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4 03:37
어떤 영화 리뷰 유튜버가 디지털 교도소 사건을 보고 엄청나게 분개하더군요. 그는 배트맨 시리즈를 인용하면서 이런 일은 픽션이니까 용납이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으며 무고한 피해자는 단 한명도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딱히 틀리진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의는 표면적으로는 다 맞으니까요. 그의 말에 수많은 댓글들이 동의하며 사적 제재의 위험을 엄중히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픽션의 훌륭한 고민은 그 고민을 다루기 위해 이미 훌륭한 세계가 배경으로 설정되어있는데 현실의 고민은 픽션을 따라잡을만큼 훌륭한 배경이 있지도 않다고. 배트맨의 세계에서는 고담이라는 음울한 도시와 약탈 및 불법밀매를 저지르는 갱스터들이 있지만 한국이라는 세계에는 너무 비루한 성범죄자들과 자발적 무능을 맹신하는 법관들만 있지 뚜렷한 힘을 가진 조커나 배트맨 같은 자경단이 없습니다.
영화 배트맨을 보면서 "그래도 사적제재는 안돼"라는 교훈을 얻는다면 그건 좀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영화 배트맨이 관객에게 깊은 고뇌를 일으키는 이유는 고담이라는 도시가 법이라는 질서 자체로는 도저히 자체회복이 불가능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배트맨의 질문은 이 대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공적제재를 도저히 신뢰할 수 없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아주 정확하고 신속한 사적제재는 과연 공적제재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가. 즉 이 질문은 법이라는 질서의 파괴와 불능에 대한 고통을 일단 느껴야 성립하는 질문입니다. 일반 세계의 최후의 상식과 약속인 법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배트맨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자격이 있습니다. 배트맨이 옳으냐 나쁘냐. 이런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배트맨조차도 자신의 정의를 계속 의심하고 피로를 느껴서 화이트 나이트를 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법을 일시적으로 대체하는 자경단 본인조차도 자신의 행위를 긍정하지 못합니다. 그 모든 행위를 법적 질서의 회복을 위한 과정이라 여기죠. 그래서 그는 하비 덴트를 공적 제재의 새로운 상징으로 세우려고 애를 씁니다. 배트맨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의 영원한 활약과 그의 초법적 의미를 긍정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이면서 이상적 법을 구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되새길 뿐이죠. (하비 덴트는 배트맨의 적극적인 공모자입니다) 현실의 관객이 배트맨을 보고 해낼 수 있는 생산적 성찰은 배트맨의 전면적인 긍정이나 부정이 아니라 배트맨이라는 초법적 존재가 태어나게 된 세계와 그가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가게 된 그 계기,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세계를 감각해보는 것에 있을 겁니다. 히어로이즘은 늘 그 자체로 뭔가 히어로익한 게 아니라 불가피한 희생과 분투를 필연으로 만드는 세계의 부조리에 있습니다.
법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모든 저항과 투쟁은 법 자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법이 옳은가. 옳은 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옳은 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데 왜 누군가는 저렇게 법적으로 시끄러운 상황을 굳이 만들어내는가. 그러니까 브루스 웨인은 왜 박쥐가면을 쓰고 배트맨이라는 자경단 행위를 하는지 그 질문을 현실세계로 옮겨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아주 간단하게 판단하고 결론을 짓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법은 지켜야지... 노조, 성소수자, 여성의 성질을 가진 사회적 존재들이 하는 투쟁에 대해서 주로 이런 반응들을 합니다. 변화가 절실하다못해 생존의 영역을 판가름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법을 이야기하고 그 변화의 난폭함을 지적하는데서 멈춥니다. 그 심판관들은 과연 보수적이어서 그럴까요. 저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기 문제가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딱히 노조가 아니고, 성소수자가 아니고, 여성이 아니니까 남의 입장에서 훈수를 두고 자신의 기분을 절대적인 가치관처럼 과장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여자들이 음란하고 게으르고 거짓말만 하고 운전도 못하는데다 남자등골 빼먹고 성범죄 사건을 조작해서 무고한다는 편견들이 "김치녀"와 "삼일한"으로 돌아다닐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회사에서 갑자기 짤릴 상황이 되어서 못나가겠다고 할때는 딱히 말이 없습니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노동의 권리를 뺏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헌법적으로 명시되어있는 가장 기본적 법적 권리가, 모든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깨닫는 자유와 평등이 다른 인간에게 보장되지 못하고 파괴될 때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자기 일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표현의 자유이거나, 문제이긴 하지만 끼어들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일베와 오유가 온갖 혐오표현을 할 때는 침묵하다가 메갈리아가 생겨나니까 갑자기 수많은 남자들이 인터넷의 폭력과 언어폭력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자기 일이 되었으니까요. "일베나 메갈이나"라고 많이들 이야기했죠.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는 1년을 못버티고, 길게 쳐봐야 6개월정도 번영을 누리다가 사라졌습니다. 메갈리아에 그토록 분개하던 남초 커뮤니티들은 이제 일베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일베가 나쁜 건 너무 당연하고 딱히 신경쓰지 말자고 포기해버립니다. 어느 한 쪽은 도저히 참을 수 없고 기어이 응징을 해야하지만 다른 한 쪽은 그 전부터 오랫동안 참아왔고 그 이후로도 별 말 없이 지속상태를 누리게끔 허용하고 있습니다. 법과 질서를 부르짖고 어떤 누구도 함부로 권리를 침해당해서 안된다는 그 위대한 도덕이 이렇게 편향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요. 이건 아주 간단한 현상입니다. 남의 인권은 나 자신이 잠깐 어색해하거나 불편해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하찮고 아무튼 금지되어야 하는 압도적 논거가 됩니다.
