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라 사건과 왕따의 추억 外

2012.07.30 16:38

egoist 조회 수:4119

추억(?)이니만큼 우선 제 과거 이야기입니다.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away까진 아니지만 아무튼 먼 과거죠.

어쩌다 보니 어릴때, 그러니까 5~7살 사이의 약 2년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살았습니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당연히 제 의지는 아니고, 부모님 따라)

 

그곳에서 유치원인지 뭔지를 다녔는데, 물론 어릴때라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는 때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당연히 스페인 말을 잘 하지는 못했죠.

언어 문제 때문에 당연히 저와 놀아주는 아이도 없고 해서  항상 혼자 말 없이 앉아있곤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저의 내성적인 성격도 한몫 했겠으나 성격이 내성적이라 어울리지 못한 것인지 어울리지 못하면서 내성적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두 가지가 겹쳤겠죠.

아무튼 교실 밖으로 나가면 스페인 아이들이 수시로 저를 둘러싸고는 자기들 눈꼬리를 손으로 길게 늘이며 "치나~치나" 하고 놀려대곤 했는데, 당시에 저게 인종차별이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무언가 조롱이나 모욕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스페인말도 잘 못하고, 덩치도 작고, 당시 스페인에 동양인도 거의 없었고 하니 단체로 놀려먹기에 딱 좋았겠죠.

 

아무튼 이렇게 타국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이 저의 가장 초기 기억 중 하나였습니다. 다행히 때리는 아이는 없었던 듯 하네요.

 

그러다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 쯤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문제는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이번에는 우리말이 서툴렀다는 것입니다. 스페인말과 우리말 모두 또래집단의 반쪽 정도의 실력만 갖춘, 게다가 말투도 어눌하고 발음이 참 병맛인 아이였던 거죠. 저야 물론 제 발음이나 억양이 이상하다는걸 몰랐지만 제가 말만 하면 주변에서 웃기다고 킥킥대곤 했습니다. 그것까진 담담하게 넘겼는데, 어디 나가서 같이 놀 친구도 없다보니 어린놈이 맨날 방에서 혼자 책만 읽었던지라  별 잡지식은 많았다는게 초등학교 1학년 수업 시간, 두차례 큰 실수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처음은 지리인지 사회인지 과목도 생각 안나는 수업에서 선생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라는 이야기를 하길래 손을 들고 우리나라가 제일 작은 나라는 아닌걸로 안다며 스위스라던가  몇몇 나라들을 예로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고선 바로 선생한테 니가 뭘 아냐며 혼나더니, 수업이 끝나자 마자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인상을 쓰며 니가 뭘 아냐고 한마디씩 하고 갔지만 워낙 왕따가 생활화 되서인지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던 듯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이 도덕 시간에 이번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은 (전두환 시대의 초등학교 도덕교육이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공산주의는 독재를 의미한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제가 못참고 또 이의를 제기하고 맙니다. "공산주의의 원래 의미는 모든것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이고 독재랑은 상관 없다고 들었다"고 한 것이죠. 그러자 선생은 저를 보고 "이거 알고보니  꼬마공산당이네" 라고 이야기하고, 그때부터 아예 저를 계속 공산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공산당이 제 별명처럼 되어버리면서, 아이들은 저를 공산당이라고 부르는데, 참고로 당시는 교과서에 공산당이 뿔과 꼬리가 달린 빨간색 악마들로 표현되던 시절이었죠.

 

이렇듯 입학 후 처음 몇주만에 찍혀버린 후에는 저도 입을 다물고 지냈지만, 2학기 들어 선생이, 저더러 덩치가 작다며 "난쟁이똥자루"라는 (당시로서는 의미도 몰랐던) 새 별명을 내려주시고 나서야 아이들이 저를 공산당 대신 난쟁이똥자루로 부르게 됩니다. 저런 별명을 하사하신건 아마도 학년 초의 일을 마음에 담아 두셨던게 아닌가 생각되고,  아이들에겐 제가 뭣도 모르며 나대다가 털린 아이로 보였을테죠.

또 한가지 사건은 미술(이 아니라 그림인가요? 초등학교 몇몇 과목 이름들은 참 가물가물 하네요. 산수 자연 도덕 이런건 확실한데)시간에 벌어집니다. 사실 저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특히 5~6살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때부터 남들이 대두에 정면을 바라보는 팔다리 쭉 뻗은 사람을 그리는 것과 달리 사람의 신체 비율도 맞추고 동세도 넣어주고 그랬다더군요. 그래서인지 제가 그림을 그리자 학급 아이들 몇명이 저를 둘러싸고 보면서 잘 그린다를 연호하고 있었는데 이때 또 선생이 다가옵니다. 그리고선 제 그림을 보더니 빈정대는 투로, "넌 그림 그리라니까 만화를 그리고 있니? 이게 그림이니 만화지?" 이러고 가버립니다. 재밌는건 방금 전까지도 제 옆에서 "와 잘그린다~"던 아이들이 곧바로  공격적인 말투로 "넌 만화 그리냐!" 를 연창하더니 가버리더란 거죠(참고로 결과적으로 전 미술 전공) 대부분의 왕따가 학생들 사이의 일이라면 전 신기하게도 선생이 왕따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인데, 학급의 최고권력자인 담임선생이 대놓고 쿠사리 주고 놀리는 아이인 만큼 자기들도 그러는게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느꼈던 듯 합니다. 물론 나서서 그러는 아이들이 정해져 있긴 했을 것이지만요.

