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오리지널이에요. 전체 8개 에피소드이고 하나당 50분 정도. 스포일러 없게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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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들 영어를 쓰고 배경도 미국인 것 같지만 이상할 정도로 북유럽 느낌이 나는 시골 마을이 배경입니다. 구체적인 연도는 안 나오지만 딱 봐도 80년대풍이죠. 다들 구닥다리 티비와 라디오를 사용하며 사는데 거리엔 로봇과 호버 트랙터가 돌아다니는 마을. 빈티지 SF라고 해야 하나... 암튼 이 마을 지하에는 '이클립스'라는 정체 불명의 공중부양 구체가 묻혀 있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 물체를 연구하는 '루프 연구소' 관련 일을 하며 삽니다. 아마도 이 마을의 SF적 문물들은 다 그 루프가 진행하는 연구의 부산물이 아닌가 싶지만 뭐...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구요.

 그냥 그 루프 때문인지 아닌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이 마을엔 자꾸만 현대 과학과 상식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져요. 8개의 에피소드 모두 그런 사건들을 하나씩 다루고 있고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매번 바뀌지만 서로서로 다 알고 지내는 동네 사람들이라서 아주 느슨하게 연결이 됩니다. 

 뭐... 딱히 메인 줄거리라는 게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줄거리 소개는 이 정도만.



 - 제목에도 적었듯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의외인 부분은 이게 딱히 SF라고 보기 애매한 시리즈라는 겁니다.


 마을 지하에 보관된 이클립스라는 물체와 연구 기관 '루프'는 그냥 맥거핀이자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느슨하게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요. (무슨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아마 그것 때문이겠지 뭐!!) 시작부터 끝까지 이 루프는 단 한 번도 이야기의 중심에 나서지 않고 그 정체가 규명되지 않으며 이야기는 단 한 번도 그 정체에 관심조차 갖지 않습니다.


 매 에피소드마다 벌어지는 사건들도 마찬가지에요. 중요한 건 사건 그 자체와 그로 인해 주인공들이 겪는 심적 갈등과 성장이고 이야기들은 매번 거기에만 집중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같은 건 단 한 번도 설명되지 않고 주인공들도 거기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아요.


 시간 여행, 영혼 교환, 시간 정지, 평행 세계, 인공 지능 로봇 같이 딱히 특별할 것 없는 SF의 단골 소재들을 하나씩 툭툭 던져대지만 결국 이 시리즈가 다루려는 건 사람들의 고독, 의사소통과 감정 교류의 불가능성, 사라지고 변해버리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슬픔,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 찾아오는 성장통... 뭐 이런 겁니다. 


 암튼 핵심은 이걸 보실 생각이라면 SF 장르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접어 버리시는 게 좋을 거라는 얘깁니다. 걍 포장이자 토핑일 뿐이에요. 그나마도 아주 간소한.



 -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강력한 특징이 뭐냐면...

 느리고 지루합니다. 처음에 밝혔듯 한 에피소드의 분량이 50분 정도인데, 정상적(?)으로 만들었다면 거의 다 30분 이내에 끝낼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이야기들이 죄다 아주 그냥 여백의 미가 흘러 넘쳐요. ㅋㅋㅋㅋ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내리는 햇살, 광활한 평야에 떠 있는 트랙터, 황량한 바닷가의 설경, 그리고 그런 풍경 속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상념에 젖은 표정... 뭐 이런 이미지들이 오히려 핵심이고 줄거리는 그냥 거드는 정도? 라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그런데 다행히도, 이런 '여백의 미'가 실제로 아주 보기 좋고 듣기 좋습니다. 애초에 원작이 일러스트북에 가까운 그림책이고 거기에서 따오고 영감을 받은 이미지들이 죽 이어지는데 이게 분위기가 상당히 그럴싸하구요. 또 음악들도 상당히 듣기 좋거든요. 예쁜 그림과 풍경 감상하는 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보실만도 하실 듯.



 -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야기 속 드라마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나름 격렬한 감정과 고통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지만 늘 기본 분위기는 '관조적'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느릿느릿 차분한 분위기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데다가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렇게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들은 또 아주 철저하게 일상적인 것들. 사람이 살다보면 다들 으레 겪게 되는 그런 것들이죠. 연인과의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에 대한 슬픔이라든가, 부모의 사랑에 대한 갈구라든가, 절친과의 미묘한 어긋남으로 인한 갈등이라든가, 부모 내지는 조부모와의 사별이라든가... '왜 나만 안생겨요'도 있구요

 여기에 느릿한 전개 템포까지 더해져서 정말 싱겁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전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어요.


