을 찾는 건데...
여기에서 나름 독창적인 추가 설정이 들어갑니다. 대략 두 가지인데, 하나는 루프의 형식(?)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루프의 발동 조건에 대한 겁니다.
근데... 이건 둘 다 진짜 스포일러라서 얘기를 할 수가 없네요. ㅋㅋㅋ
대충만 이야기하자면, 원래 루프물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특정 시간대로 복귀'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이 영화의 루프에는 복귀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루프의 발동 조건은 보통 시간(ex. 자정이 되면 롤백!)의 흐름 아니면 주인공의 사망이잖아요. 근데 이 영화의 조건은 전혀 달라요.
이 두 가지 특이한 점이 모두 영화의 드라마, 호러와 연결이 되고 그 연결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해놨어요.
아무튼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이 두 가지 설정 덕에 이 영화는 전에 본 적이 없는 나름 참신한 루프물이 된다는 겁니다.
그게 맘에 들 수도 있고 안 들 수도 있겠지만, 호평을 할 수도 있고 '이게 뭔 장난이냐!'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개성이 있다'라는 건 부정할 수 없구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루프물의 바다 속에서 이 정도면 나름 큰 존재 의의가 분명한 스토리라고 느꼈습니다.
(유령선 유람중인 주인공 패거리들. "이봐, 방금 전까지도 사람이 있었던 거라고!")
- 또한 이 영화는 나름 강렬한 드라마를 품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살아 돌아가겠다는 의지, 가서 아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감정. 이 자체도 드라마틱한데 그러기 위해서 주인공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 그 드라마를 증폭시켜 주고요.
당장의 상황이 대략 해결되고난 후에 스윽 하고 튀어나오는 국면 전환,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 정리되는 끝장면에서 깨닫게 되는 이야기의 큰 그림.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나면 이야기에 알알이 박혀 있던 떡밥들이 일거에 회수되고 그것이 지금껏 지켜봐온 드라마를 더 강렬한 느낌으로 마무리 해줍니다.
참 이야기를 잘 짰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그 많은 앞뒤 안 맞는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ㅋㅋㅋㅋ
- 그리고 또 한 가지 장점이라면, 주인공 배우의 연기가 괜찮아요.
(멜리사 조지. 왜 성이 조지인 거죠...)
주인공 하나를 제외하면 딱히 비중이라고 할만한 게 없는 인물들 뿐인, 그러니까 주인공 혼자서 시작부터 끝까지 하드 캐리해야 하는 영화거든요.
또 심심풀이 땅콩용 소품 호러 영화의 주인공 치고는 나름 진지하게 연기가 필요한 역할인데, 꽤 괜찮았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을 주는, 그러면서도 관객들이 걱정하면서 이입해줘야 하는 인물... 이라는 좀 난해한 미션을 잘 해내더라구요.
찾아보니 애초에 90년대부터 쭉 활발히 활동해 온 나름 네임드 배우셨더군요. 역시 또 저 자신의 무식함에 무릎을 탁! 치며... (쿨럭;)
- 큰 단점이 있어요. 앞서 말했듯이 사실은 이야기에 구멍이 많거든요.
영화를 보는 동안엔 그냥 '앞뒤 안 맞는 게 두어개 있네' 정도로 생각하며 보게 되는데, 다 보고 나서 기억을 정리해보면 두어개의 두어배 정도는 떠올라요. ㅋㅋ
쌩뚱맞지만 '너의 이름은'의 스토리랑 좀 비슷한 경우 같습니다. 와! 이거 재밌겠는데!? 하고 신선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리고 그걸 토대로 스토리의 큰 틀도 근사하게 짜놨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도저히 온전하게 성립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는 아이디어였던 거죠. 그리고 이대로 포기할까 아님 배째고 만들어버릴까... 에서 후자를 선택한. 뭐 실제 상황이야 제가 모르지만 '그랬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얘깁니다. ㅋㅋㅋ
그래도 시나리오 작가님께선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단 관객들에게 정보 푸는 타이밍을 최대한 늦추면서 와다다다 빠르게 전개해버려서 구멍이 구멍인 줄 모르고 보게 만들어요.
