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7 12:12
지난 연말에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죠. 설민석 강사가 논문 표절 문제로 모든 방송을 하차하게 된 일 말입니다.(유투브에 사과 영상 올리고 지난해 12월 29일 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네요.)
개인적으로 워낙 좋아하던 분이라 이 사태에 대한 충격이 꽤나 갈 것 같습니다.(몇 년전에는 최진기 강사 건도 있었구요…ㅠ)
사실 요근래 '인문학 강연'이 상당히 유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진기나 설민석 같은 유명 강사들의 공헌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네요. 이 양반들 덕분에 인문학 강좌 자체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거든요. 사실 무슨 자격증 따는 것도 아닌데 돈 들이고 시간 쓰면서 인문학 강연을 듣는다는 건 예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죠.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인문학이라는 게 꼭 책으로만 접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했다는 겁니다.
바로 인문학 = 책이라는 상식을 깬 것이 바로 이들이라는 얘기.
물론 이 아쉬움 뒤편에는 심각한 문제 의식도 있습니다. 설민석 강사가 지난해 12월부터 케이블 tvN에서 새로 시작한 예능프로 <벌거벗은 세계사>가 그 논란에 다시금 불을 붙였죠.
다음은 이집트 전공학자인 곽민수 선생의 페이스북 글입니다.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편을 보고 있습니다. (즐겨보고 있는 경이로운 소문 본방 사수도 포기하고....) 역시 걱정했던데로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이 차곡차곡 쌓여가네요.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지도도 다 틀리고.... (설민석이 그린 지도가 엉망인 건 둘째치고, 배경이 되는 저 시대의 이집트는 해안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가 중심이었을텐데 대체 왜 이집트 내륙 깊숙한 곳에서부터 로마로 날아가는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말이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클레오파트라 같은 이름이 무슨 성이나 칭호라며 '단군'이라는 칭호와 비교한다던가 하는 것들은 정말 황당한 수준이었고, 그에 비하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를 이집트에서 로마로 돌아가서 말했다고 한거 정도는 그냥 애교 수준. 정확히는 파르나케스 2세가 이끌던 폰토스 왕국군을 젤라 전투에서 제압한 뒤 로마로 귀국해서 거행한 개선식에서 한 말이죠. 그 이외에도 틀린 내용은 정말로 많지만, 많은 숫자만큼 일이 많아질텐데 그렇게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재미있게 '역사 이야기'를 한다고 사실로 확인된 것과 그냥 풍문으로 떠도는 가십거리를 섞어서 말하는 것에 저는 정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민석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 극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분명히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그냥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그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풍문이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해줘야겠죠. 게다가 이건 언급되는 사실관계 자체가 수시로 틀리니....
제가 자문한 내용은 잘 반영이 안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보지 마세요.
https://ko-kr.facebook.com/pg/forkmt/posts/?ref=page_internal
논문 표절이 터진 마당에 새삼 설민석 강사를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 얘기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대체 왜 저런 실수가 있었던 걸까?
곽민수 선생 얘기로는 2편 클레오파트라 방영 전부터 일이 있었던 것 같더군요. 제작진이 돌연 감수자 명단에서 곽선생 이름을 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곽선생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이름은 그대로 두는 걸로 했지만 방영분에는 곽선생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죠.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결론적으로 말해 방송에서 논란이 됐던 역사적 오류라는게 사실상 단순 실수는 아니라는 얘기죠.
