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도박장, 감나무

2021.02.08 08:22

여은성 조회 수:334


 1.스스로 노력하는 것과 투자는 매우 다르긴 해요. 노력이라는 건 일찍 할수록 좋거든요. 어렸을 때 1년 열심히 사는 거랑 나이들어서 1년 열심히 사는 건 효율의 차원이 다르니까요. 노력이라는 건 돈을 넣기만 하면 계속 복리로 이자를 주는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과도 같아요. 일찍 시작할수록 복리의 효율을 맛볼 수 있고 너무 늦게 시작하면 이자를 챙겨먹기 힘든 거죠. 



 2.하지만 투자는 글쎄요. 산술적으로 생각해보면 일찍 할수록 안 좋을 수도 있어요. 물론 이건 내가 전에 한 말이랑 다르긴 하죠. 개인투자자에겐 시간이 무기이기 때문에 일찍 주식투자를 시작할수록 좋다고 말하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결국 개인투자자의 90%이상은 돈을 잃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엔 이래요. 개인투자자가 돈을 벌 확률을 높이는 법은 도박장에 있는 시간을 줄이는 거예요. 도박장에 오래 머물면 오래 머물수록 질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3.너무 어린 나이에 투자를 시작하면, 그만큼 인생에서 도박장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사실 투자를 일찍 시작하면 도박장에 있는 시간이 남은 인생 전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예요. 주식시장이든 도박장이든 그렇거든요. 한번 들어와 버리면 몸은 나갈 수도 있지만 마음은 완전히 나갈 수가 없어요. 신경과 마음의 일부분은 늘 도박장에 남겨둔 채로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30살에 투자를 시작해도 되고 40살에 투자를 시작해도 돼요. 어렸을 때 푼돈가지고 깨작깨작 하는 것보다는, 아예 도박장과 무관한 인생을 살면서 열심히 시드머니를 모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만 들어와서 돈을 벌고 나가는 게 최고예요. 그리고 또다시 열심히 살면서 다음 번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고요.



 4.휴.



 5.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건 실천하기 어렵죠. 돈을 모아놓고 주식시장이 좋을 때만 주식을 한다는 건 공략본을 보면서 게임플레이를 하는 거랑 비슷하니까요. 애초에 도박장에 신경이 쏠려 있지 않으면 도박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부터가 힘들거든요.


 하지만 그래도...도박장의 동향을 간접적으로나마 계속 파악해 두는 게 좋아요. 뉴스에서 큰일났다고 할 때 주식을 사고, 택시 기사가 주식을 사야 한다고 말할 때 주식을 파는 식으로요. 



 6.투자와 노력을 빗대면 노력은 주식보다 부동산과 비슷하겠죠. 그게 단리든 복리든, 아니면 안 움직이든간에 땅은 땅이니까요. 땅은 유상증자나 상장폐지가 안 되기 때문에 일찍 살수록 좋아요. 10년이든 20년이든 30년이든...땅은 언젠가는 오르는 날이 찾아오거든요. 


 문제는 땅에 돈이, 그리고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으면 그것이 꽃을 피울 때까지...설령 30년이라도 30년 내내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땅의 문제예요. 30년 동안 손가락을 빨았다면 땅을 언제 파는 게 옳은 건지 알 수가 없거든요. 땅이 꽤 많이 올랐다고 해서 팔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30년! 30년을 손가락을 빨았으니까요. 그 땅이 얼마가 됐든 '나는 30년 동안 손가락만 빨았어. 30년 동안 손가락 빨면서 참은 걸 보상받기엔 이걸론 부족해.'라는 생각만이 들거든요. 



 7.자신의 인생...그리고 그 중 30년은 사람에게 얼마의 가치가 있는 걸까요? 자신의 인생에서 뒷부분의 30년도 아니고 앞부분의 30년...가장 좋았거나 가장 좋아야만 했던 30년이 확실히 보상받는다는 기분이 들 정도의 돈은 얼마일까...라고 생각해 보곤 해요.


 하지만 그건 더이상 돈의 영역이 아니예요. 어떤 것에 30년의 시간을 투자했다면 그게 아무리 많은 돈이 되었어도 슬픔이 묻어버리니까요. 30년이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에 말이죠.


 그러니까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 도박장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위에는 어렸을 때 노력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중요하다고 썼는데 나이들어서 노력하는 것도 효율과는 무관하게 중요해요. 왜냐면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갈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감나무만 쳐다보면서 '저 감이 언제 떨어질까...저 감이 얼마나 더 커질까...저 감의 크기가 내 인생의 급을 결정하는 거야...'라는 생각만 하면서 살아가게 되기 때문에 피폐해지거든요. 



 8.그래서 그 감나무를 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죠. 사실 감나무-부동산-라는 건 그걸 쳐다보고 있든 안 쳐다보고 있든 똑같거든요. 내가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오르는 것도 아니고 신경끄고 있다고 해서 안 오르는 것도 아니예요. 


 애초에 이세상엔 감나무가 없는 사람도 많아요. 감나무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인 거죠.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아주 간사해서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감나무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나무가 있기 때문에 인생이 더욱 피폐해지기도 하거든요. 저거 하나만 되면 다 된다...라는 마음으로 감나무만 쳐다보면서 살곤 하니까요. 내가 열심히 살아봤자 저 감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비하면 다 초라하다...나의 금과옥조가 되어줄 것은 오직 저 감나무다...라는 마음으로 살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날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내가 돌봐야 할 감나무는 결국 나 자신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부동산이나 금융상품같은 감나무들은 돌보지 않아도 자라니까요. 하지만 자기자신만큼은 신경 써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그러지 않으면 자라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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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그래요. 투자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그렇고...도박장에 있는 시간을 줄이면 줄일수록 좋아요. 도박장에 몸을 두는 시간, 마음을 두는 시간 둘 다 말이죠. 


 이러면 누군가는 이럴 수도 있겠죠. 아예 도박장에 안 가는 게 좋지 않냐고요. 하지만 또 그럴 수는 없는거예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은 인생에 한 번이나 두 번은 도박장에 가야만 해요. 도박장이 몇년에 한번 돈을 벌게 해주는 순간에는 그곳에 있는 게 좋으니까요. 도박장이 가장 안전해질 때는 한번씩은 가보는 게 좋아요.


 어쨌든...우주비행사가 못 되거나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못 되는 나이가 되어도 열심히 살 수밖에 없어요. 왜냐면 사람이 열심히 안 살면 몸과 마음이 도박장만을 기웃거리게 되더라고요. 꼭 뭔가를 하거나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뻘짓거리를 안 하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왜냐면 그렇거든요. 잊어버리고 있던 감나무가 어느날 큰 돈이 되어서 돌아오면 기쁘고 감동적이지만 맨날 쳐다보고 있던 감나무는 아무리 큰 돈이 되어도 심술만 나고 만족스럽지가 않아요. 그 감나무를 맨날 바라보면서 심술만 늘어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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