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1 20:12
- 제목에도 적었듯이 영화 한 편이구요. 크레딧까지 다 해서 90 밖에 안 돼요. 스포일러는 없게 적겠습니다.
- 영화 내내 설명은 한 마디도 안 나오지만 암튼 남수단입니다. 생지옥이죠. 주인공들은 탈출에 성공해 영국에 도착한 젊은 부부네요. 일단 1차 심사를 통과해서 수용소를 벗어나 정착 테스트(?)를 받게 되는데 몇 가지 조건을 지키면서 몇 주를 무탈하게 버텨야 해요. 그 조건은 1. 취업하지 마. 2. 매주 한 번씩은 꼭 병원 가서 검사 받고 면담도 해. 3. 절대로 우리가 주는 집에서 벗어나지 마... 입니다. 이 조건을 보고 영화의 제목을 보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뭐 안 봐도...
- 그러니까 결국 난민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영화가 왜 이제야 나왔나 싶기도 해요. 고향에서의 삶도 지옥이고 그걸 탈출하는 과정도 지옥이며 탈출에 성공해서 타지에 정착하는 과정 또한 지옥인 사람들이니 문자 그대로 인생이 호러 아닙니까.
이 영화의 각본은 그런 그 분들의 처지를 정말 적절하게 활용합니다. 호러 씬들도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호러 씬이 아닌 장면들도 다 호러씬에 필적할만큼 긴장감이 흘러요. 탈출 과정, 심사 과정, 일상에서 현지인들을 마주치는 장면들, 추방 당하느냐 마냐의 기로에 서는 장면들. 모두 다 주인공들에겐 자기들 집에 출몰하는 귀신들보다 더 무서우면 더 무서웠지 덜 무서운 일들이 아니니까요. 극중에서 주인공들이 실제로 그런 대화를 나누기도 하구요.
- 살짝 예상을 벗어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소재가 이렇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제가 당연한 듯이 예상했던 흐름과는 포인트가 많이 달라요. 그러니까 저는... 소재가 이런 것이니 당연히 '난민들의 고통을 알고 이해하자'는 식의 이야기가 될 줄 알았어요. 찾아온 나라의 냉대와 유명무실한 지원 프로그램 같은 거? 그런 부분들 때문에 이 부부가 적응에 실패하거나 엄청 암울해지거나 뭐 그런 식의 흐름이 될 줄 알았죠. 난민에 대한 인식 전환! 지원 제도 개선!!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을 호러를 도구 삼아 드러내는 건 맞습니다만.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이 영화의 이야기는 난민을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난민 당사자들을 위한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저 사람들 불쌍하고 딱하니 도와줘야해!!' 라는 게 아니라 '우리 이렇게 지옥같이 살았고 지금도 고생중이지. 하지만 포기하지마...' 라는 쪽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게 꽤 와닿습니다. 주인공들이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일들이 워낙 리얼하고. 그걸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거의 압권 급으로 좋구요. (장르가 그냥 드라마였음 오스카급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 스포일러라서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영화가 다루는 태도가 아주 진지해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좀 오골거린다고도 느낄 수 있는 씬이 하나 있는데, 그게 오골거리긴 커녕 숙연하고 감동적이더라구요.
-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사회성 짙은 호러, 다른 말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호러를 도구로 택한 영화에요.
호러 파트는 뭐랄까... 대체로 괜찮지만 솔직히 그렇게 무섭진 않습니다. 하지만 메인 스토리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서는 잘 쓰였단 느낌이구요.
그러니까 결국 진중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영화이고 그런 측면으로 꽤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런닝 타임도 짧고 하니 특별히 할 일 없는 일요일 밤에 그냥 한 번 시도해 보실만한 영화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궁서체로 진지한 호러, 사회물이 취향이 아니시라면야. ㅋㅋㅋ
+ 내용상 공통점을 거의 없지만 왠지 그 뭐냐. '어둠의 여인'의 자매품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맘에 드셨는데 그걸 안 보셨다면 그것도 한 번 보세요. 개인적으로 무섭기는 그 쪽이 더 무서웠네요.