그리고 후반 들어가서 '어? 그럼 아까 그 장면은 좀 이상한데?' 라고 생각할 때 즈음엔 국면 전환, 떡밥 회수 장면들을 또 계속 때려 박아서 생각을 오래 못 하게 만들죠.
그 와중에 우리의 멜리사 조지님께서 궁서체로 진지한 드라마 연기로 중심을 잡아주시니 보는 동안엔 크게 불만이 안 생기구요.
다 보고 나서는 이제 이것도 오류, 저것도 오류... 하고 기억들이 막 떠오르지만 이미 영화를 재밌게 봐 버린 터라 '아니 루프물이 다 그렇지 뭐!' 하고 대충 잊게 됩니다.
사실 좀 사기당한 사람이 적는 후기글 같은 느낌이지만 암튼 전 그랬습니다. ㅋㅋㅋ
- 종합하면 전 이렇게 봤습니다.
닳고 닳은 장르 공식에다가 아주 소탈하게 신선한 디테일 하나를 추가한 후 그 아이디어를 꾸악꾸악 쥐어짜내며 런닝타임을 꽉 채우는 영화입니다.
그 아이디어를 각본이 완벽히 소화해내진 못해서 종종 '에이~ 이건 앞뒤가 안 맞네ㅋㅋ'라며 키득거리게 되지만 그래도 꽤 신선하고 재밌는 상황과 장면들을 많이 뽑아내주니 그 정도는 양해해주고 싶어졌네요.
규모는 소박하지만 참 성실하고 똑똑한 축에 속하는 알찬 호러 영화였습니다. 재밌게 봤구요. 다만 개연성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 관대한 마음은 필수입니다. ㅋㅋㅋ
+ 위에서 말했듯이 한국판 포스터에는 이렇게 당당하게
'타임 루프 스릴러' 라는 홍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유난을 떨어서 죄송합니다만, 영문판 포스터나 예고편에는 그런 얘기가 전혀 안 나온다구요. ㅋㅋㅋ
게다가 그 와중에 동생 헴스워스를 주인공처럼 적어놨네요. 허허 이 분들...
++ 제목 '트라이앵글'은 영화 초반에 잠깐 타고 다녔던 요트의 이름인데요. 사실 그 요트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주인공이 겪는 이 일이 모두 망할 바다놈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거죠. 주인공 일행이 요트 놀이 하던 구역이 버뮤다 삼각지대 근처거든요.
+++ 주인공을 맡은 멜리사 조지를 제외해도 익숙한 얼굴 둘이 나옵니다. 요트 주인이자 주인공의 친구 캐릭터를 연기하신 분은 최근에 변태 싸이코 투명인간의 동생 역할로 익숙해졌고. 그 분과 함께 배에서 먹고 자는 젊은이는 동생 햄스워스가 맡고 있습니다. 투명인간 동생에 토르 동생이 참가한 파티라니 타임 루프 따윈 씹어 먹어줘야 하는 것 아닌지...
2021.03.06 11:57
2021.03.06 13:02
2021.03.06 17:50
2021.03.06 21:09
조금 전 다 봤습니다.
