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6 14:06
오랫만에 회사바낭입니다.
0.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회사가 팔린지 1년이 넘었습니다.
기존의 경영진은 대부분 날아갔고 많은 임원들이 내부 승진했습니다. 새 '회장'이 저희 업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인원을 많이 갈아치우거나 외부에서 데리고 오는 건 일단 피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방만한(...)' 경영을 하던 시절에는, CEO 아래에 크게 기술담당 부사장, 생산담당 부사장, 판매담당 부사장, 재무담당 부사장이 있었고 그외 잡다한 조직이 있었습니다.
망하고 나서는 CEO가 재무담당 부사장의 역활을 겸하고, 판매담당 부사장이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을 했습니다. 기술, 생산 담당 부사장은 바이바이...
제조업인데, 엔지니어 출신 임원자리가 공장장, 연구소장, 품질이사 밖에 안남은거죠.
젊은 엔지니어는 국내 경쟁사로 이직하고, 고참 엔지니어는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직하고... 인력유출이 시작됩니다.
그 와중에 연구소장이랑 품질이사가 짤리다 시피 나갑니다. 하는 일이 없다고.. 그 뒤로 대행 체제가 됩니다.
1.
그러다가 회사가 인수되었죠.
다시 생산부사장, 판매부사장, 재무/지원 부사장 체제가 되었습니다. 대행 체제 였던 자리도 다 채워주긴 하더군요.
(기술 부사장은 만들고 싶어도 못했을거에요.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정작 생산부사장을 영업 출신 상무가 승진합니다. 공장 현장과 기술을 모르는 분이 생산을 총괄하니 아래는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죠.
누구도 생산부사장한테 '그게 기술적으로는 이렇습니다.' 라고 말하지를 못해요. 내가 영업 출신이라고 무시하니? 라는 말 나올까봐.
생산부사장이 뜬구름 잡는 소리 하면 그 아래 공장장들과 연구소장, 기술팀장들이 우격다짐으로 끌고 가는거죠.
그러다 보니 전체적은 통일성이 부족하고 사업장별로 개인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2.
들리는 소문으로는, (좀 과장되긴 했겠지만)
요즘 생산부사장이랑 판매부사장이 싸운답니다.
코로나 시국에 판매쪽이 나름 선방을 하면서 회장이 판매부사장을 칭찬하고 있는와중에, 판매부사장이 '우리가 품질이 안 좋아서 영업활동이 좀 힘드네요? ㅎㅎ' 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다니는 바람에 생산부사장이 체면을 구겼다나...
사실 회사 망하고 제대로 된 설비투자도 못하는 와중에 엔지니어들 탈출하면서 공장의 수준이 떨어진건 사실입니다. 제조설비라는게 단순히 사람이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친다고 좋은 제품이 나오는건 아니니까요. 회장이 인수하고 공장에 와서 '이제 돈 없어서 사람이 직접 멘땅에 헤딩하던 시절은 지났다' 라고 했을 정도니...
생산부사장이 '영업에서 품질 얘기 다시 못 꺼내게 해라!' 라면서 직접 매주 팀장급까지 참석시켜서 회의를 합니다. 생산부사장이 이렇게까지 챙깁니다. 라는 걸 어필하려고요.
그런데, 회사의 기술수준이라는게 부사장이 매주 모아놓고 구박만 한다고 올라가나요....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중론은 판매 vs 생산 부사장의 싸움은 생산부사장의 완패. 내년에 생산쪽 물갈이 될것 같다고 예상들을 합니다.
예전처럼 생산부사장 없어지고 판매부사장이 총괄부사장이 되던지...
생산부사장을 내부승진 또는 외부수혈을 해오던지...
(그런데, 업계 최저연봉으로 유명한 저희 회사에 누가 오려고 할지 모르겠네요. 정작 회장은 저희 많이 준다고 생각한다던데... 업계 최저연봉인데, 그룹사내에서는 고연봉..(...))
3.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 정치싸움의 유탄을 맞게 되는데...
저는 생산부사장 휘하가 아닌, CEO 직속인데, 생산부사장이 자꾸 뭘 시켜요.
뭐 시킬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저희 업무가 아닌 것을 저희 업무랑 엮어서 시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생산부사장 아래 부서중 본사에 있는 팀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여기저기 다니면 '그걸 왜 가팀장이 하고 있어?' 라고 놀라거나, 혀를 찹니다.
잘 돌아가면 자기가 시킨거고, 잘 안되면 자기 직속 팀이 다치지 않게 해야 하니 저희한테 던지는거 아니겠냐는...
