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 뮤직비디오를 이야기하기 전에 뉴진스의 퍼포먼스 영상부터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뉴진스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최애 무대가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2023 빌보드 뮤직 어워즈의 공연을 최고로 뽑는다. 뉴진스가 이날 라이브를 잘했다거나 관객과의 호흡이 좋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이 날 뉴진스의 공연 컨셉이 게임 속 세계를 리얼 월드로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뉴진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인 '디토 감성'을 이야기한다. 그 감성은 캠코더 혹은 VHS로 대표되는 구시대적 영상기록들, 그리고 약간은 노이즈낀 화질로 재현되는 과거의 장면들, 그걸 볼 때 찾아오는 이상한 애수를 내포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희진의 가장 성공적인 프로듀싱이지 유일한 대표작은 아니다. Hype Boy, Attention, Cookie, OMG 등의 뮤직비디오들은 노스탤지어와는 반대 방향의 진취적이고 미래적인 감흥을 의도했다. 이것은 미니앨범 2집의 타이틀곡인 Super Shy의 뮤직비디오에서 극대화되었다. Super Shy의 뮤직비디오는 분명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찍고 실제 사람들이 나오지만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심즈 같은 가상 세계 게임에서 아바타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연인이 헤어지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은 누군가의 불행한 일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아웅다웅하는 게임세계의 이벤트다. 노래가 끝나면 뉴진스는 춤추고 노래하는 이벤트가 끝난 아바타처럼 뚜벅뚜벅 행진대열로 퇴장한다.


이것은 단순히 이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꾸미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게임처럼 보인다는 것은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의 질감을 표현하는 일이다. 코스프레를 떠올려보자. 아무리 분장을 잘하고 코스플레이어의 외모가 뛰어나도, 게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어렵다. 원본이 되는 게임 속 캐릭터가 생략과 과장을 통해 만들어진 미적 결과라서 그렇다. 자칫하면 게임 속 캐릭터에 대한 어색한 흉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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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뮤직어워즈에서 뉴진스는 계속해서 게임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감흥을 일으킨다. 오프닝 무대에서 멤버 다섯명이 각각 다른 색의 전광판 뒤에서 춤을 추는 장면들은 게임 속에서 캐릭터 셀렉트 창처럼 보인다. 이후 이들이 OMG 무대에서 갈아입은 의상은 게임 속 아바타에게 옷을 입혀놓은 것처럼 보인다. 단지 실제 사람이 게임 캐릭터를 따라했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현실적 감각을 최대한 흐트러트리면서 마치 게임 속 캐릭터를 보여주는 듯한 자극을 준다. 


그리고 해당 의상으로 5개월 후 배틀 그라운드의 뉴진스 캐릭터 컨셉이 출시되었다. 이 부분에서 민희진의 어떤 야심이 엿보인다. 뉴진스를 단순히 예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좋아하게끔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가상세계의 표현 방식으로 뉴진스를 그려내고 존재시키고 싶어한다. 이것은 단순한 광고 모델로서 상업적 이익을 위해 이미지를 대여해주고 마는 것이 아니다. '이세계로의 뉴진스 전송'은 미니앨범 2집의 NewJeans란 노래와 Super Shy란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일찍이 뉴진스는 미니앨범 2집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고 암시했고 이들의 세계는 게임그래픽으로, 혹은 게임 속 세상처럼 묘사가 되었다. 뉴진스는 단순한 컨셉에서 그치지 않고 정말로 게임 속 세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 질문이 따라붙는다. 뉴진스가 게임 속으로 넘어갔다면,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일까.

 



뉴진스의 Right now 뮤직비디오에는 각 멤버들이 파워퍼프걸로 형상화된 캐릭터들과 무라카미 다카시의 버전으로 형상화된 캐릭터들이 날아다닌다. 이것은 단순한 콜라보일까. 뉴진스가 파워퍼프걸이나 무라카미 다카시 버전의 캐릭터로 변한다고 해당 애니메이션이나 미술작품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상업적 윈윈이 이어지는걸까? (물론 무라카미 다카시는 돈을 벌 것이다!) 뉴진스 이전에 파워퍼프걸을 잘 몰랐던 사람들은 이제 파워퍼프걸을 보면 뉴진스를 떠올린다. 혹은 뉴진스의 파워퍼프걸 캐릭터를 차용해 자신들만의 파워퍼프걸 버전의 캐릭터들을 선보인다. 파워퍼프걸은 단순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다. 뉴진스를 가리키는 기호이며 뉴진스가 존재하는 방식의 기호이다. 