그 신성한 법리와 권익이 과연 어느 때에 더 치명적이고 위급하게 지켜져야 하는가. 법의 절대성을 이야기하며 자경단의 자격을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경단이 나쁘고 좋은가, 이것은 배트맨에 대한 질문만큼 무의미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배트맨이 왜 나왔고, 배트맨이 뭘 하고 있으며, 배트맨 다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질문이고 찾아야 할 답입니다. 디지털 교도소에 질문을 해봅시다. 저래도 되냐고요? 모릅니다. 원칙적으로는 나쁘죠. 그걸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디지털 교도소의 부정확함과 악랄함에 회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여기서 더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디지털 교도소는 왜 나왔습니까? 디지털 교도소는 뭘 하고 있습니까? 디지털 교도소가 사라지면 그 대체재로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여기서 "남의 일" 이론이 적용됩니다. 그런 건 모르겠고, 아무튼 나쁘고, 저런 짓은 멈춰야 한다... 고담 시티가 얼마나 무너져가든, 배트맨은 아무튼 가면을 벗고 자수해야 합니다. 자경단을 비웃으며 법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한 법만큼은 잘 지켜진다는, 아주 좁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 정답은 누군가의 대답이나 질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절대로 묻지 않는 질문 자체에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은 평화롭고 안전하며 공평하다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질서가 견고하다는 질서에 대한 신봉입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해?' 저항과 반발의 필요를 의심하는 그 말에는 굳이 저렇게까지는 할 필요는 없다는 질서에 대한 경험적 신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안당하니까요. 한 개인의 도덕의 니즈를 가장 잘 증명하는 것은 그의 부작위입니다. 분노와 저항이 필요가 없는 세계가 안전한 도덕을 구축하고 평화로운 도덕 외의 도덕을 치외법권으로 상정합니다. 법을 이야기하고 질서를 이야기하면서 법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일축해버리려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으니까요. 법치의 효율을 아직까지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상위 계급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울분과 경계심이 없습니다. 본인들을 지켜주는 질서를 믿으면 되니까요. 바로 눈 앞에서 인간이 모욕을 당하고 품평을 당해도 그건 그냥 웃고 넘기거나 좀 나쁘긴 한데 무시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 됩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안당하거든요. 법에 기대면 되거든요. 본인들이 당하는 폭력이나 불행이 집단적 역사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차별이 그렇듯이요.
