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전엔 누군가의 추천으로 방탕일기를 봤어요. 아무래도 단지작가의 만화는 전작과 떼어놓고 볼 수가 없어요. 자전적인 이야기라거나 자서전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겪은 실화-본인 주장-들을 통째로 늘어놓는 거니까요. 어쨌든 과장이 섞였던 안 섞였던 만들어진 캐릭터와 만들어진 서사로 전개되는 '극'은 아닌 거예요. 일화들의 나열이라고 해야겠죠.


 그러니까 단지작가가 신작을 연재한다...라는 소식만으로도, 사람들은 전작에서 일방적인 피해자로 묘사되던 사람이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라도 한번쯤은 가서 보게 될 거거든요. 전작인 단지를 봤다면요. 어쨌든 보다보니 몇 가지 재미난 점들이 있어서 연재분까지 다 봤어요. 



 2.방탕일기는 일종의 치유 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전에 내가 말했듯이, 다른 사람에게 오랜만에 연락하거나 자기 얘기를 늘어놓고 싶은 건 자신이 좀 나아졌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기자신을 갱신시키기 위해 만나거나 연락하는 거죠. 방탕일기도 그런 거랑 비슷해 보여요.


 방탕일기를 보고 있으면 '야 니들이 단지에서 본 내가 전부가 아니야. 나 이렇게 잘 나가게 됐다 짜식들아. 나 이렇게 잘 놀줄 알고 잘 벌줄 아는 사람이야.'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보여요. 적어도 초반엔요. 초반에 돈 얘기도 좀 나오는데 그 부분도 인상적이었어요.



 3.방탕일기 초반에 돈이 세상의 전부라는 말이 나오죠. 단지작가의 말이 맞을까요? 나는 맞다고 생각해요. 돈이 없다가 돈이 생긴 그 순간의, 그 사람에게는 맞는 이야기인 거죠. 


 제삼자는 그걸 보며 '쯧쯧 저녀석 착각 속에 살고 있네.'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타인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거든요. 얼마 전까지의 자신의 위상이나 처지, 그리고 대폭 나아진 처지를 실시간으로 비교하며 살아가는 당사자에게는 얘기가 달라요.


 처음 돈을 가져보면 매우 기쁘거든요. 사먹을 엄두조차 안 나던 맛있고 비싼 것도 잔뜩 시켜서 먹다가 남겨도 되고 여기저기를 가볼 수 있어요. 그렇게 몇 달이나 몇년은 지나가야 다시 냉정해질 수 있죠. '돈이 풍족하다'라는 사실에 너무나 익숙해지고 공기처럼 느껴지게 되어야 또다시 생각이 바뀌니까요. 그렇게 되어야 '돈이 세상의 전부야.'라는 생각이 바뀌는 거거든요.



 4.휴.



 5.그야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기간은 개인차가 있어요. 돈으로 뭘 원하는지에 따라 다르고요. 한데 나는 방탕일기를 보며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아닐까...라고 주억거리며 봤다죠.


 왜냐면 단지작가가 돈으로 하는 것들을 보면 소비 자체가 주요한 활동은 아니거든요. 만화에 나온 것들을 가만히 보면 뭐 엄청난 소비나 사치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엄청 비싼 가격의 재화나 현물을 사는 장면도 안 나오고요.


 그리고 단지작가가 돈을 비교적 많이 쓰는 장면들을 봐도 혼자서 돈을 쓰러 다니지는 않아요. 늘 옆에 남자친구나 아는 사람들이 있죠. 그러니까 단지작가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돈을 쓰는 것이겠죠. 단지작가에게 있어 돈이란 건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주고 폭넓은 활동을 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 정도지 '씨발 돈이 전부야. 돈만 가지고 내가 여기서 끝판왕 될거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안 보여요. 연재 초반에 세상은 돈이 전부다...라는 식으로 피상적으로 말하긴 하지만 그 의미의 폭은 매우 좁은 거죠.


 

 6.이 점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수도 있겠죠. 전에 썼듯이 여자는 돈만 가지고는 100% 미친놈이 될 수 없거든요. 방탕일기를 보니 여성들에게 역시 돈이란 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인 경우가 많은 걸까...싶었어요. 


 아니 그야 남자에게도 돈은 결국 수단이지만, 남자에게 돈은 다른 남자들과의 우열이나 서열을 구분짓는 상징으로서 기능하거든요. 하지만 방탕일기를 보고 있으니 작가에겐 다른 사람과의 서열을 나누는 상징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도와주는 서포터 정도의 개념처럼 느껴졌어요. 


 그야 여자에게도 서열은 중요해요. 하지만 여자에겐 돈이 서열을 나누는 주요한 지표는 아닌 것 같긴 해요. 여자들은 다른 지표를 가지고 경쟁하죠.



 7.최근 연재분은 절도 행위를 저지른 행각을 그리고 있어서 좀 많이 까이는 중이더군요. 그야 연재를 하는 걸 보면 저건 다 지나간 일이고 처벌도 거의 다 끝난 상태긴 하겠지만...욕먹을 일인 건 맞죠.


 다만 나는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더라도 상대가 가르쳐준 위치의 과녁을 노리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공격해 보고 싶다면 스스로 찾아낸 상대의 약점을 공격해야지 상대가 보여주거나 가르쳐 준 약점을 노리는 건 멋이 없잖아요? 그래서 요즘 작가가 먹는 욕이 좀 심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80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415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565
113624 한자와 나오키 시즌 2 예상수 2020.10.06 434
113623 Clark Middleton 1957-2020 R.I.P. 조성용 2020.10.06 231
113622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조성용 2020.10.06 562
113621 [넷플릭스바낭] 범죄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머더: 이웃집 살인 사건'을 봤습니다 [25] 로이배티 2020.10.06 1497
113620 잡담...(스웩과 건강관리) 안유미 2020.10.06 393
113619 완전 코미디 좀비 영화를 봤어요 [1] 가끔영화 2020.10.05 465
113618 에어팟 프로를 샀는데, 공간감 패치가 정말 놀랍네요. [6] 하워드휴즈 2020.10.05 1013
113617 Sometimes i feel so sad [4] 예상수 2020.10.05 502
113616 소니가 드디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가는군요. [10] Lunagazer 2020.10.05 1004
113615 [웨이브] 007 스펙터 뒤늦게 보았습니다. [10] 가라 2020.10.05 737
113614 월요병 [5] daviddain 2020.10.05 446
113613 Thomas Jefferson Byrd 1950-2020 R.I.P. 조성용 2020.10.05 230
113612 뮤지컬 하데스 타운을 내년에 라이센 공연 하네요 [2] 얃옹이 2020.10.05 449
113611 연휴 잡담... 안유미 2020.10.05 390
113610 매드매드 대소동 가끔영화 2020.10.04 392
113609 [넷플릭스] 스페인산 시간 초월 교감 스릴러 '폭풍의 시간'을 봤습니다 [5] 로이배티 2020.10.04 926
113608 [kbs] 나훈아 스페셜(이지만 콘서트 재방송) 후기 [4] 노리 2020.10.04 1452
11360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8] 가을+방학 2020.10.04 1914
113606 이근씨가 이슈가 됐군요 메피스토 2020.10.03 798
113605 스파이더맨에 피터 더 라이트닝 복귀가 가능할 지도? [1] 분홍돼지 2020.10.03 405
XE Login