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윤희씨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되었죠. 정윤희씨의 완벽한 미모에 대해서야 익히 알고 있었고, 드라마틱한(?) 은퇴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출연작을 본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궁금해서 필모를 찾아보니 출연작 30여편 중에 술집여자로 나온 작품이 아니면 직업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내용에는 빼놓지 않고 겁탈이 들어가요. 대종상을 휩쓴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서도(제목부터 심상찮죠ㅎ) 결국 빼어난 미모 때문에 남자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내용이죠. (나머지 출연작 대다수는 미워도 다시한번을 줄기차게 반복하는 최루성 멜로입니다.) 스틸사진과 포스터애서 정윤희씨가 제대로 옷을 입고 있는 경우를 거의 볼 수가 없어요.

 아아 정윤희씨는 그 불세출의 미모를 단지 얄팍한 성적인 대상으로만 착취당했던 것이죠ㅠㅠ 정윤희씨가 이런 뻔한 역할들에 지쳐서 은퇴를 했대도 수긍할 지경이에요. (백치미(?)가 있고 순종적으로 보이는 외모가 유달리 정윤희씨가 그런 역할에 머무르도록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어요. 트로이카로 불리던 장미희와 유지인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역할이 조금은 더 다양하죠.)

 

 차라리 윗 대의 김지미씨 같은 경우가 훨씬 다양한 역할을 할 기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김지미씨 한테서는 (뭐 출연작이 수백편이니 뭉뚱그려 얘기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역할 뿐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내용이야 시대가 시대이니 할 수 없다 치더라도, 적어도 성적인 대상으로만 소비되지는 않았어요.(저는 김지미씨 출연작을 EBS를 통해 다섯편정도 접한 게 다입니다만) 차라리 60년대가 나았던거죠.  더 선배인 최은희씨도 당당한 역할들에서 본 기억이 나구요.

 

그런데 여배우들이 할 만한 역할이라는게 7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오면 형편무인지경이에요.

 

 뭐 외화수입하기 위해 저질 영화를 찍어댄 시대이기도 했고, 전두환 정권 들어서면서는 3S정책도 한몫했겠죠. 원미경이 '변강쇠'에 출연하고, 이미숙이 '뽕'에 출연하고 이보희가 '무릎과무릎사이'에 출연한 시대이기도 하네요.(뭐 앞의 세 작품은 나름대로 유명감독의 작품이군요)

 

 왜 이렇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고, 착취하고, 학대하는 영화가 주류를 이루다시피 쏟아져 나왔던 걸까요?  차라리 '파리애마'같은 영화는 에로 영화이긴 해도 여성을 착취한다는 느낌은 없어요. 어설피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내용이기라도 하죠.  에로영화가 아니라 사회고발물 내지 문예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이 여성을 다루는 태도가 더 섬찟합니다. 저는 정윤희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동네 할아버지나 일본 순사한테 성적인 대상으로만 소비되는게 더 기분나빠요.(수많은 이조여인잔혹사류의 영화가 결국 사회고발이 아니라 선정적인 장면 보여주기에 그치는 것과 똑같은 수준이에요. 대종상도 우진필름이라는 회사가 힘이 세서 받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ㅠ) 이보희가 별 잘못한 것도 없이 남자들한테 윤간당하고 망가지는 '무릎과 무릎사이'도 이장호 영화중 최악이었습니다.

 

 5-60년대보다 7-80년대에 여성의 지위가 더 나아지지 않았나요? 왜 그 시기 '방화'는 저렇게 저질스러운 내용 일변도였고, 유명 감독조차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김기덕 감독이야 비주류이기라도 하고, 아예 '저 사람은 저런사람' 하고 뭐랄까 좀 포기하는 면이라도 있지, 모든 유명 감독들이 저런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고 그걸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면 참 여배우들도 힘들었겠다 싶어요.

 

 참고로 저는 남자입니다 ㅎ 그 때는 남성 관객들에게 저런 내용이 어필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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