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태평양 전쟁사 이야기 퍼시픽 주제의 대표적 그림>>

>>> 태평양 전쟁의 핵심을 잘나타내는 대표적 삽화가 되겠습니다.

 

중앙 태평양은 니미츠, 서태평양 은 맥아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정신적 자존심으로 서로 견제가 심했던 사이로서 해군과 육군의 서로의 프라이드가 너무 강해 루즈벨트가 힘들어 하기도 했던 그런 사이입니다. 이 둘이 조이고 있는 부분은 필리핀입니다. 즉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실현하려는 대본영의 야욕을 부수기 위해서는 식민지 수탈의 물류거점인 필리핀을 조이는것뿐이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대륙침공중국의 물자, 태평양전 물자가 출발되는 파이프라인역활이었지요.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할때 태평양 전쟁의 핵심을 찾는다면 많은 전선이 있지만 그리 어려운게 아니라고 한적이 있습니다. 니미츠라인과 맥아더라인의 궤적을 찾다보면 이오지마와 오끼나와로 패망까지 순조롭게 이해하실수가 있습니다.

 

 

팔라우제도의 펠렐류섬은 트럭섬으로 부터 1600km 필리핀 민다나오 섬 동쪽으로 부터 800km 떨어져있으며, 섬내 비행장 북쪽은 우무르브로골이라는 산이 북방으로 뻗어있고 험한 나무와 수많은 동굴이 있는 섬입니다. 타라와 전투이후 미군은 마리아나 제도와 일본군의 트럭섬 해군 기지를 고립시킨 후 서방 진공을 위한 최후의 장애였던 캐롤라인 제도의 팔라우 제도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 황소라고 불리우는 할제이 사령관 

 

당시 황소 할제이 제독은 팔라우 제도 공략을 반대했습니다. 타라와전투의 재판이 될 우려 때문에 팔라우 제도를 우회하여 필리핀을 직접공격을 제안하게 됩니다.

※ 타라와 전투는 1943년 11월 20일부터 23일 사이에 중부태평양의 타라와 환초에 있는 베티오 섬을 점령하려는 미해병대와 방어하던 일본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로 과달카날 상륙에 이어 미해병대가 실시한 두 번째의 적전 상륙 작전이자 강력한 방어태세를 갖춘 해안에 대한 상륙작전으로서는 사실상 최초의 시도였슴. 길이 3km, 최대 폭이 불과 1km 가 안 되는 이 조그만 섬을 차지하려는 76시간의 전투에서 미해병대는 1,000 명 이상의 전사자를 기록함으로써 타라와는 이오지마, 오마하 등과 함께 피투성이의 상륙전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타라와 공략은 1100㎞나 떨어진 도쿄에 대한 폭격거리를 줄였고, 상륙작전에 매뉴얼적인 전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할제이 제독의 상관인 니미츠 사령관은 팔라우 제도를 공략하지 않으면 후환이 되므로 무시 할수 없다고 주장 하고, 9월 15일 팔라우 제도에서도 가장 큰 비행장이 있는 펠렐류섬을 급습하기로 계획합니다.

 

>>> 월리엄 루퍼터스 소장


콰달카날 상륙을 성공시킨 해병 1사단장 월리엄 루퍼터스 소장은 조금의 장애는 있을지 모르나, 단기간에 이작전은 끝날것으로 확신하고 3일이상 안걸릴것이다 라고 호언 하게됩니다. 할제이 제독도 펠렐류섬 상륙작전 전 팔라우섬의 일본기지들을 공격하던중 미미한 일본군의 반격을 보고 필리핀을 직접 공격할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남필리핀의 민다나오 등의 서부 태평양 작전을 잠시 중단하고 레이테섬을 즉시 공략해야 된다 고까지 주장을 하게 되지요. 이에 니미츠는 펠렐류섬의 공격을 찬성하게 됩니다. 일명 Operation Stalemate2 작전이 진행하게 됩니다.

>>> 관동군 14사단 정예부대

>>> 이노우에 사다애(엄청 귀한 사진입니다.

