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6 14:07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에요. 상영 시간은 한 시간 이십 분 정도이고... 장르물도 아니고 실화 그대로인 데다가 결론도 뻔하지만, 이게 미국에선 꽤 유명했던 사건이라서 제작진도 뭘 숨기려는 노력같은 건 하지 않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사건의 진상을 그냥 툭 까놓고 적을 예정입니다. 스포일러가 있는 글이란 얘기지요.
(거짓말 탐지기 그래프로 장난을 쳐 놓은 포스터. 잘 보시면 바로 범인을 알 수 있습니다. 유명한 사건이라 스포일러 같은 건 신경 안 쓴 거죠)
- 한 여성의 sns 영상들로 시작됩니다. 참말로 귀여운 6세와 4세 딸 둘을 키우며 세상 둘도 없이 착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네요. 인생에 역경이 많았는데 악착같이 노력해서 극복해내며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건 정말 하늘의 선물이었으며 하루하루가 새롭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당연히 잠시 후 화면은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며 경찰과 통화하는 어떤 여성의 목소리로 넘어가고, 경찰관의 출동 기록 영상으로 넘어가고, 너무나 행복하던 그 영상의 주인공은 딸 둘과 함께 실종되고 남편만 남았네요.
이때부터 이 영화의 내용은 두 방향으로 갈립니다. 하나는 이 실종 사건의 진행 과정을 첫 날부터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한 sns 영상과 사진들 이면에 존재했던 이 가족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 그리고 이 둘은 마지막 결론 즈음해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사실 이 전개 과정만 봐도 결말은 뻔하죠.
(심지어 저 여성은 임신 상태입니다...)
- 한 가지 이 작품의 좀 특이한 부분이라면, 제작진이 따로 찍은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정말 아주 가끔씩 짧게 들어가는 동네 소개용 부감샷 정도를 제외하면 (아마 다 합쳐도 10초가 될까말까 할 듯) 전부 다 이미 존재하는 영상과 사진, 그리고 실제로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들을 편집해서 만들었어요. 나레이션도 없구요. 그래서 보면서 계속 존 조의 '서치' 생각이 났습니다. 21세기,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만 가능한 형식의 다큐멘터리인 거죠.
- 일단 칭찬을 하자면...
결국 자료 수집과 편집이 거의 전부인 작품인데. 그런 편집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해놨습니다. 여기서 '효과적'이라는 게 마냥 칭찬은 아닌데요. 암튼 아주 잘 해놨어요. 제작진이 따로 인터뷰를 딴 것도 하나도 없고 그냥 있는 자료들만 긁어다 배치한 건데도 보다보면 그냥 기승전결 분명한 극영화를 보는 기분이 드니까요. 그리고 어쨌거나 이게 실제 사건이다 보니 마지막에서의 울림도 아주 크죠. 네. 그렇게 잘 만들어 놓긴 했는데... 다 보고 나서 전 같이 사는 분에게 '이건 보지 마' 라고 말을 했습니다. 왜냐면요,
- 다 보고 나면 너무나 불쾌합니다. 아니 뭐 실제 흉악 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스스로 골라서 봐 놓고 이게 무슨 소리냐... 싶기도 하지만 그게 뭐랄까.
80분 조금 넘는 영화의 내용 중에서 거의 절반이, 체감상으론 절반 이상이 애들 엄마의 sns 영상 + 가족과 이웃들의 촬영 영상이거든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특히 저 귀여운 아가들이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sns에 업로드된 영상이니까요!) 꽁알꽁알 꽁냥거리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 제목이 뭔가요(...)
그러니까 뭔가 제작진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겁니다. 이 훌륭한 편집이 결국 보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한 거라면 그 자극의 목적과 결과가 중요할 텐데. 그게 결국 우울과 절망과 분노, 혐오 뿐이라면 음...; 그래서 뭔가 고문 포르노류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보는 내내 들구요.
그나마 결말에서 정의사회 구현을 기대하면서 보게 되지만, 어쨌거나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마지막에 보여지는 건 그저 그 범인 놈의 징징징 소리 뿐입니다. 그리고 범인 가족들의 뻘소리까지 좀 들어주면서 빡침을 +100 하고 나면 영화는 끝.
뭐 나름 공익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다 끝난 후에 자막으로 뜨는 거, 이런 범죄는 거의 대부분 범인이 가족이며 그 중 거의 전부가 아버지이다. 이런 얘길 하고 싶었다고 생각해줄 순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네요.
- 제작진의 편집에 대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범죄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임에도 경찰의 수사 과정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경찰측 영상은 시작 부분의 긴급 출동 장면을 제외하면 그냥 용의자를 불러다 심문하는 장면들만 나와요. 뭐 실제로 존재하는 푸티지들로 만든 다큐이다 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보긴 했는데...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어차피 뉴스 영상들도 삽입이 되니 수사 과정을 못 보여줄 것도 없었거든요.
