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자로서의 동물들

2020.11.17 22:45

귤토피아 조회 수:568


"'하몽의 나라' 스페인, 돼지를 저렇게 더럽고 끔찍한 곳에서 기르다니..." (한국일보)
https://news.v.daum.net/v/20201117183013062

"On Ableism and Animals, SUNAURA TAYLOR"
https://thenewinquiry.com/on-ableism-and-animals-2/


장애학과 동물권 옹호론을 결합시키려는 수나우라 테일러(Sunaura Taylor)의 글을 일부 읽게 되었는데,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증언자로서의 동물'에 관한 것이었어요.

대개 동물들은 음성언어가 없고,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목소리가 없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동물권을 옹호하는 활동가들조차도 'voice for voiceless(목소리 없는 자들을 위한 목소리)'라는 표어를 걸고, 인간이 동물의 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프레임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장애학자로서, 수나우라 테일러는 음성언어의 보유 여부가 증언능력의 보유 여부를 정한다는 이런 도식에 반대해요. 음성언어를 통한 증언능력이 없다 해도, 증언의 수단은 한 주체의 신체와 삶 전 전체라 할 수 있기에, 동물이나 특정 장애인은 '증언할 수 없는 자'가 아니라는 거죠.

대상이 규범적인 음성언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대상의 권리에 대한 인정 여부를 결정하려는 인식구조를, 수나우라 테일러는 에이블리즘(abelism, 능력주의)의 일환이라고 취급하더군요. 테일러는 특정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주체의 권리를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해요. 특히 조리있게 말하는 능력 등을 포괄하는 의미의 '이성'은 기뻐하는 능력, 슬퍼하는 능력, 아파하는 능력, 다른 개체들과 유대를 갖는 능력을 비롯한 다른 '능력'들에 비해 우월하지 않다는 주장을 해요. 

이렇게 보면 하몽의 나라에서 길러지는 돼지들은 그들의 절망 섞인 눈빛으로, 고통을 회피하려는 몸짓으로, 나아가 "탈장, 종기, 탈구, 관절염, 조직 괴사"등으로, 어둡고 더럽고 비좁은 수용소의 고통을 증언하고 있음이 분명해보이죠. 

동물을 위해 쓰는 인간은 동물의 의사를 대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동물의 말을 주류언어(인간의 음성언어, 때로는 영상언어)로 번역하면서 주석을 달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해처럼 보여요. 




"살려고 오른 세상 꼭대기..'지붕 위 그 소'는 어떻게 됐을까" (한겨레)
https://news.v.daum.net/v/20201114135604331

근래에 본 가장 인상적인 기사에서 특히 증언의 측면을 발견해요. 

"300~400㎏의 소가 축사를 받치는 쇠파이프들 틈에 목이 걸려 몸을 늘어뜨린 채 죽어 있었다. 물에 잠긴 나뭇가지 사이에 다리가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한 소들도 있었다. 더운 여름 물에 젖은 사체들이 며칠 만에 해골로 발견되기도 했다. 주검들을 모은 ‘소 무더기’가 길가 여기저기에 산더미처럼 쌓여 쓰레기 더미와 자리를 다퉜다."

"생존한 소들도 생사를 오갔다. 살에서 고름을 흘리며 썩어가는 소가 있었고, 다리가 굵은 통무처럼 부어올라 일어서지 못하는 소도 있었다. 어깨가 빠져 몇걸음 걷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찢어진 피부가 아물지 않아 벌건 살을 내보이며 기력을 잃었다. 축사에 갇힌 채 물에 휩쓸렸다 살아남은 한 송아지는 “고생을 한 탓에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얼굴에 부스럼이 피고 털이 하얗게 셌다."

"느닷없는 급류에 휩쓸리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헤엄치고, 남쪽 바다까지 떠내려가서도 끈질기게 살아 돌아오고, 물이 따라오지 못하는 산속 절로 달려가 풀을 뜯고, 파손된 지붕 위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구조되길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고기로 태어나 오직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길러진 소들도 인간만큼이나 살고 싶어 하는 생명이란 사실을 인간 세계에 각인시켰다."

"유독 예민한 소였다. 다른 소들이 기중기에 들려 내려갈 때도 지붕에서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마취주사기를 맞고서야 땅에 내려온 소의 뒷다리는 양철 지붕에 긁혀 “거북이 등껍덕 모양으로” 벗겨져 있었다. 이튿날 아침 박남순이 축사에 나왔을 때 이른 새벽 혼자 쌍둥이(암컷)를 낳은 소가 혀로 새끼들을 핥아주고 있었다. “배 속 새끼들을 잃지 않으려고 지붕에서 꿈쩍도 안 했나 보다”고 박남순은 짐작했다."

"90310의 머리에 타격이 가해졌다.

방혈(피 빼기), 부산물(머리와 다리) 절단, 박피(껍질 벗기기), 내장 적출(적내장과 백내장 별도 분리)을 거쳐 세로로 2분할 됐다. 40여분 만에 90310은 세척까지 마친 ‘지육’(머리·다리 분리 뒤 세로 2등분)이 됐다. 배 속에 품고 있던 새끼는 폐기(식품위생법 규정) 처분됐다."

이런 문장들에 기록된 소들의 행동, 몸짓, 신체, 품고 있던 새끼들의 죽음까지가, 소가 증언하는 소의 삶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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