자경단을 비웃고 사적제재의 위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나요. 그것이 바로 이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난 모르겠고, 그건 너희들 일이고, 아무튼 내가 볼 때 좀 괜히 그러니까 나대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주 간단한 원칙과 그 원칙이 파괴된 두 특정 지점을 이야기할 뿐 그 지점 사이의 아뜩한 간극과 그 지점 양끝으로 펼쳐진 수많은 질문들은 곧바로 사라집니다. 사적제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긍정하고 있나요. 공적제재의 파괴를 긍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대단한 법적 철학이 있는가. 아니오. 그런 거 없습니다. 제가 왜 '신앙'이라는 단어를 썼냐면, 법에 대한 이들의 긍정과 신뢰가 현실의 논리를 초월하는 자기최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변호인>이 천만 넘게 흥행을 하고 빨갱이 대학생을 혀차며 꾸짖는 송강호를 임시완이 경멸하는 장면이 널리널리 회자되어도, 그 영화는 절대 현실에 연결되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은 자기자신에 관한 거지만 여자, 성소수자, 노동자, 경제적 빈자, 고졸 같은 정체성은 절대 "자기 자신"에 관한 게 아니거든요. <광해>에서 이병헌을 향해 기득권 중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대의 법"입니다. 그 영화도 천만을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과는 무관합니다. 이병헌과 같이 분노하고 흐느껴도 영화관 밖에서는 독점적 질서에 대한 원칙주의자로 다들 돌변하는 것입니다. 여자, 성소수자, 노동자, 빈자, 고졸은 "백성"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표현할 때 그것은 "특정 사안"이 됩니다. 그건 보편적 일도 아닙니다.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특정 집단이 어떤 폭력을 당해도 그건 그냥 "특정 사안"입니다. 절대로 인간의 일이나 흔한 일이나 우리 모두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분노에 대한 이해도 단순해집니다. 그냥 맞으니까 친 게 되는 겁니다. 맞았어도 참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안맞거든요. 디지털 교도소를 가지고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탄식하지만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야기안합니다. 디지털 교도소는 누가 세웠나요. n번방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n번방 재판은 잘 돌아가고 있을까요? 조주빈은 매일 매일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법 체계가 성범죄자의 반성문을 받으면 형량을 감해주는 시스템이거든요. 조주빈은 피해자를 기어이 법정에 호출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이 그렇게 되어있으니까요. 홍대 누드모델 도촬 사건이 터졌을 때, 유례없이 신속하게 조사가 진행되었고 가해자는 곧바로 얼굴이 털렸습니다. 손정우 얼굴을 우리가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 디지털 교도소가 신상을 털었으니까 알려면 알 수 있겟죠. 손정우 형량 얼마나 받았을까요. 1년 6개월입니다. 성인 남자가 군면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짧은 구속기간입니다. 소위 범죄 안저질고 군대 가고 뺑이 치며 살기 VS 1년 6개월 형량 받고 군대 안가고 몇십억 벌기 의 실사판입니다. 승리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검찰에서 조사 받고 있지 않습니다. 군대에 가서 어떤 재판을 받고 어떤 형량을 받을지 우리가 알 수 조차 없죠. 소라넷 구속하는 데 몇년 걸렸습니까. 디지털 교도소 잡는데 20일 걸렸습니다. 또 말해볼까요. 바로 어제, 2020년 9월 23일 군 현역 남성장교가 본인의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집행유예 받았습니다. 9월 21일에는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었네요. 끝이 없군요. 다시 한번 배트맨 세계관으로 다시 말해봅시다. 자경단이 뭐가 필요합니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박쥐가면을 쓴 미치광이에게 열광합니까? 고담시는 이렇게 안전하고 법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안전하고 공적 제재는 원만하게 돌아가는데요. 남자는 안전하지 않습니까.
질서는 선의 다른 말이 아닙니다. 질서는 그냥 힘을 뜻합니다. 질서를 선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힘을 바로 끌어올 수 있고 상대적으로 힘이 센 사람들입니다. 힘이 있고 힘을 누릴 수 있으면 당연히 힘이 선이 되겠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나 힘은 질문할 거리가 되고 힘에 부딪혀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힘이란 무엇인가. 어떤 힘도 쓸 필요가 없는 힘입니다. 힘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힘을 키우고 힘을 휘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힘인 질서는 균등하게 나눠져있습니까? 여자는 남자와 똑같이 도촬이나 모욕이나 폭력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갑니까? 힘이 있는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의 세계는 이렇게 나뉘고 남일과 내일은 이렇게 나눠집니다. 남일에 대해서는 충고가 아주 쉽습니다. 누군가에게 없는 질서가 자신들에게는 있거든요. 질서야말로 가장 거대한 자본입니다. 자취를 해도 남자는 옆집에 여자가 사나 안사나 궁금해하지만 여자는 방범창을 달고 개인용 방법알람을 검색합니다. 남자들은 자신있게 말합니다. 왜 그렇게 유난떨어? 꼭 그렇게 시위를 해야해? 너무 특정 사안에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거 아니야? 왜 신상털이 같은 사적제재에는 그렇게 관대해? 질서를 이미 누리고 있는 자들에게는 생존이나 안전이나 모욕당하지 않을 권리를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기에 그 질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에 반응합니다.