외쪽은 얼굴이고 오른쪽은 미국의 어느 지방신문에 2차대전 특집에 실린 사진임.  이사진 찾는데 운이 좋았지만 무지 힘들었음)

 

일본 대본영은 이섬에  관동군 최강으로 불린 14사단을 이노우에 사다에를 사단장으로 파견,전술배치하고 니미츠 공격에 미토보병 제2연대 및 다카사키 보명 15연대 1개대대가 핵심이 되어 펠렐류 섬의 수비를 맡기 위해 요새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이 섬은 산호초로 되어있어 콘크리트와 같은 단단한 지질을 이용하여 500개 이상 달하는 동굴을 만들고, 지구전에 대비하여 진지구축을 함으로서 미군 상륙에 대비하게 됩니다. 본래 이섬은 일본이 인광채굴을 하던 곳 으로 산호층 동굴을 확장, 1000명이 들어갈수있는 동굴까지 만들게 됩니다.

 

>>> 동굴과 산호를 부셔서 콘크리트와 믹서하여 만든 엄개 토오치카(요즘 사진과 예전사진)

 

이들의 전술적 형태는 자살공격이나 병력, 탄약 낭비 같은 전술은 구사하지 않고 미군 의 교두보 확보를 저지하고 후퇴하면서 포 등으로 사전 목표물을 파괴하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폐하를 위해 개죽음을 하여 펠렐류 섬 을 적에게 넘겨 주는 것은 대의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고 까지 이노우에는 부하들에게 훈시합니다.

 “ 사이판전의 교훈을 철저히 살리는 데에 승리에의 길이 있다. 미군이 의지하는 것은 물량 이외에는 없다. 그 물량을 가지고 미군에 보복한다면 미국의 동요는 혜아릴 수 없이 클 것이다. "

동굴을 이용, 숨어서 미군 을 공격하라게 그의 지침이었던 것입니다. 이노우에 중장은 부하 장교들에게 7가지 반격계획을 훈련시켰는데 각 계획 마다 다른 조명이나 깃발에 의해 통제될수있도록 하고, 팔라우 수비 책임을 맡은 사단 2연대장 나카가와 쿠니오(中川州男) 대좌(大佐, 대령)는 사단장의 명령에 따른 방어전술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부하들을 준비시켰습니다. 당연히 목적은 가능한 오래 버티는 것 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본군의 전법으로 미해병 1사단은 혹심한 희생을 치루게 됩니다.

 

 

드디어 8월부터 뉴기니 및 주변섬의 맥아더 기지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팔라우 제도 전체를 폭격하고, 그뒤 할제이제독의 항모 함재기들이 폭탄을 들어붓습니다.

 

>>> 펠렐류공항 비행폭격 모습

올덴도프 소장의 포틀랜드 같은 순양함 구축함등이 3일동안 펠렐류섬을 폭격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서있는 야자 나무가 없어 폭격목포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폭격의 규모를 가늠할 정도입니다. 상륙당일 상륙수송선 선장이 저녁식사 때까지는 돌아올수 있을겁니다. 라고 하니, 루이스 B 체스터 플러대령은 그렇게 간단하다고 생각한다면 5시에 해안에 와서 나하고 같이 저녁을 먹고 무언가 기념품이라도 줍는게 어때? 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대화 뒤에 격게 될 지옥도를 그들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미 해병1사단  체스터 풀러대령 

 

1944년 9월 15일 필리핀공략을 위한 발판으로 사용하기 위해 미해병 제 1사단이 팔라우 제도 펠릴류도 화이트비치 와 오렌지비치에 상륙하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됩니다. 일본군은 해안에서 부터 강력하게 저항하는 작전대신 처음으로 미군의 상륙을 허용하고 내륙으로 끌어들여 반격하는 유인작전을 시작합니다. 미해병대는 서쪽의 곶으로부터 가위의 사북에 해당하는 비행장 연변의 길이 1.5키로 남짓한 해안에 상륙을 하게 됩니다.