 일단 배우들 연기가 정말 좋습니다. 할매, 할배, 아저씨, 아줌마, 젊은이들, 어린이들 모두 다 연기가 그렇게 좋더라구요. 다들 대사가 별로 없어서 

 그리고 이걸 뭐라 해야 하나... 미츠루 아다치식 연출? ㅋㅋ 뭔가 50분 내내 절제된 분위기로 가다 보니 막판에 주인공들이 어떤 감정 하나 토해내고 대사 한 마디 내뱉고 하는 게 상당히 공감이 되고 와닿는 느낌이 있습니다. 또 그런 장면들마다 그림도 예쁘고 음악도 좋고... 아주 약간 '보이후드' 생각도 나더라구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참 별 거 없는데 그래도 뭔가 와닿는 게 있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습니다.



 - 대충 이쯤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코스로 제공되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스프 같은 느낌입니다. 핵심은 스프인데 그 스프는 그릇 한 가운데 한 줌 담겨 있고 그릇만 거대한 거 있잖아요. ㅋㅋ

 근데... 다행히도 그 그릇이 상당히 예쁘고 조금이라도 담겨 있는 스프는 맛이 심심한 듯 하면서도 먹다 보면 괜찮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장르물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환상특급이나 블랙미러류의 앤솔로지 st. 재미를 기대하셔도 안 되구요.

 애상적인 정조의 이미지와 음악을 깔고 느릿느릿, 아주 소박한 톤으로 '인간의 일생'을 다루는 차분한 드라마에요.

 그게 뭐 그렇게 깊이가 있고 음미할만한 수준으로 표현이 되었냐? 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긍정하진 못 하겠습니다만.

 저는 그냥 그 분위기가 어떻게든 즐겨지더라구요. 덕택에 중간에 끊지 않고 완주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남에게 추천도 못 하겠습니다.

 일단 이 스타일에 적응하는 게 참 고통스럽구요. (1화를 볼 때 지인짜 힘들었습니다 ㅋㅋㅋ) 또 에피소드별로 편차도 꽤 크구요.

 그냥 뭐랄까... 최근들어 너무 자극적인 것들만 봐서 뭔가 좀 색다른 걸 경험해보고 싶다든가. 오늘따라 엄청나게 느리고 지루한 것도 얼마든지 감당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든가(?) 하시는 분들은 시도해 보세요. ㅋㅋㅋ 아님 걍 독특하게 예쁜 그림들을 좋은 음악에 곁들여 구경하고 싶으시든... 아. 그만하겠습니다.




 + 에피소드들이 종종 완전히 끝난 게 아닌 느낌으로 마무리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체로 마지막 에피소드로 연결이 되는데요. 역시 뭐 대단한 걸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앞부분의 이야기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며 큰 그림을... 그딴 거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



 ++ 보면서 계속 생각났던 게, 쌩뚱맞게도 '카페 알파'라는 일본 만화책이었어요. 이 드라마의 세계는 멸망해가는 세계는 아닙니다만. 그냥 분위기가 닮았더라구요. 황량하고 한산하면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 옛날에 사서 몇 번 반복해 읽고 책꽂이에 처박아 놓은지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한 번 다시 꺼내서 읽어볼까 싶네요.



 +++ 워낙 제가 요즘 배우들을 잘 모릅니다만. 그래도 레베카 홀 한 명은 알아보겠더군요. 이 분도 연기 좋았어요. 뭐 대부분 다 좋았지만요.



 ++++ 에피소드별로 연출이 다 다른데 스타급까진 아니어도 나름 경력이 꽤 괜찮은 연출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마도 최강 네임드는 마지막 에피소드를 연출한 조디 포스터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앤드류 스탠튼의 에피소드였습니다. 어차피 각본은 남이 써준 거긴 하지만 일단 이야기 자체가 정말 픽사스럽(...)게 좋았어요. 뭔가 Up의 프롤로그랑 비슷한 정서였거든요.



 +++++ 적다보니 또 이게 호평처럼 되어 버렸네요? ㅋㅋㅋㅋㅋㅋ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거 되게 지루합니다? 그리고 싱겁습니다. 혹시라도 보실 분들은 정말 기대치를 정확하게 맞추시는 게 좋아요. 보고 재미 없다고 저에게 악플 다셔도 저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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