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0 12:00
일전에 듀게에 올라온 글인데, 링크로 연동된 어떤 만화를 읽고 단편적으로 느꼈던 감상을 쓰는 글이에요.
두세 번 거듭 읽고나서 느낀 제일 큰 감상은, 만화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열등감이 많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에 수치심이 있구나 싶어요.
그러니 남은 평생도 끝까지 눈치보며 쭈뼛거리며 살겠구나. 이건 가난보다 더 비극이라 느껴요. 무슨 궤변이냐구요?
저는 생동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좋아요. 그것이 분노든 열등감이든 질투든 자격지심이든, 그 살아 널뛰는 감정들은 나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에요.
타인에게 피해와 더 나아가 범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요. 감정에 자유로운 삶.
이런 글을 쓰는 건, 저 자신도 다분히 그런 인간이어서요. 상당히 감정적이고 그 감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합니다.
치기 어린 시절은 지나서, 이제 감정이 태도가 되어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미 혹자들에겐 존재 자체가 민폐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들이 창궐한다고하여 그것이 범법이나
범죄로 이어지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가요.
그 만화의 내용대로 살아온 환경이 사람의 인생 전반을 좌우한다는 건 어떤 측면 엄연히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그 가난한 인생 자체가 실패는 아니잖아요.
불안정한 정서가 열등한 것은 아니지요. 기름기 흐르는 안정감 =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구요.
그런데 불우하고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묘사한 많은 부분이 자신의 환경에 대한 자책과 지나친 자기모멸 같아서,
이제 겨우 체면 번듯한 중산층 반열에 올랐다한들 이미 스스로 과거에 사로잡혀 있겠고, 안정적인 배우자와 잘 사는 것 같아도 내적으로 형성된 주종관계로
끊임없이 눈치보며 비교하며 괴로워하겠구나 싶어요. 이를테면 제대로 된 양식을 먹어본 적 없다고 인생 내내 줄창 먹어댄 김치찌개를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어디까지나 제 감상입니다.
조부모 이전 세대부터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 가풍 아래 잘 교육받은 친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이미 세습되었거나 구축되어진 적당한 부를 누리는 안락한
생활 속에서 수준높은 교육을 받고 자라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가진 사람의 정서적 안정이, 좋은 인성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매끈한 생활들이 곧 성공적인 삶의 귀결이라고 여기지도 않고요.
저는 이것을 일종의 규격화와 평준화로 정의하고 있어요.
어떤 일정한 비슷한 수준이 아니면 급격한 불안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그렇지 않는 조건들에 대해서는 왜 그런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커녕 다양성에 대한 인정조차 하려고 들지 않죠. 사는 수준이, 사는 동네가, 교육 수준이, 비슷한 그룹끼리 결속되기 쉬운 세상이고 그 결속은 결코 정한 수준이 아니면 끼워주지 않는 배제를 전제로 하는, 요즘은 특히 더 그런 추세죠.
그보다 더 못마땅한
것이, 정서의 규격화로 이어지는 듯한 그 젠 체 하는 점잖음과, 가급적
어떤 감정이라도 노출하지 않거나 여과 되어야만 세련된 도시 중산층 이상의 수준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요.
제 주변에 그런 부류들 꽤나 많이 봤어요. 솔직히… 구역질 납니다.
그 정서적 세련됨을 유지하느라 쿨병 걸려서, 짐짓 온갖 여유 있는 척 하지만 사실은 가장 많은 눈치를 보고 살죠. 스스로 정한 자신의 이미지에 갇혀서…
대부분의 인간들 다 거기서 거기고, 결국 인간은 그렇게 정제된 감정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예요.
가끔 그런 치들에 제에게 훅 들어와, 자신에 대해 털어놓으려 하거나 조언을 해 달라고 할 때 있어요.
하지만 타인을 통해 자신의 현 위치를 재확인 하려는 빤한 시도에는 절대 응해주지 않아요.
맨정신에 얼굴 똑바로 보며, 제가 유일하게 건조해지는 순간입니다.
2020.11.10 13:31
2020.11.11 10:18
가영님 굿모닝, 게시판에 사진 올리는 방법 좀 쉽게 알려주실래요? 고양이 사진을 올릴거에요.
2020.11.10 13:53
2020.11.11 10:19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견해같지만, 어쨌든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군요. 감사합니다.
