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31 03:47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바랍니다.
근래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두고 어떤 남자들은 그랬다. 법이 그러니 별 수 없다고. 판사가 결정을 그렇게 했고 법령에 따라 자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게 우선이니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영아 성폭행 비디오들을 판매한 남자를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려는 법리적 결정은 그렇게 모든 합리를 잃는다. 설득의 원리는 단순하다. 법이 그렇다. 원래 그렇다. 이것은 어떤 논리도 아니고 그저 현실에 굴복하라는 냉철한 리얼리스트들의 판단이다. 그 어떤 당위도 굴복시키는 절대적 근거다. 억울해하거나 체념하거나. 자기 알 바 아니고 남의 일인 그 현실에 사사롭게 "당위"를 따질 이유는 없다. 결과에 따라 원인을 따라가면 그만인 편리한 귀납의 세계다. 어떻게 저럴 수 있냐는 책임에 대한 질문에는 저럴 수 있게 되어있다는 무책임에 대한 대답이 뒤따른다.
박원순의 지지자들이 그랬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산 사람의 고통이 죽은 사람의 명예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이 순서는 어디서부터 쌓아올려진 전통일까. 군사부일체라는 그 순서와 통합에서 여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떠밀리고 떠밀려서 이제는 군사부시체녀의 마지막 위치에 놓여있다. 이해찬은 박원순의 성추행 의혹 조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 기자에게 "호로새끼"라고 화를 냈다. 강남순은 박원순의 성추행 의혹과 피해자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순결주의의 폭력을 이야기했고 많은 지지자들은 박원순의 성폭력을 "살면서 할 수도 있는 실수"라거나 "불완전함"으로 표현했다. 중립 혹은 양립이라는 이들의 호소에서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거나 늘 박원순의 뒤에 있다. 우선 경제를 살리고 봐야 - 버려져서는 안되는 것들이 가장 시급한 과제 아래에서 죄다 생략될 때의 그 폭력은 다른 방식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일단 박원순, 일단 망자, 일단 장례식. 그래서 박원순의 유족들은 예의를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기자회견을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시체는 특권이 되어서 산 사람의 고통을 억누른다. 4년간 성추행을 당해왔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에게 이들은 다시 한번 기다리라고 한다. 그리고 기자들에게도 "부탁"했다. 피해자의 기자회견에 가지 말아달라고.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박원순에 대한 추모가 양립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주 단순히 말해서 장례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는 것일텐데 피해자는 늘 입을 다물고 기다려야한다. 이제는 핸드폰 증거에 대한 조사도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유족들이 그 유력한 증거를 수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으니까. 박원순의 지지자들은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법이 원래 그렇고, 죽은 사람의 명예는 산 사람의 고통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산 사람을 구속수사하고 압수수색하는 세계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조사는 계속 미뤄진다. 산 사람의 피해는 하염없이 뒤로 밀려나간다. 참고로, 피해자는 영원히 사는 사람이 아니고 이 사람의 삶에서 조사가 늦춰질수록 고통스러운 시간은 더 늘어난다. 죽은 사람의 시간은 이미 끝났음에도.
모두가 그랬다. 박원순에 대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그런데 그 결정적 진실이 담긴 - 피해자가 직접 비밀번호를 제시해서 허무하리만큼 쉽게 풀렸던 - 핸드폰은 이제 조사가 늦춰졌고 박원순에 대한 진실도 당분간 알 길이 없어졌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의 관심과 분노가 모인 이 때에 최대한 빠르게 해치워야 할 이 과제는 뒤로 밀리면서 점점 잊혀질 것이다. 때를 놓친 진실은 그랬구나, 라는 한 마디로 썰렁하게 넘어갈 것이고 조사가 유예된 몇달간 사람들은 박원순의 진실을 외면한 채 추모만 하거나 피해자와 피해자 변호인의 진정성을 의심하다가 까먹을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 유족들의 명분은 무엇일까. 박원순 지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저 돌아오는 대답은 죽음에 대한 예의와 원래 그러니 그런 줄 알고 받아들이라는 폭력적 현실이다. 살아있는 가해자의 조사 중지요청은 2차 가해이지만 죽은 가해자의 조사 중지요청은 2차 가해가 아니라는 이 해괴한 논리 속에서 피해자의 입장은 다시 지워진다. 이러나 저러나 피해자의 고통은 길어지고 진실은 점점 묻혀진다. 가해자의 진상을 조사하고 피해자에게 신속한 배상과 사과를 하는 단계는 미뤄진다. 돈을 떼먹으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그 책임을 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성폭력에 대해서는, 그냥 죽었으니 모르겠고 우리는 장례를 해야하고 우리의 슬픔을 방해하는 너는 비인간적이라는 압력만을 쏟아낸다. 죽은 사람도 그의 유족도 산 사람에게는 그 어떤 의무도 하지 않지만 산 사람은 피해자 당사자임에도 예의를 다 지켜야 한다. 실례합니다만... 제가 그 죽은 분한테 성추행을 당했는데 그 분 핸드폰을 경찰에 제출해서 좀 조사를 받아도 될까요. 피해자는 죽은 사람과 유족에게 여쭈어봐야 한다.