++ 이미 한 얘기지만 배우들 연기가 정말 좋아요. 딱 보면 아내 역할이 캐릭터도 그렇고 배우의 비주얼도 압도적이어서 그쪽에 주로 감탄하게 되는데,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남편 배우의 연기도 동급으로 좋았던 것 같아요. 둘이 정반대의 역할을 맡아서 서로 되게 다른 톤으로 연기를 하는데 남자 쪽이 좀 손해(?)를 보는 역할이거든요.
+++ 재밌게 보고 나서 검색을 좀 해 보니 감독 겸 작가도 주연 배우들도 다 실제 난민과는 별로 상관 없는 사람들이더군요. 감독은 그냥 흑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가 난민 소재를 선택한 거라고. 주인공 부부 역할을 한 배우들은 다 나이지리아계에 국적은 미국인이랍니다.
++++ 엑스파일을 보다가 질릴 때마다 다른 걸 하나씩 보고 있습니다. 이제 9시즌 중반 넘겼네요. 중간에 또 다들 정색하고 멀더! 멀더!!! 를 외쳐대길래 바로 정지 버튼 누르고 이 영화를 봤죠. 망할 멀더놈... 걍 ufo 오타쿠나 할 것이지 왜 자꾸 메시아 놀이람. =ㅅ=;;
2020.11.01 20:23
2020.11.02 09:38
제가 워낙 허구헌날 호러, 스릴러만 보아대다 보니 자극의 역치가 많이 올라간 것 같습니다. ㅋㅋ 전 호러보단 그냥 현실적 드라마에서 차근차근 주인공 인생 꼬이는 모습 보여주는 게 더 무섭더라구요.
2020.11.01 22:16
2020.11.02 09:38
가영님 최신작도 보시는군요!! 당연한 거지만 왠지 놀라운. ㅋㅋㅋㅋ
2020.11.01 22:35
2020.11.02 09:40
사실 누군지 몰라서 먼산님 댓글 보고 검색해봤습니다. 닥터님을 몰라뵙다니 제가 잘못했네요. ㅠㅜ
근데 비중은 아주 작아요. 특별 출연도 아닌데 그냥 하고픈 작품이면 비중 안 가리고 출연하는 스타일인가 보네요. ㅋㅋ
2020.11.01 23:43
말씀대로 막상 호러파트는 그냥 흔한 유령의 집 소재의 점프 스케어인데 보는 사람으로서 별로 무섭지는 않지만 영화속 두 주인공이 심리적으로 계속 쫄리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진짜 공포는 후반부 스포일러 내용이 나오는 부분이죠. 중간에 귀신들 나오는 곳이 아니라 그곳이 바로 생지옥...
겟아웃, 어스로 조던 필이 뜬 뒤로 이런 사회, 정치적인 내용이 섞인 흑인 호러물(?)이 은근 자주 보이는데 남수단 난민들이 주인공이라니 기대이상으로 신선한 그림이 나오고 아주 확 새로운 건 없더라도 효과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 오그라들 수 있었던 부분도 그전까지 끌어온 연출이 있었기에 매우 감동적이고 살아남은 그들이 짊어진 무게 같은 걸 느꼈네요.
저는 남주분도 성격이 다를뿐이지 충분히 연기력을 뽐낼 역할을 받은 것 같아요. 현실부정하고 멀쩡한 척 하려다가 계속 맛탱이 가는 모습을 좀 더 연기적으로 강하게 표현할 씬들이 많은 것 같아서 ㅎㅎ
2020.11.02 09:48
초반부터 대놓고 힌트를 흘려서 '아 뭐 그런 거겠네...' 라고 생각해서 방심하다가 '스포일러' 부분에서 허를 찔렸네요. 그런데 그게 또 참으로 심경 복잡하게 주인공들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라 참 효과적이었던 것 같아요.
