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동물/ 바위

2020.08.14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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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은 '동물'입니다. 교통사고 이후 몸의 이런저런 통증에 시달리노라니, 호모 사피엔스니 만물의 영장이니 하는 고상한 지칭에서 떠나 '나는 동물이다' 라는 자각이 또렷해졌어요.
인류는 '지식의 시대'였던 근대까지의 이유기와 성장기를 지나 '생각의 시대'라는 현대를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문명/문화적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기가 동물임은 망각하고 살죠. 대부분의 삶이 배우고 생각하고 창작하는 지적/정신적 행위에 집중돼 있으니까요.

움직이기 힘든 몇달을 보내며 몸을 단련시킬 수 없다 보니, 근육이 점점 느슨해지면서 지적인 작업의 집중력과 기억력도 떨어지는 걸 실감 중입니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몸을 잘 단련시켜줘야 두뇌도 삐걱이지 않고 작동한다는 것,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격언이 몸에 방점이 찍힌 진리가 아님을 절감해요. 
요즘 '걷기'로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데, 삼십 분만 걸어도 숨소리가 귀에 공명될 정도로 호흡이 가빠집니다.  그래도 누워지내다가 직립해서 여러 동작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죠. 특정 부위만 움직이며 그것에만 집중해서 살아가는 패티시스트는 면했으니까요. 

2. 많은 시인들이 바위의 존재형식에 대해 노래해왔습니다. 침묵과 단단함의 표상이기 때문일 테죠.
生의 오류에 타격을 입어 보지 않은 사람은 바위의 삶을 꿈꾸지 않을 것 같아요. 아니 아예 바위의 존재를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거겠죠.

언젠가 설악산 겨울 등반 중에, 눈 그친 하늘 아래에서 가마득한 적막으로 빛나는 바위를 본 적이 있습니다. 
푸른 듯 잿빛 기운이 돌던 정면. 그 우툴두툴한 표면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더니 바위의 크기는 알 길이 없고, 말 문을 닫고 사는 저의 나날이 확연히 느껴지더군요. 그리하여 침묵하는 바위의 슬픔은 저의 위안이 되고, 오랜 세월 단단한 바위의 승리는 저의 슬픔이 되었습니다.

바위는 하나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바위 스스로는 그런 자세마저도 자각하지 않는 것이죠. 그런 승리, 그런 슬픔을 생각하면 때때로 기쁘고 때때로 아득합니다. 그러나 뭐 바위는 바위, 저는 단단함에 금이 가기 시작한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간직할 추억도 있고 지킬 비밀도 있고 정신과 의지를 깨우고 있으니 not 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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