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14:32
스티븐 킹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모든 작품이 최고는 아니었어요. 특히 장편 작품들은 그냥 그랬던 작품도 적지 않았죠. 아마 다른 작가의 작품이 그 정도였다면 괜찮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킹의 작품은 기본으로 깔고가는 기대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킹의 중단편집들은 꽤나 많이 찾아 읽었는데, 장편은 읽은 게 손에 꼽히더군요. 그리고 그것들이 대부분 그닥이었고.
제게 그냥 그랬던 작품으로는 『셀』과 『롱 워크』가 있네요. 둘 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은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셀』은 읽은 지 오래되고, 딱히 인상 깊은 작품도 아니어서 기억도 명확히는 안 나긴 하지만, 읽다가 내용이 산으로 간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 확실해요. 반면에 『롱 워크』는 등장하는 아이들의 심리/상태묘사는 흥미로웠지만, 그걸로 책 한 권을 채우는 건 무리라고 느꼈죠. 이야기에 좀 더 뒤틀림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반면에 『캐리』는 좋았는데, 문제는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봤다는 거에요. 드 팔마표 영화도 워낙 괜찮으니, 소설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가 없더군요.
반면에 제가 최고라고 기억하는 작품은 중편집 『별도 없는 한밤에』에 실린 「공정한 거래」와 단편집 『스캘레톤 크루』에 실린 「조운트」에요. 『별도 없는 한밤에』에 실린 모든 작품을 좋아합니다만, 「공정한 거래」는 정말 좋습니다. 인간 안의 인간보다 더한 X를 을 보여주는 게 킹의 장점이라면, 그 장점이 최대치로 표출된 작품 중 하나가 「공정한 거래」라고 생각해요. 절묘한 게, 많은 작가들이 인간의 괴물성을 보여주려는 속셈에 인물을 이성이 박탈된 동물로 만들어버리곤 하는데, 킹의 인물은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선을 넘어버리죠. 그래서 단지 폭력적이기만한 괴물들보다 몇 배는 더 무서워요.
반면에 「조운트」는 정말 단편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확실한 소재와 그 소재의 효과를 최대치로 발산할 수 있게 구성된 작품의 구조 모두에서요. 특히 마지막 대사 한방을 위해, 이야기를 어떻게 차곡차곡 쌓아올렸는지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나오죠. 물론 이게 SF 단편에서 많이 나오는 구조이기는 한데, 그래도 알면서도 속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게 진짜 작가의 힘이겠죠.
여러 분이 생각하시는 스티븐 킹의 최고작은 뭐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킹은 역시 중단편이지, 라고 생각하는 저에게, 그건 니가 아직 이걸 안 읽어서 킹의 장편이 주는 참 재미를 못느꼈기 때문이지, 라고 해주실만한 작품이 있나요?
2020.11.25 15:24
2020.11.25 15:40
진부한 답변이 되겠지만 제가 읽은 것 중에서 최고작은 한국에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된 중단편집 『Different Seasons』의 가을 편, 「스탠 바이 미」였어요. 다만 이 최고작이라는 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제가 생각하기에 스티븐 킹의 핵심 정서가 군더더기 없이 집약된 형태로 담겨 있다는 의미에서입니다. 바로 옆에 야생이 살아 숨쉬는 미국의 한적한 중소도시를 배경으로 십대 남자애들이 경험하는 환상적이면서도 폭력적이며 한 번 겪고 나면 다시는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모험-성장담을 색깔, 소리, 냄새, 맛, 감촉까지 전부 생생하게, 하지만 이제는 문명인이 되어 버린 미국 백인 남자 어른이 향수 어린 눈길로 돌아보는 정서요.
2020.11.25 18:09
원제는 Body인데 영화화된 제목이 '스탠 바이 미'여서 훨씬 기억에 남는 작품이지요. 소설도 좋지만 영화도 좋은 드문 경우였던 것 같아요. 이 사계 시리즈 중에서 나머지 계절들이 '쇼생크 탈출'과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로 영화화 되었기에 유일하게 영화화가 안된 계절로 '호흡법'이 있는데 이 소설도 무척 마음에 들어요.
2020.11.25 22:23
추천 감사합니다. 읽지 못한 작품인데, 꼭 읽어봐야겠네요.