막판에 스쳐가는 발언들 몇 개를 보면 처음부터 경찰은 진범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내용들이 이 다큐에는 전혀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그 결과로 뻔하디 뻔한 진범의 정체를 숨겨주는 효과가 생기는데...
다 보고 나서 워낙 불쾌하다 보니 이런 부분까지 좀 안 좋게 보게 되네요. 장르적 재미를 강화하기 위한 제작진의 취사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서요.
- 말이 너무 길어져서 이쯤에서 정리합니다.
21세기 sns & 개인 미디어 시대에 걸맞는 시도로 만들어진 '재밌게' 잘 만든 다큐멘터리입니다. 재미(?)도 있고 다 보고난 후의 울림도 커요.
다만 이 소재를 다루는 제작진의 태도가 제겐 좀 껄끄럽게 느껴져서 칭찬을 못 하겠네요. 그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좌절, 비극을 이런 식으로 전시해가면서 어떤 공익을 얻을 수 있었는가... 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서요. 뭐 논란이 있는 사건이라든가, 범인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이라든가 그런 것도 아니고.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것도 아니고...;
근데 뭐 그냥 재미는 있습니다. 그건 분명해요. 각자 취향따라 잘 판단해서 보시면 될 듯.
+ 사실 이 다큐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희생자인 아내의 평소 취미 덕분입니다. 아내 쪽이 sns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하면서 라이브 방송도 자주 하고 가족의 일상, 본인이 살아온 인생 같은 걸 엄청 많이 업로드했던 것 같더군요. 실제로 다큐에 나오는 장면들을 봐도 일상에서 뭔가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sns 업로드용으로 '연출'을 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요. 그리고 그런 부분 때문에 이 사건이 유명해진 후 아내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나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엄연한 살인 사건 피해자인데... 사람들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 미국은 참 희한한 나라 같아요. 사건에 아주 결정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 분이 한 분 계신데... 그냥 이름, 얼굴 다 공개하고 다큐에 나옵니다. 뭐 그 전에 이미 까발려져서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이 동네 정서로는 역시 이해가...;
+++ 범인 가족들의 심정은 뭐... '가족'이니까 이해는 하지만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굳이, 언론과 피해자 가족들이 다 보는 가운데 그런 말을 했어야 했나 싶었습니다. 염치가 있으면 입 다물고 있다가 그런 소린 나중에 면회 가서나 하지...
2020.10.06 15:12
2020.10.07 02:40
범인이 누구인지는 굉장히 티가 나게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ㅋㅋ
저도 이 영화 포스터 이미지 때문에 검색 한 번 했다가 그 양반 사진이 주루룩 나와서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2020.10.06 15:59
관련된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보기 괴로울거 같아 일부러 안봤어요. 근데 그러길 잘했나 봅니다. 특히 이렇게 여성이나 아동이 관련된 사건은..참 보기가 힘들더군요 ㅜㅜ
2020.10.07 02:41
본문에도 적었듯이, 그래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뭐 사건의 성격도 그렇지만 연출의 의도가 참 의심스러워서요.
2020.10.06 16:50
저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볼까말까. 픽션으로 도피할 수도 없는 다큐는 정말 푹빠져 봤다가 찝찝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ㅋ
2020.10.07 02:42
안 보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제 소감으론 일부러 기분 잡치는 거랑 비슷한 체험이라서요. 좋은 의도로 만들었을진 몰라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2020.10.06 16:51
으- 이런 리뷰를 읽은 이상... 무섭지만 봐야겠네요. 보고싶게 만드는 리뷰를 쓰시다니!!!
2020.10.07 02:42
아니... 진심으로 안 봐도 된다는 의미의 리뷰였는데요. ㅋㅋㅋ 보신 소감이 궁금하네요. 저와는 다르게 그냥 좋게 보실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2020.10.19 17:20
내용은 참 안 좋더군요. 그런 식으로!! (ㅠ_ㅠ) 무섭네요.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로이배티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게 된 것은 좋았습니다.(고마워요!) 개인적인 자료들 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2020.10.06 21:45
하나같이 잘 만들었는데 보면 정신적 내상이 심하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아직 고민중입니다. 이 글을 보니 더 피하고 싶어지면서도 자꾸 보고싶은 충동이 동시에 드네요 ㅠㅠ
2020.10.07 02:43
그냥 보지 마세요. ㅋㅋㅋ 정말로 제 결론은 그거였습니다.
2020.10.06 22:58
멀리갈것 있나요?
