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았습니다.

2012.04.30 12:48

미선나무 조회 수:4106

 

 

 

저번 주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기는 38주만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진통인지 가진통(진통 전에 진통처럼 느껴지는 하복통)인지 구별이 안 되는 복통을 며칠 앓은 끝에

5일째쯤 되던 날, 밤새 4~5번씩 깨고 나서

더 이상 못 참겠다! 진통이든 아니든 이런 밤을 더 이상은 보낼 수가 없다, 싶어서 찾아간 병원에서

자궁문이 6센티 열렸으니 오늘 안으로 아기를 낳아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분만은 한 5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주변분들은 다 저더러 순산했다 말합니다만, 겪은 저는 절대 '순산'이라는 말만으로 제 출산을 기억할 수가 없네요 ㅠㅠ

그럼에도, 짐승스러운 고통 끝에 눈앞에 꽈배기 모양의 탯줄을 단 아기가 나타났을 때 뱃속이 일순 편해지고,

그 아기가 수건에 둘둘 말려 제 품에 안겨졌을 때 아기가 눈을 반짝 떴던 것은 기억납니다.

 

분만 도중에도 엄청 울었지만(제 분만 계획중에 소리를 지르거나 물어뜯거나;;하는 건 있었어도 제가 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기를 받아 안자 절로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렇게 어여쁜 생명이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저는 정말 임신기간 제멋대로 살았고, 뱃속에 애를 담은 채 험한 말도 하고,

마음 못 다스리며 감정을 뿜어냈던 것이 그 순간 참 미안하더군요.

그때는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아기를 안고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하면서 울었습니다.

 

 

아기는 작게 태어났습니다. 출생시 몸무게가 2.4kg이었으니까요.

이 어린 녀석을 키우다보면 예전에 비네트님이신지...듀게분이 제 임신글에 달아주신 답글을 떠올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기의 잉태가 당황스러웠지만, 아무것도 못하는 신생아가 불쌍하고 안스러워 정성껏 돌봐주게 되고,

그러다보면 아기가 사랑스럽고 귀엽게 여겨져서 기르게 된다고요.

아기와 만난 두번째 날 신생아실에 면회를 갔는데

그 많은 신생아들 중에 제 아기가 제일 조그맣더라고요. 게다가 당시 첫 소변 테스트도 통과를 못 해서 가슴졸이던 때이기도 했고요.

게다가 그 조그만 얼굴에 주름을 잔뜩 지으면서 앙앙 우는데,

지금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힘든 사람은 아기의 부모인 우리들이 아닌, 주수보다 일찍 태어나 세상이 뭔지도 모르고 당황스럽기만 한 저 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만 중에 제가 분만을 위한 호흡법을 버거워하며 잠시라도 쉬고 싶다고 애걸하자,

간호사가 단호하게 "산모님이 이러시면 지금 산도를 나오는 아기가 더 힘들어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게 되자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게 되었지요.

"아기가 힘든 건 모르겠고, 지금 제가 죽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날 아기를 보면서 정말 나보다 아기가 더 힘들었겠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면회실 창 너머 아기들을 보면서 활짝활짝 웃는데, 저만 혼자 엉엉 울었습니다. 아기가 불쌍해서요.

 

 

지금은 다행히 잘 싸고, 며칠 전부터는 잘 먹기도 합니다.

산후조리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조리원에서 잠깐 외출한 틈을 타서 글을 올리는 중입니다.

물론 지금도 제 성격대로, 또 주변 상황 때문에도 고민이 많지만

배냇짓으로 웃는 아기를 보면 잠시나마 그것들을 잊고 그저 기뻐집니다.

 

그간 올렸던 임신 중의 제 넋두리에 따뜻하게 답 주시고 다독여주신 듀게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48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380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254
114177 지옥의 묵시록 [5] daviddain 2020.12.07 520
114176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6] 예상수 2020.12.07 653
114175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 촌평 [3] ssoboo 2020.12.07 1021
114174 인스타그램을 지웠습니다. [3] 하워드휴즈 2020.12.07 739
114173 성상품화와 광고로 정신없는 유튜브 [3] 귀장 2020.12.07 709
114172 [넷플릭스] 노트북,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 [10] S.S.S. 2020.12.07 721
114171 그렇게 살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5] 예상수 2020.12.07 817
114170 [영화바낭] 감독 인생 말아먹었다는 전설의 영화, 저주의 카메라!(피핑 톰)를 봤습니다 [13] 로이배티 2020.12.07 916
114169 사기당한 너무 착한 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10] 산호초2010 2020.12.07 925
114168 고양이 또또 [21] 칼리토 2020.12.07 658
114167 우리는 하루 앞도 내다볼 수가 없죠. 2021년 [4] 산호초2010 2020.12.07 519
114166 결전을 앞두고 [16] 어디로갈까 2020.12.07 970
114165 마지막 시장한담..과열인가 버블인가? 시그널과 노이즈. [9] 무도 2020.12.07 640
114164 길고양이X : 동네 고양이O 구워리 [14] ssoboo 2020.12.06 498
114163 아직 애플뮤직에서만 들을 수 있는 팝 2곡, 혼돈의 그래미 예상수 2020.12.06 344
114162 이제야 이유를 알았어요.(내용은 지움) [5] 구름진 하늘 2020.12.06 819
114161 영화를 보러 갔는데 [7] daviddain 2020.12.06 523
114160 제가 겪고 있는 병의 자살률은 일반인의 8배 [12] forritz 2020.12.06 1266
114159 코로나 시대의 만남과 소통의 방식은 역시 온라인? [6] 산호초2010 2020.12.06 443
114158 프리키 데스 데이 재밌네요 [2] 정규군포 2020.12.06 34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