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8 21:40
-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아니고 그냥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입니다. 2020년작이고 상영 시간은 93분. 스포일러 없게 적지요.
- 케빈 베이컨과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부부로 나와요. 58년생과 85년생의 부부 조합이라니 좀 과하지 않나 싶지만 다행히도 극중 인물들도 그게 과하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네요. 케빈씨는 갑부이고 아만다는 미모의 영화 배우이고, 케빈씨는 자신의 늘금 때문에 아내를 의심하고 걱정하고... 뭐 이런 게 설정으로 들어가 있어요.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등장해서 케빈 베이컨에게 처음으로 하는 대사가 '선크림 좀 발라'이기도 하고(...) 또 극중에서 둘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연이 나오고 그게 이야기에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암튼 일단은 큰 문제 없이 6살난 딸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가정입니다만. 우리 케빈옹께서 최근들어 자꾸 자신의 딸을 누가 해치는 악몽 같은 걸 꾸네요. 정신과 상담을 다니며 시키는 것들도 열심히 해보지만 별 차도는 없고... 그러다 아내가 영국으로 장기간 촬영을 간다고 하니 '내친 김에 우리 식구 다 같이 가서 즐거운 시간 좀 보내보세!' 라며 웨일즈에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 하나를 예약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상한 일이 벌어지겠죠. 이 영화는 블룸하우스에서 제작한 호러 영화니까요.
(다정해 보이죠. 사실은 "썬크림이라도 좀 바르세요" 라고 노인 구박하는 장면입니다. ㅋㅋ)
- 케빈 베이컨과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이름만 보고 아무 기대 없이 고른 영화였습니다. 보나마나 별로겠지만 그래도 이게 얼마만의 케빈 베이컨이냐! 그리고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예쁘니까!! 게다가 런닝 타임도 짧네!!! 라는 맘으로 본 건데... 다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이거였네요. 이 배우들이 어쩌다가 이런 영화에 출연을 결정한 걸까. 시나리오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요즘 일이 안 들어 오나. 아님 어딘가에 고성이라도 하나 사서 관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걸까...
사실 케빈 베이컨의 경우엔 금방 수수께끼가 풀렸어요. 본인이 프로듀서더라구요. ㅋㅋㅋ 뭐 그래도 '왜 이딴 각본으로 영화 만들 생각을 했을까' 라는 의문이 새로 생기긴 하지만 뭐 그건 다른 사정이 있었겠죠. 맘에 드는 원작 소설이 (네, 원작이 있습니다) 있어서 만들기로 결심했는데 최종 각본이 이따우로 나와 버렸다든가...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맹크'로 오랫만에 찬사 받기 전까지 한동안 커리어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고 이 영화가 '맹크' 바로 전에 촬영한 작품입니다.
근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닌데... 하지만 글 시작부터 이런 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대충 짐작이 가시겠죠. ㅋㅋㅋㅋㅋ
- 여러번 게시판에 적은 적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화끈하게 못 만든 영화는 좋아합니다. 재밌게 봐요. ㅋㅋ 제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애매... 하고 맥아리 없이(?) 못 만든 영화인데 이 영화가 딱 그런 경우에요. 정말 무난~ 하게 모든 면에서 별로라서 신나게 씹는 재미도 얻기 힘든 거죠.
그 '모든 면' 중에서 몇 가지만 지적을 해 보자면,
1. 일단 93분짜리 영화에서 60분을 돌파할 때까지 중요한 사건이 하나도 안 벌어지구요. 그렇다고해서 그 60분동안 캐릭터와 드라마를 충분히 쌓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영부영 어설프게 불길하고 어설프게 애틋한 장면들로 시간 낭비만 합니다. 그 덕에 애초에 시시한 클라이맥스에 더더욱 힘이 빠지는 효과도 있구요.
2. 무서워해라! 놀라라!! 하는 장면들이 정말 초현실적일 정도로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긴장감이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 수준.
