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리뷰랄라랄라] 이클립스

2010.07.04 00:27

DJUNA 조회 수:4380

언제나처럼 우리의 여자주인공 벨라 스완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남자친구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남자절친 늑대인간 제이콥 사이에서 즐겁게 즐겁게 어장관리를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영화를 끌어갈 수 없는 법. 1편 때부터 남자친구의 복수를 위해 벨라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빅토리아가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등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빅토리아는 동네 애들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군대를 양성하는데, [트와일라잇] 세계에서는 막 뱀파이어가 된 초짜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그럼 [이클립스]는 뱀파이어 군대들의 전쟁을 다룬 액션 영화일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예고편을 보니 액션이 조금 있는 것 같다고요? 속으신 거예요. 예고편에 나오는 액션이 정말 다 거든요. 영화는 진짜로 액션에 관심 없어요. 액션은 핑계일 뿐,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벨라의 어장관리니까요. 이 영화의 액션은 미식축구 선수와 치어리더의 섹스를 그린 포르노 영화에서 미식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과 같아요. 에드워드와 제이콥이 번갈아가며 벨라에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외치는 한 액션의 내용은 무의미하지요.


그러나 영화의 존재 이유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클립스]가 성의 없는 영화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액션이 아무리 핑계라고 해도 이 영화의 액션은 좀 너무했어요. 나름 큰 돈을 챙기려는 블록버스터 영화인데도 평범한 미국 드라마 한 편의 의미밖에 없으니까요. 이건 감독이나 특수효과의 문제가 아니에요.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감독 데이빗 슬레이드는 빈약한 소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기둥이 되는 원작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죠. 아무리 액션 장면을 살리려고 노력해도 불량 청소년들의 패싸움보다 심심한 이야기가 재료이고 여기에서 벗어날 자유도 없다면 방법이 없죠.


영화에서 진짜로 나쁜 건 액션이 아니라 로맨스입니다. 더 이상 [이클립스]는 의미있는 로맨스를 그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영화의 로맨스는 정체되어 있습니다. 벨라를 중심에 둔 에드워드와 제이콥의 갈등은 드라마가 아니에요. 이들의 관계에는 어떤 감정의 흐름도 없습니다. 세 주인공들 중 '벨라는 에드워드를 사랑하지만 제이콥을 옵션으로 두고, 남자 둘은 모두 벨라를 진짜로 진짜로 사랑한다.'라는 기본 상황을 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없어요.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제자리 걸음인 겁니다. 


캐릭터들도 이제는 끔찍한 수준입니다. [트와일라잇]의 팬들이 에드워드와 제이콥에게 비명을 질러대는 건 순전히 관성이에요. 이들은 매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캐릭터도 없으니까요. 전 '남자애들은 이렇고, 여자애들은 저렇다'는 말을 싫어합니다만, 에드워드와 제이콥에 대해서는 정말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왜 1세기 이상을 살아온 뱀파이어 영감과 곧 스물이 되는 늑대인간 청년이 모두 14살 여자애들처럼 대사를 치는 거죠? 배우들 역시 의욕이 없어 보입니다. 로버트 패틴슨은 영화 내내 자신의 민망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그냥 졸린 것 같아요. 같은 배우가 [런어웨이즈]에서 날고 기던 걸 본 게 바로 며칠 전이라 그 차이가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그나마 테일러 로트너가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 배우의 연기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죠.


물론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팬들은 제 불평 따위엔 별 관심이 없을 겁니다. 저 역시 그들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쓰고 있는 건 친구나 애인에게 끌려 억지로라도 이 영화를 보게 될 위기에 처한 평범한 관객들을 위한 충고나 경고 정도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1,2편을 본 관객들은 이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이 글은 전혀 쓸모가 없겠죠.


기타등등

조델 펄랜드가 잠시 나옵니다. 역은 하찮아요.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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