 

 

3개연대병력이 횡렬로 산호초를 건널 때 그들은 우무르브로골산(퍼시픽 보시면 이산을 기억하시길)을 왼쪽에 바라보게 되는데 그때 바라본 산은 정말 작아서 하잘것없는 산으로 인식하고 있을즈음, 10문의 박격포와 대포 기관총을 사용하여 일본군 수비대는 산호초위의 해병부대를 향해 포탄을 퍼붓게 됩니다. 직격탄을 맞는 수륙양용전차들(일명 앰트랙)… 지뢰 때문에 앰트랙과 전차들은 1렬종대를 펼치게 되는데 적의 포화의 좋은 밥이 될 뿐이었습니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오마하 비치에 버금가는 처참함을 맞보는 미해병 1사단
당시 중순양함 포틀랜드 위에서 쌍안경으로 섬의 모습을 주시하고있던 포병사관은 등성이 중턱에 무거운 철문이 열리면서 대포가 머리를 내미는가 싶더니 해안에 불을 뿜고 다시 동굴안에 숨어들고 철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포틀랜드 200미리 포는 일제히 사격을 하지만 일본군의 숨어있는 대포는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내밀고 해안을 향해 해병대를 두들겼다고 하는데 포병사관 왈 지겨워서 대포잡는것을 포기 하고 그랬다는군요. 피츠버그의 강철을 전부 저곳에 퍼부어도 때려 부술수는 없다 라고 했을정도이니

 

 

>>> 당시 미군 상륙을 괴롭혔던 일본군 해안포 지금은 그 지옥의 전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녹음속에서 녹슬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 경전차와 미군 LVT 녹쓴 모습들이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듯 합니다.

한편 해안 앞바다는 불타는 앰트랙과 산호초를 넘어 전진하는 해병대원들의 참상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앰트랙의 일본군의 직격탄 피해가 너무 심해 무전기 모두가 물에 수장되었다고 합니다.(이부분은 퍼시픽에서 무전기 찾는 씬이 나옵니다.)지원요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구사일생의 해병대원들은 일본군의 대전차호에 뛰어들어 몇 시간 동안 꼼짝 못하는 바람에 서로 다른 소대중대와 연락이 안되 더더욱 피해가 많았다고 합니다. 기관총 좌에 쓸어지는 해병대원들은 교두보를 어렵게 확보했지만 그 총좌 때문에 큰 혼란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어떤 중대장은 해안가에 집중적으로 퍼붓는 사격을 피해 백사장 안쪽으로 도달후 그들의 엄개토치카를 봤는데, 그 두께가 2미터나 되는 토치카였다고 합니다. 각 해병중대 소대의 생존자는 거의 7할이상이 일본군 집중사격에 죽게되고  찢어져 죽은자, 뭉개진 머리, 내장이 튀어나오고 신체절달이 널려져 있었다니 지옥도 그 자체였지요. 많은 토치카의 기관총 사격으로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대응방법이 없어 일일이 수류탄으로 하나씩 제거하면서 전진하고, 적의 집중사격으로 와해되는 해병대 대형들은 다시 방어진을 펴면서 전진. 드디어 오후에 비행장 근처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이때 일본군은 비행장 북쪽에서 산개선을 만들고 해병대 진지로 공격하게 되는데 여 때가지 봐왔던(일루강 전투처럼) 환성을 지르면서 총알받이를 무릅쓰고 무식하게 공격하는 그런 대형은 전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때 플러대령 휘하 하사관은 비행장쪽 격납고 배후에 미군이 쏜 박격포탄 흙먼지 속에서 전차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두 미해병대가 숨어있는 쪽으로 포탑을 움직이면서 진격해오게 되는데 이때 미군들은 손에 닿는대로 쏘아댔다는군요. 일본군은 퇴각은 커녕 격렬한 기세로 미해병대 진지로 돌진을 하는데 13대의 경전차가 기총과 37미리포를 쏘아대면서 진격하는 일본군 보병사이를 누비며 전속력으로 돌진해 옵니다. 플러연대 소속 2대대는 측면에서 전차에 포화를 퍼부어 그중 2대를 주저 않히게 됩니다. 이때 비행장 남단에서 일본군 전차보다 큰 셔먼전차가 4대가 나타나게 되고 75미리로 주포를 쏘면서 일본군 전차의 한가운데로 돌진해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8대의 셔먼 전차가 가세하고 거기다 해군의 급강하 폭격기1대는 저공으로 일본군에게 폭탄을 투하하게 됩니다. 미군의 우세한 화력에 일본군 경전차는 대적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95식 경전차는 장갑이 너무 얇아 해병대가 사용하는 어떤 화기에도 거의 저항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몇대의 전차는 해병대 코앞까지 돌입해 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나까가와 대령의 반격작전이었지만 수분내로 별효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일본군 전차는 거의 파괴되고 보병부대는 끝내 해병대 진지에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밤이 되어서도 일본군의 박격포 공격은 계속되고 거기에 해병대의 대응사격 역시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뒷날 오전 또 다시 시작되는 전투사격에 미해병대는 전사자가 속출하게 되는데, 어제 상륙한 235명의 중대원중 에서 부상하지 않고 멀쩡한 생존병은 단 78명이었을 정도이니 얼마나 치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멸하다 싶은 이러한 중대들은 재빨리 교체부대가 떠 맞고 전멸한 중대 예비인원들은 예비대로 돌려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펠렐류 공략전은 이제 시작도 안되었다는 것

