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7 02:37
- 올해 나온 블룸하우스 버전 영화 맞습니다. 스포일러 없게 적을 게요.
(저 손바닥을 보고 타이타닉 생각을 하면 좀 이상한 거겠죠 ㅋㅋ)
- 바닷가의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 자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사실은 자는 척을 하고 있었죠. 남편을 약을 먹여 재운 후 미리 챙겨서 숨겨 놨던 짐들을 꺼내서 탈출하는데... 탈출 준비에 한 세월을 투자하면서 자고 있는 저 남자가 좀 제정신 수준을 넘은 통제광인 것 같다는 느낌을 팍팍 심어줘요. 암튼 그 남편과 보낸 세월의 여파로 이 여자분은 살짝 제정신이 아닙니다. 사방이 무섭고 두려워서 얹혀 사는 집 밖으로 발도 못 내밀 정도이고 별을 스치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그럽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날아온 희소식! 남편이 자살해서 죽어 버렸대요. 그리고 남편의 변호사 겸 친동생이 나타나 '너 유산으로 매달 10만 달러씩 받을겨' 라고 말해줍니다. 기쁨에 파티를 벌이고 행복해하는 주인공입니다만. 당연히도 이 때부터 뭔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합니다...
- 어렸을 때 열광했던 능력자 중 하나였던 투명인간. 나이를 먹고 나서 이 캐릭터와 이 능력에 별반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이유는 뭐 사람이 철 들고 개념이 생겨서... 가 아니라 너무나도 한계가 분명한 능력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뭐 있으면 아주 편할 상황이 있기도 하겠지만 일단 보이지만 않을 뿐 실체는 그대로 있으니 어디 부딪히지 않게 잘 피해 다녀야 하고 사람 많은 데도 함부로 못 가죠. 발자국도 남고 숨소리도 들릴 거고 기척도 숨길 수가 없구요. 옷을 다 벗어버리지 않으면 능력 발휘가 안 되니 겨울엔 활동도 못 하고. 게다가... 먹은 음식과 체내의 물, 피 같은 부분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금식 후 화장실 다녀오고 활동하지 않으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똥 때문에 들키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전 금니 때문에 이미 글렀어요.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의 투명인간 설정 한 가지는 꽤 괜찮습니다. 약을 먹고 몸이 투명해지는 게 아니라 첨단 기술로 자체 제작한 수트를 입으면 투명해지거든요. 그 기술 구현의 가능성은 차치하고, 일단 구현되었다고 치면 몸이 투명해지는 것보단 훨씬 말이 되죠. 나쁜 짓도 맘껏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기척과 발소리를 완전히 숨길 수 있다는 건 여전히 납득이 안 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이런 영화는 만들 수 없으니 넘어가주는 걸로.
- 이야기의 설정도 아주 잘 잡았습니다. 사실 투명인간이라는 능력을 가장 잘 써먹을 수 있는 일이 뭡니까. 몰래 숨어서 지켜보기. 곧 스토킹 아니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평범한 인간들을 능가하는 수퍼 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정도가 적절하겠구요. 통제광 사이코패스 스토커 남편에게 괴롭힘당했던 아내... 로 설정을 잡으니 주인공에게 불안한 멘탈 속성을 부여해서 이야기에 긴장감을 줄 수도 있고. 또 주인공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할 수 있구요. 그래서 주인공을 더 불쌍해보이게 만들 수 있고. 덕택에 막판 반격 타이밍에 더 큰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2020년 헐리웃에 걸맞는 페미니즘 영화가 됩니다. 아니 정말 완벽해요. 이렇게 깔끔하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효과적인 설정은 흔히 보기 힘들죠. ㅋㅋㅋ
- 런닝 타임이 두 시간이 살짝 넘습니다. 보통 90분 근처에서 노는 경우가 많은 호러 영화 치고는 꽤 긴 편인데, 보다보면 납득이 됩니다. 길긴 하지만 또 따져 보면 낭비되는 시간이 없어요. 처음으로 투명인간이 활동을 시작하는데 30분이나 걸리지만 그동안 주인공과 주변 캐릭터들을 잘 잡아줌과 동시에 긴장감도 유지가 되구요. 주인공이 뭔가 반격 비스무리한 걸 시도하는데에는 그 후로부터 한 시간이 더 걸리지만 사악하고 치밀하게 주인공을 압박하는 투명인간의 섬세한 나쁜 짓들 덕에 심심하지도 않고, 또 주인공이 그렇게 장시간 고생한 덕에 막판 주인공의 반격을 더 열렬하게 응원하게 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막판 30분간의 본격적인 싸움도 그냥 단순한 쌈박질이 아니라 뭔가 슬쩍슬쩍 반전(충분히 예측 가능하긴 하지만)을 심어 넣으며 질릴 틈 없이 전개되구요.