2020.11.10 14:13
2020.11.11 10:23
사회성을 훈련하고 사는 방식은 이미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차고 넘치게 배우고, 엄밀히 이미 그 안에서도 서열은 나뉘어 있죠. 볼공평을 최초로 체득하는 게 학교니까요.
다만 개인의 고유성에 대한 다양한 변주들에 대해, 어느 순간 그런 건 너무 부끄럽고 감출수록 좋은 거다 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지요. 특히 어느 계층 이상으로 올라가면.
그러면서 다들 소통은 목말라하고, 그러니 SNS에서 쇼잉하는 것에 집착하면서 오늘도 외롭다 합니다. ㅋㅋㅋㅋ
2020.11.11 10:46
2020.11.11 14:31
잘 활용하면 순기능도 많겠죠. 부작용도 만만찮지만...하기사 남들이 뭘하건 무슨 상관이겠어요. 허세도 떨고 자랑질 좀 하고 싶다는데 ㅋㅋㅋ
2020.11.10 23:14
몇 년 전 백화점 식품관에서 마주친 제 고교 동창이 생각나게 하는 글이예요. 백화점 멤버십 소지,애 영유 보내는 것에 대한 프라이드, 강남에 대한 동경과 애가 강남 병원에서 태어난 것까지도 강조하던 모습이요. 자신이 열심히 살아서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던데 자식이 돈 들일 만큼 공부를 잘 하지 못 하면 어떻게 될까, 자기보다 위라고 느껴지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자격지심과 시기심을 느끼고 살 지가 보여요. 차라리 솔직하게 속물적 욕망을 드러내는 건 순진해 보였어요. 헤어질 때 항상 만나고 나면 기가 빨렸고 내가 이용당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행복하다니 다행이라고 말해 줬어요 그런 애한테 더 이상 에너지를 나눠 주고 싶지는 않아요, 에너지 뱀파이어들.
2020.11.11 10:29
쓰신 글로만 봐서는 그 친구분도 이도저도 중상류계층 주변 기웃거리며 열심히 살고 계시겠어요. ㅎㅎ
제 주변 사람들은 결코 돈자랑도 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자랑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삶(레벨)을 내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 부분에 굉장히 민감해요.
그냥 제 눈엔 다 별것도 없어보이는데 ㅋㅋㅋ, 마이바흐를 타는 사람이나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나 뭐가 달라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고요.
난데 없지만 그 잘난 S모 그룹도 명품 브랜드 하나씩 국내에 유치해 들여올 때마다 LVMH에 엄청 접선했다던데, 겉으로야 글로벌한 우정이지만 엄청나게 시녀노릇 했을 거에요.
그들 기준으로 제 삶이 비루할지 몰라도 그냥 저는 상위지향에 대한 욕망이 없는 사람이고 궁금하지도 않거든요. 그 사람들은 그게 약오르는 건지도...
긍정적 감정이든 부정적 감정이든 솔직한 감정대로 지르며 내 노동력을 가동하고 대인관계를 지속하며, 남은 시간 좋아하는 취미 영위하면서, 누구 눈치볼 필요없이,
춥지도 덥지도 않게 사는 내 삶이 어설픈 취향을 흉내내고 획일화 된 기호에 따라가기 급급한 부류들보다는덜 피곤하고 삶의 질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암튼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는 열심히 살아야죠ㅎㅎ.
2020.11.11 15:25
2020.11.13 14:27
제가 원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과는 조금 다르고, 제 말이 맞다 틀리다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런 류의 많은 부류들이 패착이 꼭 타인에게 인정받고 부러움을 사야 직성이 풀리더군요, 그렇게 열심히들 살아서 자기들 배부르고 등따숩게 살면 될 텐데 그걸 꼭 남한테 확인받고 싶어하고 그거 안 해주는 엄청 삐져요.
2020.11.11 00:08
2020.11.11 10:42
어머, 폴리리듬님 너무 오랜만 아닌가요? 잘 지내고 계시죠? ㅎㅎ 제가 그냥 만화하나 보고 그냥 아무렇게나 아무말대잔치로 쓴 글인데, 폴리님 주변에도 그런 부류들이 제법 있으신가요? 도시적이고 세련된 감성 시크한 무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런 차갑고 맨들맨들한 비닐감촉은 저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