질서주의자들은 조두순의 안위를 걱정합니다. 조두순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조두순이 어떤 짓을 또 저질를 수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조두순 범죄의 피해자 부모가 조두순이 1km 근방으로 이사온다는 사실을 하소연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법이라는 질서가 이미 그렇게 정해져있고 조두순은 이미 정해진 형량을 살지 않았습니까. 남자는 그런 일 안당하거든요. 이미 일어나고 있는 공적제재의 실패와 균열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안빈낙도를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까요. 일어나지도 않은 사적제재가 더 큰 고민거리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법적 실패는 딱히 이야기할 것도 아닙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하겠지요. 그렇게 정의가 중요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한명도 생기면 안된다고 하는 이들이, 왜 법의 실패, 질서의 공백이 생기는 그 지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어쨋든 법은 지켜져야 한다... 어떤 고찰도 없는 이 단순한 당위명제는 딱 하나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단 한마디로 그것을 고정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독점욕구입니다. 질서주의자들은 질서를 사랑합니다. 그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퍼져나가든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 질서의 가치가 너무 저렴해지거나 흔들리면 안됩니다. 화폐처럼 그 가치는 일단 불변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숭고한 목적을 가졌어도 법은 아무튼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곧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어느 한 쪽이 자꾸 파기를 당하고 보호도 배상도 받지 못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자신의 법은 지켜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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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184886625897824&mediaCodeNo=257&OutLnkChk=Y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일들이 왜 발생했는지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것”이라며 “성폭력, 특히 아동과 관련된 문제들은 워낙 처벌 수위가 낮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나서서 내가 사회를 위한 복수라도 공익적 목적으로 하겠다, 이게 디지털교도소 취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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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배트맨을 다시 보고 싶군요. 여러가지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한 것도 같으니까 다른 영화 이야기를 더 해보면 어떨까요. 사적제재, 자경단에 대해서 <시카리오>의 예를 드는 건 어떻습니까. 법적 고발과 심판 대신 암살을 행하는 알레한드로에게 그 누구도 저러면 안된다고 개인적 도덕론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카르텔을 싹 쓸어버리는 공적제재가 완전히 붕괴하고 오히려 법이 그것을 돌보는 그 현실을 개탄합니다. 이렇게 영화가 공적제재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의 슬픔과 절망을 이야기할 때는 다들 동감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터넷 댓글만 달고 비판하는 글만 써도 그것은 엄청난 반사회적 질서파괴행위이자 이중적인 행위가 됩니다. 그렇게 위험해져도 된다는 거냐고 묻는 이들에게 어떤 사람들은 자꾸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지만... 글쎄요. 저는 언제나 구체적인 질문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몇명이 더 강간을 당하고 살해를 당하고 성범죄를 당해도 디지털 교도소는 절대 나오면 안되고 집행유예가 판치는 법원을 마냥 믿고 있어야한다는 말이군요...? 알레한드로는 왜 검사씩이나 되어서 또 다른 카르텔의 암살자 노릇이나 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혹시 우리는 그를 이해해버리면서 질서의 반역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런 일은 절대 영화에서만 일어나고 법과 그 수행자들은 아주 깨끗하니까 그런 건 상상으로만 즐기면 되는 것일까요?
@ 룸살롱에 가는 행위를 비판받아 마땅한 사회악이라고 칩시다. 질서주의자들은 어떤 남자들이 룸살롱에 다니고 그것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그러면서 여자를 모욕하는 걸 크게 문제삼지 않습니다. 룸살롱 가는 것이 언제 악이 되느냐. 그것은 룸살롱 가는 걸 버젓이 떠들고 다니는 남자를 다른 누가 욕할 때, 저 욕하는 인간도 룸살롱에 다닐지 모른다면서 혐의를 씌울 때 악이 됩니다. 질서주의자들의 질서는 참 신기한 면이 있습니다.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사회악보다 위선의 증거로서 가능성을 "상상"할 때 더 큰 죄가 됩니다.
2020.09.24 04:08
2020.09.24 08:14
2020.09.24 11:22
그... 법보다 위에 있냐 없냐를 그만 묻자는 게 제가 쓴 글의 요점입니다... 세계관은 이렇게 고정되어있나 싶어서 신기할 정도네요.
반박하고 싶으시다면 본인이 믿는 이 사회의 합리성을 제가 든 예시들을 그대로 나열하면서 반박하시면 됩니다.
2020.09.24 11:27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차피 님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아서 그럴 필요성을 못느끼거든요.
2020.09.24 11:41
네 그럼 모 회원님의 룸살롱 글을 넘어가시듯 제 글도 넘어가시면 되겠습니다 그 근거없는 입장 표명이 저한테만 표출되는 것도 뭔가를 증명한다고 생각하지만
2020.09.24 11:48
2020.09.24 11:52
2020.09.24 12:03
그럼 계속 논외에 머물러주시면 됩니다.
2020.09.24 12:06
2020.09.24 04:10
2020.09.24 09:51
왜곡이 어딨어요. 전부 엄연한 우리사회 현실인데
2020.09.24 10:20
2020.09.24 10:04
이렇게 불면증이 과대망상 또는 영화와 현실을 구분 못하게 만듭니다. 다들 숙면하시길
2020.09.24 10:08
2020.09.24 10:32
글쎄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의 사적제재만 존재하지 않죠. 최근의 네이버 모자이크 사태를 빗대어 시민독재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 그렇다면 예스컷 사태 때는 왜 침묵했느냐는 반박이 있었죠.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반박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둘 다 되던가 둘 다 안 되는 쪽을 선택해야 하거든요.