2020.11.25 15:43
조운트요!
2020.11.25 16:06
다크타워 2/3권이요. 중단편처럼 절제미는 없어도 진짜 페이지넘어가는것 아깝게 재미나고, 주인공들에 홀딱 사랑에 빠지게 되고.. 특히 동물캐릭터가 하나 나오는데, 정말 페이지에서 꼬리를 흔들며 나올것같은 묘사였어요. 11.22.63 도 좋았죠. 그런데 장편들은 보통 스티븐킹이 오너케 (키가 크고 잘나가는 혹은 잘 안나가는 작가)에 너무 감정이입을 하다보니 조금 느끼한 면이 없잖아있죠 :)
2020.11.25 16:19
재미없는 목록이 되겠지만, [미저리]를 재미있게 봤었고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을 제외하면 [그것]도 좋았었죠. 지금 읽으면 어떨지. 단편집도 많이 읽었는데 강렬했어도 제목이 기억에 남질 않아 뽑을 수가 없군요. 살아있는 자동차 나오는 단편 소품같은 아기자기함도 좋고. [조운트]는 제목만 봐서는 [타이거! 타이거!] 설정을 빌린 내용인건지 궁금하네요. 학교에서 텁텁한 표지의 스티븐 킹 전집을 하나 둘 빌려 읽는 재미에 빠졌다가, MELM님처럼 최신작이라고 나온 [셀]을 사서 읽고는 급 실망했죠. 당시... 사은품으로 준 휴대폰 전자파 차단 스티커가 차라리 더 기억에 남네요. (어처구니 없음 포함)
2020.11.25 16:59
저는 장편 중에서는 그것, 미저리, 다크타워 황무지, 그리고 스탠드 를, 단편집 중에서는 하트 인 아틀란티스를, 단편은 사다리의 마지막 단, 금연 주식회사, 1922 를 꼽아봅니다.
적어놓고 보니 너무 올드한 목록이라, 킹이 죽다 살아난 다음에 쓴 리시 이야기를 추가할께요.
2020.11.25 17:01
스티븐 킹 작품은 중편 정도 되는 작품이 영화화가 되면 잘 나오는 것으로 보여요. '쇼생크 탈출'은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구요. 재미있던 장편 소설이 영화화가 되면 소설의 재미가 많이 사라지더군요. 저는 장편에서는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제일 좋았습니다. 단편들도 재미 있는 것이 많은데, 다른 작가의 공간이동을 다룬 작품(잔인한 오후 님이 말씀하신 '타이거 타이거' 같네요)을 보고 나서, 바로 '조운트'를 보았는데, 같은 소재를 이렇게 공포스럽게 다룰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2020.11.25 21:14
스티븐 킹은 매우매우 좋아하지만 제가 뭘 정리정돈해서 기억하는 성격이 아니라 이런 질문글을 보면 생각이 그냥 콱 막혀 버리면서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ㅋㅋㅋ 매우매우 좋아하지만 팬은 아닌 듯 해요.
영양가 없는 내용을 덧붙이자면 저도 장편보단 단편, 중편들을 좋아합니다... 만, 스티븐 킹이 어째서가 아니라 제가 그냥 그런 걸 좋아해서; 필립 K 딕 작품들도 장편보다 단편들이 훨씬 좋구요. 어려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게 에드거 앨런 포우 단편선... 뭐 이런 식이라. ㅋㅋ 어디서 보니 스티븐 킹 본인은 단편은 별로고 장편이나 중편이 좋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좀 섭섭(...)
2020.11.26 02:32
최고는 모르겠고, 최애 장편은 미저리랑 애완동물 공동묘지, 단편은 금연 주식회사 꼽겠습니다. 그리고 제목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사진찍을 때 개가 인쇄되는 단편이랑 조운트랑 같은 단편집에 실렸던 여자 마피아 얘기도 좋았어요. 킹을 너무 좋아해서 몇개 추리는게 힘드네요.
2020.11.26 03:16
미저리와 다크타워를 두 분이나 추천해주셨네요. 두 작품도 읽어보겠습니다. 특히 미저리는 아직 영화도 못 봤는데, 영화보기 전에 꼭 읽어야겠어요.
안읽어봤는데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원작을 읽고 싶어요. 영화만 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