많은 등성이나 구릉가운데 60미터 넘은 것은 얼마 안되지만 엄개토치카가 있어 일본군의 저격병과 기관총은 물론 박격포, 로켓포, 야포등이 동굴 구석구석에 숨겨저 있었습니다. 쉽게 설명 들이자면 게릴라 전과 같이 땡볕에 해병대가 나타나면 동굴입구에서 마구 쏜 다음에 해병대가 장소확인을 위해 접근하면 순식간에 숨는 그런 전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므르브로골 산에 접근한 이때부터 산하나의 경사면에 무려 35개나 되는 동굴이 있고 해병1사단이 3일간의 전투에서 거의 절반을 읺었다는 사실은 사단 사령부 장교들의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 북부를 공략해야된다는 긴박감에 계속적으로 나머지 부대를 총동원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노우에 장군의 새전술이나 나까가와 대령의 방어진지의 깊이를 몰랐던 것입니다.

이 냉엄한 사실은 몇일뒤 밝혀집니다. 우므르브로골 산 꼭대기에서 풀러대령 2대대는 일본군에게 밀리게 되고, 이때 지원부대로 1개 중대가 측면을 공격하게 되고 산정상까지 점령하지만 복잡한 산세와 완강한 나까가와 수비공격에 되려 되밀려나고 맙니다. 이곳이 우므르브로골 산 피의 능선 전투입니다.( Bloody Nose Ridge)

전투 6일째 해병연대 1개 대대는 3개중대중 상처를 입지 않는자가 74명이고 소대장부터 모두 전사,부상으로 연대 전체 손실이 1,7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지칠대로 지친 병사왈~! “ 우리들은 이미 연대가 아니라 그 잔존병일 뿐 이었다”

10월초 전투에서는 일본군은 7해병연대 1개중대 48명이 30m높이의 봉우리에 저항없이 올라가도록 놓아두게 됩니다. 모든 해병대가 산정상에 올라갔을 때 숨어있던 일본군 수비대는 3면에서 박격포, 대전차포 및 소화기로 맹렬한 포화를 퍼부게 됩니다. 기슭에 있던 다른 중대는 정상의 고립된 소대를 엄호라려고 했으나 어디서 기관총을 쏘는지도 모르고 당하게 됩니다.

부상병은 바위그늘까지 기어서 가든가 그자리에 꼼짝 못하고 쓸져 있었는데 포탄은 그들에게 사정없이 몇번 씩이나 떨어지고 애달픈 목소리로 구원을 청하거나 전우게게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해병대원들은 버려두어서는 도저히 살아남을수 없을 성싶은 부상병들을 바위에서 굴러 떨어뜨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어떤 병사는 발에 덩굴이 걸려 공중에 매달려 전우가 가까스로 끌어내려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120고지의 혼전으로 그 48명은 3시간 15분동안 전투로 생존자는 겨우 11명이었다고 합니다.

 

>>> 미드 퍼시픽 6부7부의 주요 전장인 우므르브로골 산 실제 사진입니다. 이 사진도 구하기 무지 힘들더군요. 휴~

 

 

 >>> 퍼시픽 7부에 나오는 우므르브로골 산 전투에서 주위에 펼쳐진 처참한 모습에 넗을 잊고 바라보는 주인공 유진. 그 일본군 주검은 우리 할아버지들이 아니었을까요?

 

1사단 보고서에 의하면 이때부터 소모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지에 남아 들어박힌 적을 한걸음 한걸음 철저히 부수면서 전진했다고 하는데 전차에 탑재된 장거리 화염방사기가 수백개의 동굴과 토치카를 불태우고, 동굴입구를 폭약으로 파괴하면 일본군은 터널을 통해 뒤로 탈출했다고 하니 쫒고 쫒기는 혼전 그자체였습니다. 하늘에서 코르세어 전투기의 폭탄과 기관총으로 엄호를 많이 받기는 하였으나 지하에 숨어있는 일본군에게는 거의 효과가 없었습니다.