제가 이런 확신이 든 이유는 곽민수 선생의 페이스북 내용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곽선생이 지적한 내용들을 보면 상당히 지엽말단적인 부분에서 오류들이 있었구나 싶습니다. 지도는 뭐 보드에 필사하다가 그랬다고 쳐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설립자 얘기나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같은 명언이나, 프톨레마이오스- 클레오파트라를 단군에 비유하는 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문제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런 건 아닙니다. 그냥 생각해 보면 이게 대체 뭐라고 이런 걸 다 틀릴까 싶은데(게다가 곽선생 같은 전문가가 옆에 착 붙어서 친절하게 하나 하나 다 짚어주지 않았습니까?) 제가 보기에 정작 진짜 문제는 바로 그 '정확한 역사적 전달'에 있다는 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죠. 클레오파트라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명성, 그러니까 대중적인 영향력이 과연 어디에서 온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바로 그것은 고대 세계의 최대 정복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광에서 비롯됐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클레오파트라 본인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지막 혈손이기도 하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원래는 대왕이 세운 것이었다는 설이 꽤 오랫동안 정설이었거든요(80년대 중고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프톨레마이오스가 도서관 세웠다는 얘기가 끼어들면 어떨것 같습니까? 바로 흐름이 딱 끊어지는 겁니다. 강연이 물 흐르듯이 흐른다는 건 바로 이런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무슨 스릴러의 문법처럼)맞아 들어가는데도 묘미가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점에서 오히려 '역사적 진실'이라는 게 방해를 놓는 것이죠.
이것만이 아닙니다. 프톨레마이오스 - 클레오파트라 / 단군 얘기만 해도 엄연히 역대 임금들 이름이었던 명칭을 왜 고조선 임금의 호칭인 단군에 비유했는지도 알 수 있는게, 우리는 우리와 관련이 있는 사실에 더 흥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멀리 수 천년전 지구 반대편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에 대중의 흥미를 더 잡아 놓으려면, 그 역사적 맥락이 비슷한 한국사 이야기를 하는 것 만큼이나 더 좋은 건 없거든요.(일례로 앤 볼린 얘기할 때마다 제가 '영국의 장희빈'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일단 자기가 아는 부분에서 관심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도 말이죠. 이 강연의 주제가 어딥니까? 바로 이집트 아닙니까? 이집트와 로마간의 긴박한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역사적 사실이라 해도) 폰토스 왕국이라는 난데없는 지명이 끼어들면 어떨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냥 팍~흐름이 깨지는 겁니다. 이게 그냥 사소한 걸로 보여도 이런게 한 두번 계속 쌓이면 정말 강연이 재미없어지는 겁니다. 안타깝게도요.
여러분들은 최근 사극 '철인왕후'의 역사왜곡 논란이 일각에서 꽤나 시끄럽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물론 저는 그런 건 역사왜곡 운운할 거리가 못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정작 시청률은 일취월장하고 있죠(매 방영 분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 갱신 기록 중) 이는 비단 철인왕후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대부분 사극들이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데(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이나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헐리웃이나 유럽도 매한가지)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그건 바로 역사적 사실 자체가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기 위해 관련 역사 자료를 뒤적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진짜 역사적 '진실' 혹은 '사실' 그 자체들은 대부분 그냥 지루하고 끔찍한 일들의 연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재밌거나 흥미있는 일들이 있어서 확인해 보면 후세에 창작된 일들이거나 가필된 경우들이 꽤 되더군요.(단적인 예로 '조선왕조실록' 과 '연려실기술' 만 비교해 봐도 이 점은 분명해집니다)
요즘 왜 <정도전>같은 '정통사극'이 제작되지 않는지 아십니까? 왜 만들었다 하면 <철인왕후>나 <선덕여왕>, <육룡이 나르샤>, <대장금> <킹덤> <미스터 션샤인>같은 퓨전사극일까요?
바로 이런 불편한 진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이미 충분히 배웠기 때문에 왕조 국가같은 전근대 사회가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막말로 이미 '보편적 인권의식과 민주주의 이념' …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평범한 공화국 시민들인 우리들로서는 인권유린이 다반사였던 지난 시절의 역사들을 -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재현해서 볼 필요를 못 느끼는 겁니다. 실제 역사가 그랬으니까 공부는 할 수 있지만 그걸 그대로 재현하는 걸 굳이 돈 들이고 시간 써가며 보고 싶지는 않은 거죠. 그래서 한복 입고 머리 올린 거 말고는 현대극이나 다름없는 퓨전 사극들이 인기인 것이구요.
(막말로 조선 시대에 대장금같은 여자 의사가 어디 있으며, 또 여자 요리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조선의 궁정 요리사는 대령숙수로 불렸으며 전부 '남자'입니다. 수랏간 상궁들은 그저 주방 보조에 지나지 않구요. 여자 신윤복은 또 어떻구요? 조선에 여자 화가, 그것도 궁정 화가가 있었을 것 같습니까? 아예 비빈들 초상화도 못 그리게 금지한 나라인데?
