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2 23:25
바로 집앞에 걸어서 20발자국을 걸어가면 닿을 수 있는 커피숍이 있습니다.
프렌차이즈 뭐 이런거는 아니고 그냥 개인이 하는 아기자기한 커피숍입니다. 크기는 10평이 조금 넘는 것 같고 안에 들어가면 의자가 10가 안되게 있는거 같네요.
인테리어나 이런것들의 컨셉이라면.. 가게 곳곳에 퀸이나 벨벨 언더그라운드, 비틀즈의 에비로드같은 엘피가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고 역시 엘피로도 가끔 음악을 가끔 트는 것 같네요..
메뉴도 간단합니다. 커피만 4종류 팔아요.
가게에서 고양이를 두마리 키우는데 저는 고양이를 보러 여기에 가끔 갑니다. 커피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커피숍을 운영하는 분은 아마 연인 사이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커플인데 두분이 모두 양쪽 팔 이곳 저곳에 타투를 한게 조금 인상 깊습니다.
저도 우연치 않게 생긴 타투(아침에 일어나서 '누가 내 팔에다가 타투를!' 이런 느낌..)가 팔 위쪽에 몇 군데 있는데 이걸 자연스럽게 슬쩍 노출하면서 괜히 친한척 좀 해보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한 타투가 너무 소녀감성이기도 하고.. ㅠㅜ 역시 해골같은걸로 할걸 그랬어요..
그리고 암튼 두 분이 패션 스타일이 좀 비슷합니다. 두분다 요즘엔 잘 볼 수 없는 통이 큰 일자 스타일의 리바이스 청바지를 자주 입거든요. 조금 박시한 프린트 티셔츠를 입는 것도 비슷하고..
커피숍에는 사람이 많지가 않아서 제가 커피숍에 있을때면 두분이 같이 얘기도 하고 같이 커피도 내리고 고양이랑 놀고 하는걸 옆에서 자연스럽고 보고 있을 때가 있는데 두분이 사이가 정말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사이가 좋아보인다고 하기로는 좀 부족하고 특히 남자분이 여자분에게 엄청 잘 해주는 것 같습니다. 또 이 표현으로도 부족한게.. 아무튼 남자분이 뭔가 엄청 젠틀하고 자상해 보입니다.
네.. 물론 남자분은 미남이십니다. ㅠㅜ.. 특히 저음의 목소리가 좋아요.
가끔 고양이들이 열려진 가게 문 밖으로 나가서 좀 멀리 갈것 같은면 그 멋진 목소리로 고양이를 부르는데 고양이가 '어 뭐지? 이 멋진 닝겐의 목소리는..' 하면서 눈이 하트가 되서 휙 돌아보는 것 같은 느낌.. 아니면 '아.. 내가 저 놈 목소리 하나 때문에 저 닝겐놈이랑 같이 살아준다...' 뭐 이런 느낌..
저번에 아마 일요일 오후 6시 정도 였던것 같은데 두분이 가게를 닫고 퇴근하는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두분이 고양이 한마리씩을 각자 어깨에 올려 놓고 어깨 동무를 하고 가는 뒷모습을 봤는데.. 그리고 마침 골목뒤로 석양도 깔리고.. 뭔가 보통의 평범한 연인으로 보이는게 아니라 뭔가 두분의 러브러브한 기운이 몇미터 떨어진 저한테 마구 전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전에도 다른 커플을 보고 이런 기분을 느낀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3년 전에 대학로의 카페 벙커1에서 김어준과 인정옥을 봤을 때였습니다.
그때 커피숍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김어준은 마치 인정옥과 둘이 있는 것처럼 인정옥의 손을 꼽 잡고 인전옥의 귀에 대고 뭐라고 조근조금 얘기를 하기도 하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김어준이 인정옥을 보는 눈에 너무 러브러브함이 묻어나서 둘이 사귄지 몇주 정도 밖에 안된거 같았는데.. 물론 그때도 둘이 사귄지 8년이 넘은 시점..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는 사람 앞이라면 연인끼리 손을 잡고 있거나 서로 눈을 보고 웃는다거나 이런 걸 잘 안하는 편인데 둘은 뭔가 이걸 뛰어 넘는 기분 이랄까요?
집 근처에 공원이 생겼는데 거기에 '지나친 애정표현은 삼가해 주세요' 어쩌구 하는 플랫카드가 걸렸습니다.
지나친 애정표현의 기준이 도대체 뭔지.. 아마도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진하게 포옹을 하거나 뽀뽀를 하는 연인들을 보고 만든 플랫카드인거 같은데 저는 한번도 눈살 찌푸려지는 모습을 본적이 없거든요..