한국에는 여행가방에 의붓아들을 넣어 잔인하게 살해한 인간말종도 있는데요
버젓이 인스타 하면서
2020.10.07 02:46
그 사건이 피해자의 실제 sns 영상들이 듬뿍 들어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고 그걸 제가 봤나요?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건지 짐작은 가는데, 영 쌩뚱맞네요.
2020.10.07 12:11
이런 쓸데없는 태클은 대체 뭐하러 거는거에요? 그냥 뭐든지 사람들 기분 잡치는 소리 하나라도 해야겠다는건지
2020.10.07 14:48
저런 인간말종 사이코패스는 멀리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도 있다는건데 뭐가 그리 기분 잡치나요? 인성에 문제있어요?
2020.10.07 19:18
여자 살인자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항상 여성만 피해보는 것 아니다. 여성도 약자와 있으면 약자를 학대한다. 고로 남성이라서 여성을 잡아죽이는게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잡아죽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 욕하지말고! 페미사이드 같은 소리하지말고! 이퀄리즘 실천하자. 뭐 그런.
2020.10.07 20:40
2020.10.07 10:35
다큐멘타리 윤리를 생각해보게 되는 내용이네요. 피해자가 사망이 아닌 상해였으면 이런 다큐멘타리가 나올 수 있었을까 싶어요.
최근 한국에서도 설리를 다룬 다큐멘타리가 나왔었는데 보진 않았지만... ...
보통의 다큐라면 제작자가 곧 촬영자인데, 피해로 인한 사망자가 곧 촬영자인 의도되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되는 이미지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어쩌면 죽은 사람이야말로 견제와 방어 조건이 없는 최약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2020.10.07 15:08
끝날 때 자막 나오는 거 보니까 유족들이 이 영화 제작에 적극적이었던 것 같더라구요. 뭐 그 분들 심정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불편한 기분이 가시진 않더라구요. 더군다나 애들까지 등장을 하니. ㅠㅜ
마지막 말씀이 와닿네요. 죽은 사람에겐 정말 선택지가 없죠.
2020.10.07 11:48
(스포 주의)
로이배티님 후기 읽고 어제 봤네요. 저도 어떻게 저 남자의 여친 얼굴과 실명이 그대로 나올 수가 있는지 이해가 잘 안갔습니다. 참 나중에 어디서 보니까 크리스 왓츠가 유부남인지 몰랐다고 한 니콜의 말은 거짓이었다고 하네요.
2020.10.07 15:09
뭐 미국이니까 그 분 얼굴, 실명은 이미 언론에서 다 터뜨리고도 남았겠지... 라고 생각합니다만 또 이 영화는 별개니까요. 화면 가득 고화질로 둘의 커플 사진이 두둥! 하고 뜰 때마다 난감해서 몸이 배배 꼬이는 기분이 들던데, 당사자의 허락 없이 이런 사진까지 써도 되는 건지. 본인이 허락한 거라면 뭔 생각이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2020.10.07 18:01
방금봤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네요.“
1000% 공감합니다. 마지막 그 한줄로 뭔가를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그말에는 공감하지만) 그저 공분만 가득 남는 다큐더군요. 요즘들어 넷플릭스가 이런식의 다큐들을 많이 만드네요 당연히 이런게 돈이되는 만드는거겠지만요 -_-
2020.10.08 10:09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가 진짜다!'는 평들을 전부터 자주 봤는데.
저는 제 성향 때문인지 어쩌다 보는 다큐들이 대체로 이런 식이라서 오히려 관심이 사라지네요. orz
이럴 거면 차라리 픽션을 보면 맘이라도 편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0.10.07 22:52
막 일어난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을 지나갈 때 눈이 딴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으니 결국 보고 난 후 심란한 기분이 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만든 사람들이야 아마 가감없이 소재를 보여주려고 했겠지만, 결과물은 그 매끈한 완성도에도 불구 얄팍한 선정성에 머물러서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제작에 참여한 제임스 마쉬는 옛날에 [맨 온 와이어]로 오스카 받았지요.
2020.10.08 10:10
네 정말 솔직히 말하면 그 '얄팍한 선정성'이 최우선 목적이고 마지막의 메시지는 걍 면피용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맨 온 와이어는 들어만 보고 보지는 않았는데, 그쪽은 상당히 건전한 다큐멘터리 쪽 아니었나요. 뭐 소재 자체가 드라마틱하긴 했지만요. ㅋㅋ
보지 말라면서 궁금하게 만드는 이 리뷰는 무엇? 범인 언제 나오나 끝까지 읽었단 말예욧 ㅠ (추가) 크리스 와츠로 구글링하면 상세사건이 나오는군요. 야이, 천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