그렇다고 부사장이 시킨걸 '저는 CEO 소속인데요' 라고 반사 할수도 없고...
요즘 위가 많이 아픕니다.
2020.11.06 14:10
2020.11.06 14:30
먹고사니즘이 달려 있으니... ㅠ.ㅠ
2020.11.06 14:14
이러나 저러나 사내정치 골치아픈건 똑같군요. 지인은 격무-인원 충원-사내 정치가 겹쳐진 문제로 스트레스받다가 사표를 썼는데 제대로 수리되지 못하고 생각만큼 이직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골머리를 썩고있더군요.
오지랖일지 몰라 조심스럽고 이런 생각들면 얘기안하는게 상책이라지만, 위대장내시경 검사 꼭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스트레스 덕분에 미란성 위염이 제법 심한 위염으로 발전하고 대장에선 용종까지 발견되서 퇴사 후에도 고생한 입장인지라 회사다니는 친구들 스트레스문제로 속 아프다고 하면 병원부터 가보라고 얘기합니다.
2020.11.06 14:31
2년마다 위/대장 내시경 하는데... 내년에 해야죠
2020.11.06 14:57
생산부사장은 문서나 이메일을 통해서 일을 시키나요? 설마 구두로 시키지는 않겠죠?
ceo직속이면, ceo에게 이 업무를 해도 되는 것인지 확인해보는 것은 실례가 되나요?
지시된 일을 잘하든 못하든,,,
지금 하는 업무외에 다른 업무를 할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네요. 다른말로 하면, 지금 팀에 일이없는 거,,,, 이렇게 보일수 있어요.
2020.11.06 17:30
팀장 회의때 구두로 시킵니다... 제가 근무지가 공장이다 보니 팀장 모아놓고 회의할때 옵저버로 들어갔거든요.
다른업무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냐 없냐는 이 회사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력없다고 일 안시키는거 아니고 여력 없다고 못하는건 안되는 회사라.
사장이 시키는 일, 부사장이 시키는 일, 팀이 원래 하던 일... 다 해내야 합니다.
2020.11.06 15:24
누구네 집 불구경만큼 재미있는....;
위 아프시면 양배추, 양배추,양배추 드셔요. 그 즙으로 만들어 파는거 말고 양배추 사다가 데처서 드셔 보세요. 뭔가 민간요법 스럽지만 20대 시절 완치 어렵다는 그 위장병을 석달 만에 완치하게 만들어준 담당(양)의사선생의 식이요법 처방이었어요. 위장병은 자기가 처방한 약만 먹어선 절대 완치 못한다고 하시면서 끼니 제때 챙겨 먹고 + 평소보다 식사속도를 배로 늘리고 + 데친 양배추를 매일 아침마다 먹으면 완치 가능하다. 그런데 이걸 정말 자네가 할 수 있겠어? 별 기대 없이 처방을 해주셨죠. 그런데 그걸 해내니 깔끔하게 완치 되더군요. 아사리판 같은 회사는 모르겠고 소중한 위장 잘 지켜내시길.
2020.11.06 16:08
'식사속도'인가요 '식사시간'인가요?
2020.11.06 16:50
이런....앞 뒤가 안 맞는 말을 했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식사시간’이 맞습니다.
2020.11.06 17:13
그르네요
식사속도를 반으로 줄인다 또는 식사시간을 배로 늘린다 . . .
저도 눈치 못챘네요 ㅎㅎㅎ
2020.11.06 17:31
카베진을 자주 먹게 됩니다. ㅋㅋ
이것도 장복하면 안된다던데..
2020.11.06 17:14
고래싸움 너무 무섭네요 ㅠㅠㅠㅠ
가정의 평화가 잘 지켜져야 할텐디
2020.11.06 17:33
부사장이 빡쳐서 저를 짜른다면 가정의 평화도 무너지겠죠...
CEO 가 자기 밑 인력을 지킬 파워가 없다보니...
판매부사장은 판매외에는 관심 없어서, 생산부사장이 조직개편을 주도하는 위치인지라 지난번에 썼던, 제 상사님 나가게 되는 조직개편을 실행한 것도 생산부사장이었거든요.
아마 저 양반한테 찍히면 팀장 자리 보전 못할지도 모릅니다.
2020.11.07 00:01
2020.11.07 11:18
구글이나 페이스북으로 가시면 .... 안되겠죠?
사내정치,, 그 골치 아픈 거. 지혜롭게 이겨내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