인권의 인人에 여자는 포함되는가. 여자가 남자보다 못한 존재로 보이는 건 익히 알았던 사실이고 여자가 망자보다 못한 존재로 보이는 건 이제야 알게된 사실이다. 가해자가 죽어버린 건 알 수 없고 가해자 유족이 피해자의 조사를 방해하는 건 자연스러운 권리 행사이지만 피해자의 변호사는 언제나 수상쩍고 그저 갈등만 일으키는 인간이다. 경찰 조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기자회견을 못하게 하고, 증거 조사조차도 미루게 만드는 가해자 당사자와 유족은 어떤 비판도 받지 않는다. 나는 성폭력 피해여성들을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가해자 한명과 싸우는 것만으로 벅찬 당신들은 어떻게 세계 전체와 싸워야 하고 있냐고. 세계를 구성하는 오랜 논리. 재수없으면 여자는 그저 성폭력을 당하고 조심안한 여자가 잘못이며 위대한 남자에게는 아무 것도 묻지 말아야한다는 그 절대적 법칙을 어떻게 여자 혼자서 해체할 수 있을 것인가. 균형을 이야기하는 모든 인간들이 피해자를 지우려 할 때 나는 그의 존재에 전력으로 기울어지려 한다. 환멸은 정신적 통증이라는 새로운 체감을 배우면서. 나는 이제 연민도 분노도 하지 않는다. 핏기없이 창백한 마음을 툭 하고 그에게 던진다. 어떤 위대한 남자보다도 살아있는 무명의 여자 한명이 인간에 대한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피곤한 얼굴로 읊조린다.
2020.07.31 09:50
2020.07.31 09:58
"근래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을 두고 어떤 남자들은 그랬다"고 하네요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남자들이요
남초 사이트든 누구든 손정우에 대한 판결에 욕한바가지씩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두둔할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댓글은 거기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폐미들은 이렇게 교묘히 선동하여 남성들을 적으로 만드는 재주들이 있지요
이젠 그런 약발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ㅎ
2020.07.31 14:01
어떤 남자를 모든 남자로 치환하려는 노력이 참으로 애잔하네요
2020.07.31 12:56
첫 줄 읽고 거릅니다
2020.07.31 13:46
이 인간은 몰아가기에 뭔 걸신이 들었나 봅니다.
이 인간은 내가 유서가 발견되기 전에 박원순이 생전에 이런 저런 삶을 살았던 만큼 혼란을 주지 않을 분명한 메세지를 남겼기를 바란다고 한 것을 박원순을 추모한 거라고 ㅂㄷㅂㄷ 거리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정의당 유호정 의원이나 장혜영 의원 모두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피해자와의 연대를 선언하면서도 앞서 내가 했던 취지의 말을 똑같이 했었죠. 훌륭한 삶을 사셨던 분이니만큼 그에 걸맞게 피해자 보호와 진상규명을 통한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요.
유족의 동의 없이 고인과 관련된 강제수사는 어려우니 유족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는데 당연히 그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유족에게 몰예의하게 몰아세우는 것은 아닐거에요. 그런데도 ‘예의’에만 꽂혀서 ㅂㄷㅂㄷ.
유족들에게 수사 협조는 의무가 아닙니다. 그냥 스스로 본인들에게 유리한 선택을 할 권리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삶을 복구하는데 유족의 협조가 꼭 필요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을 할 것이냐 말것이냐 역시 피해자측의 선택입니다. 김재련은 그런 선택을 회피했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주저리 주저리 별로 상관도 없는 쓸데 없는 수사 다 치우고 나면 간단한걸 몰라요.
2020.07.31 14:19
유족이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을 할 권리가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요. 유족의 협조를 끌어낼 의무를 피해자 측에만 지우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요. 피해자측 전략에 대해선 평가가 다를 수 있고, 유족이 어떤 이유로 조사를 반대했는진 모르겠지만, 피해자측이 다르게 접근했다고 해서 유족이 휴대폰 조사에 협조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통합당이 국회 파행시킨 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이지만, 자기들 정책을 이루기 위해 받아내야 할 야당 협조도 못받는 민주당과 청와대의 협상력 부족이 문제다라고 객관적인 척 하면서 여당을 화살을 돌리는 경우처럼 들리거든요. 김재련 변호사에 대한 의구심은 알겠지만 그 분이 무슨 국가기관도 아니고, 여성의전화 등 함께 하고 있는 단체도 많은 판에 굳이 모든 책임을 그쪽에 미룰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차라리 자살로 공소권이 사라졌을 때 휴대폰 조사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을 고민한다면 몰라도요.