실제 역사에서 조선 여인들의 현실은 경국대전 형법전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사족의 여인으로서 사사로이 여행을 한 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
드라마 얘기로 빠졌는데 이런 사정이 역사 강연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할수록 그 강연은 재미가 없어지고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진다는 것이죠.
방송국 제작진들이 바보라서 이런 걸 모르고 강사를 섭외하고, 강사들은 이런 걸 몰라서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게 아닌거죠.
참 딱한 상황인데, 암암리에 이런 현실을 묵인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막말로 드라마도 시청률 3% 찍는게 보통인 요즘 설민석 역사 예능이 무려 매회 5%이상 - 최고7~8% - 시청률이 나왔죠…이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결론적으로는 이같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향후 저같은 인문학 강사들의 숙제가 될 것이네요.
'설민석 하차' 후폭풍...'선녀들' 결방, '세계사'도 비상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0123017360005708
2021.01.07 12:38
2021.01.07 12:49
2021.01.07 12:48
2021.01.07 12:59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ㅎㅎ 사실 말씀하신바 모두 공감이 되고 특히 환단고기 같은 건 진심 걱정되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하긴 이건 무슨 특정 종교랑 얽혀서 무슨 교리처럼 됐더군요.
2. 임나일본부설은 실제로 미국에서 지난 1960년대까지 정규 대학의 개설서에 소개가 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1967년에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출간한 중국사 개설서(존 킹 베어뱅크스 저술)를 접한적이 있는데 그때 한나라와 고조선 관련해서 서술된 부분 내용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한사군'이, 남부에는 '임나일본부'가 설치되어 한반도에서 역사 시대가 시작되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게 이런 느낌이라는 걸 알았…
2021.01.07 12:56
항상 팩트가 너무 나가셔서 그 "좋은 시절"의 설민석 씨도 전 옹호하기가 힘들어요. 전달력 좋은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더 열심히 찾아보면 전달력좋고 전문성도 뛰어난 분들 많이 계시니까요. 표절건은 그냥 이참에 전국민적으로 이젠 안되는 걸로 합의를 보고 적어도 수십만은 되는거같은 가라석사님들 다 이실직고하고 학위 반납하셨으면 좋겠어요 ㅎㅎ 다시 열심히해서 따면 되잖아요. 어차피 장식용인분들도 상당수이시고.
2021.01.07 13:03
2021.01.07 13:21
다큐멘터리라면 모를까 드라마는 어차피 픽션이 가미된다는걸 다 알고 보지요.
그런데, 설민석이 예능프로에 나와서 강의를 한다면 사람들은 '재미를 위해 적당히 윤색하고 틀린 사실을 섞었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될까요?
재미가 중요하니 적당히 고치자라고 하면 설민석은 드라마, 영화 각본을 써야죠. 강의를 할게 아니라.
2021.01.07 13:27
실제로 이 양반 강연을 실강으로 보신 분들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강연장이 마치 연극 무대 같다고요. 꼭 일인극 보는 기분이었다네요. 실제로 이 양반 학부는 연극영화과 출신이기도 하죠.
2021.01.07 13:35
2021.01.07 13:46
2021.01.07 13:52
행정쪽도 엄청 많습니다. 그냥 나라자체가 헐렁하던 시절의 흑역사로 생각하고 이참에 다 갱신했으면 좋겠어요.
2021.01.07 13:58
2021.01.07 14:02
죄송합니다만 쓰신 말씀에 단 한줄도 동의하지 못하겠군요.
