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과 아웃백

2020.12.29 05:10

여은성 조회 수:698


 1.나는 아웃백을 좋아해요. 아웃백의 음식이 맛있어서 좋아하는 건 아니고, 90년대에 나온 게임이나 만화책을 좋아하는 이유랑 비슷하죠. 과거의 특정한 시기에 존재하는 나의 기분이나 처지를 상기시켜주는 도구로서 말이예요.


 아웃백이 내게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과거에는 내게 아웃백이 아주 고급 식당같았다는 점이예요. 어쩌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한번 가는 식당, 한번 갈 때 가짜 생일 쿠폰을 출력해서 가야 하는 식당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웃백에 갈 때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차이를 돌아보는 재미도 있고 그래요.


 

 2.물론 위에 쓴 건 단순히 나의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기도 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웃백보다 비싸거나 더 좋은 패밀리 레스토랑은 많이 생겼고, 아웃백과 파인다이닝급 레스토랑 사이에 별로 없던 여러 선택지들도 많이 생겼으니까요. 물가의 상승률에 비해 아웃백의 가격은 별로 올라가지도 않았죠. 게다가 가격에 비해 좋고 실력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아웃백은 냉동 음식이나 데워먹는 싸구려 식당이라는 이미지도 붙어버렸고요.



 3.하지만 이렇게 써도 역시, 한 끼 식사로 아웃백을 먹기엔 아웃백은 여전히 비싼 편이죠. 아웃백을 좋아하던 시절엔 많이 먹지 못했지만...나이가 든 지금은 아웃백이 있는 곳에 가면 웬만하면 아웃백을 가곤 해요. 어렸을 때에 아웃백을 많이 먹지 못한 소년에게 지금이라도 많이 먹어라...라고 해줄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여기서 나이가 더 들어버리면 어렸을 때의 나와는 더욱 더 얽힘의 강도가 옅어지고 완전히 결별할 때가 올거니까요. 그러기 전에 아웃백을 실컷 먹여두고 싶어요.



 4.휴.



 5.어쨌든 아웃백이 유행하던 당시에 출범했던 패밀리 레스토랑들은 거의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접거나 쇠락했어요. 아웃백도 마찬가지로 점포수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몇년 전부터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하고 점포수가 제법 늘어난 모양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래봤자 우리 동네에 있었던 아웃백은 돌아오지 않지만. 이제는 아웃백을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아웃백이 있는 지역으로 가야만 해요.



 6.오랜만에 아웃백이 먹고 싶어서 홈페이지를 켜 봤어요. 삼성역이나 고속터미널처럼 익숙한 곳보다는, 어차피 아웃백 원정 나가는 김에 안 가본 지역을 가보고 싶어서요.


 그랬더니 서울에는 의외로 아웃백이 많이 생기긴 했더라고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전국에는 아웃백이 얼마나 있을까...싶어서 지도를 확대해보니 전국 기준으로도 꽤 많았어요. 수원이나 대구나 부산에 아웃백이 있는 걸 보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7.이게 그렇거든요.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식당에 가는 것, 익숙한 곳에서 낯선 식당에 가는 건 자주 할 수 있지만 의외로 낯선 곳에 가서 익숙한 식당에 가는 일은 별로 없어요. 왜냐면 낯선 곳에 가면 그곳에 간 김에, 웬만하면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되니까요.


 하지만 대구나 부산에 놀러가서 아웃백을 먹으면? 낯선 곳에서 익숙한 식당을 간다는 묘한 재미가 있을 것 같네요. 전에도 말했지만 부산에 있는 센텀시티 몰은 꼭 가보고 싶어요. 가서 세계최대급의 몰도 둘러보고 식당가에 가서 다양한 것도 먹어보고 한국 제일이라는 찜질방도 가보고. 부산에 있는 재래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집어먹어도 보고. 부산 파라다이스나 부산 시그니엘도 생겼다는데 한번씩 자보고. 


 하지만 부산에 가서 익숙한 아웃백도 먹어보고 싶네요. 아웃백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테리어도 식기도 메뉴도 똑같을 테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182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081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107
114556 레 미제라블, 짧게 [18] 겨자 2012.12.26 4170
114555 Open Condom Style / 우리집 개는 물지 않아요 [11] 화려한해리포터™ 2012.08.08 4170
114554 카톡이 싫어요... [13] 27hrs 2011.12.14 4170
114553 급질문 아이패드 비활성화! [5] light 2011.01.27 4170
114552 책표지를 진짜 냄비 받침으로 만든 알라딘 이벤트 [8] 날개 2014.08.21 4169
114551 거식증 쌍둥이 자매 [6] 가끔영화 2013.05.02 4169
114550 와 벌써 TV에서 <건축학개론>을 하네요 [30] 화려한해리포터™ 2013.02.10 4169
114549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벌면 : 남편은 발기부전약을, 아내는 불면증과 불안약을 더 먹는 경향 [20] 닌스트롬 2013.02.14 4169
114548 MBC 파업 풀자 마자 아나운서 4명 타부서 배치 [3] 마르세리안 2012.07.17 4169
114547 올레TV 진짜 이건 아닌듯. [9] 달빛처럼 2012.03.14 4169
114546 이 시간 시청앞 상황 [15] amenic 2011.11.23 4169
114545 박원순-한명숙-문재인 "단일후보 합의" [14] 아를의방 2011.09.06 4169
114544 어느 카-센타 사장님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OTL [11] 무비스타 2011.11.27 4169
114543 맥은 정말 악세사리의 유혹이 강하군요 [12] Cocoon 2011.04.20 4169
114542 9시쯤 뉴스- 미대생들 폭력적이네요. [11] 자본주의의돼지 2011.02.28 4169
114541 슈퍼스타K2에서 11명의 떼창을 들어보고 든 생각 [10] Carb 2010.09.25 4169
114540 지금 네이버에서 문어를 검색하면 [12] mithrandir 2010.07.12 4169
114539 sbs 가요 대전 [50] 감동 2012.12.29 4168
114538 클라우드 아틀라스 배두나 [2] 가끔영화 2012.09.29 4168
114537 완전히 독립적이고 건전한 히키코모리 생활이 가능할까요? [20] Ruthy 2012.09.14 416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