다른 이야기지만 류호정 의원을 굳이 유호정 의원으로 표기하는 분들이 많던데, 단순 오기인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2020.07.31 15:23
가정에 의한 주장은 쓸데 없습니다. 그냥 벌어진 결과만 보면 됩니다.
유족에 협조를 구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유족의 동의가 없이는 수사가 불가능하다면 유족의 동의를 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게 정상입니다.
이게 누구의 책임이냐 아니냐 따지는 문제로 사고전환 할 필요도 없어요. ‘필요한 자 구하라’ 너무 쉽죠?
맞아요. 20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항상 민주당에 대해 비판했던 논리와 별 다를게 없습니다. 그게 틀렸나요? 선거제도만 해도 민주당이 확실하게 드라이브 걸지 않아 1년 가까이 허송세월했는걸요.
유족들이 잘못된 선택을 비난하세요. 많이 하세요. 누가 뭐라나요? 진상규명이 아니어도 그냥 역사에 낙인을 새겨 넣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는 일이겠죠.
류호정 의원 맞습니다. 정정할게요. ㄹ 로 시작되는 성을 ㅇ 와 헷갈리는 건 그냥 매우 흔한 일입니다. 별거 없어요.
설마 그게 리북식 호칭이라고 삐딱하게 보고 일부러 유호정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직도 그런 멍충이들은 없을거에요. 암요;;;
2020.07.31 15:29
제 댓글창 그만 어지럽히라고 말하는 건데, 유족 측의 조사 중지 요청이 틀렸다고 사람들은 1차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거고, 그걸 "그들의 당연한 선택이다"라면서 옹호하는 쏘부님 주장을 2차적으로 비판하는 겁니다. 당위랑 사실 명제는 그만 섞어서 쓰십시오. 그딴 식으로 말하면 세월호 유족부터 형제복지원까지 현실적으로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그냥 조사를 그따구로 하면 안됐는데 못했다"는 결과론으로 다 욕할 수 있으니까요.
"유족들에게 수사 협조는 의무가 아닙니다. 그냥 스스로 본인들에게 유리한 선택을 할 권리가 있어요." 이딴 논리를 쓰지 말란 겁니다. 이러면 조주빈이 맨날 반성문 제출하는 것도 욕할 수 없습니다. 당위명제는 당위적으로 비판하세요. 거기서 사실명제로 논점뒤틀기 하지 마십시오.
피해자 "측"에 너가 더 잘했어야지 하고 피해자 "측"을 탓하는 게 2차 가해입니다. 그거 엄청나게 무례한 행위이고 쏘부님 비판하는 분들은 다 그 무례함을 비판하는 거 똑바로 좀 아십시오. 여성인권은 그렇게 기울어진 현실논리를 당연하다고 수긍하고 잘난 척 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겁니다. 댓글 달 필요 없습니다.
2020.07.31 17:47
결과만 가지고 비판을 하는 건 좋지만, 비판을 하려면 누구에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는 논의를 해야죠. 휴대폰 조사 중지라고 결과를 두고, 조사 중지 명령을 내린 법원, 이 명령을 요청한 유족, 수사의 주체인 경찰을 다 건너 띄고, 피해자측 변호사에게 그 책임을 묻는거잖아요. 그러려면 "이렇게 했으면 휴대폰 조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지는 최소한 "이러한 노력이라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같은 근거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자를 이야기하려면 가정을 해 볼 수밖에 없는데, 그게 쓸데 없다고 한다면 최소한 피해자측 변호사가 가해자의 유족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일이 과연 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인가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겠죠.
제가 했던 예시에서도 민주당의 책임을 물을 수야 있겠지만, 민주당이 그 상황에서 정말 뭘 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죠. 예를 들면 선거제도의 경우 정의당은 그냥 우리끼리 통과시키자는 명확한 대안이 있었죠. 그리고 이러한 논리가 틀렸다고 한 건 아닙니다. 이러한 논지가 사실상 가장 큰 책임을 가진 대상을 변호하거나, 양쪽 다 똑같이 나빠와 같은 양비론으로 가기 위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류/유는 그냥 정말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얼마전에 댓글에서 "유호정"이 어쨌더라라는 글을 보고서, 그게 누군지 한참 검색을 한 뒤에야 누군지 깨달았거든요. ㅎㅎ
2020.07.31 13:54
2020.07.31 14:59
네 정말 피로합니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나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떨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