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7 10:33
- 1960년작이니까 이제 환갑이 된 영화네요. 60년 전이라니 그냥 사극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암튼 스포일러는 없구요.
(포스터에 마틴 스콜세지 이름이 커다랗게 박혀 있는 건 사연이 있습니다.)
- 촬영 중인 카메라의 시점으로 시작됩니다. 카메라는 길거리에서 호객 중인 성매매 여성을 따라가고, 무언의 동의 과정을 거친 후 그 여성의 방까지 따라가요. 잠시 후 그 여성의 얼굴은 공포에 질리고... 네. 카메라를 든 남자는 연쇄 살인마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살해 현장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공포에 질린 상대방의 반응을 촬영해서 수집하는 상변태 살인마인 거죠. 무려 1960년에 이런 설정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게 좀 놀라웠네요.
(영화 속 첫 번째 희생자)
그리고 영화는 대수롭지 않게 살인범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구요. 자기 아버지가 물려준 집을 세를 주는 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영화 촬영장의 스탭으로 일 하고 있네요. 부업으로 동네 사진관 사장과 어쩌고 저쩌고 해서 여성 모델들의 야한 사진을 찍는 일도 하고 있구요.
(좀 괴상한 장면을 골라 버렸습니다만. 평소에는 멀쩡하게 생긴 것 맞습니다. 이건 영화 속에서도 섬뜩하게 나오는 장면이고... ㅋㅋ)
암튼 이 살인자 청년이 주인공입니다. 자꾸 말 하지만 60년 전 영화인데 말이죠. ㅋㅋ 그리고 영화는 이 청년의 살인 행각과 아랫집 세 들어 사는 처녀와의 로맨스(!), 그리고 이 청년이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만든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며 전개됩니다.
- 일단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스릴러 무비로서 낡은 느낌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뭐 배경이 워낙 옛날이다 보니 사회상 측면 & 배우들이 연기 톤에서 느껴지는 옛날 느낌은 있어도 이야기 구조나 전개는 요즘 기준으로 봐도 매끈하구요. 특히 소재 부분에 있어서는 낡았다는 기분이 거의 들지 않아요. 사실 어찌보면 오히려 21세기에 더 어울리는 이야기 아닙니까. 모두가 당연한 듯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내키는대로 아무 거나 촬영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물론 21세기엔 이런 소재가 너무 흔해빠져서 별 감흥이 없겠지만, 60년전에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낸 건 참 대단하다고 밖엔.
영화의 핵심인 주인공의 캐릭터도 꽤 괜찮아요. 애초에 근본적으로 글러 먹은 싸이코 변태이지만 자신의 그 '충동'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냥 예의바르고 수줍은 동네 청년... 이라는 설정인데 그 양면성이 제법 그럴싸하게 표현됩니다. 그래서 보다보면 더 긴장되는 장면들이 있어요. 본의 아니게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을 때 저질러 버릴까 말까 번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꽤 진심으로 보여서 스릴을 만들어 내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주인공이 괴물은 괴물인데 나름 설득력 있게 표현되는 괴물인 겁니다.
-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잔혹한 고어 씬이나 여성의 신체 노출 씬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그거야 요즘 영화라고 해도 감독 스타일따라 가는 것이니 낡은 부분이라 할 순 없는 것이고 단점은 더더욱 아니죠. 게다가 그런 거 없이도 주인공이 하는 짓은 충분히 불쾌하게 잘(?) 표현됩니다. ㅋㅋㅋ
- 암튼 그래서 재밌습니다.
스콜세지를 비롯해서 지금 이 영화를 칭찬하는 대부분의 평자들이 '영화 만들기, 특히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에 대한 영화' 와 같은 류의 진지하고 분석적이며 똑똑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 놓고 그럽니다만. 저같은 아무 생각 없는 관람자에게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구요. ㅋㅋ
그냥 재밌어요. 21세기 기준으로 봐도 충분히 불쾌하면서 또 그럴싸한 사이코가 등장하고 이야기의 전개도 느슨하거나 지루할 틈 없이 잘 흘러가구요. 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간의 드라마도 꽤 탄탄해서 재밌게 봤습니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니겠습니까.
스릴러 장르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시간 내서 보실만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60년 전부터 이런 훌륭한 변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구요!
+ 제목에 적은 얘기는 그냥 드립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나름 촉망받는 감독이었던 마이클 파웰이란 양반이 이 영화 만들고 나서 쏟아지는 평단의 혹평과 관객들의 도덕적 비난 세례에 버티지 못 하고 사실상 감독 커리어를 마감하다시피 하셨다고. 극장 상영도 광속으로 중단 되었고 해외에 그나마 팔려 나갈 땐 엄청난 가위질을 당했다네요. 감독 양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이후에도 연출작이 없는 건 아닌데, 본인 의지대로 찍은 영화들은 아니었나 봐요.
