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0 08:34
아래 은밀한 생님이 아이들의 대화를 기록하신 것을 보니 저도 뭔가 적고 싶어졌어요. 딸은 한국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고 한국어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완전 콩글리쉬 대화를 여기서는 윤색했다는 것을 유념해 주세요.ㅋㅋ
딸: 왜 사는 데 필요도 없는 걸 학교에서 그렇게 어렵게 배워야 되죠.
나: 뭘 말야.
딸: 영어는 사는데 얼마나 필요해.. 미디어에 대해서도 배우고 가짜 뉴스에 대해서도 배우고, Geography도 세상에 대해 더 알게 되고.. 근데 수학은 누가 그런걸 나중에 필요로 한다고 x,y하면서 배워야 하는 거죠.
나: 옛날에는 농사일이나 하고 실도 잣고 수도 놓고 하는 것만 애들에게 시켰는데 꼭 누군가는 태양이 왜 저렇게 돌까, 다음 혜성은 언제 올까 이런 거 궁금해 했던 사람들이 있었지.
딸: 음...
나: 대부분은 그냥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 배우는 걸로 만족했는데 꼭 그 이상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었어. 그사람들이 모여서 수학도 하고 과학도 하고 아카데미아를 이루게 됐지.자기들이 계산한 공식으로 하늘이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딸: ...
나: 니네가 배우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다 만들어 놓은 거라 실생활에 필요하지는 않지 그냥 뭐든지 궁금했던 사람들의 자기 만족이니까.
딸: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학교에서 수학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언페어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나: 수학은 객관적이지 맞고 틀리고가 있으니까. 영어는 너도 알다시피 선생님에 따라 에세이 점수가 많이 달라지잖아.
딸: 맞아. 그건 그래요.
이어지는 차 안에서 대화.
딸: 왜 아시안 아이들이 수학을 잘하는데 다 과외 (tutoring)을 해서 그렇다고 하지
나: 누가 그래
딸: 신문 아티클에서도 그렇고 선생님들도 그렇고
나: 내가 보기엔 튜터링은 수학 잘하는 것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인데.
딸:무슨 말이예요?
나: 아시안 이민자들은 여기에 올 때 기술을 가지고 이민 오는 것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어느정도 교육 잘 받은 사람이 이민을 와. 그 사람들의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딸: 응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나: 그런 사람들이 자식의 성적을 엄청 신경 쓰기 때문에 튜터링도 시키는 거지, 기대수준이 아주 높으니까. 그래서 아시안 이민자 애들이 전반적으로 우수하지 적어도 하이스쿨까지는.... 그러니까 튜터링 때문에 수학을 잘하는 게 아니라 집안의 기대가 높으니까 수학을 잘하는 거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
딸: 아..(완전히 이해한 눈치)
아무 내용도 아닌데 길게 적었네요.
결론은 사춘기, 불평불만 많은 아이 키우기 힘들다 입니다. 좋아하는 과목만 잘하고 싫어하는 과목은 선생님이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되게 되게 싫어하고.
얼마나 예민한지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바로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웃으면서 아이를 학교로 배웅하고 환대하려고 마음을 계속 먹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자기 방에서 안나오는 시간이 길어져도 별 불만 없습니다. 하하
2020.10.30 09:29
2020.10.30 12:27
저도 이민 초기에는 아시안의 유난한 교육열이 계층상승 욕구의 반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사회적 계급의 상승보다는 오로지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구로 생각되어요.
정치적으로 학문적으로 문화적으로는 계층을 높이 올라가려는 생각이 별로 없고
기술자, 고급 기술자 - 의사 엔지니어 등으로 너무 만족하는 경향이 아시안 사회에 편만해 있다고나 할까.
돈은 벌지 몰라도 그냥 기술자예요, 의사라도.. 정책 결정을 하는 자리로는 갈 생각이 없어요. 못 간다고 해야 하는지.
뭐 돈이 중요하긴 하니까요. 정치에 열매를 맺으려면 몇 세대 더 필요하기도 하고...
2020.10.30 09:35
2020.10.30 12:30
가끔영화님 댓글을 보니 역시.... 수학은 만고에 쓸 데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일단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우리 딸한테는 쉿!ㅋㅋ
2020.10.30 09:39
2020.10.30 12:29
달을 보시는 분 lunagazer답게 굉장한 책을 추천해 주셨군요. 님이 번역을 하면 제가 먼저 일단 한국어로 읽어 보고 싶습니다!!
2020.10.30 13:17
[수학의 쓸모]라고 올해 번역되었어요.
2020.10.30 18:27
네 말씀해주신것처럼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자녀분이 한국어가 서툴다하셔서 번역본은 언급을 하지 않았어요. ㅋ 전자책 구매 링크 남깁니다.
https://ridibooks.com/books/754028446 한국어 소개는 가볍게만 참고하시길.
2020.10.30 10:19
정말 현명하게 대처하시는 군요. 많이 배웠습니다.
2020.10.30 12:29
헐.. 그런 건가요..하여간 감사합니다.
2020.10.30 13:38
사실 중학교 때는 저도 수학을 내가 왜해야되는지 미적분을 못해서 내가 원하는 대학에 못간다는게 너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가 아니라
지금도 수긍을 못하겠어요. 저같이 무식한 사람 입장에서는 수학계가 지네 밥그릇 놓치기 싫어서 학생들 수포자로 열등감덩어리로 만들어 놓을만큼
수학이 그만한 가치는 없다고 지금도 믿고 있으니까요. 이공계에서는 수학이 절대적이겠습니다만,,,사실 모든 분야에 수학의 정석에 나오는 수학이
손톱만큼이라도 필요한 부분이 있던가요????? 여전히 잘 모르겠네요.
어찌되었든 자녀 교육은 무척 존경스럽게 하신다는데는 동의하고 따님도 역시 논리적이고 똑똑하게 느껴지네요.
2020.10.30 16:19
2020.10.30 20:57
수학을 너무 싫어하는 제 베프 딸아이한테 이렇게 얘기해주라고 보여줘야겠어요 ㅋㅋㅋ 근데 제 베프는 이미 딸아이에게 공감해버린.. "야 솔까 수학이 그게 사는데 뭔 도움이 되냐?" 이러고 있...
아이가 수학 싫어한다고 하면 “아 내 자식은 적어도 싸패나 쏘패는 아닌가 보다” 하고 안심해도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더군요 -_-;
아시안 이민자들의 높은 2세 교육열, 기대치는 그만큼 이민 간 나라에서 계층상승 욕구가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한거 같아요.
계층상승 욕구가 높다는건 아직 ‘상승’이 어느정도 가능한 사회라는 소리도 되겠군요.
그게 아니더라도 동아시안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체면문화’가 작동되는거 같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어느모로 보나 아이들에겐 그저 헬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동아시아 본국들 보다는 그 곳이 분명 더 나을거 같긴 하지만 이것도 막상 아이들의 시시콜콜한 처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꼰대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겠네요.
한편, 수학은 그렇다치고 물리와 지구과학 그리고 지리는 정말 재미 있는 분야인데 이게 어렸을때 진입이 잘되고 못되고에 따라 나중에 편차가 큰것이 좀 아쉬워요. 수학에는 양면성이 있는데 인문학적인 수학으로 논리학,철학과 형제지간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물리학,지구과학,지리 등의 기초적 도구로서의 수학이 있어요. 이러나 저러나 세상을 최대한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주는 것들인데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이런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흥미와 호기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지 못하는거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