역사가 재미없다고요? 다른 학문은 재밌나요? 학문이 꼭 재밌어야 하나요?(학문이 재밌는 사람도 물론 있죠 이 사람들이 해당 학문을 계속 하게 되는 걸테고요) 역사학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학계에서도 백날 피땀흘려 논문 써봐야 대중들이 읽질 않으니 역사학의 대중화 이런 거 주장하는 양반들 있기는 하고, 저도 학문이 너무 자신들이 세운 테두리 안에 머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학문으로서의 기본적인 바탕이 있는 다음의 이야기지요. 역사학도 물론 시대별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달라요. 디테일과 사실관계가 중요한 분야도 있지만 현대의 경우 어차피 사실이란 게 무의미하다고 보는 경향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사 전공자들이 논문 쓸 때 사실관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드러난 사실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뿐이지요.
설민석이 티비에 나와서 성인 대중을 상대로 야사 썰 풀어대는 게 재밌으니 괜찮다고 하기에는 당장 인터넷 서점 가서 설민석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 얼마나 많나 한번 보세요(당연히 직접 쓴 것도 아니긴 하겠지만). 그리고 그 중에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한 책이 얼마나 되는지도 좀 보시고요. 그래도 흥미를 끌었고 사람들이 역사(역사학이라고는 차마 쓰지 못하겠군요)에 관심을 갖게 됐으니 괜찮다고 하실 수 있으신가요?
빅캣님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강의를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중이 관심을 갖고 저변 자체가 확대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실 수 있다는 점도 이해는 해요. 그렇지만 과거에는 교육 쪽에도 몸 담고 계시지 않으셨던가요? 과거에 교육 쪽에 계실 때 교육을 애들의 흥미만 끌면 됐다 하고 사실 관계를 혼동되게 가르치시진 않으셨을 거 아니에요.
의학적 사실이나 과학적 사실이 지루하고 별로 재미가 없으니 티비에서 유사 학자들이 나와서 각종 검증되지 않은 인체에 해로운 약물이나 보조제 팔아먹는 거랑 설민식류의 해악은 정확히 똑같습니다. 진짜 학문 영역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는 점까지요.
2021.01.07 14:15
일단 일선학교의 역사 교육 과정과 대중 인문학 강연은 구분좀 하시고요. 그래서 본문에는 대중 강연에 대한 얘기만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대중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재미'를 위해 인문교양으로 역사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죠. (저야 사설 학원에서 보습학원 강사로 일했고 그냥 시험대비 차원에서 교과서 내용만 정리해 주면 되니까 역사가 재미가 있네 없네 그런 걸 고민할 필요는 없었죠)
그리고 제 글 완전 오독을 하셨는데 이런 사태에 대한 옹호가 아닌데요?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제 나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한 겁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상황이 괜찮은 거라고 제가 얘기를 했나요?
2021.01.07 14:28
저도 빅캣님이 설민석 개인에 대한 옹호를 한다고 보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분석은 옹호로 읽힐 여지가 충분합니다.
저도 학교의 역사 교육을 의미한 게 아닙니다. 강단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고요. 다만 아동을 상대로 설민석 이름 내건 책들이 쏟아져나와 팔릴 때 아동 대중에게 읽힐 때의 해악을 생각해보시라는 거지요. 아동의 부모가 이것은 학교 교육이 아니고 흥미로 읽는 책이란다 이렇게 사줄까요? 아님 역사 책이니까 공부에 도움이 되겠지 읽어봐라 하고 사줄까요? 전자의 부모도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상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비판을 해야 하는 거고요.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설민석 사태를 교훈으로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역사'의 교훈 아니겠어요. ㅎ
2021.01.07 14:40
2021.01.07 14:12
2021.01.07 14:18
2021.01.07 14:13
운동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고혈압에 무안단물 빨아 먹으라고 할 수 있나요
2021.01.07 14:20
2021.01.07 14:31
2021.01.07 14:58
2021.01.07 14:32
길게 댓글 썼다 날렸네요 -_-;;;
그 사이에 제가 올리던 댓글과 비슷한 취지의 댓글(해삼너구리님 찌찌뽕) 이미 있어서 조금 덜 아쉽습니다.
1.
조금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설민석씨의 대중적 인지도가 크게 오른 것은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근현대역사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사람들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게 만드는 것을 보며 ‘좀 위험한 사람이네’ 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는 탈역사와 역사왜곡이 기승을 부리던 이명박근혜 시절이었지 말입니다.
그래서 ‘난세의 영웅’ 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2.