한참 보다가 이 참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든 양반은 누구신가... 하고 확인해보니 '업그레이드'를 만들었던 그 감독이더군요. 것참 장래가 촉망되는 분입니다.
- 특수 효과는 거의 막판 싸움 파트에서만 사용됩니다. 그 전에도 당연히 나오긴 하지만 그게 되게 소박하게 사용되고, 그마저도 빈도가 적습니다. 폴 버호벤판 '할로우맨'과 가장 차별되는 부분이기도 하네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역시 영리한 선택이죠. 애초에 소재가 투명인간이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뭔가가 있다'는 두려움을 표현하는데 눈에 띄는 특수 효과를 쏟아부을 필요 있나요. 어차피 눈에는 안 보여도 어딘가에 그 놈이 있을 거다! 라는 걸 주인공도 알고 관객들도 알고 모두 알기 때문에 그냥 느릿느릿 빈 공간만 스윽 훑어줘도 긴장감이 생깁니다.
게다가 시대가 다르잖아요. 버호벤 버전이 벌써 나온지 20년째인데,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최첨단 특수 효과' 같은 걸 진심으로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겼던 시절이고, 헐리웃 블럭버스터 하나가 새로 나올 때마다 '이번엔 어떤 신기한 볼거리가 나올까?' 같은 걸 기대하던 시절이었죠. 그러니 그 영화에서 주인공의 투명함을 자랑하는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만. 요즘 관객들은 특수 효과 같은 건 부자연스럽고 허접해서 웃기지만 않으면 뭐가 나오든 걍 다 그러려니 하죠. 그러니 무리하지 않고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짜고 장면을 구성한 건 시대에 맞게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룸하우스 영화거든요. ㅋㅋㅋㅋ 찾아보니 제작비는 고작 700만 달러. 참 대단합니다.
덧붙여서 글로벌 수입은 1억 3천만 달러가 넘네요. 뭐 블룸하우스에서 아무도 기억못할 망작도 쏟아내긴 하지만, 정말 히트했을 때의 가성비는 세계 최강인 것 같아요. ㅋㅋ
- 암튼 그래서...
어디 하나 딱히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재밌게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훌륭한 호러 무비이면서 동시에 꽤 탄탄한 여성주의적 서사를 갖춘 드라마이기도 하구요.
전반부 내내 무기력하게 당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견디기 힘든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참고 엔딩까지 봐 줄 가치가 충분한 영화였네요.
덧붙여서 폭력 장면도 레알 15세 관람가 수준을 안 넘어가니 잔혹한 거 싫어하는데 호러는 보고픈 분들에게도 훌륭하죠. ㅋㅋ
어지간하면 재밌게들 보실 것 같아요.
+ 주인공 역할 배우 캐스팅이 정말 좋아요. 주인공이 혼자서 이야기의 90% 이상은 그냥 혼자 끌어가는 영화인데요.
불쌍 궁상맞은 모습.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확실히 정신은 좀 나간 것 같은 모습.
그리고 그냥 혼자서 다 죽여 버릴 것 같은 모습까지 다 잘 어울리게 잘 소화해냅니다.
이 분이 '시녀 이야기' 주인공이라는데 웨이브 사용 기간 남은 김에(사실은 2개월차로 접어들었습니다; 더 연장은 안 할 거구요) 그 드라마도 한 번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 탑골 클럽 멤버 회원으로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투명인간의 시그니처인 이 붕대 간지(...)를 볼 수 없었다는 거죠. ㅋㅋ
제작진도 그 생각을 했는지 잠깐 나오는 병원 장면에서 주인공이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고 실려가는 환자를 잠깐 쳐다보게 해주더군요.
+++ 영화 내내 주인공이 하도 완벽하게 몰려 버려서 보는 내내 과연 마지막에 주인공이 저 투명인간 놈은 물리친다 해도 본인의 억울함까지 풀 수가 있을까... 라는 게 궁금했는데요. 뭐 결말은 직접 확인하셔야겠지만 그냥 이 정도면 나름 격한 무리수는 피해간 적절한 마무리 같았습니다.