그리고 그렇게 묻혀 버려서 원본 필름조차 어딘가에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가물가물해진 영화를 나중에 발굴해서 찬양하며 다시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복원에까지 나선 사람이 마틴 스콜세지이고, 그래서 저 첫 이미지에 그 분 이름이 박혀 있습니다. 그 양반 친구들도 이 영활 그렇게 좋아했다는데 그 친구들이란 바로 코폴라와 스필버그... ㅋㅋ
++ 생각해보면 좀 어색하며 불쾌할 수 있는 부분 하나. 이 영화의 주인공님께서는 여성만 죽입니다. 이 양반이 사이코가 된 과정이나 본인이 직접 밝히는 활동 목적 같은 걸 돌이켜보면 굳이 여성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흠.
+++ 여기서 주인공이 대차게 입고 다니는 코트 때문에 자꾸 웃겼습니다. 그게 거의 20여년 전에 유행했던 '떡볶이 코트' 인데요. 그게 사실 60년대 영국에도 존재했다는 게 그냥 웃겨서요. 그때 워낙 유행을 해서 그 코트 생김새는 국산이어야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 일본 사람들도 포스터 이미지 만드는 센스가 참 일본적이면서 재밌습니다.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대충 '피를 먹는 카메라' 정도 되는 건가요? 음. 나름 그럴싸합니다. '저주의 카메라'보단 내용과도 잘 어울리기도 하구요.
도대체 '저주'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2020.12.07 10:52
2020.12.07 11:28
그냥 아무 거나 닥치는대로 보고 있습니다. ㅋㅋ 사실 이 영화는 옛날에 봤던 건데 그냥 다시 보고 싶어져서 또 봤어요.
너무 큰 기대만 하지 않으시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에요!
2020.12.07 11:52
같은 해 나온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와 1965년에 나온 윌리엄 와일러의 [콜렉터]를 이 영화랑 나란히 같이 보면 정말 기분이 찝찝해질 것 같습니다.
2020.12.07 13:02
콜렉터는 제가 못 본 영화네요. 이것도 찾아봐야겠습니다!
2020.12.07 12:05
ㅋㅋㅋㅋㅋㅋ 영업당했습니다. 넘 재밌을 거 같은데요?
2020.12.07 13:03
저는 정말로 재밌게 봐서 이렇게 적었지만, 당연하게도 다른 분들의 즐거움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ㅋㅋㅋ
2020.12.07 12:40
떡볶이 코트 ㅋㅋㅋㅋ 떡볶이(더플)코트는 옛날 영국 해군복이랑 남학생 도련님들 코트였으니 옛날 영국 영화에 나와도 이상할 건 없겠죠
2020.12.07 13:06
패션에 대한 제 무지함이 이렇게... ㅠㅜ
영어로 검색을 해보니 대뜸 이런 짤들이 나오네요. ㅋㅋㅋ 꼭 기억했다가 나중에 어디 가서 망신 당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해봅니다. ㅋㅋ
2020.12.07 13:45
2020.12.07 14:05
2020.12.08 14:54
네 그렇더라구요. 이 영화의 복원 과정에 대한 글을 읽어 보니 저 분 언급되면서 괄호 열고 '마이클 파웰의 아내' 괄호 닫고... 이렇게. ㅋㅋ
2020.12.08 14:13
영화의 연출이나 내용면에서 로이배티님 글만으로 봐서는 상당한 수준작으로 느껴지는데요. 60대년대 헐리우드 검열은 그때까지도 "청교도적 기준"에 맞춰서
우리 상상 이상으로 엄격했다고 팟캐에서 집중적으로 헐리우드 검열의 역사에 대해서 들었는데 노출이나 성적인 표현, 폭력 장면에 대한 검열은 있어도
막상 파격적인 소재나 연출에 대한 검열까지는 표면적으로 잡아내기 어려워서인지 이런 소재의 작품도 가능했던 것이겠죠.
히치콕의 "싸이코"도 62년에 개봉했습니다. 살인 장면의 연출에 있어서 획기적이었고 검열을 피해갔다는 것이 대단하죠.
이 영화는 보고나서 다시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볼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요ㅠ.ㅠ
2020.12.08 15:33
네. 당시엔 욕 먹고 묻혔지만 스콜세지를 비롯해서 평론가들에게 발굴된 이후로는 당당히 저주 받은 걸작 내지는 수작 반열에 올라 있는 영화 맞아요. 참고로 이건 영국 영화인데, 아마 헐리웃과 미국보다 기준이 더 엄격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야 뭐 '뭘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만 들지만 60년 전이니까요. ㅋㅋ
이런 고전을 찾아주시다니! 찜하기 해뒀습니다. 기대되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