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3 18:07
오늘도 책 이야기 조금 합니다.
문학 이외에 좋아하는 책의 갈래가 두셋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평전입니다.(평전도 문학에 넣기도 하지요) 많이 읽진 못 했지만요.
책장을 둘러 봤더니만 글렌 굴드, 마르크스, 알튀세르, 히치콕, 모딜리아니, 렘브란트, 뭉크, 마크 트웨인, 김수영, 로자 룩셈부르크, 발자크, 카뮈, 토마스 만, 레이먼드 카버, 발터 벤야민, 비트겐슈타인, 이런 님들의 평전이 보입니다. 오래 전에 사 두어서 지금 보면 대체 뭐에 홀려서 샀는지 모르겠는 책도 있긴 해요. 예전에 서점에 가서 산 책이 꽤 있는데 아마 책 자체가 예뻐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책에는 앞 부분에 대상 인물 사진자료가 들어가고 그 흑백 사진들이 또 꽤나 사람을 끌잖아요.
평전에 관심이 있다 보니 정작 책의 주인공이 쓰거나 만든 작품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예 모르는 경우에도 책 소개를 읽다 보면 쉽게 혹해서 구매에 이르게도 되는데 여기 해당하는 대표적인 책이 비트겐슈타인의 평전 '천재의 의무'입니다. 제가 철학, 더구나 어렵기로 유명하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전혀 모르죠. 그런데 레이 몽크라는 전기작가가 쓰고 필로소피에서 나온 900페이지짜리 벽돌책을 몇 년 전에 사서 어쩐 일로 완독했었습니다. 이 철학자가 고민하는 논리학, 수학적 내용이 나오는 부분은 음.. 까만 것은 글자(숫자)요... 하고 읽은 것이지만 다 읽은 제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자타공인의 뛰어난 철학자이나 남에게 차마 말하기 어려운 인간적 부족함이 있더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또 세부를 확인하게 되면 일반인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는 부분, 성찰의 능력 같은 것에 공명했던 것, 이분이 나중에 러셀을 평가절하하던 것, 노르웨이에서의 독거생활이 지금 얼핏 떠오르네요. 일생을 다루어서 철학의 전문적 내용은 그리 분량이 많지 않았고 저자가 글을 잘 써서인지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기하고 있는 소설을 읽고 난 후에 위에 있는 책 중 드디어 발터 벤야민의 평전을 읽으려고 합니다. 벤야민도 짧은 토막글로만 접했을 뿐 제대로 읽은 저자는 아닌데 비트겐슈타인 평전이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에 이르게 하지 않았음과 달리 벤야민 평전은 벤야민의 어떤 책에 이르도록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앞서 샀던 장 아메리의 '죄와 속죄의 저편'(1966)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다섯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어요. '정신의 경계에서, 고문,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 원한,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라는 소제목입니다. 수용소 경험을 구체적으로, 시간순으로 전개시킨 수기가 아닙니다. 책을 쓴 것이 수용소 체험 직후가 아니고 십수 년 흐른 후입니다. 종교도 없었고 마르크스 주의 같은 신념도 없었던 그냥 지식인인 본인에게 아우슈비츠에서의 일이 어떤 성격의 사건이며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숙고한 에세이입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전후 세계의 상황을 반영시킨 내용이기도 합니다. 붙잡히자 바로 고문을 당하는데 함께 활동했던 조직원들이 모두 가명이라 털어놓을 꺼리가 없어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다네요.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오스트리아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했던 저자가 어떤 식으로 정체성이 파괴되었는지 적고 있습니다.
읽으려고 하는 책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2008)입니다. 이분 책은 다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것 같네요. 2010년 나온 책입니다. 사 두기만 했는데 저자의 다른 책도 여러 권 이어서 나온 상태라 미루지 말고 읽어 봐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미국현대소설을 시도합니다.
저녁 식사 즐겁게 하시길.
2023.09.14 13:44
2023.09.14 14:26
난독증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안타깝습니다. 메가박스에서 오페라 영상도 꾸준히 하는 거 같던데 저런 강연도 하나 보군요.
2023.09.16 00:01
2023.09.14 13:58
와.... 평전이라는 책을 읽어볼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요....
다른얘기긴 한데 최근에 일론머스크 책이 나오길래 저런책은 누가 본가 했는데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더라구요....