2020.12.17 10:15
2020.12.17 10:52
cctv가 정말 딱 필요한 상황에만 등장하더라구요. ㅋㅋㅋ 뭐 있었다고 해도 우리의 용의주도한 투명인간께서 미리 손을 써놨다고 하면 될 일이지만 굳이 그런 설명 넣으며 이야기 페이스를 늦추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구요.
정말 엘리자베스 모스 연기 너무 좋더라구요. 블룸하우스 호러 영화지만 이 정도면 아카데미 후보로 올려줘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 ㅋㅋ 참 세상엔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많은가 봅니다.
그리고 감독님의 차기작은 프랑켄슈타인 영화라네요. 이건 다크 뭐시기 세계관 시리즈일 예정이라는데... 그 시리즈는 참 기대가 안 되지만 이 감독 영화 하나는 좀 기대가 됩니다.
2020.12.17 12:36
유니버설의 다크 유니버스는 〈Dracula Untold〉와 〈The Mummy〉의 실패 이후에 '우리도 왕년의 유니버설 괴물들을 이용해서 마블/DC 유니버스처럼 영화들이 죄다 연결돼서 큰 세계를 만드는 프랜차이즈 하나 가져 보자!'라는 계획은 접은 상태입니다. 이제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지향하지 않고 유니버설 영화사의 전통적인 괴물들을 재해석한 독립적인 영화들을 기획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꾼다고 발표했고(이 시점에 블룸하우스의 제이슨 블룸이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 리뷰하신 〈투명인간〉도 그런 의미에서는 여전히 다크 유니버스 영화입니다. 유니버설이 노선 변경을 발표한 게 2019년 1월인데, 〈The Mummy〉의 대실패가 깊은 인상을 남긴 탓인지(…) 아직도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나저나 제가 알기로 리 워넬 감독의 차기작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 늑대인간입니다. 주연은 라이언 고슬링인데 애초에 고슬링이 피치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네요. 원래는 감독까지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만.
2020.12.17 12:48
2020.12.17 10:45
공포의 근원도 시의적절하고 재미지죠 이 영화 근데 서스펜스가 살짝 절정을 찍지 못하고 끝나버릴달까 아쉬움도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이건 업그레이드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던거 같아요.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시녀이야기 내년에 시즌5가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닌깐 로이배티님이 꺼려하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입니다. ㅎㅎㅎ 원작 소설 내용으로만 이루어진 시즌1만 보는 것도 괜찮긴해요 저도 시즌1까지만 봤습니다. 차라리 엘리자베스 모스 출연작중 종료된 미드는 매드맨이 나을지도....영화로는 <The One I Love> 이거 안 보셨다면 추천합니다. 영화도 재미지고 주인공 두 배우의 연기들이 참 좋았습니다.
2020.12.17 10:56
전 인비저블맨은 이 정도면 충분! 이라고 느꼈지만 업그레이드 보면서는 말씀하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네요. 아니 참 좋은데, 그래도 좀 더 강력하게 한 방 날려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라는 느낌.
아. 아직 진행 중인 드라마였군요. ㅋㅋㅋ 소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보더라도 시즌 1까지만 보든가 해야겠어요.
그리고 더 원 아이 러브는 난생 첨 듣는 영화라 뭐지... 하고 검색해보니 주인공이 '소름' 시리즈의 마크 듀플라스네요? 게다가 코미디이고 평도 좋다니 이것도 꼭 봐야겠어요. ㅋㅋ 추천 고맙습니다!
진정한 "베놈" 영화 업그레이드를 재밌게 봐서 이분이 연출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대치가 높았는데 정말 재밌었습니다. 말씀대로 너무도 시의적절하게 소재를 잘 활용했고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것만이 아니라 딱 효과적으로 투명인간 효과를 활용했어요. 후반부엔 나름 특수능력자 히어로물 액션같은 시퀀스도 나오고 ㅋ
감독의 연출력도 연출력이지만 역시 엘리자베스 모스가 캐리했다로 정리되는 작품 같습니다. 듀나님 리뷰에서 엘리자베스 모스 자체가 특수효과라는 표현이 정말 딱이었어요. 특히 레스토랑에서 그 충격적인 씬 이후로 한동안 멍~하다가 슬픔과 절망이 폭발한 표정이 정말... 그런데 아무리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 넘어가주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레스토랑 CCTV 없답니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