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보고 왔어요.

2011.07.16 23:53

감자쥬스 조회 수:4068

고지전은 퀵이랑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이번 주 부터 유료시사회로 돌리고 있죠. 둘 다 승산이 있는 영화라서 감을 못 잡겠네요. 영화 흥행은 워낙 변수가 많은지라. 고만고만한 한국영화들은 계속 개봉했지만 딱 이거다 싶은 기대작은 한 동안 볼 수가 없어서 고지전을 많이 볼 것 같아요. 거기다 김기덕이 알아서 홍보까지 덤으로 해주고 있고요. 오늘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한회차 상영하는거 보고 왔습니다. 코엑스 메가박스는 약속이 없으면 가지 않는 영화관이라 가급적 큰 상영관에서 하는 영화만 보는데요. 볼 게 워낙 없더군요. 코엑스 10관도 적은 규모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개봉 하는 주에 상영관 큰데서 보려고 했던 영화인데 앞서 봤습니다.

 

영화는 재밌습니다. 그리고 기술적으로 매우 잘 만들었어요. CG도 자연스럽게 섞였죠. 눈내리는 장면은 CG같은데 거의 티가 안 납니다. 오랜만에 1.85:1 비율의 영화였어요. 초반 구성이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시키는 구조였죠.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가는 영화지만 군데군데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감독이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공동경비구역 작가가 쓴 시나리오인데 극중 신하균의 이름이 김수혁입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이병헌 극중 이름이 이수혁이었는데 연관이 있을까요?

 

고수, 신하균 투 톱으로 가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앙상블 전쟁영화입니다. 각 배역의 개성이 잘 살아있고 신하균과 고수는 그 중 비중이 조금 더 많은 배역일 뿐이죠. 신하균 연기 좋고요. 고수도 잘 합니다. 이들을 받쳐주는 조연진들의 앙상블 효과도 자연스럽습니다. 신일병으로 나오는 이제훈이라는 젊은 남자 배우가 인상적인데 마스크도 좋고 신선했어요. 대사가 길어지면 연기가 어설퍼지지만 역할과 잘 어울리네요. 20대 초반일 줄 알았는데 프로필 보니 28살이나 됐네요. 까까머리로 나와서 그보다 어린 줄 알았어요.

 

장훈 감독의 영화에 모두 출연한 고창석이 이번에도 영화의 감초 같은 역으로 등장하고 있고 의형제에서 나온 전국환도 후반부에 나옵니다. 고창석은 이번 영화에선 평안도 사투리를 씁니다. 지난 번 영화에선 베트남 말을 쓰고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사투리를 쓰는 배역이었던 것 같아요. 장훈 감독의 영화는 모두 남자 투톱으로 가고 있고 여성 캐릭터는 전무하다시피 한데 이번 영화에선 그나마 김옥빈이 존재감 있는 여자캐릭터입니다. 의형제에선 여자 캐릭터라고 할 만한 역도 없었죠. 영화는 영화다에서의 여주인공도 눈에 띄는 역은 아니었고.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옥빈 등장 비중은 몇 분 안 됩니다. 영화 시작하고 55분만에 나와요.

 

영화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라기 보단 서너개의 에피소드를 이어붙인 연작드라마 같습니다. 전 신하균이 고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전쟁 미스테리 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이야기의 일부더군요. 몇 개의 큰 줄기가 있고 이게 하나하나씩 나옵니다. 김옥빈은 그 중 나오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치면 됩니다. 그래서 처음엔 집중이 잘 안 됐어요. 자꾸 옆길로 세는 것 같아서요.

 

듀나님은 후반 30분을 쳐내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사족이라면 사족일 수 있지만 어차피 여러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작품, 거의 옴니버스 수준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30분이 이어져도 불필요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의형제의 결말보단 낫고 설득력도 있었습니다. 딱 끝내야 할 때 끝냈어요. 앞 뒤 관계도 유연해졌고요. 전 좋았습니다. 오히려 30분 쳐내고 끝냈다면 신파조로 흘렀을거에요. 전쟁이란게 참 허무한 어른싸움인데 그런 허무하고 처절한 인물관계도를 잘 정리한것 같아요. 전쟁 장면도 잘 찍었죠. 포화속으로같은 영화가 해내지 못한 기술적인 성취와 연출력이 보인 전쟁영화였어요. 특이한 화면 구도가 많이 나오고 회화적인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촬영 보는 맛이 있습니다. 이건 장훈 감독의 특기일 수도 있고 김기덕에게 배운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김기덕이 의형제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같은데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아요. 마지막에 안개섞인 장면도 근사했죠. 전 추천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38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367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122
113813 [EBS1 영화] 특별한 날 [10] underground 2020.10.31 435
113812 [바낭] 봐야할 게 너무 많아서 힘드네요 [12] 로이배티 2020.10.30 1094
113811 MB 17년형, 박근혜, 윤석열,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4] 가라 2020.10.30 920
113810 날두와 달리 마스크 착용 장려하는 이탈리아인 [2] daviddain 2020.10.30 573
113809 며칠전 [8] 칼리토 2020.10.30 618
113808 중학생 딸과 나눈 이야기 [13] 애니하우 2020.10.30 1227
113807 [넷플릭스]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 / 섀도우 헌터스: 더 모탈 인스트루먼트 [8] 노리 2020.10.29 948
113806 책 추천 -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때는 서핑을 [4] 예상수 2020.10.29 548
113805 싱긋이 [18] 은밀한 생 2020.10.29 784
113804 요즘 (다시) 들은 노래들 (1곡 추가) [1] 예상수 2020.10.29 273
113803 소모임 집들이 후기 [15] Sonny 2020.10.29 1115
113802 날두,PCR is bullshit [4] daviddain 2020.10.29 444
113801 삼성 라이온즈 권오준 선수 은퇴 [1] 영화처럼 2020.10.29 321
113800 응급실, 류호정 [36] 사팍 2020.10.29 1583
113799 행복과 노력의 조건 [1] 안유미 2020.10.29 476
113798 [넷플릭스바낭] 안야 테일러 조이님의 '퀸스 갬빗'을 다 봤습니다 [12] 로이배티 2020.10.29 1213
113797 가뭄 끝에 단비 처럼 문득 찾아온 드라마 - ‘에일리어니스트’ [7] ssoboo 2020.10.28 715
113796 집요리 관심있으신 분들 [4] 메피스토 2020.10.28 640
113795 바낭)아마도 007 역사상 가장 독특한 음악 [4] 하워드휴즈 2020.10.28 512
113794 최진실이 간지 12년이 됐군요 [3] 가끔영화 2020.10.28 63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