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0 20:59
20대에 학교 생활상담소의 집단 상담에서 만난 사람이었어요. 10명정도의 그룹의 “대인관계 능력 향상”을 주제로 하는 집단 상담에 참여한거죠.
한 여학생이 잊혀지지 않아요. 저보다 나이는 한 두 살 많았고 호감가는 깨끗하고 단정한 외모에 세련된 옷차림과 목소리까지 나무랄 데가 없어서 왜 왔나 싶을 정도였죠.
상담 선생님께서는 상담을 진행하다가 “만약에 여기서 누군가를 뽑아서 보내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주저없이 A씨를 보낼 거에요”라면서 그녀를 칭찬하고 모두에게 대인관계나 호감을 주는 법의 모범으로 삼으라는 듯이 얘기하시더군요.
그런데, 그녀의 말 잊혀지지 않아요.
“ 전 어디서나 누군가를 무작위로 찍어서 그 사람을 나한테 빠지게 만들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구요”
그냥 우스꽝스러운 자뻑이 아니라 꽤 그럴 듯하게 들렸어요. 뭐랄까, 저는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고 컴퓨터 능력이 어느정도 된다고 말하는 듯한 어조였죠.
그리고 어린 마음에 부러웠어요. 난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호감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가고나서 그 날을 떠올리면 오싹해요. 사람을 무작위로 찍어서 자신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는건 자신은 진심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을 장난감처럼 감정을 가지고 놀다가 어느날에겐가 이용가치가 없으면 가차없이 버리거나 시들해지면 돌아서겠다는걸 담고 있는거였죠
원래는 유아교육 전공이었는데 과를 바뀌어서 우리 학교로 편입했던 건대 상담 선생님이 없을 때 우리한테 말했어요. 작은 목소리로. “난 애들 정말 안좋아해요. 원장이 안볼 때는 마음에 안드는 애의 팔을 꼬집었어요” 아주 짜증난다는 투로 전혀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았죠.
싸이코패쓰라는 말을 제가 남용한다고 여기실텐데 싸이코패쓰나 프로파일링에 원래 관심이 많은데 보통 싸이코패쓰라고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연쇄살인범류의 범죄자만 떠올리지만 전 그 때 만난 그 여자가 그저 자기 허영에 빠진 철없는 젊은 여자라고 보기에는 섬뜩하게 느껴지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언젠가 자기가 친 덫에 빠졌을거라고 생각은 해요.
싸이코패쓰, 혹은 여러 인격장애도 정도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고 여기지더군요. 쉽게 사람을 뭔가 하나의 잣대로 쉽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요. 흔히 공감능력 떨어지는 직장동료나 상사들에게 “저인간 싸이코패쓰지”라고 하는데 인간미도 없고 공감능력 없이 등골 빼먹는 관리자들은 물리게 봐서 그러면 널린게 싸패겠지요.
지금도 책을 읽고 있어서 다시 기억이 났어요. “영악하다”“교활하다”로 표현되는 사람을 이용하고 가지고 노는 우리 주변의 널린 여러 인격적인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의 사람일 수도 있는거에요. 성인군자 컨셉으로 널리 호감을 얻고, 네 뭐 혜민인가 하는 그런 사람 류 비슷하달까, 직장에서 모두가 그가 아주 착하고 성실한 사람인줄 아는데 막상 같이 일해보니 일을 아주 교묘하게 떠넘기면서 본인은 공을 모두 자기에게 돌릴 수 있는 능력자도 계시더라구요.
“아이~~~~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하시겠지만 끝내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교묘하게 착취하던 그 사람 제일 싫었어요. 나를 들들 볶아세우고 모욕주던 그 어떤 사람보다 그 사람이 제일 혐오스럽고 다시는 이런 류의 인간은 만나고 싶지 않더군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일하라고 닥달하고 감시하는 상사쪽을 택할거에요.
-지금 읽는 책은 “진단명 싸이코패쓰: 우리 주변에 있는 이상인격자” 로버트.D.헤어
우울한데 이런 병적인 심리에 대한 책을 읽으면 더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전 흥미로우면 아예 어둠의 바닥까지 들여다보기도 해요.
자기 전에 범죄 프로파일링 팟캐스트 듣다가 잠들기도 하는데 그런다고 더 우울해지고 악몽에 시달리는건 아니거든요. 그러다가 결국은 밝은 컨텐츠로 다시 돌아오게 되구요.
제일 끔찍한건 모든게 다 지루하고 공허하고 정신이 멍해져서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거에요.
2020.11.20 21:16
2020.11.20 21:22
그런 여자한테 팔을 쥐어뜯긴 아이의 마음의 상처는 어떨까요? 적성에 안맞는다고 다 그런 짓은 안해요.
공부를 안하면 안했지 적성에 안맞는 과에 들어왔다고 애한테 화풀이하는 하지는 않죠.
2020.11.20 21:50
2020.11.20 23:19
이 여자가 일했던 곳의 환경은 잘 몰라도 열악한 환경에 참을 수 없어서 저지른 짓도 용서받을 수 없는데
그저 내 신경건드린다는 이유로 아이가 아주 경멸스러운 존재라도 되는 듯한 그 표정이랑 말투를 잊을 수가 없는거에요.
내가 신경질나면 좀 아이를 학대해도 되는거 아냐? 뭐 문제있어?라는 식의 마음이 아니면 절대 그런 말도 못할 것에요.
2020.11.20 22:01
2020.11.20 23:15
우울할 땐 갑자기 너무 밝은 영화를 봐도 적응이 안되요. 시작은 비극적인 톤이나 어두운 영화로 내 감정 주파수랑
맞는 작품들을 보다가 나중에 인간적으로 따스한 영화보면 그게 좋더라구요.
네, 세상의 풍상을 겪으면서 이런저런 세월에 많이~~~~ 달라졌겠죠. 어떤 식으로 변했을른지는 상상할 수 없군요.
2020.11.21 08:48
저는 상담자가 누군가를 찝어서 거기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가며 칭찬을 했다는 대목에서부터 허걱 했습니다.
상담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군요. 그 싸이코패스는 말할 것도 없구요
2020.11.21 12:52
제가 다시 쓰면서 사실 이건 상담가 분도 실수하신거다 싶긴 했는데
그 분의 미숙한 면이었죠. 그래도 제가 상담받은 상담가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사한 분이었어요.
다시 찾아가서 고맙다고 하고 싶을만큼이요. 제가 개인상담도 대학내내 이분한테 받았으니까요.
미숙한 면도 많으셨지만 그래도 제 문제를 진정성있게 들어주시고 인성적인 따스함,,,,, 하여간
대학 내내 이 분은 제 마음이 위태로울 때를 넘길 수 있게 도와주셨거든요. 마지막에는 이제는 상담에만
의존하지 말고 세상에 가서 스스로 서봐라라고 하셨었죠.
상담가가 그 정도는 당연한거 아닌가??????? 불행히도 대답은 No.
적성에 맞지도 않으면서 그런 과를 선택했다는건 참 비극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