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씨>

2020.09.16 00:05

Sonny 조회 수:737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악마의 씨>가 남편에게 (강간당해서) 원치 않게 임신한 아내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오컬트를 빼버리면 남는 것은 아내가 자신의 임신 사실에 점점 괴로워하고 그 아이가 너무 끔찍하게 보이지만 어쩔 수 없이 포용하게 되는 이야기잖아요. 악마라든가 악마의 추종자라는 것들은 자신의 임신을 축복하고 출산을 종용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내면의 증오를 투사한 결과물일수 있을 것이고요. 이를테면 미아 패로우의 악몽 속에서 간간히 지나가는 그 끔찍한 털복숭이의 장면들은 하기 싫은 성관계를 억지로 당한 당시의 고통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극 중에서 남편도 대충 그런 말을 하긴 하죠. 동의 없이 해서 미안하다는 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악마의 씨>처럼 명확하게 오컬트 집단의 존재를 밝혀버리면 모호한 열린 결말에서 관객이 해석하는 재미는 사라지지만, 그럼에도 이것을 미아 패로우의 의식 속 투쟁이라고 해석할 여지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마침내 사교도 집단의 실체를 집 벽장에서 발견하는 씬이 그렇습니다. 그 때부터 미아 패로우는 아무 것도 없는 벽장 속에서 너무나 완벽한 환상을 혼자 보는 것입니다. 이게 정답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렇게 가정을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남편부터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악마 숭배 집단입니다. 즉 미아 패로우를 아들 출산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완벽한 선의와 친절에 자신의 독립적인 선택을 계속 방해받으면서 미아 패로우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닐까요? 이 사람들이 나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악마숭배집단 같은 짓을 나한테 할 수가 있을까...


초자연적인 존재는 늘 인간의 현실적인 고통과 외로움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닐까요. 모든 귀신은 어둠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의 산물입니다. 아이를 낳게 된 여자가 사교도들에게 철저히 통제당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자의 임신과 출산은 그 어떤 보살핌을 받아도 한 주체로서의 여자가 수단으로 완전히 전락하는 과정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자유가 건강한 아이의 출산을 위해 통제됩니다. 불필요할 정도로 한 여성의 사생활에 타인들이 침범하고 여자의 선택권은 자주 묵살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의 악마란, 자식을 위해 죽을 때까지 헌신해야하는 가부장제의 사슬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치않는 성관계와 출산이 악마보다 못하다고 과연 말 할 수 있을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147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048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0757
113532 세상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다니. [10] 졸려 2020.09.25 1670
113531 음악 잡담 - When u gonna be cool, 연애의 목적 [1] 예상수 2020.09.25 293
113530 엄한 내용 때문에 봉변당한 영화와 감독들 귀장 2020.09.25 576
113529 [넷플릭스]에놀라 홈즈 봤습니다만 [3] 노리 2020.09.25 931
113528 작은 집단과 분석의 욕망 [1] Sonny 2020.09.25 436
113527 난데없는 인싸취급, 관계에 대한 애착 [2] 귀장 2020.09.25 434
113526 작은 집단 속의 알력다툼 [10] 귀장 2020.09.25 698
113525 [넷플릭스바낭]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 '이제 그만 끝낼까해'를 봤습니다 [4] 로이배티 2020.09.25 811
113524 어머님의 친구가 암투병중이신데 [3] 가을+방학 2020.09.25 659
113523 에휴.. 아무리 머저리들이라지만 추미애 아들건 까지 물 줄이야 [2] 도야지 2020.09.25 761
113522 잡담...(불면증, 게임, 대충 룸살롱은 왜가는지 모르겠다는 짤방) [1] 안유미 2020.09.25 620
113521 좋아하는 영화 삽입곡들(의식의 흐름에 따른)...과 글리 (스크롤 경보) [4] Lunagazer 2020.09.24 509
113520 카톡이 왔군요 [4] Sonny 2020.09.24 970
113519 거저먹는 게임라이프 [8] Lunagazer 2020.09.24 468
113518 이겨먹기 [6] 귀장 2020.09.24 605
113517 벌집 퇴치, 시민케인 건너편 버킷리스트(스포있음) [1] 예상수 2020.09.24 261
113516 [초단문바낭] 요즘 하늘 너무 예쁘지 않나요 [22] 로이배티 2020.09.24 608
113515 [넷플릭스] 어웨이Away 보았어요 [6] 노리 2020.09.24 693
113514 [월간안철수] 김종인의 극딜, 안철수 검사수 조작 비동의 [14] 가라 2020.09.24 657
113513 결국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북한.. 깊은 빡침 [26] 어떤달 2020.09.24 121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