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냥

2020.08.16 10:34

어디로갈까 조회 수:524

곧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을 곁눈으로 흘깃거리며 맥주 한 캔을 땄습니다. 몇달 만에 접하는 알콜이에요. 이 시원함이 위 안에서 밤샘 작업의 고단함을 달래줄 거라는 기대는 없으나 세포들의 미세한 휘청거림은 흡족합니다.
(뻘덧: 형부가 결혼 전 우리집에서 첨 일박했던 날,  아침에 제가 눈 비비며 일어나더니 물 대신 맥주 한 캔을 원샷하는 꼴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던 게 생각나네요.  그보다 아버지가  더 잘 '히야시'된 맥주로 바꿔주며 오구오구~ 내 새끼 시원하지? 라는 모습을 보고 숨멎 했었다고. - -)

몇달 만에 제 아파트로 돌아오니 까마귀들의 까악대는 외침이  도드라져 들려요. 베란다 창을 열면 흰 깃털과 검은 깃털이 엉터리로 디자인된 새들이 이차선 도로 위까지 낮게 날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비의 비릿한 냄새를 맡은 저 최종 진화물이 지구의 이상 기류를 느끼는 중인 걸까요? 지구의 개체들이 서로 접속헤 만드는 '연합환경'에 대해 골똘해지느라  또 맥주 한 캔을 땁니다.  
까악~ 대는 새소리를 들으며 인간이 새의 감각을 알 수는 없는 거구나 라는 안타까움에 잠겨 있습니다. 당연한 거겠죠. 같은 종인 타인의 감각도 잘 읽지 못하는데 다른 종의 감각을 어떻게 읽어내겠어요.

여긴 김포공항 근처라 (지금은 무뎌진) 뱅기가 나는 소리가 친숙한 곳이에요. 방금 전, 우웅~ 하는 비행소음에 까마귀와 이름 모를 새들이 감각의 촉을 날카롭게 세우고 까아악~ 조잘조잘 응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인간인 저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불가능한 감각이라 환경에 반응하는 저 선율이 놀랍고 신기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새들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주술을 걸어보거나 찬탄의 한숨을 내쉬는 것 정도인데, 뭐 다 부질없는 짓이죠. 저로서는 불가능한 감각이 내는 환경적 선율이 부러울 뿐입니다. 
아서 클라크였나요? 인간의 의식은 우주의 초의식으로 점프하기 위해 준비된 전능한 작인의 옵션이라고 주장했던 이가. (곰곰)

'생명은 '연합환경' 속에서 새의 감각으로 저 하늘을 하늘답게 풀어놓는다'는 게 과학자들의 논리지만, 우주의 논리는 불완전한 인간에게 의식이라는 성가신 부대현상-  마치 양자도약처럼 치명적인 이동을 위한 플랫폼-  이 있다는 걸 여러 모습으로 암시해주는 것 같습니다. 
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전두엽도 공격하고 뇌량도 절단해왔던 해부학 영상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아무튼 의식이란 것이 왜 포스트휴먼에서,  아니 포스트휴먼에 이르러야 하는가 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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