학자 혹은 연구자로서의 능력치와 지식전달자로서의 능력치는 서로 비례하지 않는다고 하죠.
모든 학문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역사처럼 다른 학문들과 달리 대중의 관심이 꼭 필요한 분야의 경우 지식전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분업은 어쩔 수가 없는거죠.
이 분업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명확합니다. 지식전달자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는 수 밖에 없지요.
3.
설민석씨 케이스는 지식전달자로서 자신의 스킬에 따른 성과?에 안주 혹은 자만한 사람의 말로를 보여주는 케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 그의 ‘스킬’의 탁월함은 인정합니다.
(위에 지식전달자로서의 능력치 조차 대학원생 수준입네 뭐네 하는 댓글이 있는데 흔하게 보는 무식한 흑백논리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스킬에 안주하여 고민과 공부에 불성실했던 것은 질책해야죠.
특히 대중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으니까요.
4.
이번 일에 따라 역사분야의 대중화에 긍정적 측면이 커질 수 있고 그 반대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고 바로잡혀야할 일이었다 싶습니다.
그와 별개로 역사를 ‘문학적인 서사’와 구분하는 것은 쉽게 매듭 짓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니 매듭 짓는거 자체가 필요 없이 그냥 계속 해서 논쟁하고 시끄럽게 만드는 자체가 긍정적이라 봅니다.
설민석의 강의 방식을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소재로한 2차 창작, 문학적 서사라는 별개의 장르로 새로 만들어 누군가 개척하면 좋겠어요.
그건 더 이상 학문으로서의 ‘역사’가 아니겠죠. 그렇게 헷갈리지만 않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2021.01.07 14:46
2021.01.07 15:06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 역시 ‘역사’에 있습니다.
문자가 나오고 서적이 대중화 되기 전에 ‘집단기억’은 세대와 세대를 거치며 ‘구전’으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사실 학자와 연구자보다 ‘전달자’가 더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 정도라면 독립적인 장르, 분야를 하나 만들만 하지 않습니까? :)
2021.01.07 22:55
3.번은 ssoboo님이 오독하신 것 같습니다.
먼산님의 원글에서 보면
"대중 전달력을 중요시한다면
정말 대단한 석학 아니라도 됩니다.
어차피 설민석은 사학과 대학원생보다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에서 설민석의 대중전달력이 대학원생보다 못하다는게 아니라 그의 역사학적인 부분이 대학원생 보다 못하다는 얘기로 읽힙니다.
증명된 것은 그의 석사 논문이 표절이란 것이었기 때문에 대학원생 보다 못하다는 것은 그의 역사학적인 부분이죠.
전달력에 대해서 따로 학위가 나가는 과 같은 건 없으니까요. 애초에 원글에도 "사학과 대학원생" 보다 못하다는 것이죠.
2021.01.07 23:04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제가 오독한거 같습니다. 쪽팔림은 제 몫이니까 수정하지 않고 박제하도록 할게요. 지적 감사합니다 :)
2021.01.07 15:02
완전 다른 이야기 하나 덧붙입니다. 이건 Bigcat님께 드리는 공개쪽지 같은 거에요 :)
전 대학입시에서 ‘세계사’를 선택했었습니다. 그리고 만점 받았어요.
요즘은 그런 과목이 선택으로라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라떼는 선택이었어요.
적어도 제 기억으로는 제가 속한 반에서는 아무도 세계사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세계사 수업시간에 다들 졸고 자빠져 있거나 영수 문제 풀이나 하고 있었죠.
전 세계사가 너무너무 재미 있어서 예습을 무지 많이 했고 따로 자료도 찾아 보고 수업 시간에 질문도 많이 했었고 시험마다 항상 만점 받았어요.
(참고로 인터넷 없던 시절입니다. 자료 찾는 다는게 지금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품이 많이 드는 거였어요)
제가 세계사에 재미를 갖게 된 계기는 졸라 재미 드럽게 없는 교과서를 벗어나 각종 참고서, 백과사전, 세계사사전 등등을 보며 제 나름의 ‘흐름’과 ‘연관성’ 그리고 ‘연속성’에 눈을 뜨면서 부터였어요. 단순 사건, 사실 나열일 때는 더럽게 재미 없는 암기 과목 밖에 안되지만 한 번 눈이 트이고 나니 이렇게 재미 있는게 없더군요.