루프물은 아니지만 다른 측면에서 영화 타임 패러독스도 떠오르네요. 타임 패러독스는 원작이 있고, 이 영화가 앞서 나오긴 했습니다만. 암튼 재밌었습니다! 심지어 타임 패러독스보다도 재밌게 봤어요. 타임 패러독스는 다 말이 되게끔 테크닉은 좋은데 메시지가 좀 공허하다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의 영화가 떠올랐는데 스포가 될 수 있어 한참 밑에다가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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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얘기가 나오니 말인데, 좀 생뚱맞을순 있지만 케빈에 대하여도 떠올랐어요. 그리고 역시 케빈에 대하여보다도 좋았습니다. 작중 주인공은 케빈 엄마보다는 좀더 불행하지만요. 말씀하신 이 분의 궁서체 드라마 연기 덕에 얄팍한 재치가 전부일 수 있었던 장르 영화에 살짜꿍 깊이가 더해진 것 같습니다. 마땅한 형벌이라는 걸 아는 듯 혹은 어쩔 수 없는 욕망에 이끌리듯이 나사 풀린 멍한 표정으로 요트 여행에 동참하는 주인공 연기가 아주 좋네요. 주인공 몸매가 척 봐도 엄청 좋은 게, 이렇듯 한창 때의 젊고 예쁜 여성에게 자폐 자녀를 돌보는 일이 족쇄일 수도 있고, 때문에 아들을 학대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자폐아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엄마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한편 그게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알고 있고.. 굉장히 복합적인 이야기들이 이 사람 연기에 다 묻어있더라구요.
초반의 그 표정을 보며 첨에 아들을 죽이고 왔나,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형벌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는 예측은 맞았네요. 이 사람에게 구원은 없을 거란 결말도요. 자식에게 무심하거나 학대하는 아버지들은 실은 츤데레였어 하며 구원의 계기가 주어지기 종종인데 영화 속 엄마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참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식들이 화를 낼지언정 모성과 달리 부성의 부재나 결핍을 심판하는 이야기들도 별로 없고요. 암튼 말씀대로 개연성 생각은 안 날 정도로 이야기를 잘 짜넣었습니다. 또, 시체들이 쌓여있는 씬이 일관성이 안맞다 하는 지적들도 있던데 그 정도는 장르적 허용(?)으로 봐줘도 되지 않나... ㅎㅎ 덕분에 잘 봤습니다. 오랜만에 만족스럽게 본 호러였어요.
2021.03.07 11:20
PC로 보니 댓글이 엄청나게 진지해보이는군요!! 폰트가... ㅋㅋㅋ
제가 요즘 워낙 아무 거나 다 재밌게 보는 것 같아서 게시판에 '이 영화 재밌어요!' 라고 글 올릴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데... 노리님도 재밌게 보셨다고 하니 막 마음이 놓입니다. ㅋㅋㅋ 그렇죠? 이거 재밌는 영화 맞죠? ㅋㅋ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케빈에 대하여랑 비슷한 소재를 쓰고 있군요. 케빈에 대하여처럼 진지하게 주제를 탐색할 생각도 여유도 없는 B급 호러 치고는 그걸 이야기 속에 참 잘 녹여 넣은 것 같아요. 덕택에 스릴도 더 살고, 말씀대로 얄팍함도 커버가 되구요. 그 일행이 배에 처음 탔을 때 갑자기 시지프스 드립을 치길래 걍 '아 루프물 설정을 이렇게 티를 내는구나' 그러고 말았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그게 그 이상으로 스토리와 밀접한 드립이었구나... 싶더라구요.
시체들 장면이야 뭐, 말씀대로 호러적 허용으로 봐 줘야죠 그 정도는. ㅋㅋ 그 장면 없이 논리적으로 깔끔한 것보단 그 장면 넣고 살짝 양해 구하는(?) 게 보는 입장에서도 더 좋지 않을까요. 하하.
2021.03.07 15:51
멜리사 조지 오랜만이네요. 2천년대 초중까지만해도 호러/스릴러 퀸으로 한 10년 해먹을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ㅋ
성이 이상한 캐릭터 하니 갑자기 닥터 바비 바비가 떠오릅니다. 레이철 그린의 카이로프랙터셨죠.
2021.03.07 22:49
이 영화가 제가 지금 봤을 뿐 2009년 영화이니 대략 10년 해먹으시긴 한 것 같습니다. ㅋㅋ
프렌즈 본지 진짜 오래됐네요. 마지막 시즌 완료된지 얼마 안 돼서 정주행 한 게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20년...
집에 디비디 풀 박스셋트가 있긴 한데 어차피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어서 저걸 열어볼 일도 없겠어요.
유튜브에서 한글 자막 없이 매번 돌려보면서도 이해가 안간 이유가 잇었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