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미드소마

2020.09.14 13:29

겨자 조회 수:827

'미드소마'를 여러번 봤습니다. 볼 때마다 슬픕니다. '파리대왕'을 읽었을 때와 비슷합니다. 끔찍한 데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어떤 강렬한 진실의 편린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줄거리: 대학생 대니는 순식간에 가족을 잃습니다. 조울증을 앓는 동생이 부모를 살해하고 자살했기 때문이죠.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과 4년 좀 못되게 사귀었어요.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대니에게 별 신경을 써주지 않고, 크리스티안의 친구들은 대니와 헤어지라고 충고합니다. 크리스티안의 친구 펠레는 스웨덴의 작은 마을 출신인데, 자기네 마을에 미드소마 축제가 있으니 여행 가자고 조쉬에게 제안합니다. 멋진 여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스웨덴을 기대하고 조쉬와 친구들은 크리스티안도 같이 가자고 하죠. 결국 대니까지 스웨덴의 하가 공동체로 여행을 갑니다. 


세상에 왜 이렇게 엉망진창인지 설명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말세론, 하나는 미세론입니다. 사실 둘은 같은 거라고 봐도 되겠네요. 말세론은 세상이 이미 망했거나 혹은 점점 망해가고 있고, 지금의 세계는 최초의 순수를 잃고 점점 더 나빠진다고 설명합니다. 진정한 세계는 과거에 있었죠. 그 이후로부터는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고 설명합니다. 미세론은 앞으로 진정한 세계가 올 거고 그 세계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말세론이 미세론과 얽혀져 있죠. 


그런데 왜 나에게는 세상이 이미 멸망했는데 남들의 세상은 그대로 돌아갈까요? 나는 살아있어야할 이유를 잃었는데. 오늘도 태양은 밝고 꽃은 아름답고 새는 지저귑니다. 사람들은 들떠서 여행을 가고 누구는 논문을 쓴다며 바쁘지요. 하지만 내 세상이 멸망했다면 지지않는 태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조금씩 조금씩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고 세상이 종말로 다가가는 게 놀라울 턱이 있을까요? 이미 내 세상은 종말을 맞았는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강간당한 여성, 사회적으로 짓밟힌 여성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느낌이 드네요. 지금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산불 재로 붉게 물들어,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를 연상케합니다. 판데믹은 잡힐 기미가 안보이는데 사람들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며 오늘도 시위를 합니다. BLM 운동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즐기는데 그 옆으로 BLM 시위하는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이질적이죠. 누구의 세계는 종말 중인데 누구의 세계는 황금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번 판데믹이 나고 나서 왜 사람들이 시위에 나올까 하고 생각했지요. 어찌 됐든 전염병이 퍼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시위는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렇지만 고기를 먹기 위해서 감염의 위험을 무릅쓸 수 있다면 (판데믹 중 적절히 PPE 없이 고기 공장 가동), 흑인의 인권을 위해서도 감염의 위험을 무릅쓸 수 있겠구나 하고도 생각해보았지요. 왜냐하면 그들에게 세상은 망해버린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유전'을 보려고 시도했는데 무서워서 도저히 많이 못보겠더군요. 다만 에디팅이 어찌나 뛰어난지, 다소 느리게 시작하는 도입부를 그냥 넘길 수 없더군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86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90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308
113632 잡담...(bts와 군대, 파티가 없는 날) [5] 안유미 2020.10.07 757
113631 [넷플릭스바낭] 시간여행물을 빙자한 스파이물 '시간여행자들'을 보고 있어요 [11] 로이배티 2020.10.07 718
113630 코디스밋맥피를 어릴 때 보고 만난다면 가끔영화 2020.10.07 258
113629 <축빠들만> 다시 불붙은 경쟁구도 [10] daviddain 2020.10.06 655
113628 The boys in the band, 1970년작과 넷플릭스작 비교 [4] S.S.S. 2020.10.06 472
113627 <그린랜드>봤습니다-스포일러 [1] 메피스토 2020.10.06 466
113626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다시보고(스포) 예상수 2020.10.06 484
113625 [바낭] 수험생 클릭 금지 - 이번 추석의 승자는...... [2] 스누피커피 2020.10.06 756
113624 한자와 나오키 시즌 2 예상수 2020.10.06 434
113623 Clark Middleton 1957-2020 R.I.P. 조성용 2020.10.06 231
113622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조성용 2020.10.06 561
113621 [넷플릭스바낭] 범죄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머더: 이웃집 살인 사건'을 봤습니다 [25] 로이배티 2020.10.06 1491
113620 잡담...(스웩과 건강관리) 안유미 2020.10.06 393
113619 완전 코미디 좀비 영화를 봤어요 [1] 가끔영화 2020.10.05 465
113618 에어팟 프로를 샀는데, 공간감 패치가 정말 놀랍네요. [6] 하워드휴즈 2020.10.05 1013
113617 Sometimes i feel so sad [4] 예상수 2020.10.05 502
113616 소니가 드디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가는군요. [10] Lunagazer 2020.10.05 1003
113615 [웨이브] 007 스펙터 뒤늦게 보았습니다. [10] 가라 2020.10.05 735
113614 월요병 [5] daviddain 2020.10.05 445
113613 Thomas Jefferson Byrd 1950-2020 R.I.P. 조성용 2020.10.05 22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