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과 아웃백

2020.12.29 05:10

여은성 조회 수:703


 1.나는 아웃백을 좋아해요. 아웃백의 음식이 맛있어서 좋아하는 건 아니고, 90년대에 나온 게임이나 만화책을 좋아하는 이유랑 비슷하죠. 과거의 특정한 시기에 존재하는 나의 기분이나 처지를 상기시켜주는 도구로서 말이예요.


 아웃백이 내게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과거에는 내게 아웃백이 아주 고급 식당같았다는 점이예요. 어쩌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한번 가는 식당, 한번 갈 때 가짜 생일 쿠폰을 출력해서 가야 하는 식당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웃백에 갈 때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차이를 돌아보는 재미도 있고 그래요.


 

 2.물론 위에 쓴 건 단순히 나의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기도 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웃백보다 비싸거나 더 좋은 패밀리 레스토랑은 많이 생겼고, 아웃백과 파인다이닝급 레스토랑 사이에 별로 없던 여러 선택지들도 많이 생겼으니까요. 물가의 상승률에 비해 아웃백의 가격은 별로 올라가지도 않았죠. 게다가 가격에 비해 좋고 실력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아웃백은 냉동 음식이나 데워먹는 싸구려 식당이라는 이미지도 붙어버렸고요.



 3.하지만 이렇게 써도 역시, 한 끼 식사로 아웃백을 먹기엔 아웃백은 여전히 비싼 편이죠. 아웃백을 좋아하던 시절엔 많이 먹지 못했지만...나이가 든 지금은 아웃백이 있는 곳에 가면 웬만하면 아웃백을 가곤 해요. 어렸을 때에 아웃백을 많이 먹지 못한 소년에게 지금이라도 많이 먹어라...라고 해줄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여기서 나이가 더 들어버리면 어렸을 때의 나와는 더욱 더 얽힘의 강도가 옅어지고 완전히 결별할 때가 올거니까요. 그러기 전에 아웃백을 실컷 먹여두고 싶어요.



 4.휴.



 5.어쨌든 아웃백이 유행하던 당시에 출범했던 패밀리 레스토랑들은 거의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접거나 쇠락했어요. 아웃백도 마찬가지로 점포수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몇년 전부터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다시 인기를 회복하고 점포수가 제법 늘어난 모양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래봤자 우리 동네에 있었던 아웃백은 돌아오지 않지만. 이제는 아웃백을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아웃백이 있는 지역으로 가야만 해요.



 6.오랜만에 아웃백이 먹고 싶어서 홈페이지를 켜 봤어요. 삼성역이나 고속터미널처럼 익숙한 곳보다는, 어차피 아웃백 원정 나가는 김에 안 가본 지역을 가보고 싶어서요.


 그랬더니 서울에는 의외로 아웃백이 많이 생기긴 했더라고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전국에는 아웃백이 얼마나 있을까...싶어서 지도를 확대해보니 전국 기준으로도 꽤 많았어요. 수원이나 대구나 부산에 아웃백이 있는 걸 보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7.이게 그렇거든요.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식당에 가는 것, 익숙한 곳에서 낯선 식당에 가는 건 자주 할 수 있지만 의외로 낯선 곳에 가서 익숙한 식당에 가는 일은 별로 없어요. 왜냐면 낯선 곳에 가면 그곳에 간 김에, 웬만하면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되니까요.


 하지만 대구나 부산에 놀러가서 아웃백을 먹으면? 낯선 곳에서 익숙한 식당을 간다는 묘한 재미가 있을 것 같네요. 전에도 말했지만 부산에 있는 센텀시티 몰은 꼭 가보고 싶어요. 가서 세계최대급의 몰도 둘러보고 식당가에 가서 다양한 것도 먹어보고 한국 제일이라는 찜질방도 가보고. 부산에 있는 재래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집어먹어도 보고. 부산 파라다이스나 부산 시그니엘도 생겼다는데 한번씩 자보고. 


 하지만 부산에 가서 익숙한 아웃백도 먹어보고 싶네요. 아웃백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인테리어도 식기도 메뉴도 똑같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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