질서에 의미가 있다면 서로 갈등하는 두 집단이 공통으로 합의되는 논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기득권자의 독점적 지위처럼 이야기했지만, 법에 의해서 정부와 개인이 동등하게 한 법정에 서고 개인이 승리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사적 제재의 강화는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그다지 더 이익을 주지 않을 것 같군요. 예를 들어, 현재 광화문 집회는 '4.15 부정선거' 논리를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지요. 선거법이라는 질서에 의해 합의된 공권력 선출을, 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거지요. 이런 비합의가 늘어날수록 공적 사회의 유지가 어려워 보이네요.
마지막 직전 문단에서 반복되는 내역들은 사법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 결론이 사적인 우회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기 보다는, 공적인 상태를 뜯어 고쳐야 된다는게 더 맞는 방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 그런 의미로 현재의 국회가 구성된 게 아니겠습니까? )
사적 제재를 어떤 징후로 파악하여 그 과정을 추적하는 것까지는 동의하지만, 그걸 긍정하지는 못 하겠습니다.
P.S. 마치 메갈리아가 외부 압력에 의해 문을 닫은 것처럼 서술하셨지만, 아시다시피 '동성애자를 혐오해도 되나' 논쟁으로 내부 붕괴된 겁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 이후 출범하여 아직도 잘 굴러가고 있는 워마드를 비교해야 하지 않을까요.
2020.09.24 11:39
1. 검열이라고 부르기 힘든 것을 검열이라고 반대한다면 왜 검열이 확실한 것에는 그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느냐는 반박일 것입니다.
2. 법의 전면적 부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사적제재를 강화하자는 말도 아니구요. 저는 법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은 언제나 느리고 다수 혹은 기득권자를 위해 우선으로 작동합니다. 전광훈 사태야말로 오히려 법의 한계를 가리키는 사례 아니겠습니까. 법은 전적으로 나쁘다, 가 아니고 사적제재는 늘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적제재가 출발하게 된 배경과 멈추게 된 이후를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공적 질서와 사적 제재를 이야기할 때 기본적인 맥락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상적 개념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로는 아무것도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시로 디지털 교도소라는 사적 제재의 맥락을 설명한 것입니다.
3. 저는 사적 제재를 통해 실현하자고 한 적이 없습니다. 글 초기에 배트맨이 왜 하비덴트를 화이트 나이트로 세우자고 하는지 써놨습니다.
4. 메갈리아가 외부 압력에 의해 문을 닫았다는 게 아니라, 두 커뮤니티에 관한 압력이 일관되게 작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메갈리아에서 어떤 끔찍한 사진이 올라왔다 어떤 논쟁이 오갔다 이런 이야기가 늘 돌아다닐 때 그 문제제기를 하는 쪽에서 동일한 수준의 폭력이 일베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 아무도 조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건 워마드로 가도 그렇습니다. 성체 모독 논란이 있었을 때 어떻게 종교를 저리 모독하냐고 난리가 났지만 일베가 그 동안 종교에 대해 수위높은 성적 표현을 하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제기의 형평성 자체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2020.09.24 13:25
2020.09.24 14:12
여기서 제가 디테일을 생략한 부분이 있는데, 일베는 제재를 당하긴 했습니다. 그 제재를 당한 부분이 다 노무현이나 민주화운동 모독에 관한 일종의 진영논리에 가까웠을 따름이죠. 그것이 여성혐오의 영역으로 가면 일베는 전혀 제재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게시물 하나를 가지고 이들이 이렇게 성차별을 한다거나 모욕을 한다고 딱히 문제제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워마드가 안중근 희화화 짤을 올리면 그것은 이 사회 전체가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가 되지만 일베가 유관순 희화화짤을 올리면 그것은 그냥 그들끼리의 문제가 됩니다.
공식 석상에서 일베 한다고 말하는 것은 관계를 단절시키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금기로서의 취급은 노무현 모독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모욕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다른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공식 석상에서 나 주갤해, 나 야갤해, 나 코갤해, 나 루리웹 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하지만 여성시대를 한다고 하면? 이것은 엄청난 문제가 됩니다. 그 문제집단의 취급은 디테일에서 절대 공평하지 않습니다.
