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전원을 꺼놓은 탓에 새벽에 들어온 막내(머저리 군)의 메시지를 출근길에야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카톡질로 수다를 떨지 못해 꽤 안타깝고 시무룩했을 듯. - -)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 꿈속에서 입천장의 감각이 너무 이상해서 만져봤더니 세 마리의 벌레가 구멍을 내면서 혓바닥으로 내려오는 중이더라고. 으윽 단박에 알겠더라.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삼시충이구나! 때마다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상제님에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조악한 실시간 보고서를 날린다는 그 전설상의 곤충이구나.
징그럽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그 세 마리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벌레라고 해도 나에 대한 도청과 몰카를 허락할 수 없다는 생각밖엔 안 들었어. 덜덜 떨기만 하다가 아 이건 꿈이구나 깨닫고 용감하게 확 깨어났지 뭐야~"
 
하아. 무슨 스트레스를 받고 있길래 막내는 이런 꿈을 꾼 것일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삼시충三尸蟲은 도교에서 말하는 인간 모두가 갖고 있는 몸속의 세가지 나쁜 벌레입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어리석음과 욕심의 화신으로 머리, 심장, 배꼽아래 세 곳에 또아리를 틀고 살고 있다죠. 
삼시충은  섣달그믐이면  몸 주인의 죄과를 옥황상체게 고하러 간다고 해요. 그런 고자질을 감시하여 막느라 제야에 잠을  안 자는 풍습이 생긴 것이고요.

우리의 뇌조직에 무엇이 사는지 우린 모릅니다. 단순무식하게 규정하자면 뇌는 우리의 몸에 세들어 사는 하나의 방일 따름이죠.  일종의 공간 대여인 셈인데,  실제 그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잘 보고되지 않아요. 신체의 보고는 흔히 물리적 통증의 신호로 오기 마련인데,  뇌는 통각세포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제  머리통을 만져봅니다. - -)

막내가 삼시충을 만난 꿈을 꾼 것을 기화로 종일 틈날 때마다 명상에 잠겼습니다. 명상에 잠긴다는 건 지각의 세계에서 복받는 좋은 일이죠.  능력이기도 하고요. 명상에 잠기는 훈련이 안 된  이들은 댓가 없는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심하게는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뭐 무묘양에오처럼 자살이 곧 명상이라는 견해를 내놓은 사람도 있지만, 그 의견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아요.

교통사고 이후로 퇴근길의 절반은 막내가 담당하고 있는데, 그를 기다리면서 마음자락에 채이는 파편들을 주절거려봤습니다. 자판을 두들기면서 나는 몸/마음 안에 얼마나 많은 양의 삼시충을 키우고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모르겠어요. 종잇장 같은 어떤 유리벽 때문에요.

아, 드디어 오분 후면 도착한다는 머저리 군의 문자가 왔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이미 퇴근했으니 차를 돌려 가시면 됩니다."라는 장난 문자를 보내고 싶은 걸 꾹 누르며.... 
여러어부운~ 모르는 척하는 것도 능력이니 삼시충 따위 헤아리지 마시고 모두 굿밤되세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151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051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0800
113969 예상수님, 제 글에 댓글 달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3] 산호초2010 2020.11.19 767
113968 어그로 종자는 많아도 저는 안부딪힐거라 믿은게 오만이군요 [15] 산호초2010 2020.11.19 722
113967 독설가라서 죄송하군요 [24] 예상수 2020.11.19 1083
113966 걱정된다면서 상처주고 주눅들게 하고 [9] forritz 2020.11.18 689
113965 더 크라운 다이애나 (스포) [7] ewf 2020.11.18 431
113964 요트자격증을 따고 바다로 나가고 싶어요. 평생의 로망! [21] 산호초2010 2020.11.18 1085
113963 조두순 관련 [3] 쑥뜸 2020.11.18 413
113962 맹크 [1] daviddain 2020.11.18 352
113961 혜민 사태를 보며 [9] 메피스토 2020.11.18 912
113960 한국 드라마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요 [13] tomof 2020.11.18 691
113959 마고 로비 영화 드림랜드를 보았습니다 [2] 가끔영화 2020.11.18 814
113958 [게임바낭] 이제는 현세대가 되어 버린 차세대 런칭 풍경 잡담 [5] 로이배티 2020.11.18 463
113957 노래에 취해 가을에 취해 춤추다 꽈당!!!!!(다들 꼬리뼈 조심!) [7] 산호초2010 2020.11.18 679
113956 [웨이브바낭] 탑골 추억의 영화 '폭력교실1999'를 봤습니다 [8] 로이배티 2020.11.18 846
113955 사유리의 비혼출산을 보고 [8] Sonny 2020.11.18 1405
113954 증언자로서의 동물들 [11] 귤토피아 2020.11.17 568
113953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2] 조성용 2020.11.17 664
113952 에스파 MV, 셀럽과 인플루언서의 경계가 흐려지다 예상수 2020.11.17 496
113951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 [1] 예상수 2020.11.17 390
113950 한국시리즈 1차전 [30] daviddain 2020.11.17 46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