저는 연인들이 길에서 지하철에서 손을 잡고 뽀뽀를 하고 키스를 할때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분들은 자기들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그 잘난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거죠. 게이 퍼레이드도 사실 그런거 아니겠어요? 그 분들이 뭐가 좋다고 차위에 올라가서 더운날 몇 시간 동안 웃통 벗고 춤을 추는데요.. 다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겁니다.
맨날 미국이니 유럽이니 하면서 왜 그네들의 문화들은 안 따라하고 어디 후진스러운 문화를 부러워하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모두 선진국으로 한 발 더 나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려는 자세로, 그렇게 살아요.
2015.09.12 23:30
2015.09.12 23:45
저도 연남동 공원에서 그 플랫카드 보고 와이프랑 같이 웃었었죠.
여기서 뭐 얼마나 애정행각을 벌인다고 저런 플랫카드가 붙었을까 하면서요.
예전 대학교 때 신촌 놀이터나 홍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소위 말하는 난장을 많이 깠는데
그때 야밤만되면 놀이터는 아베크족들 천국이었죠. 그때 놀이터만 본다면 한국은 엄청난 선진국(?)이었을지도.
요즘은 야밤에 놀이터 갈 일이 없어서 어떤지 잘 모르겠군요.
요즘 홍대 길거리에서 걸어가다가 뽀뽀하는 연인들은 많이 봅니다. 네 뭐 보기 나쁘지는 않습니다. ㅎ
연남동 공원에서도 벤치에서 뽀뽀하는 커플들은 자주 봅니다. 말 그대로 뽀뽀죠. 예전 야밤 놀이터에서 보던 그 진득한 키스가 아니라.
그러다가 어느날 좀 늦은 시각에 와이프랑 공원을 걸어가다가 잔디밭에서 껴안고 뒹굴고 있는 커플들을 보고
'아 저래서 플랭카드가 붙었나' 했죠.
애정행각도 뭐 결국 수위의 문제겠죠. 연남동 공원도 안에 화장실이 없다보니까 밤에 술먹고 똥싸는 인간들도 많다고 하니 애정행각도 그 이쁜 정도를 넘어서는 커플들도 있겠죠.
2015.09.12 23:49
연남동 공원에 화장실이 왜 그리도 필요할까.. 싶었는데 사람들이 공원에서 맥주를 그렇게 마시더군요.. ㅠㅜ
2015.09.13 03:54
김어준과 인정옥 계속 사귀나요? :)
조니 미첼의 명곡, "In France They Kiss on Main Street"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2015.09.13 10:13
연남동의 그 플랫카드들은 주민 민원이 하도 들어와서 설치된 거라던데요ㅎ 아무래도 공원에서 섹스하는 커플들이 있었나 봅니다.
2015.09.13 10:54
2015.09.13 11:28
저는 의문인게.. 일부 사람들이 '공원 으슥한 구석을 빈방 삼는 행위'정도를 할 정도면 '과도한 애정표현 금지' 정도의 현수막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현수막으로 해서 거는게 좋지 않을까요? 몇개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 인류가 남들 앞에서가 아니라 은밀한 곳에서 '러브'를 하게 된지 몇 천년이나 지났습니다. 우리 모두 이 고난한 진화의 과정을 무시하지 말아요'
'거기 당신! 당신들은 제시나 셀린느가 아니잖아! 공원러브는 자제해 주세요'
그리고 이게 정의당이 현수막으로 새누리당으로 베틀하는 것처럼 다른 현수막이 막 달리는 겁니다.
'소극적 애정표현을 제어해 주세요'
'제시와 셀린느만 공원러브 하라고?, 철수와 영희도 할 수 있다!'
'경의선 숲길 공원 ❤ 비포 미드나잇'
'저출산 시대, 공원러브가 함께합니다.'
'풍기문란 VS 저출산, 풍기문란에 한표!'
'공원에서의 행적이 묘연한 러브러브 7시간'
죄송합니다.. ㅠㅜ
2015.09.13 12:40
2015.09.13 11:20
여러분이 대동단결해서 '플랫카드'로 쓰시기에... placard, 플래카드임을 살짝 알려드립니다.
사실 placard를 현수막(=banner)이란 뜻으로 쓰는것도 적절하지는 않다는. 시위할 때 시위내용을 적어 손잡이를 단 게 플래카드여요. 한국서 흔히 피켓이라 부르는 그거요.
또 피켓은...(이제 그만...-_-;;;)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 한국에선 flat card로 쓰기로 한 거라면 좀 난감....;;;
2015.09.13 22:52
2015.09.13 23:38
저는 심지어 프랑카드라고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2015.09.13 23:48
공원에 그정도의 플랜카드가 걸리는거면 19금 하는 사람들 몇 걸렷을 겁니다. 파리서도 경찰이 일일이 단속하더군요.
경찰만 가면 키스가 갑자기 격렬해지면서 여자 가슴으로 손이들어가고 난리가 나는 커플 본적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