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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한번에 모든 감상을 다 설명하기 어려워서 앞으로는 그냥 되는 대로 쪼개서 올려볼까 합니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제목은 누군가는 자신을 해고하려한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주인공인 정원은 회사에서 해고당하기 직전 하청업체에 강제로 파견을 나가게 됩니다. 당연히 그 파견은 제발로 나가게 하려고 낯선 근무 환경에 그냥 툭 던져놓는 괴롭힘 수준의 결정입니다. 그만두느니 그렇게라도 버티고 나중에 원청으로 복귀하겠다면서 정원은 일단 파견된 하청업체에 출근을 합니다만 상황은 쉽지 않습니다. 하청업체 직원들은 자기를 깍두기 취급하고 정원은 그만두지 않기 위해 없는 일이라도 하겠다며 얼굴에 철판깔고 당당해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릴 때 뛰었던 노가다 일이 좀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은 인력소개소에서 대뜸 저한테 가짜스토리를 주더군요. 모모씨가 아는 형인데 그 형님 소개로 왔다고 하면 알아서 일거리 줄거라면서 그렇게 말하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는데 현장에 그런 저를 데려다주고 저기 철근을 잘라서 용접을 하고 볼트 다 쪼이고 전선 연결하면 된다면서 저를 덩그러니 두고 떠나더라구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울 것 같았던 기억이 납니다. 일은 해서 돈은 벌어야하고 뭘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고... 목표와 무능력이 부딪힐 때의 그 서러움은 자존감을 뒤흔듭니다. 저는 딱 하루 겪었어도 그랬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정원은 그걸 매일 겪으면서 참고 있으니 그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노동자에게 회사란 단순한 돈벌이 공간이 아닙니다. 자기 삶이 걸려있는 생존의 장이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가치를 증명하는 실존의 공간입니다. 악착같이 뭐라도 하겠다며 정원이 덤벼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일을 해야하고 그 안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원은 늘 회사에서 "주제넘게" 뭔가를 요구하고 일을 하겠다며 끼어듭니다. 그런데도 그는 일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송전탑을 올라가는 게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사의 조치가 더 악랄하게 느껴집니다. 한 개인의 열정 따위는 아예 통하지도 않게끔 아무 현장에나 던져놓는 것입니다. 자를 수 없으면 나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것이 왕따가 아니고 뭘까요. 그런데 회사는 이걸 당연하게 여깁니다. 심지어 이 해고를 하청업체에 외주를 주는 형식으로 합니다. 안나갈 때까지 정원의 월급은 하청업체에서 내야합니다. 


영화 속에서 송전탑을 올라가있는 배우들을 보면 아뜩할 때가 있습니다. 와이어라든가 어떤 안정장치도 없이 저렇게 올라간건가 싶어서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게 송전탑 노동자들의 현실이겠죠. 목숨값이 너무 싸게 치뤄지는 이 상황이 배우의 안전을 통해 와닿는다는 것에 좀 반성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대규모 정전이 일어납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값싸게 부려지지만 이들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불빛은 사라져버립니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일하는 모든 인간에게 인간값을 서로 빚을 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저 고마워하거나 감동받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송전탑 노동자들이 보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끼며 일하게 하는 게 시급한 문제겠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너무나 많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법을 엉망으로 통과시킨 의원들에게 화도 났구요. 제가 항의하는 유일한 길은 그런 현실을 이렇게 영화로라도 마주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오정세씨는 본인의 대표적인 캐릭터들보다 말수가 적고 피곤하지만 그래도 그만의 다정함이 있습니다. 유다인 배우는 위태로운 가운데 존재를 붙들려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높이 올라가있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낮은 곳에 있습니다. 발이 닿지않는 허공에서 바람을 맞고 안개 속에서 빛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시적인 감상 너머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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