3. 초반부터 진상이 대략은 뻔하게 보이는 이야기인데... 전 60분 무렵에 아주 조금 기대를 품었거든요. 그때 갑자기 제가 짐작했던 뻔한 진상과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는 떡밥이 던져져서요. 근데 결국 마지막엔 처음 짐작했던 뻔한 결말로 가구요, 제가 기대했던 떡밥은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버려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 안 되고 대충 버려지는 떡밥 장면들이 몇 개 더 있어요. 진짜 그냥 작가 편할 대로 써갈긴 각본이란 얘기죠. 있어 보이려고 떡밥 투척은 하지만 회수는 않으련다... 라는 직업 의식 없는 작가님!!! =ㅅ=
- 쓸 데 없이 글 길이만 늘어나니 이 쯤에서 끊구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야기가 굉장히 흐리멍텅하고 느슨합니다. 뭘 강조하고 뭘 부각시키면서 어떻게 이어가야할까... 에 대한 고민을 깔끔하게 포기한 느낌이랄까요. 다 보고 나서 가만히 머리 속으로 정리해보면 나름 멀쩡한 스토리가 있고 주제 같은 게 있는데 그게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뭐랄까... 아마도 '식스센스'처럼 인간적인 드라마에 바탕을 둔, 그러면서 반전도 있고 공포도 있고 감동도 있는, 뭔가 삼가 말하는 류의 고급진 호러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암튼 그렇습니다.
(감동적인 부성애를 보여주고 싶었다!!! 의도는 그러했다!!!!!)
- 너무 모진 말만 한 것 같아서 좋은 점도 찾아서 이야길 해보고 싶습니다만. 그게 쉽지 않네요. 심지어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평소보다 덜 예쁘게 나와요. ㅋㅋㅋㅋ 그래도 딸 역할 배우는 예뻤고. 이제 환갑을 훌쩍 넘기신 케빈 베이컨 할배의 모습을 오랜만에 본 건 반가웠습니다. 장점 끝.
-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매우 개인적이면서 특별한 이유로 뭐가 되었든 호러 영화 한 편을 봐야하는 상황인데 겁이 많아서 어떤 호러를 봐도 힘들다... 는 분들은 보세요.
케빈 베이컨이나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팬이시라면 이 분들이 나온 다른 영화를 모두 다 보신 후에 마지막으로 보시면 됩니다.
사실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아논'도 완성도 면에서 만만치 않은(!) 작품이지만 그래도 그 영화는 아만다라도 예쁘게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보지 마세요.
+ 각본 쓰고 감독까지 하신 분이 이름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더라구요. 분명 내가 아는 영화랑 관련이 있는 양반일 텐데 어떤 분이신가... 하고 검색해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ㅋㅋㅋㅋㅋ 앞으론 그냥 연출은 하지 않으시는 걸로. ㅠㅜ 이 분 경력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를 눌러 보세요.
https://ko.wikipedia.org/wiki/%EB%8D%B0%EC%9D%B4%EB%B9%84%EB%93%9C_%EC%BC%91
++ 번역제가 참 쓸 데 없이 감쪽 같고 창의적입니다. '더 히든' 이라니... 이걸 누가 한국인이 만들어 붙인 제목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원제는 You Should Have Left에요. 극중에서 중요하게 나오는 문장이거든요. 그냥 그대로 번역을 하든가 하지 영화 내용과도 관련 없는 '더 히든'은 난데 없이 무엇...;
+++ 가만 생각해보면, 그냥 욕심 없이 대략 30분에서 50분 사이의 앤솔로지 에피소드 하나로 들어갔음 괜찮았을 것도 같습니다.
감독의 옛날 옛적 인터뷰를 보면 본인의 인생 영화가 '로즈마리의 아기' 라면서 호러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던데... 참 안타깝네요. 역시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일치하기가 쉽지 않아요.
2021.02.28 22:09
2021.02.28 22:34
으아니 의도와 다르게... 진상 정말 별 거 없습니다. ㅋㅋㅋ 뭔가 구린 과거의 일로 죄책감에 시달리던 인간이 처음 가 본 집에서 현실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일을 계속해서 겪는다면 진상은 뭐 대략 둘 중 하나 정도로 정해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화 제목들 번역은... 좀 민망(?)하더라도 걍 영화 속 맥락 좀 참고해서 한국어로 제대로 번역하는 풍토가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처음엔 거부감이 크겠지만 지금처럼 영어 발음을 그냥 한글로 옮겨 버리거나, 혹은 아예 쌩뚱맞은 제목을 영어로 창조해내버리는 것보단 그게 훨씬 나을 듯 싶네요.