어떤 가치관의 공격적 표현과 공유를 두고 남자들은 제재를 당하지 않는데 여자들은 제재를 당합니다. 이 근본적인 불균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2020.09.24 17:28
2020.09.24 13:32
제가 Sonny님이 사적제재를 지지한다는 등으로 오독했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질서주의자'를 부정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부분이 아마 저와 다른 듯 합니다. 저는 법치주의적 합의로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상태의 효과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성범죄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처벌 결과가 정해지는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을 누구보다 빨리 채우는 청원들이 무엇들이 있는지 등을 떠올려보면, 어느 쪽이 더 보수적으로 방어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당연히 법의 여러 부분들이 개정되어야 하고, 어떤 곳보다 더 빨리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가 잡혔다는걸 볼 때의 갑갑함은 동일할 것입니다. )
제 주변 사람들 중 손정우가 정확히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는 경우가 흔치 않더군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명도의 경우, 일정 부분 언론에 책임이 있고 각 커뮤니티별로는 자신의 관심 범위에 들어있는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 중 커뮤니티 유저들이 유심히 살피는 쪽의 법적 일탈이 더 많이 올라오지 않을까요. 각 커뮤니티에 딸린 법적처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통계를 보면 일간베스트는 꾸준히 최상위권에 들어갑니다. 저명성은 떨어졌지만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꾸준히 처벌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혹시 그 성체 훼손로 고소된 페미니스트의 법적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저명하게 알려졌나요?
문제 제기의 형평성에도 동의하지만, 그 과정들이 실제 어떤 상태까지 영향을 끼치긴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 저는 현재 성범죄 알리미등의 상태를 바꾸는 쪽을 상상하게 되는군요. )
2020.09.24 13:58
원론적인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논의가 계속 회전만 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질서만능주의를 맹신하는 질서주의자에 대한 비판이지 원론적으로서 질서를 믿는다는 보편적 신뢰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그래서 디지털 교도소를 두고 법을 믿어라 사적 제재는 긍정할 것이 안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현실에서 질서가 실패하는 것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한 사람들이 두리뭉실하게 질서라는 개념을 왜곡한다고 지적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질서는 믿어야 하는데, 그 질서가 현실에서 어떻게 실패하고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질서주의자로서 먼저 말을 해야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질서만" 믿는다는, 혹은 질서를 믿으라고만 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제 글에서의 질서주의자라는 단어는 '보수'라는 단어의 용례와 비슷합니다.
법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법치가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고 법치만능주의에 가까운 질서주의자들의 발언이 무의미하다고 하는거죠.
2020.09.24 14:08
2020.09.24 14:15
배트맨을 무법자 취급하고 없애버리면 모든 문제가 없어진다는 단순한 주장보다야 당연히 흥미롭겠죠.
논외에 머무르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빠질거면 빠지세요.
2020.09.24 14:23
2020.09.24 14:34
당연히 룸살롱에 동의하는 건 아니겠죠. 그냥 그 정도로 딱히 비판하거나 패러디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인거죠. 저는 예상수님의 그 인내심의 정도차이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한테도 그게 너무 심하다고 했던 거잖아요? 룸살롱 글은 나쁘다, 하지만 그걸 공개적으로 패러디하는 건 댓글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 나쁘다... 왜 전자는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라고 하는데 후자는 무시하지 못하고 계속 댓글을 다시는 걸까요? 완전 동의 / 완전 부정의 이분법으로 스스로를 변호하시기 전에 그 미묘한 인내심의 차이를 생각해보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리고... 배트맨을 현실에서 적용하자고 한 적 없습니다... 제가 바빠서 더 해설 못해드립니다. 그냥 본인이 생각해보세요.
2020.09.24 14:30
2020.09.24 14:42
그걸 손정우 건이나 엔번방 사태를 두고 혼자서 숙고를 해보시라는 말입니다...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따지면 정당성 없는 입장이 없어요. 예상수님이 할 일은 본인의 두루뭉실한 입장을 계속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현실의 디테일에서 어떻게 고집하고 왜 어떤 원론은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지 생각을 해보란 뜻이에요. 김지은씨도 적법하게 고발했어요. 고발하자마자 경찰서에서 바로 충남도지사한테 연락이 가고 핸드폰에 불나게 연락오니까 무서워서 인터뷰 잡았죠.
이야기하지않았던 걸 이야기하란 말입니다. 이야기하던 것만 계속 떠들지 마시고요. 왜 쟁점을 떠먹여주는데 그걸 계속 회피합니까. 일베도 가치관으로만 애국보수에다가 공정의 수호신이에요.
2020.09.24 14:38
2020.09.24 14:47
브루스 웨인한테 사법고시 보라는 말 그만 좀 하시고요 ㅋㅋㅋ 대화 끝입니다 여기까지 할게요 하 진짜 ㅋㅋㅋ
2020.09.24 14:41
2020.09.24 14:46
진짜 오래걸리네요. 이제 본인의 가치관을 아셨습니까?
신고를 하면 되지 공개적 패러디는 나쁘다, 라고 저부터 비판하고 있잖아요. 왜 문제의식은 공감하는데 패러디는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그렇다면 패러디를 당할 정도로 나쁜 것은 무엇인지, 왜 본인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고도 안하고 공개적 비판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지, 그 룸살롱 글에 달린 다른 유저들의 공개적 비판 "댓글"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걸 생각해보란 말이에요. 저한테 계속 예상수는 나쁜 사람이 아니어요 변호하지 마시고요. 저도 예상수님 크게 나쁜 놈이라고 생각안한다니까요.
