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이 나오는 영화(1)

2021.03.12 00:52

비네트 조회 수:604

듀게를 매우 애정하시는 분들이 게시판에 리젠율이 너무! 적다고 한탄하시어

싸잘때기 없는 얘기를 좀 해보고자 맥주 한 캔을 따고 앉아 글을 적습니다.


어머, 생각해 보니 영화 얘기인데 이만큼 적절할 수 없는 주제가 없잖아요?


저는 세 편의 영화에 대한 수다를 떨고 싶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 세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 여인이 나온다는 것.

제가 어릴 적에 인상깊게 본 영화라는 것.

딱히 진지한 주제라곤 없지만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것.


저는 진중한 영화도 좋아합니다. 보고 나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영화들 말이에요.

하지만 마음 속에 그냥 자리 잡아서 힘든 날이면 꺼내 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습니다.

비록 영화제에서 대단한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런 무게감조차 의미 없는 작고 예쁜 소품 같은 영화들요.


가장 처음 얘기하고 싶은 영화는 Mermaids란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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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귀여운 바람둥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제목으로 개봉했습니다.

뜬금없는 제목만큼이나 존재감도 없어서 이 영화가 언제 상영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오죽하면 미국인들도 잘 몰라요. (ㅋㅋㅋ) 

1990년 작품이고요. 셰어, 위노나 라이더, 밥 호스킨스가 출연하였고, 크리스티나 리찌는 이 영화가 데뷔작입니다. 9세였다고 하네요.

위노나 라이더는 어린 나이에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 후보에 올랐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이 어땠는가는 넘어가고 하여간 제 기억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로 남아 있어요.

결혼하지 않고 아버지가 서로 다른 두 자매를 키우는 엄마인 셰어와 그 두 딸의 관계가 영화의 주제죠.

첫 딸인 샬롯은 어째선지 수녀가 되겠단 꿈을 꾸며 수절! 절제의 미덕! 이런 개념에 사로잡혀 있어요.

대체 10대인 주제에 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반면 엄마인 레이첼은 그놈의 남자 관계 때문에 살던 곳에서 매번 도망을 쳐야 할 정도로 엉덩이가 가벼운 여인이에요.

때문에 샬롯과 레이첼의 관계는 안 봐도 비디오.

그 사이에 엄청나게 사랑스러운 막내 케이트가 있습니다. 

'인어들'이라는 원제도 그렇고 케이트의 특기가 수영이라는 사실도 그렇고 영화에선 '물'에 관련된 여러 정황이 나오는데요.

'물'이라는 매개가 뭘 상징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릅니다. 평론가도 모른대요! (ㅋㅋㅋㅋㅋㅋ)


집 근처 수녀원에서 일하는 한 남성을 향한 레이첼의 묘한 연애 감정이 저를 마구 흔들어놨던 기억이 납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볼 당시 저는 샬롯과 비스무리한 나이였기 때문이었어요.

위노나 라이더의 지독한 짝사랑 상대는 '아직은 사랑을 몰라요'라는 제목으로 나온 sixteen candles에서

몰리 링월드 상대역으로 나왔던 마이클 쇼플링이란 배우인데요.

약간 미 교외 지역에 사는 근사하고 잘생긴 잡역부(?) 니낌의 미남이라서

본인에게 들이대는 미성년자를 내치지 않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보기 나쁘지 않았어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깊이 고뇌하는 표정이 어린 제 눈에는 어찌나 관능적으로 보이던지! (ㅋㅋㅋㅋ)


샬롯과 엮이는 신발가게 주인 아조씨 루 역할을 맡은 사람은 밥 호스킨스입니다.

셰어와 밥 호스킨스라니.... 키 차이 만큼이나 뜬금없는 커플링 아닌가요??

밥 호스킨스 하면 '후크'에서 스미로 나왔던 게 가장 인상에 남았는데

스미와 셰어라뇨?!?

하지만 영화 속에선 좁은 시골 마을에서 사는 아조씨 답지 않게 관대하고 가슴이 따뜻하고 이해심이 깊은 모습을 보여준답니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저는 우리 가족과 상당히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는 이 가정이 겪는 갈등과 화해에 깊이 공감했어요

엄마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영화의 시선은

무척이나 따스하지만, 지나치게 신파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영화의 플롯은 참으로 뜬금없고, 당시 치고는 꽤나 파격적인 편이에요.

이유는 스포일러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전 그런 점이 좋았어요. 진부하지 않잖아요. 


세 여인의 화합으로 끝맺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귀엽고 예쁘고 떠올리면 광대가 끝도 없이 올라가지만

웬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서 눈시울이 약간 붉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하기도 해요.

서로 끌어안고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는다거나, 감동적인 대사를 읊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 장면이 끝나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저는 매번 볼 때마다 아쉬운 기분에 탄식을 내뱉습니다. 

영화가 하고 싶은 얘기는 가족이니까 서로 죽을만큼 다를지라도 사랑하고 잘 살자는 거죠, 뭐.

하지만 마지막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감히 해봅니다.


이런... 글이 너무 길어지니 지루해질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나머지 영화는 다음에 얘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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