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스(님), 자본주의

2020.11.24 15:33

Sonny 조회 수:1288

어제 술자리에서 혜민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일단 종교인으로서 그가 보이는 물질적 행복추구가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는 견해에서 출발했지만 대중의 반응을 자본가에 대한 질투로 보는 해석도 있더군요. 저는 그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혜민스가 얄팍한 건 사실이나, 이렇게까지 전국민적 공분을 살 일인가에 대해서는 반응이 완전히 갈렸거든요. 이 시대 참된 땡중으로 혜민스가 욕먹을만 했다 VS 많고 많은 힐링팔이 비즈니스맨 중에 혜민스를 그렇게까지 두들겨 팰 이유는 또 뭐냐 이런 양상이었는데 그 어느 쪽도 혜민과 대중 모두를 긍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자 쪽에 속하는 저도 혜민을 놀리는 반응이었지 그렇게 분개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푸른 눈의 민머리 스님 현각 스님의 일갈이 이 이슈의 최고발화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종교인이 돈을 (많이) 벌면 안되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특정 직업군이 보여야 할 행동양식에 대한 기대치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저같은 사람들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직업적 위치를 걸고 사회적 영향력을 얻을 때 직업적 윤리에 대한 기대를 분명히 인식해야 된다고 보거든요. 목사님이 벤츠 끌고 다니는 건 이제 별 거 아닌 일이 되어서 크게 욕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만, 일단 탐욕을 멀리하고 물질주의적인 자세를 버리라는 것이 거의 모든 종교의 기본적인 스탠스잖아요. 오히려 결혼도 하고 욕망의 자제에 대해 크게 교리적 제한이 없는 개신교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고기도 끊고 머리도 자르면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아예 통제하는 불교라면 세속적 모습이 조금 더 고깝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인 수준의 종교적 결백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스스로 내세운 교리의 일관성이 얼마나 지켜지느냐, 이런 문제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혜민스에 대한 비판은 아주 깨끗한 종교인에 대한 기대일 수는 없겠지만, 대중들의 시기와 자본주의적인 성공에 대한 혐오만은 아닐 것입니다. 스님의 세속적인 모습을 다들 비웃는 거죠.


혜민스가 남산타워뷰를 자랑하며 공수래 풀수거를 외친다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가 뜨기 전에도 어차피 내실없는 내용으로 그의 구매층은 한정되어있었고 그가 성공한 후에도 그를 소비할 사람들의 파이는 크게 늘거나 충성이 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현상을 자본주의와 도덕의 결합적 측면에서 달리 분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 selling과 buying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와 그 사이의 무관심이라는 선택지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싫어하면서도 사고 누군가는 사지 않을거면서도 비판하는, 정치적 힘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상품의 품질과 효용이라는 문제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는 거죠. 어떤 상품이 시장에 나와있는 것 자체,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파는 자본주의적 관념이 다수로부터 정치적 허용을 받은 상태일 것입니다. 여기서 정치적 허용이란 두가지 힘으로 작용합니다. 하나는 숫자, 하나는 사회통념적인 합의입니다. 이 전까지 혜민스가 후자만을 어기면서 살았기에 판매와 유통이 가능했다면 현재는 자신의 비즈니스에 반응하는 대중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상품과 셀러에 대한 불호가 엄청나게 커진 상황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혜민스가 자신의 알맹이 없는 책을 팔고 타로점과 남녀 짝지어주기 프로그램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치유 어쩌구 학교에서 팔아도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혜민스의 이미지, 즉 마케팅이 자본주의의 정치적 작동에서 아주 큰 역효과를 일으켰을 뿐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면 스님의 비즈니스는 어디까지 통용될 수 있을까요. 만약 혜민스가 아이팟을 안끼고 연간 1억이 넘는 포시즌즈 호텔 헬스 회원권을 안끊었다면, 집 자랑을 안했다면, 과연 그의 마케팅은 성공적이었을 수 있을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기본적으로 혜민스는 스님이고 불교의 기본 교리와 자본주의는 쉽게 충돌할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것은 자본주의적으로만 따져도 브랜드 이미지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자본주의적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탈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 불교는 자본주의 속에서 종교적 가치관을 셀링하는데 있어서 다른 종교보다 더 큰 난이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종교는 세상에 어떤 식으로 유통되어야하고 종교적 유명인은 어떻게 비즈니스와 종교적 가치관을 적절하게 혼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혜민스에 대한 업화와 같은 원성은 그래도 스님은 돈욕심 좀 안밝히고 세상 외딴 구석에는 자본주의 없이도 가능한 구원의 길이 열려있으면 좋겠다는, 속세인들의 어리석은 희망과 기대가 작동한 결과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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