 

이렇게 제가 님짜도 안붙이는 선생 아줌마와 그 지도를 착실히 잘 따른 아이들 덕에 저는 성격이 내성적을 넘어  병적으로 변합니다. 어느 정도가 되냐하면, 이때부터 해서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2년동안, 저는 다른 아이들과 우연히라도 눈을 마주치기 싫어 화장실조차 안갑니다. 아마도 기피증 비슷한 것이겠죠. 그렇게 매일같이 수업이 끝날때까지 소변을 꾹 참다가 집에 가다 말고 바지에 실례를 해버리곤 했습니다. 거의 한주에 한두번 정도 바지가 젖은채로 집에 들어가는 초등학교 2학년이 상상이 되시나요? 집에서 학교에서의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여기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셨을진 모르겠네요. 좀 발달이 늦다고 생각하셨을지, 아니면 애가 이상하다고 걱정을 하셨을지. 아무튼 이렇게 자주 오줌을 지리고 들어가고서도 한번도 혼난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떻게 저렇게 2년을 넘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전학을 가서야 처음으로 친구도 생기고 성격도 고치게 되는데, 신기한건  이사를 가면서 바로 성격도 활당해지고 그 전까지는 전혀 없던 친구도 갑자기 많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렇게 왕따를 당한 것이 어릴때라 다행이었던 듯도 합니다. 정서적으로 조금은 둔감하기도 하고 상황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나이라, 더군다나 한번도 친구란게 없는 상태로 주욱 오다보니 친구가 있다는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던 터라 심리적으로는 억눌렸는지는 몰라도 막상 상처를 그다지 받지는 않았달까요? 딴에는 그 상황을 일반적인 상황으로 여겨 무덤덤했고 그냥 남들도 그러려니 했는데, 아마도 나이가 들어 더 많이 알고 감수성이 예민해진 상태였다면 더 힘들었을지도.

 

 

 

 

아이돌 관련한 사건사고가 많았지만 이번 티아라 왕따사건이  이렇게 전 웹에서 파이어 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건사고때마다  발동되는, 아무 이슈나 놀이감으로 삼아 공격성을 발산하는 일부 네티즌과 이 사건을 빌미로 경쟁그룹(?)을 까는 타 아이돌 팬덤의 영향도 전혀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보다 중요한 원인은 이번 사건의 중심인 왕따 혹은 괴롭힘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였던 적이 한번 정도는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남자들은 최소 군대에서라도 비슷한 경험을 하기 쉽고, 또한 학생 시절에, 직장에서, 혹은 다른 모임이나 집단에서도 경험이 가능한, 정말 어디서나 벌어져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도, 불이익을 당하지도 않는 참 뭐같은 경우.

 

그리고 이러한 일을 자행하던 인간들이 TV에 나와서 착한척 귀여운척 웃고 떠들고 (심지어 누구는 "병풍"이라는 피해자 캐릭터 연기까지 하며)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가증스러움은 다른 왕따 사건들을 넘어서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더군다나 피해자 보란듯이 트윗에 자기들끼리만 알 수 있는 의지 드립까지 쳐가며 낄낄거리다 피해자의 "꿈틀"에 의해 갑자기 탄로가 나버린 상황에서도 반성의 기미가 없는건사장놈이 똑같은 놈이라(혹은 훨씬 더한 놈이라) 참 든든했기 때문이겠죠.

 

오늘 쏟아져 나오는, 광수 그 미친 인간(<-나름 욕이니 신고 하실려면 하세요)의 "중대발표"와,  티아라 잔류맴버측의 , 피해자를 그대로 희생양으로 삼는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뿌리는 기사들을 보니 참 기가 찹니다. 언론 장악이 참 좋구나, 저렇게 언플을 해댈 수도 있고 하는생각도 들고 말이죠. 저의 한때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초등학교때 그 선생 아줌마가 새삼 생각나면서 광수사장과 티아라 잔류맴버들의 악랄함에 새삼 치가 떨립니다. 저런 인간이 소속사 사장이니 맴버들도 그따위인게 당연하지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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