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1 13:36
켄 리우의 종이동물원을 읽었습니다. 일년에 몇개 안나오는 만점을 줬습니다.(블로그 독서 리뷰에..) 이제까지 세번 정도 빌려서 두번은 그냥 반납하고 세번째에에 읽은 셈인데 두껍기도 하거니와 처음 등장하는 표제작이 너무 청승 맞게 시작을 하는 분위기라 그랬다고 반성해 봅니다. 첫 작품을 넘기시면.. 그다음부터는 책장이 저절로 넘어갑니다.
켄 리우라는 작가가 너무 대단한 것 같아서 장편소설인 제왕의 위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상하 두권인데 이게 연대기의 1부 정도에 해당한다니 갈길이 멀죠. 초한지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 하면서 영웅들을 돕는 신들의 캐릭터와 설정 같은 걸 넣어 놓았습니다. 마타 진두가 초패왕 항우, 쿠니 가루가 한고조 유방에 해당되는 캐릭터로 짐작 됩니다. 잘 읽히긴 하는데 초한지를 익히 대충 들어 알고 있는 문화권의 독자들에게는 그냥 초한지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지나치게 수다스럽고 시끄럽게 포장된 초한지 같아서요. 실크 펑크라는 장르를 만들었다는 수식어도 좀 간지러워서.. 상편을 읽은지는 좀 됐는데 하편이 진도가 안나갑니다. 아쉽습니다.
장강명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읽었습니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이라는 작품이 대단합니다. 작가가 되려면 이정도는 써야지.. 라고 웅변하는 작품 같습니다. 표제작은 그저 그래서.. 아쉬웠지만. 데이터 시대의 사랑이라는 작품은 정세랑 작품처럼 따뜻한 기운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세상이 험하니 글이라도 따뜻한 걸 읽고 싶어져요.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책속에나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리고 기대해 마지 않던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를 아껴 읽고 있습니다.
훌훌 넘어가려는 페이지를 어르고 달래서 꼭꼭 씹어가며 찬찬히 읽습니다. 스스로 살고 싶은 그림대로 살았던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심시선의 자녀들과 손자녀들이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작가가 왜 굳이 하와이를 배경으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글로 묘사된 하와이를 보면서 2013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그때의 하와이가 자꾸 떠오릅니다. 느슨하던 시간과 이국적이면서 친절했던 공간, 그속의 사람들, 공기중에 떠다니던 알로하 알로하.. 마주치면 자동반사로 샤카가 튀어 나가고 웃으면서 마할로를 외던 시간들. 하늘 끝으로 달려가는 것 같았던 그 도로들과 구수한 코나 커피까지 자동 재생되네요. 그때 그렇게 온가족이 다녀와서 다행입니다. 당분간은 이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겠지요.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면서 그때의 하와이를 다시 떠올립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읽어나가려구요. 너무 빨리 읽기에는 아깝다 싶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밤산책도 다니지만.. 꼭 배출구가 고장난 압력솥 같은 요즘입니다. 다들 그런 심정인지 한강변 산책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네요. 조심조심 다녀야겠습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힘들때.. 책을 붙잡고 이겨내는 것도 방법인 거 같습니다. 다음에는 천선란의 어떤 물질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네요.
2020.09.01 16:20
2020.09.02 15:59
수많은 순록 떼가...는 꼭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테드창도 너무 좋아하는 작가예요. 켄 리우도 좋아졌어요.
2020.09.02 11:42
몇 년전 직장을 그만 두고 혼자서 3주 가까이 유럽 어느 나라, 제가 살던 도시 한 곳에서만 체류했을 당시, 오래 잃어버렸던 독서력을 그때 회복했어요.
딱 2권의 책만 가져갔는데 이사벨 아옌데의 '에바 루나' 그리고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 에바루나는 그전까지 완독을 거의 다 못한 상태였고 기형도 산문집은 이미 다 읽은 상태였는데 그냥 그렇게 2권 갖고 가서 맥주 마시면서 느릿느릿 다시 읽고 게을게을 보내다 왔어요. 물론 그렇게 힘들게 복원된 독서력은 다시 시작된 직장생활 이후 실종되어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한국 소설은 몇 페이지만 읽어도 그냥 덮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다시 회복될까요...
하와이 좋으셨겠어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같이 하는 여행이라니 케어하시느라 힘도 들었겠지만 그게 즐거움이고 추억이죠.
제도 만약 다시 한번 가볼 기회가 된다면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제일 첫번째예요. 가우디 건축도 구엘공원 아닌, 람블라스 대로변 거리를 무상하게 걷던 그때, 제가 그렇게 표현하기 어색하고 인색한 '행복'을 충만하게 느꼈어요. 언제고 다시 떠날 수 있도록 건강도, 비용도, 이 마음도 잘 간직해야겠어요.
2020.09.03 09:54
이 상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정리되고 해외 여행이라는 걸 다시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꼭 다시 바르셀로나에 가서 한적하고 여유롭게 책을 읽으실 수 있도록 빌어 드릴께요. 그때까지.. 무탈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에도 행운이 깃들기를 바래요.
2020.09.02 16:02
2020.09.03 09:56
사실 표제작인 종이동물원도 참 좋습니다. 제 마음이 다른 작품들에 좀 더 쏠린 것 뿐이지만. 뭐랄까.. 전반적인 정서가 우리 세대의 것이라..(희생하는 엄마, 엇나가는 아들, 나중에 알게 되는 진심 혹은 진상..) 외려 더 아니다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구질구질했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보기 싫은 마음이랄까요. 다른 작품집도 기대가 됩니다. 읽을 책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