2023.09.14 14:30
평전은...아마 남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은 얄팍함이 저에게 있는가 싶기도 해요. 분야나 사람이 극히 제한되긴 하지만요. 일론머스크는 큰돈 좀 앵겨 주면서 부탁하면 읽을까 쳐다 보기도 싫네요.ㅎ
2023.09.14 14:01
어렸을적 집에 깨알같은 글씨의 연한 갈색 하드커버 위인전집이 있어서 힘이 날 때마다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럭저럭 어린이용보다는 자세한 내용들이 들어 있었던 것 같고, 헬런 켈러와 에디슨, 라이트 형제만은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ㅋㅋ. 말씀하신 분들 중 로자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남자라는게 흥미롭군요. 평전은 아직 남성적인 영역인걸까요. 저도 어떤 이들의 평생 삶에 대해 관심은 많은데 유명인보다 일반인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할매의 탄생] 같은.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등을 재미있게 읽어, [모스크바 일기]를 읽어봤는데 의외의 행적에 조금 실망했었거든요. 평전으로 제가 오해했는지 한 번 더 기회(?)를 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올리브 키터리지]도 반갑네요.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그 담담함이 괜찮았던 기억입니다. 드라마까지 나온걸 보면, 꽤 울림이 있었나봐요. 저는 최근 [아르테미스]를 다 읽어, 앤디 위어의 우주 삼부작을 채웠네요. 젊은 아랍계 여성 주인공과 달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이삼십년 후면 가능한 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네요. 전자책으로 틈틈히 시간 날 때 읽어 다 읽어낸걸 보면 재미있었나 봐요. 약간 미국 영화 같은 내용이지만, 달도시의 디테일을 관광하는 느낌으로 읽었네요.
2023.09.14 14:51
사실을 말하자면 자랄 때는 전기 종류를 아주 싫어했어요. 잔인한오후 님이 읽으신 책은 성격이 다른 거 같지만 어린이청소년용으로 나온 대부분 책이 좀 천편일률의 전개에 의도도 빤하였으니까요. 학교에서 글쓰기 숙제도 주로 그쪽 책이어서 더 거부감이 컸던 것 같아요. 이십 대 이후에 책으로 만나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인물들을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소설 속 인물에 흥미를 가지는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성이 한 명 뿐이네요. 평전이 압도적으로 남성 유명인이 많기도 하고 제 관심의 폭이 좁아서이기도 합니다. 열거한 대부분 책을 산지가 꽤 되어서 지금 같으면 지갑을 열지 않았을 사람도 여럿 보입니다. 벤야민은 여기저기서 워낙 마주치게 되는 이라서 읽긴 해야지 생각만 오래 했네요. 실망의 지점이 어딘지 행적을 유심히 봐야겠어요.
앤디 위어 재미있게 잘 쓰죠. 말씀처럼 디테일에 공을 들여서 막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어요. 유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아르테미스'만 안 읽었어요. 보관함에 넣어 둡니다.
2023.09.14 15:30
소문나기로는 3부작 중 [아르테미스]가 가장 재미없다고 하는데, 과학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서인가 싶었습니다 ㅋㅋ. (아니면 너무 헐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서사 때문일지도.) 제 기억에 나머지 두 권은 남자 주인공인데 (심지어 거의 원맨쇼) 이 책은 다른 여성분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받으면서 여 주인공으로 서사를 짰더라구요. 저는 [헤일메리 프로젝트]가 제일 재미있었고, [마션]이 생각보다 제일 별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023.09.14 19:39
'프로젝트 헤일메리' 저도 참 재밌게 읽었어요. 이건 원&투맨쇼라 해야 되나 ㅎㅎ 이거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영화 준비 중이라죠.
2023.09.15 18:06
2023.09.15 20:52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말씀이면 이 책도 페이지 수가 무시무시하던데 큰 도전이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람이면 더 나은 독서가 되겠지만 말씀처럼 평전은 그렇지도 않은 거 같아요. 대상 인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다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 인물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ㅎ 저자가 인물에 대한 자료를 성실하게 다루는 것은 기본이겠고 거기에 저자의 개성과 안목이 더해진 글쓰기를 한다는 부분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해서 뭘 조금 다루고 뭘 더 다루고 어느 부분을 확장시킬 것인가 같은 것. 문장 포함해서 글 자체가 훌륭하면 인물과 저자가 모두 주목받기도 하고요.
2023.09.15 20:20
다큐멘터리 영화도 잘 안 보는 성향이니 평전도 안 읽습니다만. 너무 훌륭하고 대단하신 분이 아닌 비틀리고 안 정상적인 천재... 같은 사람 이야기라면 구미가 동할 것 같기도 해요. 아무래도 어려서 강제로 읽었던 위인전들이 남긴 악영향인 듯. ㅋㅋ 근데 사실 요즘 '평전'이라 나오는 것들은 대체로 그런 이야기들이 많겠죠. 역시 그냥 제 게으름이 문제인 걸로. 하하;
2023.09.15 21:02
저도 어려서 읽은 전기 종류 땜에 그때 접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거부감을 안게 되었어요. 어린이들에게 위인 전집 같은 건 신중하게 접근시켜야...
위에서도 썼지만 어떤 안목과 글빨의 소유자인 저자가 쓰느냐가 중요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독자는 관심가는 인물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약간의 경박함도 필요하고요..ㅎ
글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난독증만 아니었으면 저도 몇권은 흥미있게 읽었음직한 인물과 소재네요. 미술(회화)에 대한 강의는 열심히 찾아가서 들어요. 다음 주 예매한 강연 제목이 (([아트프렌즈 Talk] 인상파 그림은 왜 그렇게 비쌀까요?) 주요정보 < 영화 | MEET PLAY SHARE, 메가박스 (megabox.co.kr)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