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분들이라면 Song Inkollo의 짧은 만화를 보신 분들이 계실 거에요.

 

커플인 롤로와 조의 일상을 소소하게 담아낸 네 컷 만화인데 꽤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냈고, 둘 사이 관계가 달달해서 저도 미친듯이 열독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가인 Song Inkollo가 얼마 전 자신을 공개했어요.

많은 독자들이 만화를 보면서 작가의 페르소나인 롤로가 작가랑 똑같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탈리안 혈통을 가진 프렌치 백인 캐릭터로 설정된 롤로와는 전혀 다른, 평범하기 그지없는 중국인이었던 겁니다!!!!!!

그것도 '공산주의 국가 중국 본토'(작가 본인의 표현) 에서 나고 자란 리얼 중국인. 얼굴도 외모도 딱히 특출나지 않은 그야말로 평범한 중국인.

저도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뭔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랄까요.

 

지적이고 섬세해 보이는 롤로와 근육질에 귀여운 구석이 있는 그의 남자친구 조의 이야기는 정말 멋지고 근사했거든요

실제로 정말 저런 커플이 있구나..

판타지라고 볼 수 없었던 게, 실생활에서 투닥거리고,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생활비때문에 싸우는 이야기가 굉장히 리얼해서...

그리고 작가에 고백에 따르면 그 일상 이야기들은 다 사실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프렌치 남자친구도 있고요.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중국인인 본인만 댄디한 백인 프렌치로 둔갑시켰다는 이야기인데...

작가 본인은 '이건 창작물이지 내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배신감에 치를 떨고 욕을 퍼붓는 독자들도 많았나봐요.

.

그런데 왜 자신을 공개했을까. 그 이유가 재밌습니다.

몇몇 독자들이 인신공격성 메세지를 보냈다는군요.

백인 쓰레기, 다 죽어버려, 같은 인종혐오성 메세지를 받으며 작가 본인이 혼란스러웠나 봅니다. 난 잘나가는 백인 게이가 아닌데...

 

참 이 상황이 묘하게 역설적입니다.....ㅎㅎㅎㅎ

 

게이월드에서 인기많은, 털많고 근육질의 우월한 백인 게이 이미지를 차용한 캐릭터로 오인받고 비난받아서 작가가 '나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커밍 아웃했는데,,,,

이제는 '중국인이면서 프렌치 행세를 한 사기꾼'으로 또 욕을 먹고 있다니. 특히 중국인들에게서도 비난을 많이 받.....

며칠 전엔 '왜 다들 저를 그렇게 공격하시나요...' 눈물의 동영상을 올리셨습니다. 입장 참 딱하게 되었네요.

 

그러면 왜 중국인이 아닌 프렌치 캐릭터를 내세웠을까. 그 이유도 재밌습니다.

이미 작가는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3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는군요.

비슷한 컨셉의 비슷한 내용인데 중국인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

돈도 필요하고....그래! 그럼 누구나 좋아할 프렌치 백인 주인공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자신과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달달한 프렌치 게이커플 스토리로 엮었더니.....와우! 본인도 감당하지 못할 반응이 터진 겁니다.

 

작가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당신은 진짜 프랑스 사람이에요? 프랑스에 살아요?" 이런 질문에 "프랑스에 삽니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압니다."라고 답했으니 거짓말이 아니란 거죠.

하지만 "아뇨, 난 중국에서 태어난 중국사람입니다. 롤로는 캐릭터일 뿐이에요."라고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으니 독자들이 오해하기에 충분하죠.

이 만화와 작가를 소개한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 '작가는 프랑스 사람으로서....'라고 표기된 곳도 있거든요.

솔직히 본인도 그 놀라운 반응이 싫지는 않았겠죠.

 

글쎄요....저는 작가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본인말대로 열심히 그려서 무료로 공개했을 뿐이고 그 어떤 유명세를 누리려고 일부러 그랬던 게 아니란 건 아니까요.

하지만 리얼다큐라고 생각하고 보던 만화가 판타지물같이 느껴지는 실망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판타지까진 아니더라도....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화 한 걸 다 본 후에 실제 인물들 사진이 나올 때 느끼는 약간의 실망감 같은 기분이랄까?

이런 이야기는 늘 현실보다 창작물이 더 아름답기 마련이지만.....

.

.

그러고보니...

저도 언젠가는 제가 외국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연애담을 책으로 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진짜 남들 못해 본 경험들을 한 거 같아서요.

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저의 페르소나를 한국인이 아닌, 스코틀랜드 혈통을 가진 아일랜드인으로 그려볼까봐요. ㅎㅎㅎ

듀나처럼 끝까지 자기 자신을 공개하지 않고 말이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3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8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68
113988 한국시리즈 3차전 [23] daviddain 2020.11.20 399
113987 '미스터 노바디'란 영화 봤습니다.(소개하기 위한 약스포) [8] forritz 2020.11.20 507
113986 끝없는 사랑같은 건 물론 없겠습니다만 [11] Lunagazer 2020.11.20 856
113985 홍세화 칼럼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 [52] forritz 2020.11.20 1681
113984 [웨이브바낭] 에이드리언 라인, 제레미 아이언스의 '로리타'를 봤습니다 [28] 로이배티 2020.11.20 980
113983 아르헨티나의 거장,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님에 관한 개인적인 추모글 [1] crumley 2020.11.20 330
113982 창작, 빙수샴페인, 불금 [1] 여은성 2020.11.20 363
113981 카렌 카펜터 노래를 듣다가 [8] 가끔영화 2020.11.19 532
113980 ‘간 큰 검찰’ 윤석열의 ‘위험한 직거래’ [3] 왜냐하면 2020.11.19 667
113979 시민 케인의 영화 맹크를 보고(스포 있음) 예상수 2020.11.19 435
113978 영화 강박충동 daviddain 2020.11.19 444
113977 [바낭] 저는 3개월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책임자입니다. [9] chu-um 2020.11.19 1043
113976 우울증 환자는 이 사회에서 어떤 반응을 받게 될까요? [38] 산호초2010 2020.11.19 1382
113975 오늘 부동산 정책이 나왔군요 [7] 모스리 2020.11.19 930
113974 산호초2010님을 비롯한 게시판 몇몇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8] 예상수 2020.11.19 1126
113973 [웨이브바낭] 검색하기 참 어려운 제목의 영화, 귀신이야기(2017)를 봤습니다 [3] 로이배티 2020.11.19 395
113972 예상수님, 내 글 읽지 말아요 [3] 산호초2010 2020.11.19 702
113971 이런저런 잡담...(방정식, 연말모임) [4] 여은성 2020.11.19 507
113970 시간낭비 [20] 예상수 2020.11.19 983
113969 예상수님, 제 글에 댓글 달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3] 산호초2010 2020.11.19 76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