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려고 몇번이나 시도해 봤는데 잘 안되네요. 어렸을때 방학숙제로 일기 몰아써본 경험 밖에 없어요.
스무살 넘은 시점부터 지금까지 대여섯번정도는 일기를 쓰려고 시도해왔는데 잘 안됩니다. 한 두어줄 쓰다가 늘 때려쳤어요. 목표는 별거 없어요. 그냥 일상의 소소한 기억이나 느낌같은거를 기록해두고 싶은 거요.
지금까지는 일기를 쓰기 힘든게 솔직한 내 마음속내를 글로 써놓고 그걸 글로 다시 읽어서 확인하게 된다는게 거북하고 불편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지만 그걸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이게 내 실체야라고 하는게 끔찍할 때가 있잖아요. 제 일기의 목적은 반성이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이런건 아닙니다. 전 제 더럽고 치사한 부분을 고백하며 난 정말 저열한 사람이라고 반성한다거나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혹은 이런 생각은 하지말자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훈계하고 죄책감을 가질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러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런 식의 모티베이션을 못 갖고 있습니다. 종교가 있으신 분들은 일기를 쓰는게 더 수월할 것 같네요. (혹시 오해하실까봐, 상식적인 수준의 도덕관은 있습니다;; 남한테 피해주기 싫다거나 이런 거요^^;)
오늘 다시금 일기쓰기를 시도하려다 깨달은 건데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에 앞서서,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걸 깨달았어요. '모모모를 보면서 모모모한 생각이 들었다. 난 그닥 모모모 하진 않았지만...'라는 글을 쓰면서 어라라?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나 아닌것 같은데;; 엣? 나 이런 감정 갖고 있나? 하는 느낌이들면서 점점더 머릿속이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어요.
타인과 같이 있을 때는 난 이런 생각이야 내 느낌은 이런데 라고 줄줄 잘도 말했지만 그건 100%의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역할놀이, 관계에 있어서의 포지셔닝을 다 걷어내고 진짜 100%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나를 기록하려 했더니 텅텅 빈 양철통 같은 사람이었네요.
문득 겁이 났어요. 이게 과연 내 감정을 솔직히 쏟아낸 경험부족으로 인해 내가 나를 낯설어해서 인건지, 아님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이럴게 빈껍데기 뿐인건지 하구요.
혹시 저처럼 처음엔 솔직한 일기쓰기 못했다가 시간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지신 분들 있을까요? 경험담 좀 공유해주세요.
서른이 가까워 오니 위기감을 느끼며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런 진부한 느낌이 나네요;;;
간단한 일상의 기록과 단상위주로 적고 있어요. 담담하게 쓰는 게 솔직해지는 것 같아서 좋던데요.
비공개 블로그로 해놓고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나중에 삭제나 수정이 쉬우니까 부담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