그 선례로 마블의 어벤저스가 있다. 코믹스의 캐릭터와 영화 속 캐릭터는 동일한 존재가 아니지만 때로 코믹스나 게임은 영화 속 인물의 외양을 그대로 차용한다. 원래 아이언맨은 기존의 묘사와 캐릭터가 있었지만 이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외양으로 만화나 게임 속에서도 존재한다. 실존인물은 다양한 기호로 다른 세계에서 존재하고 확장된다. 혹은 기존의 미술적 기호가 현실 속 사람의 외양을 덧씌워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기호를 통해서도 동일 존재를 떠올리고 이해한다. 미니앨범 2집의 NewJeans 뮤직비디오에서 뉴진스는 파워퍼프걸의 기호로 존재하기를 이미 선보였고 그것은 이제 무라카미 다카시 세계의 뉴진스로 확장되었다. 사람들은 파워퍼프걸이나 무라카미 다카시의 뉴진스를 보면서 단순히 만화, 애니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뉴진스다. 


이 같은 기호의 확장은 '보는 음악' 케이팝에 대한 민희진의 미술적 야심이다. 아이돌들은 앨범 때마다 머리를 탈색하거나 스타일링을 바꾼다. 그렇게 아이돌은 컨셉을 바꿔가며 다른 이미지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그 이미지는 왜 실제 사람의 머리나 옷이나 화장법에 갇혀있어야 하는가. 한 사람의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면, 아예 존재하는 기호 자체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뉴진스를 파워퍼프걸을 통해서 보고, 무라카미 다카시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본다. 자칫하면 유치해질 수도 있는 이 기호의 변경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이것은 뮤직비디오의 팝아트처럼도 느껴진다.


케이팝은 애초부터 보는 음악으로 시작했다. 이수만의 SM은 일단 멋진 외양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보는 사람을 주목시켜 음악을 소비시키는 방식을 정착시켰다. 그 다음에는 GD의 YG가 아이돌에게 명품을 포함한 패션 스타일링을 접목했다. 그리고 장원영과 카리나가 등장했다. 일반인들에 비해 너무 작은 얼굴을 가진 이들은 이제 "모델 비율"까지 제시하며 케이팝 아이돌계의 신체적 장점의 끝판왕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적지 않은 걸그룹 멤버들이 170 이상의 신장을 자랑하고 남자아이돌들은 180이상의 키를 갖고 있다. 단순히 예쁘거나 잘생긴것만으로는 안된다. 날씬하기만 해서도 안된다. 이제 아이돌은 비현실적인 8등신의 체형을 갖춰야하며 펑크룩부터 프레피룩까지 모든 컨셉을 때에 따라 착장한다. (허윤진은 이미 팬츠리스 패션까지도 선보였다) 아이돌의 외모와 스타일로 더 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이미 한계에 봉착한 시점이 아닐까.


민희진은 보는 음악으로서 케이팝에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아이돌 멤버들의 헤어와 화장과 의상을 바꾸는 것은 이제 기본이 된 시대다. 이제 이미지의 변화를 꾀한다면 아이돌은 다른 세계의 기호로도 전환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에게 케이팝 아이돌은 단순히 외모가 잘난 선남선녀의 매력대결의 장이 아니다. 각 개개인을 가지고 어떤 이미지를 제시하며 감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미술적 감각을 실험하는 장이다. 더 세련되고 더 새롭게. 끝없는 진화를 추구하는 케이팝 시장에서 민희진은 인간 꾸미기를 넘어서서 그것을 다른 세계의 캐릭터들로 번역하는 도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은 성공하고 있다. 



민희진의 팝아트적 실험은 이미 8년전 루나의 Free Somebody의 뮤직비디오에서 그 전조를 보였다. 우리는 이제서야 그 본격적인 결실을 목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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