아마도 역사 지식전달자들이 ‘서사’에 치중하다 ‘학문적 진실’을 각색하거나 스킵하는 사연이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래서 위 본문에 관련 분야 당사자로서 하신 말씀들이 참 재미 있고 좋았어요.
프라모델도 어떤 사람들은 조립된거에 칠만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수백개의 부품을 조립해 나가는 거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죠.
꼭 각색된 서사를 통해서만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건 아닌거 같아요.
역사에 흥미와 재미를 갖게 만드는건 다른 학문 분야와 달리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학문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에 관한 거니까요. 즉 공동체의 지향, 방향성에 기초가 되는 집단 의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니까요.
좀 더 세련되고 진실과 가까우며 효과적인 ‘지식전달 방식’’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연구 개발이 별개로 필요하기 까지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트위터에 설민석 하나 치워버렸다고 좋다고 정의구현되었다고 박수치는 사람들이 있던데 사실 별로 공감이 안되더군요.
2021.01.07 15:47
2021.01.07 18:30
설민석이 나오기 몇년전 서울에서 아들뒷바라지하시던 60대 친정엄마가 모 박물관에 부지런히 출근하시며 세계사 강좌를 들으시던게 기억나네요. 강의하던 무슨 교수따라 중동 성지순례 여행도 다녀오셨구요.
그때 요르단 여행도 가셨는데 당시 중동 여행 자제 요청이 나오던 때였던가 그랬어요. 근데 지금보니 중동은 화약고 아니던때가 없었네요. 오빠랑 저랑 중동 위험하다고 말려도 엄마는 기어이 가셨더랬죠.
마찬가지로 설민석 전 몇년전 지인이 고대 그리스 로마 역사 공부에 50넘은 나이에 푹 빠져서 카톡 프사에 라틴어 책 사진 올려놓고 라틴어 문구 써놓고 그랬었네요.
저는 요즘들어 세계사 한국사가 재미있어서(재미있는 책만 읽어서 그렇겠지만) 기회될때마다 읽어요. 근데 중고딩대딩때는 완전 싫어했었죠. 맨 외우는거 투성이고.
내가 역사 공부 좀 했다 하는 자의식이 없는 겸손한 사람은 찾기 힘들것 같아요. 그런게 도대체 뭐냐고 물으면 흑 저도 잘 모르겠어요.
2021.01.07 18:57
2021.01.07 20:29
지방의 일흠도 없는 중학교, 그리고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 지역평판도 별로 좋지 않은 학교라서 선생님들도 모두 지역의 대학을 나와 누군가 뺑뺑이로 중학교 배정받아서 몇 날 며칠을 울고 누군가는 뺑뺑이로 그 지역에서 방귀뀌는 학교에 진학했다고 학부모들이 자랑하고 다니던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세상은 넓지만 사람의 인식은 그 지역의 소문 이상을 벗어나지를 못해요. 그 지역의 인식이 그 지역 학생들의 미래를 결정 지어 버리죠. 결국 그 지역의 소문을 듣고 과외도 없고 학원도 없던 시절 중학교 뺑뺑이의 한 번의 어긋남이 실제 인생의 패배자들을 양산하게 되어 버리죠.
하지만 그런것을 알게 되는 사람은 극소수, 그리고 죽을 때 까지 자신이 잘못 알았다는 것을 모르고 이게 다 그 뺑뺑이를 잘못해서 였다고, 거기서 잘못됐다고 하는 경우를 봤어요. 같은 인식을 가지고 그 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에 떨어져 국내 최고 단과반의 교육방송 최고의 강사의 강의를 듣고 대학을 가서 교직이수로 교생실습을 그 평판좋지 않은 모교로 가 자신의 은사님들과 새로 온 선생님들의 수업을 듣고 충격을 받기 전 까지는 말이죠.
