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2010.11.11 15:08

금은동 조회 수:4106


반대를 위한 문법적 착각
진중권의 'ex libris'/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철학은 문법적 착각의 문제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란 언어의 사용법을 착각하여 특정 영역에만 타당한 어법을 마구 다른 영역에 옮겨놓음으로써 발생하는 요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철학에 남은 과제가 있다면, “언어라는 수단으로 우리 오성에 걸린 마술과 싸우는 것”이다. 문법적 착각으로 인한 오성의 마법은 철학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가령 “…에 반대한다”는 표현의 문법이 그렇다. “나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에 반대한다.”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럼 이 문장은 어떤가? “나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투표에 반대한다.” 내가 아는 한 파업과 투표는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다. 헌법에 찬성했다면, 그로써 우리는 이런 얘기는 애초에 안 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시민단체에선 시민을 볼모로 잡은 지하철 노동자들에게 빼앗긴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민사소송을 준비했단다. 재미있는 어법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나는 지하철 노동자의 불법파업에 반대한다.” 역시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나는 지하철 노동자의 불법투표에 반대한다.” 선관위에 미리 투표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후 (투표일이 지난 다음에야 떨어질) 투표허가서를 받지 않고 불시에 집단으로 투표장에 나타남으로써 선거행정에 대혼란을 야기한 노동자들의 불법투표. 재미있는 어법이다. ‘불법’이라는 말이 ‘파업’이라는 말과 무리없이 결합하는 이 기괴함. 내가 아는 한 한국어 고유의 통사론적 현상이다.  

 

이건 어떤가? “나는 여성들이 길에서 담배 피우는 데에 반대한다.” 그럼 이건 어떤가? “나는 남성들이 길에서 담배 피우는 데에 반대한다.” 몇년 전 신문임을 표방하는 어느 안보상업주의 광고지에 이 문제에 관한 찬반양론이 실렸다. 광고주의 장난이었을까? 공교롭게도 여기서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흡연할 권리에 반대론을 편 것은 여성이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런 게 찬반양론의 대상이 되다니. 이 역시 대한민국 고유의 언어현상이다.

 

이건 어떤가? “나는 여성이 ‘자기 성취를 위해 아기를 갖기를 거부’(이문열)하는 데에 반대한다.” 그럼 이런 말도 할 수 있을까? “나는 남성이 자기 성취를 위해 아기를 갖기를 거부하는 데에 반대한다.” 또 이건 어떤가? “나는 여성이 자기 성취를 위해 아기를 더 낳기를 거부하는 데에 반대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느 남성 소설가가 자기 성취라는 것 때문에 아기를 더 가질 수 있는데도 가족계획에 돌입하는 데에 반대한다.” 재미있는 어법이다.

 

또 이건 어떨까? 나는 남자다. 누군가 옆에서 말한다. “나는 당신이 남자라는 데에 반대한다.” 우습지 않은가? 그럼 이건? 나는 이성애자다. 누군가 옆에서 말한다. “나는 당신이 이성애자라는 사실에 반대한다.” 이것도 우습다. 동사적 표현으로 바꾸자. 나는 여자를 사랑한다. 누군가 말한다. “나는 당신이 여성을 사랑하는 데에 반대한다.” 역시 우습다. 내가 여성을 사랑하는데, 왜 남이 거기에 찬반 투표를 하는가? 자, 그럼 이 문장은 어떤가.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

이런 것들은 “찬성”이나 “반대”라는 말이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는 맥락이 아니다. 그걸 논의대상으로 삼아 찬반을 표하는 그 행위 자체가 인권침해인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문법적 착각에서 비롯된 미신이며, 철학은 오성에 걸린 이 마법과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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