 

 >>> 동굴에 숨은 이노우에 일본군을 죽이는 방법은 불로 지지는 방법뿐 

 

어떤때는 해병대 대대장이 일본군의 동굴 바로 위에 전투지휘소로 정했는데 발밑에서 밥지는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전투 때문에 거의 7할이상이 죽은 상황에서 화가난 대대장은 부하에게 밧줄을 묶은 TNT 선물세트를 동굴입구에 떨어뜨려 그들의 은신처를 폭파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10월말  펠렐류섬의 싸움에서 병력의 약 절반을 상실한 5,7연대는 마침내 육군부대와 교체하게 됩니다. 일본군도 6,200명 병력중 살아남은 자는 700여명 미군은 육군 보병 81사단이 펠렐류 공략전을 인수하게 합니다. 81사단장 폴 J. 뮬러소장은 서두르지 않고 불필요한 병력소모를 최대한 줄이는 작전을 수행하게 됩니다. 부대 전진전 항상 중화기, 네이팜탄을 사용하고 장갑을 씌운 불도저를 동원 셔면전차의 진로를 트게 됩니다. 보병들도 전진방법이 바뀌게 되는데, 모래주머니를 앞에 놓고 밀면서 조금씩 기어서 전진하게 되죠. 그리고 방어가 견고한 난관에 부딪치면 공병대가 300m의 쇠파이프라인을 만들고 그 끝의 노즐을 마치 호스로 물을 뿌리듯이 일본군의 진지를 불로 지져버리는 화염공격을 단행하게 됩니다.

 

>>> 왼쪽이 81사단장 폴 J. 뮬러소장

MAJ. GEN. PAUL J. MUELLER (left), with Rear Adm. Robert B. Carney (center) and Admiral William F. Halsey (right).

 

1개월 이상에 걸친 전투끝에 육군 보병연대는 일본군이 들어박힌 고지를 3면에서 공격하여 점령하게 되고 그 3일전에 일본군 수비대장 나까가와 대령은 연대기를 불사르고 자결하게 됩니다. 이로써 펠렐류섬의 긴 싸움은 이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해병대 전사자 1,252명.육군 전사자 277명, 부상병은 해병대 5,274명. 육군은 1,008명을 헤아렸다고 합니다. 일본군 전사자는 민간인 포함 약 1만명  어느 누가 계산을 했는데 나까가와 수비대원 하나를 죽이는데 평균 1,589발의 중소화기 총알이 필요로 했다는군요. 섬 전투가 끝나고 어느 해병대장교는 나중에 이렇게 말을 합니다.

 

“ 펠렐류도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누군가가 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들은 생각했다. 그런 곳은 누구라도 두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

 

펠릴류상륙전투의 종결로 미군은 필리핀으로의 길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러나 해병대와 육군의 일본군과의 처절한 지옥 같은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미 본토에서는 이 전투의 실상을 잘 알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것은 맥아더의 요란한 광고와 함께 필리핀 으로 되돌아가는 작전이 시작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태평양 전쟁사 이야기 퍼시픽  잊혀진 지옥島 펠렐류섬 전투

 

 

감사합니다.  

다음편은 패색이 짙어가면서 옥쇄전이 시작되는 이오지마 나 그렇게도 돌아가겠다고 광고하고 다녔던 맥아더의 소원성취를 이뤄준 레이테해전 이 둘중에 하나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퍼시픽도 모래면 8부가 되는데 끝날때가 된것 같습니다.

 

■ 사족 : 윗글의 주요 골격은 라이프지사의 세계2차세계대전 시리즈에서 주요펙트를 가져왔습니다. 실제 사진과의 글들은 해석에 문제가 좀 많더군요. 그래도 다행스런건 이 무비스타가 땅개출신이라 쉽게 풀었습니다. 좀더 어려운 지연전이라든지 그런 용어를 쓸려다가 더 쉽게 쓴다고 썼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펠레류 전투에 참가한 90년대 미해병 1사단 용사들과 2000년대 미또부대원들 동지들이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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