서울대 출신의 입시귀신들에 비교도 안 될 거라 봤는데 모교 선생님들 수업을 한 달 동안 안 빠지고 전공과목 이외에도 교무실에 혼자 있기 싫어서 듣고 싶은 과목 다 들어도 된다는 허락하에 다 들어본 결과는 최고의 선생님들을 몰라 봤다는 것입니다. 입시귀신 강사의 강의에 비교해 전혀 빠질 게 없이 더 재미있고 알차게 강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선생님 자신들도 모르시고 학생들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45분 수업이 어찌나 재미들 있는지 이제 25분쯤 지났겠다 하면 벌써 끝나는 종소리가 나오는...
설민석 강사나 유튜브의 황현필 강사나 보면 당시 30대셨던 중학교 국사 선생님과 특별 수업으로 그 중학교 국사 선생님이 중학교 세계사 파트만 따로 강의하던 것이 생각나요. 정말 잘하세요. 물론 교과서는 생각 날 때 들고 들어 오시고 웃겨야 할 때 고급지게 농담해서 웃기고 정확히 체크해야 할 곳을 지정해 주고 국사도 발군인데 잠깐 특별 수업형식으로 들어와 강의한 세계사 강의는 왜 저런 것을 5시간을 강의하나 싶었는데 이 이상한 강의가 이후 10여년이 지나고 나서 유명 사립 대학교수의 강의시간에 자신이 연구한 주제라면서 그 내용으로 10시간을 강의하는 것을 듣게 됐을 때 어 뭐야? 저 교수 나이도 30대인데 저것을 자기가 연구해서 발표했다고? 그럼 내가 들었던 중학교 세계사 수업의 내용은? 똑같은 내용을 대학교수가 자신의 연구물이라고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물론 그 중학교 특별 수업은 고등학교 입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었지만요. 그리고 그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다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올라오셨는데 실습기간에 보니 학교의 유일한 전교조 교사로 힘들게 따돌림도 당하면서 미소 짓고 견뎌 내고 계셨죠.
그리고 설민석 강사가 재미있고 스타강사들이 재미있어도 다시 우리 고등학교의 국사 선생님만큼 웃기고 재미있는 분은 없었어요. 50분간의 코미디, 사극 드라마, 버라이어티쇼를 보고 듣듯이 그 선생님만 들어오면 자던 애들도 깨워서 한 반 60명의 아이들이 웃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게 되는 선생님이셨어요. 그 분은 중요한 것을 수업시간에 퀴즈형식으로 내는데 이번에 말도 많은 남북기본합의서문제 처럼 답을 틀릴래야 틀릴 수 없는 퀴즈를 내 주시죠. 그러니 국사라는 과목을 안 좋아할 수 가 없어서 다른 공부는 안 하던 애들도 국사책 너덜너덜 10번 읽어 대기 까지 하죠. 요즘 문제를 쉽게 내는 목적과 정확히 부합하는 선생님이셨죠. 세계사도 수업하셨는데 언제나 게르만족의 주인공은 한스고 슬라브는 --스키, 흑인은 ---톰, 머슴은 마당쇠--- 퀴즈의 오답은 철이와 메텔 뭐 그런 식이니까요.
어찌 됐든 가르치는 것은 타고 난다 싶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자신도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묻히는 사람들 많아요.
예전 선생님들, 모두 대단하신 분들이셨어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이 안 잡히실 정도로요.
2021.01.07 20:58
2021.01.07 23:06
2021.01.07 23:23
지난 몇년간 여러 커뮤니티 분위기만 봐서는 설민석 강사가 계속 상승세인게 참 신기하더군요. 이 양반 뭐뭐 틀렸다고 까이던 게시글들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커뮤 분위기만 봐서는 벌써 나가리 되고도 남을것 같은데 정작 현장에서는 승승장구…넷사세라는 말이 있죠. 진짜 딱 그 경우인듯 해서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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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 설민석은 의외로 무식(...)하긴 합니다. '주지육림'의 '지'가 땅 지라고 본인 책에 적어서 출판해 놓고선 책 나온지 몇 년 후에 티비에서 한 강연에서 고치지도 않고 같은 소릴 또 하는 걸 보면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