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와 반나절을 보내고

2021.02.24 17:22

어디로갈까 조회 수:776

# 한국은 워낙 인구 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주 외진 시골 외에는 슬럼가라는 게 발생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누구나 입성해서 살고 싶어 하는 서울 같은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죠. (뉴스화 된 터라, 제 아파트 값 검색해보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만 벗어나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지의류나 살아갈 법한, 빈 집들이 있는 구역이 있더군요. 이름하여 대.부.도.
건축하는 제 친구가 여기에다 레지던스를 - 작가가 작업하는 마음으로  공간의 허공에 메자닌Mezzanine을 - 설계했는데,  건물이 완성되자 자본을 댄 분이 와서 보고 경악의 비명을 질렀다고 했어요.
"아! 여기 이렇게 좋은 전망이 있었다니! 난 여기서 처음 바다를 보네~" 
보이지 않던 바다를 보여주는 것, 그것은 사실  예술의 몫이죠. .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라는 클레의 말은 환영이라는 장치가 하나의 인식적 전환을 가져온다는 것이었지만, 그 비가시성이 단지 정신적인 차원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프로젝트 때문에 보스를 모시고 오늘 대부도에 다녀왔는데, 레지던스 높이 달린 창문에 턱을 얹고 바깥을 내다보다가 중얼거리시더군요. " 새로운 공간의 틈입, 그것만으로 세상은 툭 트이는군."
그 순간 문득 든 생각은 대부도의 풍경은 노스탤지어의 시간순환, 그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보스가 그의 나라에서 봤던 것, 그 옛날 것, 그 좋았던 것을 다시 여기에서 보고, 나(우리 팀)에게 다시 그 분위기를 제출해보라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빛바랜 기분 좋은 것들은 단지 새 세상의 기분좋은 것들이 아니라 가치가 있어 새로운 자본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주목이 메자닌이 아닐 수 있지만요. 

# 사흘 째 샤워를 못 하고 있습니다.  웬만해선 아파트 난방도 안 하고,( 심리적) 전기 알러지가 있어서 전기장판 같은 것도 사용 안 하고, 겨울은 파쉬(독일 물주머니) 몇 개로 나는데요, 그 중 하나가 구멍이 뚫린 걸 모르고 물 끓여서 넣고 사흘 전 새벽에 가슴에 안다가 허벅지에 뜨거운 물이 주르륵 떨어져서 순식간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금방 물집이 생기더니 쓰라리기가 어흐~

의느님에게 들이밀기엔 부끄부끄한 곳이라 약국에서 구입한 바세린 거즈로 버티고 있어요. 샤워는 가능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머리만 감고 뜨거운 물에 담근 타월로 쓱삭쓱삭 체취를 닦아내고 있죠.
오늘 좁은 차 안에서 함께 갇혀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보스에게 닿을지 모르는 저의 애매모호한 체취의 방사에 대해 이실직고 했습니다. 이러저러해서 샤워를 못하고 있어서 안 좋은 냄새가 날 수 있으니 양해하시라고.
돌아오는 길, 그가 씨익 웃으며 평하기를, 말벌 몇 마리가 붕붕 내 주위에서 노는 것 같았을 뿐 특이한/불쾌한 냄새는 1도 없었다고. 어른의 말씀을 맞받아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이거 까뮈가 <이방인>에서 쓴 문장 아닌가요. -_-

"암기는 눈과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둔해지는 머리에 가장 좋은 게 암송이다."던 할아버지 말씀이 문득 생각나서... 혼자 씨익~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349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273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3136
115291 뜬금없이 창피해질때 2 [2] 메피스토 2021.03.29 468
115290 PC방 여성손님 커피에 소변탄 30대 남 징역 8개월 실형 外 [15] eltee 2021.03.29 1159
115289 문 대통령, ‘전셋값 인상’ 김상조 靑정책실장 전격 경질 [9] 왜냐하면 2021.03.29 1194
115288 최근에 읽은 책 [4] tomass 2021.03.29 639
115287 타이레놀이 효과없는 사람 [14] 프랜시스 2021.03.29 1043
115286 윤복희 젊을 때 목소리 [4] 가끔영화 2021.03.29 365
115285 듀게 게시판이 정말 고마울 때(feat. 조선구마사) [51] Bigcat 2021.03.29 1421
115284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2018) [12] catgotmy 2021.03.29 488
115283 퍼스널 컴퓨터가 오락기로 전락했다니 큰 문젭니다. [23] Lunagazer 2021.03.28 1113
115282 뜬금없이 창피해질때 [1] 메피스토 2021.03.28 493
115281 안민석, 박원순 성추행 사건 두고 "진작 해방됐는데 자꾸 일제시대 얘기" [11] 먼산 2021.03.28 1147
115280 추천 유튜브 초상화 있는 옛날사람 실물 처럼 보기 [2] 가끔영화 2021.03.28 333
115279 고질라vs콩 메피스토 2021.03.28 330
115278 술을 마신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 [2] 예상수 2021.03.28 325
115277 섀넌 도허티가 고등학생의 엄마로 나오다니 [3] 산호초2010 2021.03.28 863
115276 '마이 페어 레이디', 서울 시장 선거 [28] 겨자 2021.03.28 1396
115275 [EBS1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네이버 무료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12] underground 2021.03.28 444
115274 고질라 vs 콩... (쓰는김에 요새 보는 드라마 감상도.. 괴물, 마우스) [2] 폴라포 2021.03.28 482
115273 편의점 알바생 [15] 어디로갈까 2021.03.28 921
115272 새벽의 소소한 잡담 [2] 여은성 2021.03.28 38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