듀게를 칭찬과 둥기둥가의 사이트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누군가의 어떤 비판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지 본인이 스스로 구체적으로 답을 내려보라는 이야기입니다. 귀찮으니 더 안씁니다... 진짜 피곤하네요.
2020.09.24 14:52
2020.09.24 14:53
2020.09.24 15:04
2020.09.24 15:07
2020.09.24 15:26
‘네이버 모자이크 사태’가 뭔지 알아보고 싶은데, 구글과 네이버에 검색해보아도 딱히 특정이 안되서 여쭤봅니다. 뭐라고 검색해야 할까요?
2020.09.24 23:06
짧게 간추려 쓰느라 선후관계가 명확하지 않은데, 검색 키워드로는 주호민, 웹툰 검열 등으로 검색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니면 복학왕, 헬퍼 선정성, 폭력성 논란이던가요.
2020.09.24 12:47
.
2020.09.24 12:49
고발자를 두고 그 고발의 진위를 묻거나 고발자의 도덕성을 음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사건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특징이겠군요.
2020.09.24 13:12
미투가 사적제재라는데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군요. 성범죄 사실의 공론화와 함께 법적 절차가 진행된 건들이 여럿 있었을텐데요. (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 안희정 / 안태근을 떠올려보면 이게 사적제재라 부르기에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 어떤 경우 공소시효가 다 된 성범죄에 대한 공론화만을 미투 운동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봤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적제재가 뭔지 미투 운동의 정의는 뭔지 지리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모든 것이 탈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2020.09.24 14:06
잔오님께서 어떤 사례들도 있다고 자꾸 말씀하시는데, 미투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은 사법적 절차보다 개인의 공론화를 먼저 수단으로 삼고 실행한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는 사실 디지털 교도소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이 경우에도 저는 똑같이 말씀드릴 수 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미투는 공적 질서, 법적 절차의 진행을 밟기도 한다'는 것이 미투의 사적 보복의 핵심을 완전히 중화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지은씨나 서지연씨의 사례도 사적 제재에 가깝습니다. 법을 활용한 제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서지연씨의 직업이 현직검사였다는 것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JTBC에 나가서 일종의 사적 폭로를 진행했던 것입니다. 만일 법이 완전하게 돌아가고 공적제재로만 일사천리 작동하면 두 사람이 굳이 신상을 드러내고 폭로의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례야말로 미투가 얼마나 공적 제재의 바깥에 위치할 수 밖에 없는지, 법적 질서의 구현이 얼마나 어렵고 한계가 많은지를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김지은씨는 고소를 하자마자 충청도 경찰서에서 도지사쪽으로 바로 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김지은씨는 내내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아서 인터뷰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구요. 미투의 핵심은 그냥 고소로만 처리하면 될 것을 피해자들이 굳이 법적 증거가 아닌, 사적 의견으로만 치부될 수 있는 입장발표를 온국민에게 한다는 점입니다.
미투의 반댓말은 "고소만 하는 것"입니다. 고소를 했냐 안했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소만 하면 되는 것을 왜 굳이 언론에 밝히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상노출까지 불사하면서요.
2020.09.24 20:58
동의해요. 미투도 실상은 디지털 교도소와 동일한 사적 제재의 일환이죠. 그래서 그럴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더불어 '폭로'라는 방식으로 인한 여러 위험들에 대한 말이 나오기도 했었구요.
2020.09.24 15:02
예시와 논증 그리고 비유를 따라 읽으면서 어쩌면 확증편향의 벽을 넘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해내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그게 아니더라도 고민케 해볼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조하신 ‘질서주의자’라는 단어의 개념과 뉘앙스가 이 글 밖에서도 살아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질서주의자들 밖에 없으면 사회의 진보는 이뤄질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쩌면 대중들이 그렇게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건 최전선에서 개혁과 진보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부채의식을 해소할 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2020.09.24 15:27
이 글 망했습니다 ㅋㅋㅋㅋ 원래 다르게 쓰려고 했는데 글쓰다 빡치는 안좋은 습관 때문에 ㅋㅋ 다시 써야될 것 같습니다 이건 초고로 그냥 칠려구요...
