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9 23:52
임대형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영화감독인 아들과 함께 단편영화를 찍으려는 이발사의 이야기입니다. 타이틀롤인
모금산씨에겐 그래야 할 사연이 있지요. 보건소에서 위암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고, 구식 '주말의 명화' 세대 영화광이며,
젊었을 때는 영화배우가 되려고 오디션을 보러다녔거든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는 이 시기에 자신의 젊은 시절
꿈을 이루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아들을 영화감독으로 키워놨으면 그 정도는 해볼만 하잖아요.
이 정도면 한국식 멜로드라마의 소재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멜로드라마를 추구하지 않아요.
일단 모금산은 병원에서 제대로 진단을 받지 않았어요. 위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좀 애매한 상황인 거죠. 관객들은
이 상황에서 미리 눈물을 흘리는 대신 객관적인 태도로 모금산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멜로드라마보다는 조금
엉뚱한 코미디가 전개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안전한 영화입니다. 무덤덤한 코미디는 상대적으로 통제가 쉬워요. 관객들을 노골적으로 웃기거나 울리는
건 천박해보이지만 상당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하지만 무덤덤한 코미디는 관객들의 반응을 걱정하지 않고 정도를
지키며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더 '예술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심지어 이 영화는
흑백이거든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럴싸한 현실적이면서도 조용한 위트가
담겨 있는 오밀조밀한 캐릭터들과 세계를 창조한 다음 그들을 아주 매력적으로 결합했어요. 이 영화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지는
않지만 두고두고 생각나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삶의 조각들이 조금씩 쌓여 예술작품의 재료가 되는 구성은 클리셰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의 예술가가
단 한 번도 무언가 창조적인 작업을 한 적이 없는 평범한 서민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울림은 큽니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내려는 욕망은 결코 예술가만의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겐 창조의 권리가
있으니까요. 아무리 그 결과물이 특별하지 않고,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진 후 곧 잊혀진다고 해도.
(17/12/19)
★★★☆
기타등등
트위터에서 좋은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로 알려졌고,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 본문에서 여성 캐릭터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 영화를 설명했습니다. 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좋은 여자' 역할의 조연들로
자기만의 이야기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남자, 또는 남자들의 이야기거든요. 여전히 여성
캐릭터들은 좋지만, 그건 '성폭력과 성희롱이 없는 좋은 영화 촬영 현장'과 같은 의미로 좋습니다. 좋은데 그건
당연한 것이죠.
감독: 임대형, 배우: 기주봉, 오정환, 고원희, 전여빈, 유재명, 김학선, 다른 제목: Merry Christmas Mr. Mo
IMDb http://www.imdb.com/title/tt609597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9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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