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의 세계

2014.10.07 00:13

칼리토 조회 수:1459

상가에 다녀왔습니다. 분향하고 영정에 절을 할때마다 고인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다시 떠올려지지 않는 찰라의 기억이지만.. 한 인생에게 하나의 세계가 닫힌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가끔 궁금합니다.


이분법의 세계를 생각합니다. 하나의 문이 열리면 다른 하나의 문은 닫힙니다. 둘 모두에 들어가볼 방법은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한 없습니다. 가지 않은 길 어쩌고 하지 않아도 앞으로 내쳐 달리기만 하는 시간과 싸워 이길 존재는 영화상의 슈퍼맨밖에는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를 닫고 하나를 열어버린 세계에 들어와 오도카니 살아갑니다.


새삼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고 생각하게 되는 나이는 사십하고도 중반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십대의 패기와 열정, 삼십대의 원숙함과 자신감 같은 것들이 사십대가 되면 의혹과 불안으로 탈바꿈을 합니다. 분명히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는 과거의 내가 선택한 곳이고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지만 언뜻 언뜻..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어지는 때가 옵니다. 그러면서 중년의 위기가 어쩌고.. 존재의 불안감이 어쩌고 하면서 생뚱맞은 일을 벌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과거의 내가 하지 않았던 하지 못했던 일을 이 나이 들어 다시 한다고 해봤자 성공할리도 그리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닐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미 닫아버린 문을 다시 열 방법은 없으니까요. 거기서 딜레마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도 온통 선택의 문앞에서 나처럼 서성이는 사람들로 그득합니다. 어떤 친구는 직업적 성공을 자랑하고 어떤 친구는 은근히 부를 과시합니다. 내가 열지못한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친구들의 모습에 살짝 기가 죽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선택의 문앞에 서서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나라는 존재, 비록 보잘것없고 성취한 것 없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지키는 선택을 계속 되풀이 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남들이 보는 눈이야 어떻든 이분법의 세계에서는 결국 나자신을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해보면서요.


우리 모두 언젠가 이 세상의 문을 닫고 삶의 종지부를 찍을때가 올것입니다. 하나의 문이 열리고 다른 문이 닫히던 수많은 가능성 사이에서 단 하나 마지막 문을 열때가 말이죠. 그때가 올때까지.. 조심스레 다가오는 문들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기만을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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