2021.02.28 23:08
2021.02.28 23:16
극중에서 대사로 나옵니다. "아버지신가요?", "아뇨, 남편이라구요." ㅋㅋㅋㅋㅋㅋ
맞아요 원래 케빈 베이컨 하면 반항, 자유, 혹은 싸이코(...) 같은 이미지가 강했죠. 인생 대표작인 '풋루즈'를 봐도 그렇고. 근데 여기선 무려 성공한 갑부 금융인이었다가 은퇴한 할배 역할입니다. 하지만 뭐... 정작 영화 속에서 보이는 모습은 충분히 부적응자스러우니 괜찮으실 것도 같구요.
영화의 완성도는 포기하고 그냥 케빈 베이컨만 보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나름 되게 열심히 연기하는 게 보이거든요. 의외로 젊었을 때 느낌 많이 유지하면서 곱게 늙은 느낌이기도 하구요.
2021.02.28 23:14
화려한 배우진(?)에 블룸하우스 조합이라 혹시나 하고 봤는데 대체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아무런 내용이 없어서 재미없는 드문 케이스였는데 넷플릭스의 1.5배속 기능은 이런 영화를 위해서 존재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2021.02.28 23:40
'대체 이게 뭔가' ㅋㅋㅋㅋ 딱 적절하네요. 저도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기초가 안 되어 있는 영화 같았어요.
2021.03.01 10:19
다작한 스타 작가들은 원래 망작도 꽤 있으니까요. 그래도 "앞으론 그냥 연출은 하지 않으시는 걸로"에 살짝 말을 얹자면, 데이비드 켑의 연출작 중에서 조셉 고든-레빗이 뉴욕을 질주하는 바이크 메신저로 나오는 [프리미엄 러쉬]는 큰 욕심 없이 91분 동안 깔끔하게 치고 빠지는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왓챠에 있는 모양인데 한 번 보시고 용서해 주심이^^
2021.03.01 10:46
아래 딸기와플님 댓글을 보고 나니 '스터 오브 에코'도 이 분 연출이었군요. 위키를 찾아보고도 각본만 쓰신 걸로 착각했습니다. '프리미엄 러쉬'는 보니깐 유튜브에서도 900원으로 볼 수 있는 것 같고... 너무 성급한 드립을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
2021.03.01 10:24
전 데이빗 켑 이름 보고 골랐는데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어요. 이 감독의 전작 스터 오브 에코는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평이 좋지 않았던 시크릿 윈도우도 전 재밌게 봤어요.
분위기랑 스토리가 딱 스티븐 킹 단편 같지 않았나요. 상영 시간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무슨 내용인지 알겠더라구요.
일단 케빈 베이컨한테 전화하는 목소리가.. ;;; 듣자마자 누구 목소린지 알 수 있잖아요. 제가 케빈 베이컨 팬이라 그런지 몰라도 케빈 베이컨 목소리가 평범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전화 목소리로 무슨 스토리인지 다 알아버렸더니 김이 빠지더라는...
그래도 그냥 영화 분위기는 좋았어요.
케빈 베이컨은 특유의 반항아 같은 느낌 때문에 소년 같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영화에서 보니 많이 늙으셨더라구요. ㅠㅠ 주름살이 많아도 아직도 젊은 느낌이에요.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케빈 베이컨을 좋아하나봐요.
2021.03.01 10:49
전화 목소리. ㅋㅋㅋ 저도 그랬습니다. 음? 목소리 이거? ㅋㅋ 영화 보고 나서 imdb를 뒤져봤더니 거기에도 정보가 지나치게 정직하게 적혀 있더라구요. 영화 보기 전에 미리 찾아봤으면 그냥 스포일러 한 번 거하게 밟고 감상 시작할 뻔 했습니다.
맞아요. 분명히 늙어서 할아버지가 된 얼굴인데 희한하게 젊은 느낌이 계속 나더라구요. 그리고 그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자꾸 80~9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던 걸 보면 케빈 베이컨이 제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그 시절의 아이콘이었나보다... 싶었습니다.
말씀대로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요. 특히 그 집의 묘사가 나름 괜찮았는데 그걸 충분히 못살리고 걍 우당탕탕! 하고 진상이 밝혀져 버리는 게 실망스러웠네요.
진상이 뭔지 너무 궁금해지는 후기네요. 요즘 영어 제목 한글 표기 싫어하는 편입니다. 심지어 이런 사례와 같은 만행도 요즘에는 종종 벌어지니까요. 번역해서 잘 옮긴 제목 보면 그렇게 반갑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