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13:07
BBC에서 어설프게 만든 달걀볶음밥 동영상을 올렸다가 쌀밥을 주식으로 먹는 아시안의 공분을 산 적이 있죠.
쌀을 물에 삶아서 채에 걸렀기 때문인데요. 쌀을 파스타 취급했던 모양입니다.
(잠시 딴 말인데 이탈리안들은 스파게티 면을 잘라서 삶는 걸 보면 삶은 쌀을 채에 거르는 걸 본 아시안들처럼 분개한다고 하지요 ㅎㅎ)
이 동영상의 리엑션으로 한국웹에까지 알려진 엉클 로저(본체는 말레이시아계 화교인 영국 코미디언 나이젤 응입니다)는 이후로도 어떤 동영상에서나 전기밥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쌀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이여 엉뚱한 짓 말고 전기밥솥이나 사라!! 이거죠.
바로 그 전기밥솥 이야기에요.
물론 동남아와 동북아에서 선호하는 쌀이 다르고 원하는 조리의 상태도, 따라서 전기밥솥의 방식도 조금 다를 것 같기는 하지만
전기밥솥이 효율적인 도구인 점에는 모두 동의할테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전기밥솥에 보관한 밥에 대한 이미지는 예전과는 위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밥 먹고 싶으면 밥솥 열어보면 늘 밥이 얼마간 들어 있었고 이걸 떠서 반찬에 먹든 반찬이 없으면 달걀이라도 풀어서 볶아먹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라? 나이 들어서 살림을 직접 하게 되고 보니 밥솥에 막 한 밥에 비해서 보관된 밥은 현저하게 맛이 떨어집니다.
전기밥솥 기술이 예전만 못해졌을리는 없는데 왜 그럴까요? 물론 우리의 입맛 수준이 그만큼 높아져서일 수 있겠지요.
혹은 늘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불철주야 살피고 고생하신 어머니의 덕일 수도 있겠고요.
여하간 요즘은 보온 기능으로 보관된 밥을 다들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밥을 자주 먹지 않는 싱글 가구 혹은 바빠서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적은 가정에서는 소분 냉동이 하나의 팁을 넘어서 이제는 부엌 살림의 지침으로까지 자리잡은 듯 합니다.
락앤락 같은 밀폐보관용기 회사에서는 밥 냉동용 그릇을 따로 만들어 팔고 있고요.
저는 냉동밥을 간편하게 해동할 수 있는 설비가 없어서 냉동하진 않지만(냉동실에 자리도 없고)
오래 둔 밥은 마르고 맛이 없으니까 보통 하루 이상 지난 경우에는 보온을 끄고 찬밥 상태로 놓아둡니다.
겨울에는 그 방법이 그럭저럭 통해요. 그런데 보온으로 하면 맛이 없어질지언정 어느 정도는 유지되는 밥이 보온을 끄면 상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하긴 모든 음식은 막 만든 직후부터 조금씩 상하기 시작하는 거고 먹어도 괜찮은 수준으로 상한 것까지 먹고 그 선을 넘으면 버리는 거라고는 하지요.
아무튼 보온을 끄고 그대로 밥통에 둔 밥에는 곰팡이가 잘 생깁니다.
재밌는 것은 단순히 밥이 아닌 음식물에도 비슷하게 적용이 되더란 말입니다.
이를테면 시장에서 찐만두 같은 것을 사오면 상온에 두는 것과 냉장고에 두는 것과 밥솥의 보온 상태에 두는 것의 보관 기한이 달라요.
냉장은 물론 셋 중 가장 오래 가지만 상온보다 따뜻하게 두는 밥솥 보온 상태가 더 오래 보존 가능하더라고요.
일반적인 음식물 부패의 원리, 높은 온도에서 더 빨리 상한다에 위배되는 상황이라 신기해서 찾아보니
음식물을 부패하게 하는 박테리아가 좋아하는 활동 온도가 10도에서 약 60도까지인데 밥솥의 보온 온도는 그보다 약간 높은 70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의외로 간단한 원리네요. 그렇지만 여전히 신기합니다. ㅎㅎ
그러저러한 이유로 우리집 전기밥솥은 밥을 담아두는 경우도 있지만 빵을 해동할 때도 쓰고 만두 등 식품을 보관할 때도 쓰고 다용도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전기밥솥은 안녕들 하신가요.
2020.11.25 13:18
2020.11.25 15:20
쿠쿠 밥솥을 쓰고 있는데 산지 4년이나 되었을까요? 고무패킹을 아무리 갈아도 밥이 계속 식어요. AS도 많이 받아봤어요.
겨울에는 더하죠. 밥맛이 어릴 때 일제 코끼리 밥통만 못한거에요.
전 전반적으로 전자 제품들의 질적인 하락, 2~3년 쓰고 또 사고 또 사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회사들의 정책적인
제품의 질적 저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옛날에 수십년 써도 안망가진다는 독일 전자제품 회사들이 다 망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수십년을 버티는 좋은 제품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회사가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거겠죠.
그럴 듯하게 기능많아도 시간 지나면 망가져서 또 바꿔야 회사측에서는 이익이라는게 너무 씁쓸해요.
2020.11.25 16:09
2020.11.25 19:36
그래서 오래가는 거군요.2222
쿠쿠 3인용을 4인 가족이서 쓰고 있는데 13년전 신혼때 사서 지금까지 패킹한번 갈고 남편이 전선 한 번 땜질한 것 말고는 쌩쌩해요.
그렇지만 증기구멍을 해체해보면 플라스틱이 너덜거리더군요.
증기구멍 플라스틱 때문에 보내드려야할 것 같아요
2020.11.25 20:23
엉클 로저는 원래 컨셉이 코미디라서 (실제로는 영어도 네이티브 수준으로 합니다.) 그냥 코메디로 보면 되죠. 원래 북부 유럽에서는 끓는 물에 쌀을 넣어서 익혀 먹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요리하는 것을 북유럽에서 처음 봤어요. 쌀 품종이 우리가 먹는 것과 다르기도 하고 우리는 윤기가 흐르는 찰진 밥을 좋은 품질로 여기지만 걔들은 쩍쩍 달라붙는 찰기라면 질색 팔색을 하는지라 물기가 많아도 안 달라붙는 것을 선호합니다. 설익은 밥도 흠이 아닙니다. 들러붙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그러다가 한국 쌀을 한 번 맛보면 벗어나지를 못하죠. 제가 여기서 한국쌀을 몇 사람에게 전파시켰는데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어본다.'. '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일찌기 깨닫지 못하였다!' 는 소감을 시전하였습니다. 이 동네 쌀은 제 기준에는 좀 정부미같은 맛이라서 2배나 되는 가격을 주고 수입 한국쌀을 사다 먹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도정 날짜라는 것인데 이것은 수입 한국쌀에만 표기가 되어 있죠. 어쨌든 한 친구가 그래서 한국쌀을 샀는데 전기 밥솥이 없어서 여러번의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우리집에서 먹어본 밥맛을 내기 위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기어코 냄비밥으로 성공해내더라고요. 유럽에서는 밥을 짓는데 특별히 공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꼭 맞는 양의 물을 붓고 끓으면 불을 줄여 뜸을 들이고 이런 방법 자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2020.11.25 20:55
그냥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의 차이도 있지 않나요.
영국에서도 라이스 많이 먹을텐데 저건 좀 이상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