2020.09.24 15:32
2020.09.24 15:57
2020.09.2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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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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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4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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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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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4 21:30
2020.09.24 20:30
2020.09.24 21:17
2020.09.24 21:34
2020.09.24 23:37
2020.09.25 00:05
이사람 왜이러누... 추하다 추해
2020.09.25 12:59
2020.09.24 23:55
Sonny_ 사적 제재와 미투의 정의로 지리하게 말을 나누고 싶진 않다고 했는데 [가장 근본적인 핵심]과 [반댓말]을 정의해주시니 어찌 이야기를 더 나아가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후자의 정의를 내릴 자격은 당사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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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글을 쓰다가 그냥 밀고, 이 대화를 어설프게 멈춘 상태로 끝내지 않고 마무리 짓기 위해서라도 어떤 댓글을 써봐야 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측컨대 아마 저와 다른 부분에서는 많은 부분 입장의 일치를 보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부가적인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아마 이런 질문들을 제게 던져 볼 수 있겠습니다.
(협의의) 미투란 법적으로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 법적으로 정당하다. 미투는 이전에 처벌되지 않고 권력에 의해 지연 되어버린 범죄들을 재조망하고 있다.
- 과거 범죄자들의 가해행위는 당시에도 범죄였고, 현재에도 범죄다.
범죄 사실의 공론화는 사적 제재인가? 아닌가?
- 사적 제재가 아니다. 언론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를 할 때 명예훼손에서 벗어나도록 되어 있다.
- 언론을 통해 당사자적 범죄 사실을 발표하는 것은 정당한 과정이며, 언론의 취지와도 맞다.
왜 이런 것들이 중요한가?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은 형평성과 맞지 않게 이미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있지 않은가?
- 현 사태의 재해석이 불러올 결과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 우리가 범죄로 생각하는 명확한 행위들이 과거에 확실하게 존재하나 그것이 말하여지지 않은 상태로 해결되지 않고 놓여 있었기에 이 모든 공론화들은 의미를 지닌다. 과거를 재구축하고, 알려지지 않은 일들을 모두가 다 함께 범죄행위로 인식하는 재구성 과정을 거친다.
- 이렇게 명확하고 정당성있는 과정들이 사적 제재라는 부당행위로 재해석되어 조금이라도 정당성을 잃는게 싫다.
- 충분히 정당한 과정인데, 굳이 부당하게 해낸다는 해석이 싫다.
- 심지어 그 사적 제재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적 제재들과 "완전히 동일해질" 가능성을 엿보인다.
- 이 세계에서 사적 구제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자들은 가해자들이다. 예를 들어 염산 테러, 선별 살해, 몇몇 데이트 폭력 등은 그들의 내적 논리에서는 사적 구제였을 것이다.
- 나는 사적 제재라는 정의에 맞춰 굳이 재구성해서 이런 범죄행위들과 친연성을 만들어낸다는게 싫다.
어느 정도 개인적으로는 걸론이 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미투를 초기에서부터 그 확실한 정당성에서 지지를 해오고 있었는데, 계속 부당행위를 통한 문제해결이라고 말씀하시니 그랬던 듯 합니다. 뭐, 더욱 근본적으로 나아가보면 법적인 정당성 보다 더 넓은 윤리적 정당성이 제겐 중요하고, 윤리적으로 부당하지만 정당한 결과를 위해 진행되는 과정을 지지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게 제 한계이자 제 입장이겠지요. ( 그러나 Sonny님이 다른 글에서 말씀하셨듯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이사를 가야될 상황에서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인가 싶습니다. )
2020.09.25 01:01
"저는 이 미투를 초기에서부터 그 확실한 정당성에서 지지를 해오고 있었는데, 계속 부당행위를 통한 문제해결이라고 말씀하시니 그랬던 듯 합니다. "
제가 대체 언제 그랬지요...???? 제가 하지 않은 말을 너무 열심히 반박하시니 당황스럽네요. 사적 제재라고만 했습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 이 구분에는 어떤 가치판단도 없습니다. 사회적 시스템에 의존할 수 있느냐 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느냐 하는 주체의 차이만 있을 뿐이에요... 제 입장을 아시면서 제가 미투를 부당한 행위로 보고 있다고 하시는 게 신기할 정도네요 ㅋㅋㅋ
2020.09.25 02:04
사적 제재라는 의미 안에 범법 해결이 담겨있는게 아닌가요?
말이 엇갈리는데, 부당행위라는 의미는 범법행위로 정의하시면서 정당성을 일정량 잃게 된다는 의미로 썼습니다. 부당한 행위로 제가 쓰지 않았다는건 충분히 아실거구요.
사적 복수란 표현도 쓰셨는데, 이 모든게 범법/탈법과 관계없은 가치/사실판단이 아니라면 제가 오독한게 되네요.
2020.09.25 10:45
사법적 시스템 = 공적 체재 / 에 의지할 수 없을 때 미투 = 사적인 발화와 폭로 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법에 의지하냐 의지하지 않느냐 라는 뜻이니 범법이라는 단어보다는 법외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2020.09.26 2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