말씀대로 갑자기 흑인 호러(?)가 대세죠. ㅋㅋ 이 영화 만드신 분은 이게 장편 데뷔작인가 보던데 진중하게 이야기 끌고 나가는 폼을 보니 장래가 촉망되는 느낌이더라구요. 장르물 말고 그냥 정극 찍어도 잘 찍을 듯한. 정말 '그 장면'은 말로 풀어서 설명하면 오골거릴 수밖에 없는 장면인데 그걸 감동적으로 만들어놨단 말이죠.
네 사실 제가 배우 연기 이런 데 상당히 둔감한 사람인데 '잘 한다'고 느꼈다면 말씀대로 남편 역할도 뽐내기 좋은 역할이었던 거겠죠. ㅋㅋ 조금 생각해보니 애초에 남편이 아내쪽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표현해야할 감정 폭도 넓은 캐릭터였네요.
2020.11.02 03:10
2020.11.02 10:26
닮은 듯 안 닮은 듯 하지만 눈에 띄는 공통점이 꽤 많네... 라는 정도 느낌입니다. 다루는 주제는 다른데 거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비슷하달까... 아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네요. ㅋㅋ 암튼 요즘들어 그동안 자주 보지 못 하던 소재와 분위기의 호러 수작들이 나와서 기분이 좋습니다. 호러 만세!!
2020.11.02 03:11
귀신나오는 집 장르를 좋아하는데, 집에 묶여있고 이사를 전혀 갈수없는 상황이 이렇게 설득력있게 나오는 작품은 처음이었던것 같아요. 보통 백인가정이고, 왠만큼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장르라서.. 음 그런데 이렇게 글 적고 나니, 샤이닝을 빼먹었네요. 거기도 나갈 길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막혀있었죠. 그나저나 블라이 안보실겁니까 ? 리뷰기다리고 있단 말입니다 :)
2020.11.02 10:31
안 그래도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난민 관련해서 자료 조사하다가 영국의 난민 법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걸 알고 '이거다!' 싶었다구요. 그동안 쏟아져나온 귀신들린 집 이야기들의 근본적 문제점 "쟤들 왜 이사 안 가?"를 해결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대요. ㅋㅋㅋ
블라이 저택이야 당연히 보겠지만 일단은 9일 남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무료 기간에 뽕을 뽑는 게 우선이라서요. 엑스파일 부터 다 본 후에 다른 생각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하하. 어차피 블라이 저택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니 저를 오랫동안 기다려 주겠지요.
2020.11.02 21:38
사실 호러 파트가 무섭지는 않고, 전반부의 쪼이는 연출도 살짝 아쉬운 부분은 있습니다. 그 헐거운 공백을 두 배우가 잘 메우고 있단 느낌이네요. 후반부는 멋부리기 쉬운데 연출이 절제되면서도 효과적. 저도 찾아보니 감독에게는 공포와 드라마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게 관건이었다고 하네요. 지금같은 스케일이라면 러닝타임은 1시간이 오히려 딱 맞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도 들고요.
그나저나 마지막 한 방이 매우 묵직. "함께 사는 거에요. 그들을 받아들여야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어요." 맷 스미스 역할이 작긴 하지만 이 묵직함에 값하는 복잡미묘한 연기의 순간이 있구요. 감독이 런던에서 유색 인종으로 사는 경험이 아니었다면 저런 대사나 관점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기도요.
연출은 조던 필보다는 제프 니콜스 느낌... (테이크 쉘터, 미드나잇 스페셜...)
2020.11.03 09:14
배우들이 아주 큰 일 했죠. 공감합니다. ㅋㅋㅋ
맷 스미스도 말씀대로 비중에 비해 나름 연기력이 필요한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딱히 헌신적인 건 아니지만 분명히 선의는 갖고 있고 하지만 뭔가 엉거주춤한 포지션의 공무원 모습을 잘 보여줬다는 느낌. 그리고 왠지 모를 간지 때문에 좀 더 중요한 역할로 보이기도. ㅋㅋ
마지막의 묵직하고 정중한 느낌이 좋죠. 그것 때문에 좀 아쉬웠던 부분들도 대부분 잊혀지고 좋은 인상만 남게 되는 효과가 있었어요. 제게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